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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안토니아 요새 Antonia Fortress - 성지순례

열려라 에바다 2022. 7. 29. 09:50

성지 이스라엘에 가면 성경에서 알게 된 익숙한 이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곳에 갑니다. 그런데 조금 생경한 이름을 만나게 되면 참 의아합니다. "이런 이름이 왜 성지에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렇게 만난 이름 중에 안토니아 요새가 있었습니다. '안토니아 요새 Antonia Fortress' 들어보셨습니까? 솔직히 저도 생소했습니다. 그러나 알고보니 깊은 메시지를 주는 이름입니다. 함께 가보실까요?

네모 모서리마다 망대로 쌓은 모습인데요, 이것을 요새라고 불렀고 그 앞에 고유명사 하나, '안토니아'를 붙였습니다.'안토니아'는 마크 안토니(Mark Antony)에게 헌정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요새는 지어진 후에 마크 안토니에게 헌정되어 '안토니아 요새'가 됩니다. 이 성은 누가 지었을까요? 이두메 출신 헤롯대왕입니다. 그는 주전37년부터 4년까지 로마로부터 이스라엘 지역 통치권을 불하 받아 왕으로 군림한 수완 좋은 사나이였습니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D%97%A4%EB%A1%9C%EB%8D%B0_1%EC%84%B8

헤롯은 예수님 탄생 당시 이스라엘의 실권자입니다. 이후 그의 아들들이 '헤롯왕'으로 신약성경에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그는 야곱의 쌍동이 형 에서의 후손으로 '이두메 족속'으로 불리는 혈통인데요, 하스모니아 왕조시대에 이두메 족속을 강제로 유대인화 했지요. 이 덕분에 이들이 유대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굴러온 돌' 헤롯이 '박힌 돌' 정통파 유대인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통곡의 벽 모습인데요, 아래의 2~3개 층이 헤롯대왕의 업적입니다. 지금은 이슬람이 여기에 황금돔 사원을 지었지요! 헤롯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대대적으로 증개축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국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헤롯 성전 모형입니다. 정면에 보이는 문이 골든게이트입니다. 그런데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성전벽 오른편 위 모서리에 뭔가 연이어진 네 개의 석축 건조물이 보입니다. 이것이 문제의 '안토니아 요새'입니다. 이 요새가 지어진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성전 안을 감시하겠다는 겁니다. 세속 권력이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시하겠다는 의도로 지어졌습니다.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terrasanta/15440974)

 

내부 폭이 120미터 40미터, 높이는 50미터의 웅대한 건축물입니다. 이 건물에 대해서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 장엄함이 마치 왕궁처럼 보였다’(유다 전쟁사 5.5.8)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인 성전이 세속 권력으로부터 감시를 당하기 시작한 것은 주전 2세기 하스모니아 왕조때부터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요새를 높이 세우고 '바리스 성'으로 불렀는데요, 그때부터 성과 속의 대립이 시작됩니다.

(사진: http://blog.daum.net/terrasanta/15440974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입니다. (사진출처: 위키백과) 클레오파트라! 문제적 여인! 팜므파탈의 원조입니다. 안토니아 요새는 그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 당시 클레오파트라의 남자가 '마크 안토니'입니다. 마크 안토니, '마르쿠스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입니다. 

(사진출처 : http://100.daum.net/multimedia/63_11100088_i1.jpg)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쥴리어스 시저(율리아누스 카이사레아)의 총애를 받던 휘하 장수였습니다. 시저가 죽은 후 로마에는 3두 정치가 이어지는데, 3두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레피두스입니다. 이 세 사람 중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담당한 인물이 안토니우스였습니다. 헤롯대왕은 복잡한 정치 상황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게 줄을 댑니다. 그래서 요새 이름을 '안토니아 요새'로 지어 헌정했습니다. 아부와 줄타기의 종결자 헤롯! 그때가 주전 31년입니다.

