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말씀

썬다 싱의 마지막 이야기

열려라 에바다 2022. 8. 8. 15:01

썬다 싱의 마지막 이야기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썬다는 만 서른살이 되는 1919년 7월 초에 또다시 열번째로 티벧에 들어갔다. 이 여행에서 썬다는 하루 평균 사십리 정도를 걸으면서 구월말까지 마흔 여덟곳을 전도했다. 그해 티벧에는 큰 눈이 내렸고, 9월 말께가 되자 길이 얼고 산천은 눈속에 싸여서 전도하기에 여간 어려운 형편이 아니었다.


어느날 썬다는 랑케트쪽으로 가는 중에 티벧인 한 사람과 동행하게 되었다. 그들은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눈보라와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함께 걷고 있었다. 사력을 다해 걷고 있는 중이었는데, 길에서 약 십미터나 떨어진 가파른 비탈쪽에 웅크리고 있는 동사체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썬다는 동행에게 “얼어 죽어가고 있는 그 사람을 구조하여 업고 가자”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는 “그러다가는 우리도 얼어죽소. 나는 살아야겠소” 하면서 매정하게 혼자 가버리는 것이었다.


썬다는 비탈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내려가서 아직 살아 있긴 했으나 넘어져 다친데다 거의 얼어 죽은 목숨 같은 그를 끌어 올려 업었다. 업었다가 안았다가 넘어졌다 일어섰다 하면서 가까스로 고갯마루에 거의 다다랐을 때 썬다의 시야에 또 하나의 동사체가 나타났다. 그는 바로 몇시간 전 자기만 살겠다고 먼저 가버린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꽁꽁 얼어 죽어 있었다. 썬다와 등에 업힌 사람은 서로 밀착한 열기로 인하여 체온이 내려가지 않아 살았는데, 혼자만 목숨을 건지겠다고 앞서가던 동행자는 혼자만의 체온으로 버틸 수가 없어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이 장면을 목격한 썬다는 문득 다음의 성경말씀이 머리에 떠올랐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17:33).


생사의 갈림길에서 선한 사마리아인같이 죽어가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이웃을 구한 썬다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썬다는 또 다시 목숨을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면서 의식을 되찾은 동행과 함께 랑게트로 향했다.





아버지의 회심

1919년 10월 10일, 썬다는 저녁 늦은 시간에 고향 람푸르의 집으로 돌아왔다. 전과는 달리 아버지는 그를 박대하지 않았다. 15년전 회심의 그 순간을 기억하면서 썬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생명을 다시 주신 주님이시여, 주님 외에 누구를 찾으리이까? 늘 나무 밑이 나의 잠자리가 되고, 바위밑이 나의 기도실이 되게만 하옵소서…”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또 자신의 불충에 통회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썬다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목이 매인채 띄엄띄엄 말했다. “아들아, 못난 애비를 용서해다오. 그동안 너에게 못할 짓을 내가 너무 많이 했구나. 나도 이제 예수님을 믿고 싶다만 그분이 내 죄를 용서해 주실는지…” 썬다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아버지의 손을 꼭잡고 말했다. “아버지, 함께 주님께 기도를 드리시지요.” 기도를 마치자 아버지는 기쁨이 충만하여 자신의 눈을 뜨게 해준 아들에게 세례를 받고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썬다는 “아버지, 그 일은 딴 분이 하실 일입니다. 저는 오직 주님의 평화와 사랑을 증거하는 소명만을 받았을 뿐입니다”하고 겸손히 거절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아버지와 가족 그리고 안정된 미래를 기꺼이 포기하고, 오직 성경 한권만을 손에 쥔채 15년동안 맨발로 온 세상을 두루다닌 썬다! 어둠속에서 방황하다 지옥으로 떨어져가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해주려고 엄청난 고생을 감수한 썬다! 이러한 썬다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너무나 사랑하셨고 또한 그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이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6,27).






저는 날로 작아지고 예수님만 높이기를



썬다는 1920년 1월과 1922년 봄에 구주 전도를 했다. 기독교가 유럽에 들어간지 수천년 동안 많은 선교사들이 복음전도의 사명을 가지고 동양으로 파송되었는데, 이제는 동양의 도복을 입은 성자가 서양을 향하여 하늘의 신비한 뜻을 전하기 위해 가게 된 것이다. 물질문명의 안개 속에서 참빛을 잃은 유럽의 기독교계는 썬다의 방문으로 큰 각성과 자극을 받았다. 그는 동양에서와 같이 유럽전도에서도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다만 맨발에 성경 한권만을 간직한채 전도했다. 그의 모습을 본 서양사람들은 마치 예수님 같다고 하거나 성경에서 빠져나온 1900년 전의 사도들과 같다고 감탄했다.

그는 영국과 미국을 비롯하여 팔레스틴, 스위스, 독일, 스웨덴, 러시아, 노르웨이,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을 차례로 방문하면서 메마른 유럽인들의 영혼에 빛을 비추어 주었다.





나는 날로 작아지고

썬다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기를 바랬으나 한번도 안수기도로 축복을 하지 않았다. 한번은 베를린에서 온 어느 목사가 자기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축복해 줄 것을 청하니 썬다는 “성경을 찢어 불태운 손으로 어떻게 축복 안수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못찔린 주님의 피묻은 손만이 축복을 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원하시니 주님께 아이들에게 복을 달라고 기도를 하여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썬다의 겸비와 영성을 살피던 스웨덴의 대주교 소더블롬 박사는 “썬다는 온전히 그리스도인이다. 그는 진실로 성경적 그리스도인의 화신이다. 그의 예수님께 대한 순명, 그의 평화와 경건, 그의 십자가길의 실천, 썬다야말로 그리스도인의 한 전범(典範)이다”라고 하며 그의 겸비한 인격을 찬탄해 마지 않았다.





