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주일설교.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욥 42장 12-17절)

열려라 에바다 2022. 7. 19. 07:39

주일설교.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욥 42장 12-17절)김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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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하나님이 사탄에게 우스 땅에 사는 욥에 대해 말씀 하시기를,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 1:8, 2:3)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말씀하셨을 정도로 욥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 인물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이만한 칭찬을 받은 인물은 찾아보기 힙듭니다.

 

이러한 욥이 풍성한 복을 받은 것은 당연합니다. 욥은 아들 일곱, 딸 셋을 두었으며(욥 1:2),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습니다. (욥 1:3). 그런데, 어느날 스바(현재의 예멘) 사람이 와서 소와 나귀를 빼앗고 종들을 죽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양과 종들을 죽입니다. 갈대아(바벨론) 사람이 와서 나귀와 종들을 죽입니다. 큰 바람이 집을 무너트려서 맏아들 집에서 음식을 먹던 7남3녀가 모두 죽습니다. 욥은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욥기는 이렇게 욥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엄청난 고난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욥의 고난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욥기에서 다시보기를 하고 싶은 최고의 장면은 엄청난 고난을 당한 후에 욥의 태도입니다. 가축과, 종들과, 자녀를 다 잃은 후에 “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러한 고난을 당하고도 욥은 가장 먼저 예배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욥을 일컬어 세상에 그만한 자가 없다라고 말씀 하셨는지 이 장면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욥의 아내의 태도입니다. 사탄이 두 번째 고난을 주어서 욥이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종기가 생기는 것을 보고 욥의 아내가 말하기를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라고 했습니다. (2:9)

 

우리말 성경으로 읽어 드리면, “아직도 그 잘난 충성심이나 붙들고 있다니!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려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내의 태도가 불손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저 같아도 이런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우리들의 일반적인 연약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고난 후에 욥은 세 친구와 치열한 논쟁을 펼치고 다시 회복하게 된다는 해피 엔딩의 이야기가 욥기의 스토리입니다. 오늘은 욥기의 마지막 결말, 해피엔딩에 해당되는 부분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욥은 고난이 폭풍같이 지나가고 친구들과 지루한 논쟁을 벌인 후에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회개를 합니다. 우리 다함께 42장 5, 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아멘.

 

“귀로만 들었는데 이제는 눈으로 주님을 봅니다”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죠. 하나님은 이 회개를 받으셨고 다시금 욥을 일컬어 “내 종 욥”이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9절에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고 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과 욥의 관계가 예전처럼 완전하게 회복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욥의 회개는 받으셨는데, 욥의 세 친구들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평가를 내리셨을까요? 하나님은 욥의 세 친구들 중에 한 사람인 데만사람 엘리바스에게 말씀 하시기를, “너와 너의 두 친구를 생각하면 터지는 분노를 참을 길 없구나. 너희는 내 이야기를 할 때 욥처럼 솔직하지(옳게 말하지) 못하였다.”(욥 42:7, 공동번역)라고 하셨습니다.

 

욥기에서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말씀 구절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욥이 한 말이기 때문에 음미해 볼 수 있는 구절입니다. 잘 적용하셔도 유익한 구절입니다.

 

또 하나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는 말은 수아사람 빌닷이 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 친구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게, 옳지 못하게, 바르지 못하게 말하였다고 평가 하신 것을 보면 수아 사람 빌닷이 했던 말이 사람의 귀로 듣고, 눈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좋아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보기에는 좋은 말씀이지만 적용에는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욥만 회복 시킨 것이 아니라, 의롭지 못했던 욥의 세친구들도 회복시켜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그들에게 번제물을 바쳐 참회의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단, 제사의 집행과 기도는 욥이 주관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르고 진실된 입술로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회개한 자를 통하여서만 기쁨의 제사를 받으시고 영광을 나타내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제사를 드립니다. 오늘 본문이 시작하는 10절을 읽어 드립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아멘.

 

욥기는 총 42장이고 무려 1,070절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을 지닌 책입니다. 그 대망의 결말의 마지막 단락은 욥이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죄인들인 우리들을 대신해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께서 쉬지 않고 기도해 주시고 계신 것을 예표하는 내용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고통 받는 자의 곁을 절대로 떠나지 않으시고 그 고통에 적극 동참하여 주시고,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기도와 간구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들어 주시며, 모든 아픔과 상처와 어두운 면의 회복을 위해 진실로 참회하는 자의 눈물의 호소에 대해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겁니다.

 

욥은 지금까지의 고통과 혼란과 논쟁을 끝낼 수 있는 축복의 통로로 세움 받았습니다. 나만 해피엔딩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사람과 환경과 분위기와 미래까지도 완벽하게 다함께 회복시켜 주시는 것, 그것이 우리 하나님의 회복의 방법이십니다.