 

이스라엘 데나리온 동전에 안토니우스 초상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 로마의 정세는 대단히 복잡하면서도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야심가 옥타비아누스가 황제를 꿈꿉니다. 3두 중에서 먼저 레피두스를 주저 앉히고 안토니우스를 겨냥합니다. 그런데 안토니우스는 이때 달꼼한 꿀단지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진출처 : http://100.daum.net/multimedia/63_11100088_i1.jpg)

세기의 미녀 '클레오파트라!'입니다. 안토니우스는 지금 클레오파트라와 열애에 빠져 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왕후였던 클레오파트라는 '왕후'보다는 '여왕'이 되고싶은 욕망의 화신이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꿈을 이루겠다고 왕실을 뛰쳐나와 사막에서 로마 황제 시저를 꼬여내고 내연관계를 맺어 아들 '케사리온'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시저의 도움으로 이집트 왕인 남편을 제거하고 여왕이 됩니다. '팜므파탈' 그녀에 의해 희생된 첫 제물은 남편이었던 이집트 왕이었습니다. 이제 시저의 차례입니다.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시저와 클레오파트라입니다. 시저가 로마를 떠나 이집트에서 클레오파트라 치마폭에 감겨 있을 때, 로마의 정세가 복잡하게 얽힌 것은 당연했습니다. 늦게에 되돌아가지만, 시저는 암살을 당합니다. 클레오파트라와 사귀었다가 희생된 두번째 제물이 되었습니다. 주군 시저의 죽음에 가장 분개한 사람이 바로 안토니우스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 유혹에 성공합니다. 안토니우스는 그녀의 세번째 남자가 되어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의 주인이 되었고, 요새를 헌정 받았습니다. 안토니아 요새~

 

그 사이 옥타비아누스는 자기의 정치적 꿈을 이룹니다. 3두 정치 시절 안토니우스와 절친이었지만 권력앞에서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입니다.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와 달콤한 연애에 빠진 안토니우스와 악티움 해전에서 맞섭니다. 싸우기 전에 이미 승부는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사진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C%9A%B0%EA%B5%AC%EC%8A%A4%ED%88%AC%EC%8A%A4)

 

악티움 해전 기념 부조입니다. 옛 동지였던 옥타비아누스에게 패전하고 겨우 살아 돌아온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 스스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때가 주전 30년입니다. 불과 1년 전에 '안토니아 요새'를 헌정 받았는데, 팜므파탈의 원조 클레오파트와 달콤한 연애에 빠졌다가 허망하게 끝이 났습니다.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의 치세 마지막 왕인 클레오파트라의 몰락으로 본격적인 로마제국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헬라제국은 지고 로마제국이 태양처럼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의 이름은 성전을 감시하기 위해 세운 '요세의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남아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 요새가 '안토니아 요새'로 남도록 섭리하셨을까요?

줄리어스 시저에 이은 잠깐의 3두정치 시대는 역사상 세속 권력의 특징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팜므파탈로 인한 제왕들의 파멸이 절정에 이르고, 여기에 헤롯이라는 처세에 능한 인물이 틈새의 왕이 되며, 이 권력이 하나님의 '성전'을 감시하고 여호와 신앙은 '종교'로 전락합니다. 이 요새가 아직도 '안토니아 요새'로 불려지는 이유입니다.

사진에서 안토니아 요새를 찾아보세요! 헤롯 성전 서북쪽 귀퉁이에 붙어있습니다. 이 곳이 예수님 당시에는 어떤 용도를 쓰였을까요? 유대인들이 로마 총독에게 재판을 의뢰하면 가이사랴 관저에 체류하던 총독이 안토니아 요새로 달려옵니다. 여기서 골치아픈 유대인 문제를 해결합니다. 안토니아 요새가 법정이 되는 거지요! 지도 아래 왼편에 보면 가야바 법정이 있습니다. 한 세상에 두 개의 법정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종교 법정 가야바! 세속 법정 안토니아!

 

성전산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 시은좌에 임재하여 대제사장을 만나시던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 가야바의 법정에 피고로 붙들려 갔습니다. 겟세마네 만국교회가 있는 자리에서 체포되어 닭울음교회 가야바 법정으로 끌려갑니다. 헐~ 그곳 지하 감옥에 갇혔다가 안토니우스 요새에 설치된 '빌라도 법정'으로 압송됩니다. 총독이 빌라도여서 '빌라도 법정'입니다.   

