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느웨성 발굴
홍수이후 노아의 둘째 아들인 함의 손자 니므롯(Nimrod)은 셈의 후손들이 건설한 도시를 정복한 후 앗수르성의 북쪽에 새도성 니느웨(Nineveh)를 건설하고 앗수르 백성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현재 티그리스강의 동편 강안에 위치하고 있는 니느웨는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곳이다. 이 곳은 농업의 중심지이면서 동시에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기때문에 고대에는 자주 앗수르 통치자들에 의하여 그들의 거주지역으로 활용이 되었으며, 이곳을 제국의 수도로 삼은 왕은 기원전 705년에서 681년까지 앗수르를 통치한 산헤립이다. 엘살하돈과 앗수르바니팔은 이곳에 웅장한 궁전들을 지음으로서 니느웨를 더욱 장엄하게 만들었다. 요나 선지자의 경고에 따라 회개하였던 니느웨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지만, 약 100년 뒤 나훔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질 니느웨를 '피의 도시'라고 불렀다. 바벨론왕 나보폴라살의 연대기에 의하면, 갈대아와 메데의 연합군들은 기원전 612년 니느웨를 멸망시켰다. 이러한 운명은 나훔 선지자의 예언 속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나훔 2:3-13) 니느웨는 너무나도 황폐되어 있어서 기원전 401년 이곳을 지나갔었던 크세노폰(Xenophon)은 이곳이 한때 위대한 도시였던 니느웨임을 인식치 못할 정도였다. 고대도시 니느웨의 성벽은 그 주변 길이가 12km 이상이나 되었다. 옛 도시의 성문 중 다섯 곳이 발굴이 되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니느웨의 성채에서 16,000개 이상의 점토판들이 보관되어 있는 황실 도서관을 발굴하였다. 산헤립 왕궁도 발굴이 되었는데, 특히 산헤립이 주변 나라들을 정복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석판 벽 조각품도 발견이 되었다. 이러한 조각품들의 대부분 19세기에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졌지만, 일부는 현지에 남아 있다.
성경의 니느웨
성경에는 니느웨 성을 가로지르는데 3일이 걸렸다고 했으니 성의 둘레를 도는 데는 10일 정도가 걸릴 정도로 거대한 성이었다. 니므롯은 새로운 신 니눈타를 이 성의 수호신으로 지정했으며 바벨론(바빌론) 세력은 오랫동안 앗수르 지역을 지배했다. 그러나 BC 1364년 앗술 우발리트 1세는 앗수르 왕국을 재건하고 니느웨의 주인이 되었다. 그 후로 바벨론과 경쟁하던 앗수르는 결국 바벨론을 지배하게 되었고 BC 884년 즉위한 아슈르바니팔 2세는 니느웨와 앗수르 사이에 갈라 성을 건축하여 대제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러나 잘 나가던 앗수르에 갑자기 위기가 닥쳐왔다. 그것은 BC 771년에 즉위한 앗술단 3세 때에 시작되었다. B,C 765년에는 큰 전염병이 돌았고 다시 BC 763년에는 불길한 일식이 있은 후에 우라르투와 전쟁에서 대패했다. 그리고 또 다시 전염병이 돌았다. 바로 그 때 즉,BC 760년께 이스라엘 출신의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다. 그는 적국의 도성에 말씀을 전하기 싫어서 다시스로 도망하려다가 풍랑을 만나 결국 니느웨로 들어간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요나 3장 4절). 요나의 외침은 퉁명스러웠다. 그는 단지 큰 니느웨 성을 3일 걸려서 가로질렀을 뿐이었다.그러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니느웨 백성이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를 입었으며 그 소문을 들은 왕도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은 후 재에 앉았다. 왕은 조서를 내려 심지어는 가축들까지도 베옷을 입히고 금식을 시켰으며 악에서 떠나 하나님께 부르짖어 니느웨는 멸망을 면하게 되었다. 왜 하나님은 니느웨에 선지자를 보내 회개하게 했을까? 타락한 이스라엘과 유다를 징계하기 위해 앗수르를 기르시되 그들의 회개에 대한 보상으로 그 나라를 다시 강대하게 해주시려는 배려였던 것이다. 그러나 앗수르가 다시 강하게 되자 디글랏빌레셀 3세는 태양신 샤마슈를 섬기게 되었다. 또 그의 아들 살만에셀 5세는 사마리아를 유린하고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다. 그러나 그를 현지에서 축출하고 왕이 된 사르곤 2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을 벧엘로 보내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르곤 2세가 죽자 그의 아들 산헤립은 유다를 침공했다가 니느웨로 돌아가 그 아들의 손에 살해된다. 성경에 산헤립이 죽은 장소는 니스록의 신전이라고 되어 있다. 그것은 니므롯이 니느웨의 수호신으로 세웠던 니눈타의 신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후에 앗수르는 몰락의 길을 걸어 선지자 나훔이 다시 니느웨의 멸망을 예고했고 그 말씀대로 B,C 612년에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 지금도 니느웨에는 요나의 무덤이 남아 있고 그 지역 주민의 25%가 시리아 정교회에 속한 기독교인이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12만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요나 4장 11절).
