설교말씀

세상에 빛과 신령한 영의 양식으로 살아봐요 = 레위기 24;1-23(220612)

열려라 에바다 2022. 6. 9. 07:50

PW : 믿음              BIW : 깊이 배려하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세상의 빛을 비추고 하늘의 신령한 영의 양식을 먹고 사는 인생이다.

공휴일!

영구가 괜찮은 중소기업에 취직을 했습니다.
1주일 정도 교육을 받고 담당부서 과장님과 면담을 하던 중에 영구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 회사는 공휴일이라도 뒤에 ‘일’자가 붙은 공휴일은 출근한다는 것입니다.
즉 ‘6월6일 현충일’은 법정 공휴일이지만 뒤에 ‘일’자가 붙으므로 출근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영구는 고민고민하다가 담당부서 과장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영구 ; 저기…과장님!
과장 : 왜?
영구 : 저기…한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과장 : 뭔데?
영구 : 제가 헷갈려서 그러는데요.
우리 회사는 4월초파일을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하나요? 아니면 ‘석가탄신일’이라고 하나요?
부처님이 오신 날이면 쉬는 날이고, 석가탄신일이면 출근해야 하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같은 뜻인데도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서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구원이라는 말을 구원파나 신천지에서 사용하면 지옥에 가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에서 구원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천국 가는 말이 됩니다.
우리들은 천국 가는 말을 사용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항상 하나님의 나라, 천국 가는 말을 쓰도록 해야 합니다.


P4.


우리나라에 예수님이 전래되던 옛날 선교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나라 조선에 온 미국인 선교사가 보니 양반들은 모두 머리에 갓을 쓰고 있는 것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선교사님은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하여 한 유식한 양반에게 물어보았다.
“그 머리에 쓴 것이 무엇입니까?”
“갓이요.”
“아니 갓이라니요! 갓(God)이라면 하나님인데, 조선 사람들은 머리에 하나님을 모시고 다니니 하나님의 영이 이미 그들에게 임했다는 것 아닙니까?”
선교사가 놀라 또 물었다.
“그러면 이 나라 이름이 무엇입니까?”
양반은 한자로 글자를 쓰면서
“朝鮮이요! 아침 朝 + 깨끗할 鮮 이렇게 씁니다.”라고 대답하며 글자를 써 보이는 것이다.
그 선교사는 더욱 깜짝 놀라면서 “깨끗한 아침의 나라! Morning calm의 나라란 말이 맞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조선의 ‘朝’를 풀이해 달라고 하였다.
양반은 천천히 글자를 쓰면서 대답하는 것이다.
먼저 ‘열 十 자’를 쓰고 그 밑에 낮이라는 뜻의 ‘날日자’를 쓰고 또 ‘열十 자’를 쓰고 그 곁에 밤이라는 뜻의 ‘달月 자’를 쓰면서 “이렇게 쓰지요.”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선교사는 더욱 놀라서 혼자 말로 중얼거리는 것이다.
“낮(日)에도 십자가(十) 밤(月)에도 십자가(十), 하루 종일 십자가라는 뜻이군요.”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또 물었다.
“鮮자도 풀이해 주세요.”
그러자 양반은 “물고기 魚 옆에 양 羊 자를 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선교사가 다시 놀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물고기는 초대 교회의 상징인 ‘익투스’라는 말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을 고백하는 말이고, 또 羊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니 鮮자는 완전한 신앙을 고백하는 글자로군요.”
선교사님은 감탄하면서, “朝鮮이라는 나라는 이름부터가 낮이나 밤이나 십자가만 바라보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주이신 어린 양’이라는 신앙고백적 이름을 가지고 있군요. 조선은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복음의 나라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감탄한 선교사가 또 질문을 하나 더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선 사람을 영어로는 어떻게 쓰나요?”
“Chosen People 이라고 씁니다.”
선교사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와우! 선택된 사람(ChosenPeople), 조선인은 하나님이 보내신 동방의 선민(選民)입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자유대한민국은 하나님의 특별히 선택받은 백성들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특별히 불러 주시고, 선택해 주신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씀하고 계실까?


D4.


① 항상 세상의 빛으로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성소에 있는 금등대에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2-4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아론은 회막안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잔대 위의 등잔들을 항상 정리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 밤새 등불을 켜 놓으라.