 

베드로 통곡교회가 곧 가야바 법정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붙잡혀 이곳을 끌려옵니다. 1년에 한 번 지성소 시은좌에 임재하신 하나님! 대제사장이 방울 단 옷을 입고 발목에 줄을 매고 들어가 뵈었던 그 하나님을 몰라보고 이렇게 무참하게 다룹니다.

 

저희가 갔을 때 마침 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그래서 사진 잘 나오라고 우산은 내리고 섰습니다. 뒤로 예수님이 압송되는 부조가 오른편에 보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이곳이 이렇게 진지하고 깊은 신학적 메시지가 있는 줄 잘 몰랐습니다. 그저 가이드하시는 목사님 뒤 쫓느라고 정신이 없었지요! 다녀와서 이렇게 포스팅하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잠시 성지순례 폐인이 되었습니다. 헐~ 

 

같은 사진이지만 다시 봅니다. 빨간 실선 화살표를 따라가보세요! 천상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이 압송되어 간 궤적입니다. 가야바 법정, 빌라도 법정,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님은 사형이 확정됩니다. 다음 포스팅은 비아 돌로로사입니다. 십자가의 길, 슬픔의 길입니다. 비아돌로로사는 1처에서 14처까지인데요, 1처가 바로 안토니아 요새 터입니다. 헤롯 성전과 안토니아 요새는 우리가 알다시피 서기 70년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않고 다 무너집니다. 그후 이슬람 사원이 지어졌는데요, 그들은 안토니아 요새터에 초등학교를 지었습니다. 

사진에 보시면 황금돔 사원 오른쪽 아래 모퉁이에 연해서 지어진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이곳이 안토니아 요새 터입니다. (사진: 부산 소망교회 박정복 목사님 제공)

안토니아 요새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아랍인들의 '엘 오마리에' 초등학교 교문입니다. 무슬림은 왜 성전 안을 감시하지 않을까요? 그들은 아예 성전 안에까지 총을 메고 들어가서 삼엄하게 경비를 하니까 그럴 필요가 없지요! 저 교문 안, 마당 어디쯤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산 죽음의 언덕 골고다로 걸음을 떼셨습니다. 이곳이 바로 비아 돌로로사 1처입니다. 

성육하신 하나님이 왜 이런 고난을 자처하셨을까요? 우리는 지상에 있는 두 개의 법정을 보았습니다. 종교 법정인 가야바 법정, 세속법정인 빌라도 법정, 세상 사람들은 이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려고 기를 씁니다. 두 법정에서 승소하면 이긴 줄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가리키시는 '천상의 법정'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인으로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 법정에서는 사형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천상의 법정에서는 그 분이 심판주가 되시며 보혜사 즉, 변호사가 되어주십니다. 그 법정에서 그분의 변호로 무죄 평결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선물 주시려고 지상의 법정에서는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패배를 감당하시고 천상의 법정에서 의인으로 결심공판을 하십니다. 

우리가 비아 돌로로사를 걷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분이 가리키시는 천상의 법정으로! 거기서 무죄 평결을 위하여! 위하여! 

공중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윗편에 '사자문'이 있고, 베데스다 연못이 있습니다. 연못 바로 위에 있는 돔이 성 안나 교회 건물입니다. 사진 오른편으로 무슬림 초등학교 마당이 안토니아 요새 터입니다. 카이사리아 요새도 아니고, 옥타비아 요새도 아니고, 템플리아도 아니고, '안토니아 요새'로 이름이 지어진 의미를 다시한번 음미합니다. 세상의 오만가지 추함, 즉 치정과 음란과 살인, 팜므파탈 옴므파탈과 음모와 권모술수가 꽃피는 세속법정의 이름으로 '안토니우스 요새' 말고 다른 이름이 어디 있겠습니까?  

스페인에서 1963년에 발행한 사도 바울의 기념우표입니다. 그 해가 바울이 스페인을 방문한지 1900년이 되는 해였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치도곤을 당하다가 로마시민권자임을 밝힌 법정도 다름아닌 안토니아 요새였습니다.

예수님이 이끄시고 바울이 자기 십자가 메고 간 길 따라 천상의 법정에 당도하여

예수님을 보혜사로 선임하여 변론받고 의인 평결을 받으라고 

예수님은 '가야바 법정' '안토니아 법정'을 지나가셨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