위대한 영적 지도자

늘 전도로 일관해 온 그의 삶이었기에 썬다는 또다시 1924년 봄 티벳행을 시도해 보았으나 준령 하나도 넘지 못한채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위궤양 뿐만 아니라 폐결핵, 영양실조, 2년 동안의 세계 일주 전도여행으로 인한 과로로 건강이 매우 악화되어 있었다. 의사는 그에게 평지전도도 중단하고, 오직 요양만 할 것을 당부했다. 썬다는 자신의 몸이 그토록 허물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순간 절망을 느꼈으나, 다시 평온을 되찾고 문서선교를 시작했다. 삼년 동안의 정양 기간 동안 썬다는 여러 편의 글을 써서 세상에 내보내는 한편, 인도 선교회 당국에다 티벧선교와 히말라야변 북인도 부락 선교를 촉구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인도교회의 인사들은 썬다의 ‘토착화’ 정신에 부응, 범인도교회라고 하는 새독립 개혁교단을 창설하고, 썬다에게 총회장직 수락을 제의해 왔다. 그러나 썬다는 조용히 이 제의를 거절했다. 그의 생각으로는 교회가 더 이상 분열되어서는 안되며 무엇보다도 조직에 관계됨이 없이 전도활동을 해온 그로서는 교단에 묶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썬다가 정양하는 사이 독일에서는 저명한 하일러 박사가 1924년에 [사두 썬다 싱]이란 큰 책을 내었는데, 썬다를 신비주의 성인이라고 구명(究明)했다. 그러나 일부 교회에서는 썬다에게 카톨릭에서나 붙이는 ‘성인(聖人)’의 칭호를 붙인다는 것과 그의 신비체험에 대한 기사내용이 책마다 다르게 묘사되었다는 이유 등으로 그를 이단으로 몰았다. 적에게 둘러싸인 것 같은 이런 와중 속에서 썬다는 침묵을 지켰다. 오직 그가 하는 일이란 몸이 조금이라도 나으면 문서를 하나라도 더 준비하는 것이었고, 집 가까운 곳에서 개인전도를 하는 것이었다.


썬다의 전기를 쓴 하일러 박사는 생명을 걸고 그의 성인됨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썬다 싱은 교회에 있어서 성인 전통의 승계이며, 그의 가르침은 성 어거스틴, 아씨시의 성 프랜시스, 성 아퀴나스, 제노아의 캐더린, 성 십자가의 요한, 성 아빌라의 데레사 등의 영적 거인들과 견주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계속 말하기를 “서방 그리스도교계에 썬다 싱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밭에 감추인 보화이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라도 산다고 하는 예수님의 복음, 그 중핵으로 빛나는 산상수훈의 도, 그 광채나는 진주이다. 오늘날 많은 서방 그리스도인들은 이 진주 보화를 모르고 있다. 혹 보는 사람도 있으나 그만 그 가치를 모름으로써 내던져 버리고 있는 형편이다. … 썬다 싱이야말로 오늘날 눈먼 서방인들을 깨울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



사라진 불꽃

1928년 봄, 인도쪽에서 겨울을 지낸 티벧 상인들이 그들의 고향을 찾아 수바투를 통과하고 있었다. 집 밖에서 봄볕을 쪼이고 있던 썬다는 그들의 고향을 물어보았다. 귀에 익은 지명들이 들려오자 그의 마음은 벌써 티벧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상인들을 따라 조용히 집을 나섰다. 그로부터 며칠 후, 썬다는 인도쪽 히말라야의 한 산길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져 있다가 행인에게 발견되어 수바투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끝내 포기하지 않고 1929년 4월 18일, ‘살아오리란 기대를 하기 어렵다’는 말을 남기고 또다시 티벧을 향해 떠났다. 그는 떠나기 전에 리들 목사에게 이러한 편지를 띄웠다. “오늘 티벧을 향해 떠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모르는 험로이긴 하지만 사도행전 20:24에 있듯이, 내가 사명을 완수하고 하나님의 은총의 복음을 전하라고 주 예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임무를 다할 수만 있다면 나는 조금도 목숨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 저에 관해서 안부를 알 수 없으면 7월경에 수바투의 제 숙소로 오시어서 방을 좀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날 이후 썬다는 영영 소식이 없었다. 티벧 정부의 협조 하에 백방으로 탐문해 보았으나 그의 행방은 알 길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의 실종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말하였다. 카일라스산의 마하리시에게 갔다고도 하고, 은수 중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에녹이나 엘리야처럼 하늘로 들려 올라갔을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카타르 싱처럼 순교했으리라 추측이 가장 많았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신34:5).


담요 두장과 성경 한권만을 든 채 오대양 육대주를 돌고, 히말라야의 얼음길을 열번이나 넘나들며 복음을 전파한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의 일생은 이렇게 마감되었다.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은 아련히 사라져간 성자를 그리워하며 오늘도 그의 빛나는 생애를 기리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영혼들에 대한 사랑으로 불꽃같이 활활 타오르다 사라져간 히말라야의 성자 썬다 싱! 그의 시신은 비록 찾을 수 없었으나 그의 정신은 우리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밝게 비추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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