사실 성막 안에는 곧 지성소와 성소는 동서남북 4면이 조각목과 천으로 둘러 쌓여져 있다. 뚜껑은 네 겹의 가죽으로 씻어져 있다.
그래서 성소 안에는 빛이 들어올 수 없고, 항상 어두 깜깜하다.
그래도 낮에는 괜찮다 할 수 있지만, 저녁에서 아침이 되는 밤 시간에는 정말 캄캄할 수밖에 없다.
어두 깜깜하기 때문에 금등대를 만들어서 설치해 놓은 것이다.
깜깜한 성소를 환한 등불로 밝혀야 분향단에 분향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진설병 빵상에 빵도 진열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금등대에 등불을 켜놓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금등대에 저녁부터 아침이 되는 시간까지는 올리브 기름으로 만든 관유로 등불을 밝혀서 환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등불을 환하게 밝히지 않으면 깜깜한 성소에서 제사장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등불을 켜놓기 위해서는 올리브유를 다시 정제한 관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 올리브유를 헌신하라.


올리브유는 누가 가져와야 할까?
하나님은 2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올리브유를 가져오게 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니 올리브 농사를 하는 백성들이 올리브기름을 짜서 하나님께 가져오면, 올리브유를 가지고 성막이나 성전에서 사용하는 관유만 만드는 제사장 가문에서 관유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올리브 농사를 하는 백성이 올리브유를 헌신하지 않으면 관유를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금등대를 환하게 등불을 밝히려고 하면 백성들의 헌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주님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전하며 온전한 교회로 세워지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가 되려고 하면 믿음의 식구들, 신앙인들의 헌신이 절대적으로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성도들의 헌신으로 세워지고 이끌어가는 것이다.
교회는 성도님들의 헌신으로 세워지고 이끌어가면서 주님은 성도들에게 은혜와 축복으로 채워주신다.


ⓒ 항상 깨어 있으라.


제사장은 밤새 등불이 꺼지지 않고 켜있을 수 있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다.
만에 하나라도 성막, 성전의 등불이 꺼져버리면 그날 등불을 관리해야 할 제사장은 직무 유기가 된다.
그런데 사람이란 존재는 밤에는 누구든지 졸리기도 하고, 잠이 솔솔 오기도 한다.
제사장도 사람이기 때문에 첫날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을 수 있지만, 여러 달, 여러 해를 거듭하면서 사람이란 존재는 누구나 메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해이해질 수 있다.
조금이라도 해이해져 있으면 깜빡 조는 사이에 등불은 꺼질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등불을 맡은 제사장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자신에게 맡겨진 등불 관리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 세상의 빛으로 살아라.


올리브기름은 성령 하나님을 의미한다.
등불이 꺼지지 않으려고 하면 관유가 끊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앙인이 신앙인답게 살려고 하면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채워주심이 끊어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언제나 성령의 충만함과 채워주심과 감동하심의 역사가 끊어지지 말아야만 신앙인으로서 신앙인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등불은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상징하기도 하고, 빛된 신앙인의 삶을 상징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비롯한 신앙인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어두 캄캄한 성소를 금등대에 등불을 켜서 환하게 밝히듯이 예수님은 사탄과 어둠의 세력으로 인하여 죄악으로 물들어버린 세상을 환하게 밝혀서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으로 내려오신 것이다.
신앙인들도 온갖 잡동산이 사상들, 신들, 견해들, 학문들, 지식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 지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면서 진리를 진리로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인도해 주는 등불같은 삶을 살아가야 할 사명이 있다.
신앙인이 항상 성령의 감동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미혹, 유혹에 넘어가서 신앙인답게 살지 못하고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 있다.
하나님은 신앙인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② 영육의 양식을 넉넉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성소에 있는 진설병 빵상에다 안식일마다 빵을 새롭게 진열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5-8절에서 “너는 고운 가루를 가져다가 떡 열두 개를 굽되 각 덩이를 십분의 이 에바로 하여, 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각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성소에 배치되어 있는 진설병 빵상 위에 빵을 12개 만들어서 2줄로 진설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12개의 빵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한다.


ⓐ 빵을 둥근 모양으로 만들라.