티그리스강과 모술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
니느웨 (출처- http://rubens.anu.edu.au/raider6/iraq_heritage/photo-index.html)
니느웨는 현재의 모술 건너 편인 티그리스 강의 동편 강안에 있으며, 이라크 바벨론 북쪽 약 450㎞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도시는 ‘강도의 도시’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이 도시가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여 수탈함으로써 부강해졌기 때문이다.
니느웨 성벽 (출처- http://www.bethsuryoyo.com/forum/viewtopic.php?f=1&t=2606)
10개의 성문과 15개 망대로 구성된 12km 길이의 성벽으로 물이 풍부(나훔2:8)한 방어 시설을 갖춘 요새였다. 이곳에 산헤립 왕궁(텔 쿠윤직)이 있었고 요나의 무덤도 ‘네비 유니스’(예언자 요나) 있다.
Image of the Ancient City of Nineveh
(출처- http://meljay.hubpages.com/hub/Henry-Layard-Famous-Archaeologist-Excavator-of-Assyrian-Nineveh
니느웨 성벽 (출처- http://rubens.anu.edu.au/raider6/iraq_heritage/photo-index.html)
헨리 오스틴 레이아드는 1845년에 폐허가 된 니느웨에서 12㎞에 달하는 벽으로 된 성고각 지역 전부를 발견하였다. 약 7.3㎢ 넓이를 지닌 이 성곽 안에는 두 언덕이 있다. 남쪽의 언덕은 그 높이가 30m이며, 넓이는 약 0.162㎢이고, 원주민들은 이곳을 ‘네비 유니스’(예언자 요나)라고 부른다. 북쪽의 언덕은 그 높이가 27m이며, 넓이는 0.4㎢이고, ‘쿠윤직’(니느웨의 성)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 레이아드는 북쪽 언덕에서 좌우 양쪽에 날개달린 사자가 지키는 고대의 성문과 설형문자로 산헤립이라 새겨진 성벽을 발굴했다.
