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주일설교.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눅 10장 17-24절)

열려라 에바다 2022. 7. 25. 08:08

주일설교.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눅 10장 17-24절) 김민호 목사

-----------------------------------------------------------------------------------------------------------------------------------------

 

복음서 중에 마태복음 10장과 마가복음 6장에는 예수님이 12제자를 파송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12제자를 보내시기 전에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마 10:1, 막 6:7)을 주셨습니다. 파송된 12명의 제자들은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쳤다”(막 6:13)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 뿐만 아니라 따로 칠십명을 세우셔서 파송하셨는데, 그 이야기는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오늘 본문 앞의 기록인 누가복음 10장 1절에서 16절을 보면, 예수님은 칠십 명을 파송하시면서 두 명씩 짝지어서 각 동네와 지역에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고 보내셨습니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파송했던 칠십 명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의 예수님께 보고하는 장면과, 예수님이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먼저 칠십명의 사람들이 돌아와서 예수님에게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17절을 읽어 드립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아멘.

 

70명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냈다고 보고하는 장면에서 그들은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만 부르면 귀신들이 항복했다(쫓겨나갔다)고 신이 나서 말을 했습니다. 그럴만도 할 것이 이전에 제자들은 귀신들을 전혀 제어하지 못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서 무리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귀신들려 말 못하는 아들을 데려 옵니다. 아버지가 말하기를,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아들)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집니다. 그런데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였습니다”(막 9:18) 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귀신 들린 병자를 만나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으시면서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막 9:19)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시자 제자들이 묻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막 9:28),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굳게 믿는 믿음의 기도만 있으면 귀신들을 얼마든지 쫓아낼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듯 제자들의 허약한 믿음의 체질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에 12명의 제자들과 70명의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가장 먼저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권능은 곧 예수 이름의 권세이고, 제자들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선포했더니 귀신들이 다 쫓겨가는 신비한 체험을 경험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귀신을 쫓아내게 했던 이 놀라운 경험이 너무나도 기이하고 흥분이 되어서 예수님 앞에서 신이나서 보고를 햇습니다. 이 장면을 떠올려 보면 마치 어린아이들과도 같이 쉴새 없이 말을 했을 겁니다. 예수님은 그 보고를 들으시면서 말없이 미소를 지으시면서 매우 흐뭇해 하셨을 겁니다.

 

이 보고하는 장면에 우리 각자의 신앙의 모습을 대입시켜 보십시오. 우리는 세상에 파송된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요, 거룩한 교회입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이 함께 하시고, 예수 이름의 권세가 믿음으로 역사하고 있고, 귀신과 질병을 능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당시 12명의 제자들, 70명의 제자들과 견주어서 권능을 부여 받은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는 귀신들이 요동하는 것이 느껴지고, 귀신의 유혹과 시험이 분별되어져야 합니다. 귀신으로 인해 결박당한 자들이 있다면, 예수 이름 권세로 기도하여 결박을 풀어주고, 흉악하고 더러운 귀신들이 다시는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쫓아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런 권세를 지닌 능력의 소유자들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기도로 물리치고, 승리하고, 영광돌리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다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을 절대로 무시하면 안 됩니다.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귀신들도 우리가 타락하고 낙심, 포기, 절망에 이를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의 영혼을 노릴 겁니다.

 

우리는 영적 싸움의 전쟁터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귀신들과 싸워 보기는 커녕, 귀신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무관심하게 지내는 것이 최고로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귀신은 우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작은 틈만 보이면, 얼씨구나 여기가 내 자리구나 하고 눌러 앉아 버립니다.

 

우리도 한 번 쯤은 귀신을 쫓아내 보기도 해서, 가슴 벅찬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 예수님의 이름이면 귀신들이 벌벌 떨고 다 도망가던데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더 강하게 해 주시고, 귀신들을 거뜬히 물리치는 놀라운 기쁨을 계속 누리며 살아가도록 도와주세요” 이런 감격의 보고를 드려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 하신 이유는,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전파에 목적이 있었지만, 믿음 훈련, 기도 훈련의 일환 이었습니다. 나아가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지 않을 때에도 능력있게, 담대하게 살아가라는 신앙훈련이기도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예수 이름의 능력과 권세가 있음을 명심하시고, 귀신을 만나든, 질병을 만나든, 어떤 고난의 문제와 상황들을 만다든, 심지어 죽음을 만난다 할지라도, 반드시 믿음으로, 그리고 기도로 승리하시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보고를 받으신 예수님이 반응 하십니다. 18~20절을 읽어 드립니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아멘.

 

예수님은 “보았노라, 결코 없으리라, 기뻐하라”라는 다양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하나씩 살펴보면,

 

먼저, 예수님의 첫 번째 반응은 18절에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노라”고 말씀 하신 것은, 예수님이 육신으로 사역하고 계시지만, 영적인 세계를 아울러 관찰하시고 계심을 보여 줍니다. 역시 예수님은 우리의 대장이 되셔서 영적 전쟁터의 곳곳을 주도 면밀하게 다 지켜 보시는 총 사령관의 역할을 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계시록 12장에서는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그의 사자들과 전쟁을 하였고, 용이라고 불리는 옛 뱀 곧 사탄이라고 하는 자와 그의 사자들(무리들)이 땅으로 쫓겨나는 기록이 있습니다. 70명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낸 것은, 종말에 있게 될 사탄의 멸망, 그리고 최후 승리에 대한 명확한 예시입니다.

