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예수님은 왜? 마리아에게 "여자여"라고 했을까?

열려라 에바다 2022. 6. 24. 09:16

예수님은 자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여자여”라고 불렀다.

왜? 그렇게 불러서 많은 시간에 성경을 보고 자세히 알고 싶어하는 성도들을 고통스럽게 했을까?

그렇다고 누구든지 시원스럽게 해결해 주지 못하고 서로의 주장만 하게했을까?

오늘 이 문제를 일맥의 관점에서 풀어보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자한다.

그러나 억지로 푸는 것은 아니고 아래글은 선배님의 글 이기에 수정해가는 것으로 해결점을 찾고자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2:4) 

 

이 “여자”라는 단어는 헬라어 “귀네”로써 어떠한 존칭어적인 표현이었다고 하더라도, 아들이 어머니를 호칭하는 대명사가 되어질 수가 없다. 카톨릭의 입장과 어떤 성경주석들은 이 “귀네”가 귀부인을 호칭하는 존칭적인 단어라고 하였고, 그래서 그것은 여자를 높혀 부르는 “부인이여” 라는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리 높은 말이라고 하여도 아들이 어머니에게 부르는 호칭으로서 적당하지 않으며, 성경에서 다른 구절에서는 “여자”라는 단어는 존칭어로 사용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의 다음과 같은 경우의 사마리아 여인(남편이 여섯 번째이었음)의 경우와 간음을 하여 붙잡혀 온 여인에게도 “귀네”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귀네)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4:21) 

 

간음을 하여 잡혀온 여인에게: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귀네)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요8:10) 간음을 하고 잡혀온 여인은 율법상 죽여야만 한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도 존칭어를 사용하여 “부인이여”라고 했다는 것은 이해가 어렵다. 

 

또 남편이 여섯이 있는 음탕한 사마리아 여인이었고(요4:18),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대화조차 거부하였던 것이다. 과연 그러한 사마리아여인에게 공경하는 존칭어를 사용하였을까?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니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요4:9) 

어찌 되었든 간음을 하고 붙잡혀온 여인과 사마리아 여인들에게도 예수님께서 존칭어를 사용할 수는 있다고 최대한 인정을 하여보자.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던 그 장면에서는, 여자 하녀(여자 노예)에게도 “귀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다시 말하여 귀네라는 단어는 공경스러운 귀부인의 존칭이라고 볼 수가 없으며, 오히려 여자노예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여인이여”라는 의미가 되어지는 증거가 된다.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한 비자(파이디스케: 여성노예, 하녀, 소녀)가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이 여자(귀네)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눅22:55-57) 

 

그리고 영어성경을 보면 요한2:4은 그냥 여자가 아니고 Dear woman 이라고 경칭어를 사용하였는데(NIV 영어성경의 경우), KJV 영어성경에서는 그냥 woman 이라고 되어 있을 뿐이며, 원어상에는 존칭어가 없다. 

NIV: "Dear woman, why do you involve me?" Jesus replied. "My time has not yet come."
KJV: Jesus saith unto her, Woman, what have I to do with thee? mine hour is not yet come.
NASB: And Jesus *said to her, "Woman, what do I have to do with you? My hour has not yet come."
또 이 표현은 십자가상에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는 것과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찾는 마리아와 여인들에게 "여자여.."하는 표현으로도 나오고 있다. 여러가지 학설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은 예수님의 메시야적인 신성적인 입장에서 봄으로서 "여자여..."라는 것이 무난하다고 본다. 

 

하나님과 동일본질을 가지신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마리아를 하나의 여자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카톨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대목이 되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카톨릭에서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이며 천상의 황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리아를 낮추려는 표현이라기 보다는, 예수님의 신성적인 입장에서 보는 호칭이 될 것이다. 

 

성경에서 그 단어가 등장할 때에 그 뒤에는 예수님의 신성적인 의미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귀네라는 말은 “부인”이라고 하는 존칭어이며, 왕비에게도 "여자여"(귀네)라고 부른다고 하는 카톨릭측의 억지 설명은 이해가 어려우며, 그렇다면 베드로가 여자노예에게 “귀부인”이라고 존칭어로 불렀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해가 곤란하다. 또한 아무리 귀네라는 단어가 존칭어라고 한다하여도, 어느 누구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여자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2:4) 

요한복음2장4절은 예수님의 공생애적인 사역이 시작되는 첫시점이다. 

 

더욱이 예수님은 포도주가 없다는 마리아에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포도주의 개념을 구원의 상징적 의미이며, 메시야의 사역의 시점으로서 답변하고 있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때”는 메시야로서의 공생애적인 사역의 시작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아들의 개념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야라는 관점에서 마리아에게 “여자여”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그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한다. 이 때에도 역시 마리아를 “여자여(귀네)”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것은 이제 곧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며, 그 죽음에서 부활하실 예수님은 더 이상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시는 장면인 것이다. 

 

마리아의 아들로서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로 온 하나님의 아들로서 마리아를 “여자여”라고 부를 수는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요19:26) 

 

성경을 보는눈이 우리는 가장 예수님을 잘알아야 함에도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창세기 3 :15절에 여자의 후손을 예표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그 말씀대로 성령으로 잉태하사 여자에게 태어나셨다.그 여자란 동정녀요.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여자를 통하여 오셨기에 여자의 후손이며 예수님께서 "여자여"라고 부르신 것이다.그리스도께서 여자의 몸을 빌려 세상에 오신 것이다.아담의 후손이 아닌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기에 "여자여"라고 부르신 것이다.육신으로 보면 어머니 이시지만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면 한 여인을 택한 것이기에 여자라고 부른다하여 문제로 볼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 : 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 : 23

'기독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헌금이란 무엇인가?  (0) 2022.07.04
갈렙  (0) 2022.07.04
바리새 교인 39종 안식일 금법  (0) 2022.06.23
교회직분  (0) 2022.06.23
맥추감사절의 유래와 전통  (0) 2022.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