니느웨 성문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Kuyunjik)
헨리 오스틴 레이아드는 옛 성의 중심부에서 산헤립의 왕궁을 발굴했는데, 이 왕궁의 출입구에는 거대한 날개가 달린 황소들이 한줄로 늘어서 있었다. 이 황소들의 몸체에는 설형문자로 왕에 대한 연대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 왕궁의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거대한 홀이 있는데, 넓이가 12m이며, 길이가 54m나 된다. 산헤립의 왕궁에는 사람 머리를 한 날개 달린 황소와 테라코타 그리고 원통 모양의 구운 점토판 위에 산헤립에 대한 연대기가 새겨져 있었다. 그 내용은 B.C. 689년에 산헤립이 바벨론 도성을 포위하여 멸망시킨 것과 B.C.701년에 지중해 동쪽 해안을 따라 이집트를 원정한 것을 포함한 8회의 원정을 거의 완전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블레셋 도성들에 대한 치적과 유다왕국을 침공한 일과 히스기야와 이사야가 살고 있었던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사실들이 강조되어 있다. 그의 역사기록은 왕하 18:13-19과 사 36-37장에 있는 성경의 기록과 일치하며, 또한 성경을 보충하여 설명해 주기도 한다. 이 왕이 유다를 원정했던 기간에 라기스를 포위하여 함락시킨 사건은 이 왕궁의 벽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산헤립은 그가 함락시킨 팔레스타인 성의 수를 말하고 있으며, 꽤 상세하게 전리품의 목록을 나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히스기야를 ‘새장에 갇힌 새’처럼 가두었다고 말할 뿐 그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지 못한 이유와 그의 군대에 임하게 된 재앙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인 최후의 승리를 얻지 못하고 급히 후퇴한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왕하 19:36, 37에 있는 산헤립의 마지막 날에 대한 기록도 발견되었다. 이것은 레이아드와 랏삼이 에셀핫돈의 왕궁에서 발견한 육면체의 커다란 원형 점토에 기록된 것이다. 이 에셀핫돈의 왕궁은 네비 유니스라 불리우는 니느웨 남부 지역에서 발굴 되었다. 서기 1851년 봄에 레이아드와 랏삼은 산헤립의 왕궁과 인접한 느보신전의 일부를 발굴하였다. 그리고 그 신전의 서로 통하는 두개의 커다란 방에서 쓰레기를 치우다가 왕실 도서관의 일부를 발견하였다. 이것은 많은 왕들이 수집하여 느보에게 받쳤던 것이다. 서기 1853년 하무즈 랏삼은 니느웨에서 발굴을 계속하던 중 앗술바니팔 왕의 궁전을 발굴하였다. 이 왕궁 안에는 매우 크고 아름다운 낮은 양각의 벽화가 있었는데, 이것은 왕이 사냥을 하기 위해 병거에 서서 막 출발하려고 할 때 그의 신하들이 사냥에 필요한 무기들을 그에게 건네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인접한 높은 천정을 가진 두개의 방에서 수천개의 매우 귀중한 점토서판이 높게 쌓여있는 선반들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앗술바니팔 왕의 왕실 도서관으로 판명되었다. 문학에 대한 앗술바니팔의 관심과 학구열은 언제나 대단했다. 왕이된 그는 이집트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시키고 페르시아와 리디아를 정복하여 나라를 튼튼히 하였다. 그리고 학문적인 탐구에 몰두하여 그가 살던 시대의 가장 강력하고 학식있는 군주가 되었으며, 문학에 있어서 세계의 가장 위대한 후원자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는 학식높은 서기관들을 앗시리아, 바벨론, 쿠타(수사), 니푸르, 아카드, 에렉, 그리고 그의 광대한 제국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보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그곳에서 점성술, 역사, 문법, 지리, 문학, 법률, 의학, 서신들, 기도문, 찬송, 주술, 신탁, 사전, 역대기, 토지거래행위, 사업계약과 법률기록서 등 특별한 주제들에 관한 점토 서적을 수집복사하여 오도록 하였다. 이렇게 수집된 모든 자료들은 니느웨에 있는 앗술바니팔의 왕궁으로 옮겨졌다. 그는 이 자료들을 연구하고 대조하여 두나라 언어로 된 사본은 하나의 통일된 글로 적어 읽기 쉬운 점토서판을 만들었으며, 니느웨의 백성들을 교육할 목적으로 조직적인 방법을 사용해 이것들을 분류 정리하였다. 이것이 완성되었을때, 그의 도서관에 있는 사본은 거의 100,000개에 이르렀으며, 이것은 고대의 가장 위대하고 가장 값진 유물중의 하나가 되었다. 죠지 스미드는 대영박물관에서 이들 서판을 취급하던 중 홍수에 관해 기록한 다량의 서판을 발견하였다. 그는 나중에 창조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서판도 발견하여 마침내 그는 1876년에 “갈대아인의 창조설화”란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비록 갈대아인의 창조설화가 창세기의 내용과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창조 사실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많은 자료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여하튼 이 자료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암시하고 있다.