 

“보았노라”라고 말씀 속에는 또 하나의 참된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서의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인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이 쫓겨나는 현장마다 곧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어둡고 더러운 존재들을 다 물이치고 빛 가운데 영광이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껏 누리라는 뜻입니다. “보았노라”라고 선언 하신 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가 열렸다는 선언이셨습니다.

 

그 다음 19절에 “너희를 해할자가 결코 없으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해할자가 없는 이유는, 예수님이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권능이 사라지면 오히려 역공을 받아서 뱀과 전갈(사탄과 그의 사자들, 무리들)로부터 심각한 공격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평안과 기쁨속에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권능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제자들에게 주신 권능은 일시적인 능력이 아닙니다. 영원히 나를 도우실 분이 함께 하신다는 뜻이고, 일평생 어둠 가운데서 나를 건져 내 주신다는 뜻입니다. 권능은, 임마누엘의 예수님이 나와 일평생 항상 함께 해 주신다는 의미이고,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충만하게 역사 하신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예수님,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누가 감히 나를 해칠 수가 있겠습까?

 

너희를 해할자가 결코 없으리라”라고 말씀해 주신 것은, 우리에게는 참으로 위로와 평안과 소망의 말씀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들장미 소녀 캔디라는 만화가 있었는데 혹시 그 주제곡이 기억나십니까?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 나 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 그럴 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속의 나하고, 웃어라 웃어라,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캔디라는 소녀의 성장 만화에서 이 주제가는 현실과 딱 들어 맞는 가사였습니다. 우리는 다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가는 중입니다. 눈물나고 슬픈 일이 있어도, 방해꾼인 사탄을 반드시 물리치고 내 믿음의 성장을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우리의 주적은 사탄입니다.

 

사탄과 맞서 싸워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너희를 해할자가 결코 없으리라”는 말씀은 우리의 영적 싸움의 승전가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영적 싸움의 주제가로 부르셔도 훌륭한 응원가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기만 하면 이미 이긴 싸움입니다. 우리를 해할 자가 결코 없습니다. 담대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반응은 20절에,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마치고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진군해 나갔더니 여리고 성을 무너트리는 첫 승리의 감격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아이성 전투에서는 쓰라린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아이성 공략 실패의 이유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면 승리, 불순종하면 패배, 이 단순한 진리를 지킨다는 것이 그렇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금만 여유부려도 실패하고, 조금만 방심하면 다 빼앗길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한 두 번 이겨 보고 만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기고 또 이기고 끝까지 이기는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승리하신 우리 주님처럼, 우리도 마지막 심판의 날에 이를 때까지 반드시 승리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쁨에 들떠서 보고하는 것을 진정 시키시고, “귀신들이 항복하는 그 한 두 번의 승리로 기뻐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들어갈 그 날까지 항상 깨어 있음으로, 항상 승리하는 기쁨속에 살아가라, 그리하면 지금의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기쁨중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라고 격려와 충고를 둥시에 해 주셨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지만 사탄은 결코 만만히 물러서지 않습니다. 패배하면 할수록 더욱 분노하여 우리를 넘어트리려고 은밀한 작전을 펼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기도하면 할수록, 열심을 내면 낼수록, 그에 비례하여 사탄의 공격은 더욱 거세집니다. 믿음이 자라나면 자라날수록 더욱 큰 싸움터에 나가게 된다는 것을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합니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는 말씀은, 귀신도 항복하는 예수 이름의 권세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굳센 믿음으로 살아가고, 앞으로 더욱 거세질 사탄의 공격에 대비하여 영적 게으름과 잠에 빠지지 말고 늘 깨어서 파수꾼과 같이 경계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큰 은혜, 구원의 확신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반드시 이루어 줄 유일한 수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주인이신 예수 이름의 권세 뿐입니다. 제자들에게 “보았노라, 결코 없으리라, 기뻐하라” 말씀 해 주신 것처럼, 오늘 이 시간 우리의 귀와 마음에도 동일하게 이 권능의 말씀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00교회 모든 성도의 입술에서 매일 같이 예수님의 이름이 선포되어져서, 매일 같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감동을 충만하게 누리며, 해할자가 결코 침범하지 못하는 하늘 평안을 누리며, 거침없이 승리의 길을 나아감으로 우리의 이름이 마침내 하늘에 울려퍼지게 되는 영생복락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세 가지의 반응으로 응답하신 후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21, 22절을 읽어 드립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아멘.

 

예수님은 제자들이 돌아와 보고한 내용을 들으시고 성령으로 기뻐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아비지께 기도하신 이유도 바로 성령이 주시는 기쁨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에 기쁨을 주시면 곧바로 기도부터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잘 배워야 합니다.

