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맥추감사주일] 함께 즐거워하는 맥추절 (신 16:9-12)

열려라 에바다 2022. 6. 22. 08:56

[맥추감사주일] 함께 즐거워하는 맥추절 (신 16:9-12)

 

맥추절을 맥추절답게 지키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함께 정해진 장소에 모여서(11절), 감사 예물을 드리고(10절),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12절), 즐거워하는(11절) 것입니다. 이 가운데 먼저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소개하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입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해결해주셔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왜 ‘예수’라고 이름을 지었을까요? 마태복음 1장 21절에서 대답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해주신 것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구원 자체가 아니라 구원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장 21절 다음에 나오는 23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을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최종 목적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도록 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천국은 완벽하게 구원이 이루어진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7절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아멘.

 

천국은 이처럼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행복을 누리고 즐거워하는 곳입니다. “이루었도다”는 말씀은 구원을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구원으로 천국을 상속받고, 영원히 그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삽니다. 그곳에는 눈물도, 사망도, 애통하는 것도, 곡하는 것도, 아픈 것도 사라져버리고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사라지면 영원히 편안하게 잘 살 수 있지 않겠어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이러한 행복과 즐거움이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 구원해주신 것은 우리와 함께 하셔서 이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 그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멸시천대를 받던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들은 바로 세리와 같은 죄인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9장 10-13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마태 세리의 집에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앉아 음식을 드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따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이것을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아멘.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불러 구원해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짓는 것을 내버려두면 어떻게 되겠어요? 죄로 영원히 멸망당합니다. 지옥의 형벌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약 “너는 왜 항상 죄를 짓느냐? 내가 죄짓는 것을 모를 줄 아느냐? 훤히 다 안다. 너무 오랜 세월동안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다. 나는 너 같은 죄인과 함께 지낼 수 없다”라고 하시면서 고상하고 거룩한 사람들과만 함께 다니시고, 죄인들은 더럽고 악하다고 물리치셨다면 죄인인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겠어요? 그런데 죄인과 함께 해주시는 예수님이시기에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라는 가사를 보면 참 은혜롭습니다. “1절.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론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2절.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헤쳐 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3절. 길가에 장미 꽃 감사 장미꽃 가시도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이스라엘에는 3대 명절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6장을 보면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이라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을 보면 맥추절을 칠칠절(10절)이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맥추절이란 말은 출애굽기 23장 16절에 나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아멘. 보리나 밀을 추수한 것에 대해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맥추절을 칠칠절이라고 부르는 것은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인 초실절로부터 7주간 내내 계속 지키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9절). 이것을 또한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50일 동안 계속되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추절이 귀한 절기인 것은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택한 장소에(11절) 가서 함께 예배드렸습니다. 그러므로 각 성에서는 예배드리지 말라고 했습니다(5절).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왜 각 지역에서 예배드리지 않고 그 먼 나라와 지역에서 번거롭게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이도록 했을까요? 시간도 많이 걸리고, 여비도 많이 지출해야 하고, 수고도 많이 해야 하는데 굳이 모이도록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1) 먼저 주님과 함께 즐거워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손을 잠시 중단하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신앙을 재무장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대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받은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복을 주시는 주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어디든 계시기에 어디에서든 예배드려도 됩니다. 그러나 꼭 택한 장소에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라고 한 것은 하나님만이 복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주의로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주일에 교회에 와서 감사 예배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2) 그리고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모이도록 한 것은 함께 즐거움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웃도 함께 돌보라는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객이란 ‘게르’로 체류자를 뜻합니다. 외국인을 말합니다. 그들과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애굽에서 종살이의 설움을 당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12절, 출 23:9). “너희들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다. 나그네 설움과 사정을 잘 알지 않느냐?” 그러므로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오히려 선대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인은 별도의 수입이 없기에 감사로 드린 예물로 생계를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전임사역자를 위해서도 감사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기 위해 본문 다음에 나오는 16절과 17절을 보면, 유대의 3대 명절을 지켜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하나님을 뵈옵되 빈손으로 뵙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3) 그런데 나누려면 모아서 가지고 있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10절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헤아려(밋사)’는 ‘충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비율에 충족할 만큼 자원해서 감사를 드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복을 받으셔서 그만큼 많이 감사도 드리십시다.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알리라”는 찬송(새 429장, 통 489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하나님의 자녀의 본성은 잘 해준 것을 셉니다. 이웃이 잘 해준 것을 이것저것 세다가 감사거리가 늘어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받은 복을 세어보면 크신 복을 알게 됩니다. 더 나아가 앞으로 천국에 가서 받을 복까지 세어보면 더 큰 복을 알고 감사드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게 해주셔서 죄에서 구원해주신 것을 알게 되면 감사드립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을 알게 되면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그 외에도 금년도 상반기 1-6월까지 가정 가운데, 직장과 학교 가운데, 교회 가운데 잘 된 것을 손꼽아 헤아려보면 감사드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잘 셀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또한 주위 사람과 교회와 일터와 나라로부터 받은 복도 잘 셀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감사는 벽에 공을 던지는 것과 같으므로 반드시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는 더 많은 감사를 불러들입니다. 이렇게 감사를 잘하는 사람은 함께 잘 살고, 함께 즐거워합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성령님이 충만해지자 바로 그런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47절을 보면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아멘.