니느웨 성문 (출처- http://rubens.anu.edu.au/raider6/iraq_heritage/photo-index.html)
니느웨 성벽 (출처- http://rubens.anu.edu.au/raider6/iraq_heritage/photo-index.html)
니느웨 성문 (출처- http://www.photobible.co.kr/bible/bbs/)
산헤립 궁전, Nineveh - 텔 구윤직(Tell Kuyunjik) (출처- http://www.panoramio.com/photo/64724949)
요나무덤 Nebi Yunis 회교사원
사진출처 http://oi.uchicago.edu/OI/IS/SANDERS/PHOTOS/MESO/NINEVEH
왕궁 건설, Picture: Mary Evans Picture Library (출처- http://cn.bing.com/dict/)
victory stele of eannatum stele of the ...http://cn.bing.com/dict/)
taureau daté de -3000 musée du Louvrehttp://cn.bing.com/dict/)
627 BC) found at Tell Kuyunjik (Nineveh), (출처- http://cn.bing.com/dict/)
<산헤립 왕, 대영박물관 유물>
산헤립 (Sennacherid) (704 - 681 BC) (출처- http://CHOWON23.onmam.com/167028)
뜻:신이 형제를 증가함앗수르왕 사르곤2세의 아들. 그 부친 사르곤이 살해되므로 앗수르 왕위에 올랐다(B.C. 705-681).바벨론의 엘람을 정복하고 주전701년 서방 여러 나라를 원정하기 시작 했다.유다왕 히스기야는 애굽에 원군을 청하여 앗수르에 도전했다(왕하18:7).산헤립은 유다를 공격하여 46도시를 점령하고 200,150명을 포로로 데려갔다.예루살렘포위 작전때 역병이 생겨 전쟁을 포기 하였다.
주전 681년 니느웨에서 그의 두 아들의 손에 암살 당하였다(왕하19:35-37)
산헤립 왕 (출처- http://CHOWON23.onmam.com/167028)
산헤립의 전쟁 기록 기둥(BC 7C초경) - 니느웨 출토 (출처- http://www.headstone.pe.kr/09_dataRoom/)
산헤립 (출처- http://honghee0119.blog.me/140178953326)
아슈르바니팔 왕궁 석실, 대영박물관 (출처- http://www.britishmuseum.org/explore/highlights/)
Part of a stone sill from a doorway in the North Palace of Ashurbanipal
Nineveh, northern IraqNeo-Assyrian, about 669 - about 630/627 BC
사자와 싸우는 아슈르바니팔 왕, 대영박물관 (출처- http://CHOWON23.onmam.com/167028)
마차를 타고 사냥하는 아슈르바니팔 왕, 대영박물관 (출처- http://CHOWON23.onmam.com/167028)
마차를 타고 사냥하는 아슈르바니팔 왕, 대영박물관 (출처- http://CHOWON23.onmam.com/167028)
굶주린 사자, 대영박물관 (출처- http://CHOWON23.onmam.com/167028)
<이라크 니느웨 박물관>
아슈르바니팔 , Assurbanipal's banquet. (출처- http://blog.naver.com/ykudos/90012495407)
BC 668~631, 高 54cm 幅 140cm From Room S, North Palace, Nineveh, Iraq
니네베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요나의 이야기로 유명한 니느웨를 말합니다. 1820년 고고학자 클라우디우스 J. 리치가 니네베를 발굴하기 시작해서, 1845~51년 사이에는 세나체리브 궁을 발견한 A. H.레이야드가 아슈르바니팔의 대 도서관에서 설형문자가 새겨진 점토판 수천 개와 석고부조 수집품들을 영국으로 가져갑니다. 아시리아 유적의 상당 부분을 대영박물관에서 소장하게 된 이유입니다.