 

감사기도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21절), 이것(제자들 사역에 권능이 역사하여 귀신들이 항복한 것)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자칭 지혜롭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순전하게 예수 이름 권세를 믿고 따른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해 주신 것을 감사 하셨습니다. 감사의 조건이 생길 때 즉시 기도하고, 감사의 내용을 하나도 빠짐 없이 올려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는 감사 기도라는 것을 예수님이 잘 보여 주셨습니다.

 

감사 기도 내용의 둘째는(22절),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만 구원자로서의 권세와 영광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계시(알려, 들려)되었고, 이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들이 나타나게 하셨음을 감사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신 것과 행하신 것, 그리고 이루어진 것 까지 그 어느 하나라도 하나님만이 영광 받으시도록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 기도의 모범이자 표준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감사 기도를 할 때,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모두 다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의 이 감사 고백은 바로 예수님에게서 배운 겁니다. 예수님이 진심으로 이렇게 감사 기도를 드렸듯이,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도록 감사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 하십니다. 23, 24절을 읽어 드립니다.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아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이 말씀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보는 것이 있음에도 보지 못하는 눈이 있으며, 그 눈은 복이 없는 눈이다”라는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조용히 하셨습니다. “조용히” 라는 말씀은 사적으로, 떨어져서, 따로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따로 모아 놓고 이 말씀을 은밀하게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들어도 알지도 못하고, 들어봤자 시비하고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들려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은혜의 통로를 아예 막아 버리신 겁니다. 예수님이 알쏭달쏭한 비유의 말씀을 자주 하신 것도, 공격하는 자들에게는 일체 들을 귀를 허용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라고 하셨는데, 무엇을 보았다는 말일까요? 그 비밀을 22절의 기도 제목에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은 아들인 예수님을 통해서 계시(보여줌) 하시는데, 구원자가 곧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듣게 하고, 보게 하고, 깨닫게 하고, 믿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한 권능이 역사하는 현장(귀신 항복)을 경험한 너희들은 곧 하늘에서 내려 주는 복중의 복을 받은 존귀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다시 역으로 해석하면, 예수님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라는 사실을 수 많은 기적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선포를 통해서 들려주었음에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보려고 하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하고, 믿지도 아니하고, 권능을 경험하기는 커녕 사탄의 공격으로 해함을 당하며 살아가는 자들은 불쌍한 자들이다, 참으로 어리석고 복이 없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나아가서, 보는 것을 본다는 것의 넒은 의미는, 신행일치의 삶을 살아가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의 성숙한 삶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제가 늘 말씀 드렸던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시죠?

    1. 신앙생활 그렇게 오래 했는데도 말씀이 전혀 들리지 않고, 말씀을 가까이 하기를 싫어하며, 깨닫는 은혜를 경험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 (말씀 불통)

    2. 신앙생활 그렇게 오래 했는데도, 다른 사람의 기도 응답된 이야기는 많이 들으면서 정작 자신은 기도 응답 받은 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 (기도 불통)

    3. 신앙생활 그렇게 오래 했는데도 구원의 확신도 없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도 없이 시간 허비 하다가 심판자 앞에서

       부인(否認) 당하였을 때. (생명책 부재)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을 때는 24절의 말씀처럼, 임금이나 선지자나 그 누구라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상태 였습니다. 그러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보이고, 들리는 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일평생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수님에게만 집중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갔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만을 따라가고, 예수님 만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말씀 만을 듣고, 예수님이 모범을 보여 주신 대로 따라서 행동하고, 예수님의 겸손한 모습대로 나도 변화 성장해 나가는 것, 이렇게 살아가라는 뜻이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라는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내 삶의 이정표와도 같은 존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 합니다. 우리에게는 성령님의 권능과 능력이 충만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귀신들이 둘러싸고 있는 이 살벌한 영적 전쟁터에서, 성령이 주시는 담대함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워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예수 이름에 권능이 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면 질병이 고쳐지고, 귀신들이 쫓겨 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놀라운 역사가 곧바로, 매일 같이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모든 삶의 일상 위에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의 중보자 되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매일 같이 바라보는 복된 눈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보실 것을 보시고, 들으실 것을 들으시고, 물리칠 것을 물리치도록 예수님에게만 집중하며 살아가십시오. 예수님 한 분만 놓치지 않고 붙잡으면, 대박 인생, 영생 인생의 길로 직진 하실 수 있습니다.

 

00교회와, 성도의 가정과 직장과 학교와 사업장에는 어떠한 어둠의 세력이 틈타지 못하도록 강력한 성령의 권능이 함께 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이 말씀의 주인공들이 되셔서, 귀신들도 벌벌 떨게 만들고, 열리고 풀리는 복에 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매일 같이 누리는 평안과 기쁨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사탄의 무리들이 우리를 에워싼다 하여도 담대하게 예수님의 이름을 외치며 물치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항상 예수님에만 집중하면서 보고, 듣고, 깨닫고, 믿고, 행동으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권세와 능력으로 함께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