빵을 만들기는 하는데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 한글성경에는 구체적인 빵의 모양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히브리원문직역성경에서는 “너는 고운 밀가루를 취하여 그것으로 열두 개의 둥근 빵을 구워야 한다. 둥근 빵 한 개에 십 분의 이 에바가 들 것이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빵 모양을 네모난 빵이든지, 세모난 빵을 만들면 어떠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네모난 빵이든, 세모난 빵이든 모서리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은 모난 분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
모서리는 공격성이 있어서 상대를 찌르거나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래서 둥글게 빵을 만들어야 하나님은 모난 부분이 없고 두루두루 모든 백성들을 용서하고 포용할 수 있는 분이구나 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둥근 빵처럼 모든 백성들을 두루두루 용서하시고 모난 모서리처럼 상처 주지 않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신앙인들에게도 둥근 빵처럼 어느 누구에게든지 상처 주지 말고 두루두루 이해하고 용납하고 포용해 줄 수 있는 신앙인의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모난 것이 아니라 두루두루 포용하고 이해해 주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 6개씩 두 줄로 진열하라.


12지파를 상징하는 빵 12개를 만들고 한 줄에 6개씩 두 줄로 진열하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한 줄에 12개의 빵을 올려놓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6개씩 두 줄로 진열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여섯 지파씩 나누어서 두 줄로 진열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고 싶어하시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12지파는 동일하다. 어느 지파가 크고 작음, 낮고 높음의 불균형이나 차이가 없다.
12지파가 하나님 앞에서는 다 똑같은 평행선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그런가 하면 빵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곧 하나님의 말씀은 두 줄로 진열되어 있다.
십계명의 돌판이 두 개로 되어 있다.
구약이라는 줄과 신약이라는 줄로 진열되어 있다.
구약만 있어도 안 되고, 신약만 있어도 안 되는 것이다.
신구약 성경이 동시에 진열되어 있어야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립되는 것이다.


ⓒ 정결한 유향을 진열하라.


하나님은 7절에서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각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빵 6개씩 진열해 놓은 그 위에 정결한 유향을 두어서 기념물로 하나님께 화제로 삼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면 정결한 유향은 어떤 것일까?
빵을 맛나게 먹기 위해서 쏘스, 양념으로 쓰는 것일까?
빵은 식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식물은 변질 될 수 있다.
빵은 안식일마다 새로운 빵으로 교체해야 한다.
새로운 빵으로 교체되기까지 1주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성막이나 성전에 진열해 두어야 하기 때문에 변질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가 하면 교체된 빵은 제사장들이 거룩한 처소에서 먹어야 한다.
빵이 변질 되지 않고 제사장들이 먹을 수 있게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의 신선한 맛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정결한 유향을 빵 위에 올려놓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빵으로 교체한 이후에 이 유향은 번제단에서 불에 태우면서 하나님 앞에서 화제로 삼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향기로움과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결한 유향을 올려놓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 신앙인들의 삶이 항상 향기로움과 신선함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 생명의 양식이 되라.


빵은 육신의 양식이다.
진설병 빵상에 12개의 빵을 진열하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사람도 배고프지 않게 육신의 양식을 제공해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인지하고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육신의 양식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셔야 먹고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께서 곡식을 농사할 수 있도록 자연계를 주관해 주시지 않으면 농사를 할 수가 없다.
비와 바람과 온도와 같은 대자연의 기후를 하나님께서 가장 합당하게 역사해 주셔야 농사할 수 있는 것이다.
가나안 땅의 신들뿐만 아니라 애굽의 각종 신들도 농사의 신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그 신들은 농사에 직간접으로 역사해 주지 못한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대자연을 직간접으로 주관하고 다스리며 역사해 주셔야만 농사를 제대로 할 수 있다.
농사가 제대로 할 수 있어야 성소에 있는 진설병 빵상 위에 안식일마다 빵을 만들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빵은 영의 양식인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6;36절에서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요한복음6:32-33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예수님은 생명의 떡, 생명의 빵, 생명의 양식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결코 영혼의 배가 고프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혼의 목이 마르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영혼의 양식을 책임져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출애급하여 광야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날마다 아침이슬과 함께 만나를 내려주신다.
예수님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2마리로 장정들만 5000명 이상을 배부르게 먹이고도 남는다.
보리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2마리로 장정들만 4000명 이상을 먹이고도 남는다.
예수님은 목자 없이 헤매는 백성들에게 육의 양식도, 영의 양식도 배부르고 넉넉하게 채워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육신의 양식을 제공해 주시고, 영혼의 양식을 제공해 주시는 분이다.
곧 하나님은 신앙인들의 생업 터전을 견고하고 확실하게 지켜주시는 분이다.
사업하는 것도, 직장 생활하는 것도,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도, 학자들이 자신의 전공분야를 연구하는 것도, 작가들이 글을 쓰는 것도, 스포츠 선수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것도, 예술가들이 예술에 몰입할 수 있는 것들도 다 하나님의 지키심과 은혜여야 하는 것이다.
죄를 범하는 일이 아니라 정상적인 일이라면 신앙인들이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강하게 붙잡아주시고 도와주신다.
신명기8;18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강하고 견고하게 붙들어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머리카락이 몇 개인가 하는 것까지도 세실 수 있을 만큼 세심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은혜 베풀어주신다.