 

욥이 기도를 했더니, “욥의 곤경을 돌이키셨다”고 했습니다. ‘곤경’은 사로잡혀 있다는 뜻입니다. 꼼짝 달싹 하지 못하는 극한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분노만 유발하는 무의미하고 지루한 논쟁은 끝내고 소망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개시 되었다는 신호탄입니다. 포로와 같이 사로잡혀 있던 상황이 풀리고 자유와 평안으로 나아가는 회복의 길이 활짝 열리는 순간입니다.

 

욥의 기도를 다 들으신 후에 하나님은, “욥에게 이전 소유 보다 갑절이나 주었다”고 하셨습니다. 12절에서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라고 했습니다. 말씀 그대로 점점 가축의 수가 늘어나서 욥의 말년 쯤에 가서는 처음 소유했던 가축 보다 정확하게 두 배의 숫자로 증가 되었습니다.

 

“처음 보다 더 복을 주시니”라는 설교 제목이 12절에서 나왔습니다. 우리 인생은 시작보다는 나중이, 오늘 보다는 내일이, 젊었을 때 보다는 말년이, 가면 갈수록 복되고 평안해지고 소망이 넘치도록 기도하고 응답 받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중간 과정에서는 망가지고, 실패하고, 눈물을 흘릴 지라도, 인생의 말년에 가서는 반드시 욥과 같이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은혜 아래 거하셔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처음 보다 나중에 더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제 인생의 말년에 갑절이나 더 하는 하늘의 충만한 복으로 역사하여 주옵소서”, 이 간절한 기도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현재 시점에서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은 반드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다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들은 고난의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 할 수 있는 굳건한 믿음으로 인내 하시다가, 반드시 귀로만 듣지 아니하고 눈으로 하나님을 목도할 수 있는 영광의 순간을 맞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진실한 참회의 기도를 드림으로 처음보다 더 풍성한 복을 받으시고, 인생의 말년에 이르면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풍성하게 내려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계속 이어지는 11절 말씀을 읽어 드립니다.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아멘.

 

욥이 이전 보다 더 부자가 되자, 욥의 모든 형제 자매, 그리고 이전에 알던 이들이 욥의 집에 와서 음식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욥이 고난을 당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했었는지 아십니까? 욥기 19장 13~22절까지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은 멀리 떠났고, 친척들은 나를 버렸고,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나는 타국 사람 같이 되었고, 종들도 말을 듣지 않아서 간청해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구나, 내 아내도 내 숨결을 싫어하고, 어린 아이들이 나를 업신 여기며 조롱하고,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 하고, 나를 사랑하던 사람들이 나와 원수가 되었구나, 나에게 남은 것은 피부와 뼈와 잇몸 뿐이구나”

 

욥은 모든 사람에게서 철저하게 버림 받았고, 욥이 의지할 만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세 친구가 위로차 찾아 왔는데, 머리 아픈 논쟁만 늘어놓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욥이 형제자매, 친척과 친지, 그리고 친구들을 불러서 잔치를 벌였다는 것은, 오로지 욥이 그 사람들을 기꺼이 용서하고 환대하려는 마음으로 온전하게 회복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라는 뜻은,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었던 사이라는 뜻입니다. 욥은, 자신이 더 부자가 된 것을 과시하려고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예전처럼 인견적인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 다 용서하고, 다 포용하고, 다시 사랑하는 너그러운 관용을 베풀어 준 것입니다. 이것이 곧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입니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라는 뜻에는, 그들이 돈이 있고 없음에 따라 인간 관계를 배신하는 나쁜 사람들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을 그렇게도 철저하게 버렸던 사람들을 고발하거나, 그들의 나쁜 행동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베풀어 주신 용서와 회복의 은혜가 너무 크노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욥은 기꺼이 자신의 풍요로운 것들을 함께 나누기를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참석한 사람들은 욥이 당한 고난과 하나님이 베푸신 놀라운 사랑에 대해 이구 동성으로 슬퍼하고, 위로하여 주었습니다. 솔직하게 이 얼마나 가식적인 행동입니까? 진정 위로가 필요할 때는 다 떠나고, 버리고, 잊어버렸던 사람들이 상황이 반전되니 이게 뭐하자는 겁니까?

 

그러나 욥은 모든 사람들의 나쁜 과거를 입에 올리지 않았고, 그들의 가식적일수도 있는 위로에 대해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그래서 초청한 모든 사람들에게 각각 케시타(은 화폐-동전) 하나와 금고리 하나씩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자시을 공격하고, 조롱하고, 죽이기까지 한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 조건 없이 용서를 베푸셨던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떠올리게 합니다.