 

성령이 충만해지면 이와 같이 자꾸만 “함께” 하게 됩니다. 함께 모이고, 함께 나눠가지고, 함께 즐겁게 음식을 먹고, 함께 성전에 모이고, 함께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주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하는 맥추절의 모습입니다. 그럴 때 주님과 함께, 모든 사람과 함께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맥추절의 모습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매주 마다 더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는 일이 더 잘 되고, 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천국에 가면 음식 메뉴 가운데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일까요? 넌센스 퀴즈입니다만 “따로 국밥”입니다. 천국은 주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무엇이든지 함께 하는 참 좋은 세상이니 “따로”라는 말이 없습니다. 천국은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혼자 잘 되고, 혼자 즐거워하는 곳이 아닙니다. 각각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재료가 어울려 먹음직한 비빔밥이 되는 것처럼 천국은 다함께 잘 먹고 잘 살고, 다함께 잘 되고, 다함께 즐거워하는 곳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함께 어울려 사는 곳입니다.

 

많은 분들이 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에 갑니다. 왜 갈까요? 멀리서도 효도할 수 있지만 부모님을 만나 뵙고 형제자매가 함께 즐겁게 지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 부모님은 흐뭇하게 여기십니다. 그리고 용돈과 먹을 것을 잔뜩 싸서 자녀들에게 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그러합니다. 믿는 형제자매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 함께 모여서 함께 음식을 나누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기뻐하시고 더 큰 복을 내려주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믿는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즐거운 우리 집이 됩니다. 더 나아가 천국은 진정으로 즐거운 우리 집이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하므로 즐거운 가정이 되고, 즐거운 일터가 되고, 즐거운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리자 스타디움을 확장하는 공사를 위해 3년된 어떤 집을 헐게 되었습니다. 그때 인부들이 도마뱀 한 마리가 못에 박힌 채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집을 지은 지 3년이나 되었는데 못에 박힌 채 살았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전문가들이 관찰했습니다. “3년 동안 무엇을 먹고 살았지?” 의아해하면서 관찰한 결과 다른 도마뱀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웃이 못에 박혀 버둥거리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격려하고 돌보아줄 사람은 누구일까요? “함께 즐거워하는 맥추절”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지키는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그러한 사람이 되어 주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는 맥추절을 지킬 줄로 믿습니다.

 

이 시간 “주여, 저도 ‘함께 즐거워하는 맥추절’을 지키고 싶습니다. 주여, 저에게도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그런 맥추절을 지킬 수 있도록 하옵소서. 그런 맥추절의 정신으로 날마다 주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살게 하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