③ 자신이 범한 만큼 배상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17-22절에서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짐승을 쳐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물어 줄 것이요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일지니, 거류민에게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하게 할 것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범한 대로, 자신이 저지른 그대로 배상하거나 갚아 주거나 심지어는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자신이 이렇게 배상해 주지 않으려고 하면 처음부터 배상할 일을 만들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저질렀을 경우에는 그에 합당하도록 배상을 해주어야 한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 앞에서 누군가라도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하나님 앞에서 다 균등하고 평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느 누군가라도 억울한 일을 당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살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할 수도 있고, 또한 신앙인들도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입거나 손해를 당하거나 사기를 당할 수 있다.
우리 신앙인들이 당한 피해, 손해, 사기는 우리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손해를 끼치고 사기 친 바로 그 사람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누군가에게 원하든, 원하지 않든 피해를 입혔거나 손해를 끼쳤거나 사기를 쳤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그 사람에게 해주어야 마땅한 도리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상함, 피해, 사기를 쳐서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하소연한다면 하나님은 그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 사람에게 하소연하게 만든 그 장본인에게 찾아가셔서 징계하시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인들은 누군가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에게도 그 사람에게 보상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말씀이다.
사랑의 빚 외에 다른 빚을 졌다면 반드시 그 빚을 갚아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들이 받은 사랑의 빚도 어떤 모습으로든 갚을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아야 함이 옳다.


B4 & L4.


사람이 살면서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살아야 함은 삼척동자도 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본인의 의지든, 본인의 의지가 아니든 피해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아주 약간이라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려고 하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서 오두막을 세워서 자기 혼자 살아야 한다.
TV에서 보여주는 어느 프로그램처럼 혼자서 살면 아무도 부대끼지 않고 자기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란 존재는 자기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가족이든, 지인이든, 좋든 싫든 여러 가지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이다.
이웃들과 어떤 모습으로든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다 보니 피해를 주기도 하고, 피해를 받기도 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면 최소한의 피해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좋은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다라고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 5-3=2, 2+2=4의 원리를 따라서 살아보자.


사람이 살아가면서 언제든 어떤 일에 오해하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오해하는 일이 생겼을 때, 그 오해하는 일에 대하여 세 번 정도만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고 이해하다 보면 그 사람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는 의미이다.
오해는 대단한 일 때문에 생겨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주 사소한 일들 때문에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아주 작은 사소한 문제가 조금씩 조금씩 먼지가 붙으면서 급기야는 커다란 눈사람처럼 큰 문제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까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기에 이해하고 사랑하고 배려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 Under-standing하는 자세로 살아보자.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마음으로 상대를 높이고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주면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도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은 지구촌의 세상으로 내려오셨듯이 우리 신앙인들은 낮아지는 자세로 사는 것이다.
낮아지는 삶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사는 것이다.
상대방보다 낮아지면 비굴해지는 것이고, 상대방보다 높아지면 거만해지고, 교만해지고 거동이 불편해진다.
그래서 상대방과 동일한 입장으로 내려앉아서 상대방의 입장으로 생각해 보고 이해하면 그 상대를 인정해 줄 수 있고, 배려해 줄 수 있게 된다.


ⓒ Things & Thanks 하는 자세로 살아보자.


생각하고(Things) 감사드리는(Thanks) 삶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그 일에 대하여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산다면 우리들의 삶이 좀 더 포근해지고 넉넉해지고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싶다.
지금 발생한 일보다 더 좋지 않은 일들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을텐데, 이 정도 일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게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배려하며 사는 삶이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해하고, 사랑하고, 낮아지는 자세로 살고, 생각해주고 감사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삶이 세상의 빛으로, 생명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고백, 신앙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신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은 저 높은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인생이기 때문에 좁은 소견으로 살지 않고 좀 더 넓고 크고 깊은 십자가의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신앙인이 될 수 있다.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 (한상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