 

오후 예배 로마서 12장 강해 하면서, 성도가 대 사회 관계를 이룰 때,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원수에게 먹이고 마시게 하고, 모든 사람과 화목하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욥기의 시대 배경을 대략 족장시대로 추정합니다. 그럼 사도 바울이 로마서 이 말씀을 선포하기 1,500년 전 쯤에 욥이라는 인물은 사도바울의 선포를 이미 다 실행시켰던 인물이었습니다.

 

우리가 로마서 12장 함께 보면서 이걸 다 어떻게 실천 하나 라고 했었는데, 완벽하게 실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욥이 거짓말처럼 증명해 보였습니다. 욥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욥에게 행하신 것처럼 동일하게 우리 예수님으로부터 십자가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욥처럼 행할 수 있는 성령님의 강력한 능력과 지혜를 공급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나를 미워하고 비판하는 사람들까지 사랑의 마음, 용서의 마음으로 품어 줄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정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품어야 할 사랑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은혜를 흘려 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계속해서 12~15절 까지 읽어 드립니다. “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14.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15.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아멘.

 

이 말씀 구절에서 특징을 찾아 보면, 가축들은 정확하게 처음 보다 갑절이 되었는데, 사람은 7남 3녀로 처음과 나중이 똑 같습니다. 그리도 특별하게도 아들의 이름은 언급이 없는데 딸 세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당시의 가부장적인 사회를 감안하면 대단히 이례적인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 딸들이 모든 땅에서 아리 따운 딸들이었다는 자세한 설명과 함께, 그 딸들에게도 기업(유산-가축, 땅, 돈)을 주었다고 합니다. 욥에게 갑절이나 복을 주시는 상황에 왜 유독 딸들이 이렇게 중요하게 언급되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세 딸의 이름을 기록했기 때문에 이름에서 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첫째딸 여미마의 이름는 비둘기(새)라는 뜻입니다. 비둘기는 정결(순결)의 상징입니다. 욥이 예전처럼 악에서 떠나 하나님 앞에서 항상 정결한 삶(회개의 삶)을 살아가단는 의미입니다.

   둘째딸 긋시아의 이름은 계피나무라는 뜻입니다. 이 계피나무는 진한 향기가 있어 제사의 향을 내는 재료로 쓰였습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서 일평생 제사를 앞세워 하나님을 공경하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셋째딸게렌합북의 이름은 여성의 화장품으로 쓰이는 아름다운 물감(통)이라는 뜻입니다. 욥이 항상 신부의 모습으로 거룩한 연합을 추구하여 하나님과 일평생 동행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처음보다 더 복을 받은 사람답게 욥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전 보다 더 정결하게, 더 예배하며, 더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의미들이 딸들의 이름으로 승화가 되었습니다. 딸들 자신들도 아버지를 본받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갔을 것이니 그들의 외모와 언행은 뭇 사람들에게 칭찬 받기에 충분했을 겁니다. “아리따웠다”는 표현은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충만했다는 뜻을 반영하는 겁니다.

 

딸들에게 기업을 준 것은 당시의 전통이나 관습에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 하신다는 성경의 보편적인 진리를 잘 보여준 사례입니다. 욥 이야기는 욥 개인의 회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모습,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누리며 살아가는 영생천국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 이야기입니다.

 

욥이 그 모진 고난을 겪은 후에 회개하고, 회복되고, 갑절의 복을 받고, 처음 보다 더 복을 받았다는 아름다운 결말은 읽으면 읽을수록 기분이 좋아집니다. 우리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과 풍성한 은혜가 얼마나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욥이라는 인물이 왜 하나님으로부터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라는 놀라은 칭찬과 인정을 받은 인물이었는지, 그가 마지막에 다시 복을 받는 결말 장면을 보면 다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진실한 회개의 사람 이었고, 진실한 사랑의 사람이었고,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었고, 진실한 예배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욥은 고난의 대명사이자 처음보다 더 복을 받은 복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욥처럼 이겨내고, 욥처럼 회개하고, 욥처럼 말년에 이르도록 더 복을 받는 인생이 되어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야 하는 믿음의 길입니다.

 

말년에 이르도록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나니” 라는 욥의 회복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인생 스토리가되어 말년에 이르러서 반드시 해피 엔딩이 될 수 있도록, 현재 이런저런 고난 중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은혜로 역사하기를 소망 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참 좋으신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나아가셔서, 더 회개하고, 더 사랑하고, 더 공경하고, 더 예배하고, 더 동행하며 천국을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해 나가시는 복된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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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고난이 찾아 온다고 할 지라도 고난 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처음 보다 더 크신 복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며, 인내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말년에 이르도록 처음보다 더 복을 내려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