Lions in the royal garden. (출처- http://blog.naver.com/ykudos/90012495407)
BC 645~640 高 98cm 幅 178cm From Room E, North Palace, Nineveh, Iraq
Wounded lion (출처- http://blog.naver.com/ykudos/90012495407)
Dying lioness (출처- http://blog.naver.com/ykudos/90012495407)
Three protective spirits (출처- http://blog.naver.com/ykudos/90012495407)
BC 645~640, 高 86.4cm 幅 90.0cm , From Court O (panel 4), North Palace, Nineveh, Iraq
A set of protective spirits (출처- http://blog.naver.com/ykudos/90012495407)
BC 645~640, 高 157cm 暴 189cm, From Room B(door A), North Palace, Nineveh, Iraq
Libation over dead lions(bottom) (출처- http://blog.naver.com/ykudos/90012495407)
BC 668~631, 고 169cm 幅 264cm, From Room S, North Palace, Nineveh, Iraq
Assurbanipal reviews booty from Babylon(detail) (출처- http://blog.naver.com/ykudos/90012495407)
BC 668~631, 高 231cm , From Nineveh, Iraq
Citizen of Nineveh climbing a wooded hill to watch the hunt (출처- http://blog.naver.com/ykudos/90012495407)
BC 645~640. 高 158cm, From Room C, North Palace, Nineveh, Iraq
갈라 (님루드(Nimrud)
갈라(Calah·창 10:11)는 니므롯 또는 그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건설한 아시리아(앗수르)의 고대 성읍이다(창 10:11). 수메르어로 ‘거룩한 문’이란 뜻의 갈라는 앗수르 북쪽의 티그리스 강변에 있는 오늘날 님루드(Nimrud)이다. 바그다드에서 니느웨(니네베)로 가는 도중 사마라를 거쳐 니느웨 남쪽 35㎞ 지점에 니므롯이 있다. 창세기 10장 12절에 갈라로 나오는 이곳은 BC 2500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며 BC 1250년쯤 앗수르의 살만에셀 1세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후 BC 884∼859년 아슈르나시르팔 2세에 의해 확장되었고 BC 879∼706년 앗수르의 수도가 다른 곳으로 이전될 때까지 행정수도가 되었다. BC 672년께에는 도시의 외벽과 관련해 이름을 남긴 사람이 에살핫돈(Esarhaddon BC 680∼669년)임이 밝혀졌는데 그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유다 침공에 실패한 후 본국으로 돌아와 니스록의 묘에서 경배하다가 암살 당한 부왕 산헤립(센나케리브)의 뒤를 이어 앗수르의 왕이 된 사람(왕하 19:37,스 4:2,사 37:38)이다. 그는 왕이 된 후 도시의 동남쪽 성벽을 재정비하고 문을 아치형으로 개조하고 입구 좌우에 자신의 업적을 새겼다. BC 614∼612년 메대(메디아)의 침략으로 파괴되어 BC 401년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황폐한 도시가 되었다. 발굴 작업을 통해 벽돌로 만들어진 약 8㎞나 되는 성곽과 10㎞쯤 떨어진 티그리스 강의 물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로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많은 조각과 그림이 그려져 있는 궁전이 있었으며 약 43m의 높은 지구라트도 있었다. 특히 60만평이나 되는 대규모의 성채에서 가장 주된 건물인 아슈르바니팔 궁전과 궁전 뜰에서 발견된 토판들이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줬다. 이 토판들은 앗수르 정복 지역에 파견된 관료들이 보내온 공문서들이 포함돼 있으며 BC 707년쯤 사르곤이 수도를 코르사바드(Khorsabad)로 옮기면서 보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후에 에사르하돈은 수도를 코르사바드에서 다시 이곳 니므롯(갈라)로 옮길 계획을 세웠으나 그의 죽음으로 성사되지 못하고 다만 기념비적인 건축물만 유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외에 이곳에는 니누르타와 나부 신전이 발굴되었다. 성채의 남동부 지역에 위치한 나부 신전(Nabu Temple)은 아다드니라리 3세에 의해 기초가 놓여졌다. 2개의 쌍둥이 성소가 딸려 있으며 BC 7세기 후반에는 중요한 종교건물로 발전하였다. 성경의 노아홍수 이야기와 아주 흡사한 내용이 담긴 길가메시 서사시가 바로 이곳에서 출토되었다. 특히 살만에셀 3세(BC 858∼824년)의 검은 색 방첨 석탑(Black Obelisk)이 발견되었다. 현재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이 석탑에는 북이스라엘의 예후왕(왕하9:14)이 앗수르 왕에게 무릎을 꿇고 조공을 바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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