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신약 정경의 편집

열려라 에바다 2022. 9. 13. 15:13

신약 정경의 편집

 

1) 성경의 유래와 어원

① 바이블(The Bible)은 라틴어의 비블리아(biblia)에서 유래되었으며, 비블리아는 그리스어 비블로스(biblos)의 복수형으로 “책”을 의미했다. 종이가 없었던 고대에는 갈대 줄기를 엮은 “파피루스”에 글을 기록하였기에 그 책을 “비블로스”라고 불렀다. 했다. 또한 비블로스는 지중해 연안 페니키아의 항구 도시 “쥬베르”의 그리스어 이름이기도 했다. 쥬베르는 이집트산 파피루스의 주요 수입항이었다. 최초의 성경 사본들은 아프리카에서 그리스로 수입된 파피루스에 기록되었는데,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파피루스 원료를 편의상 “비블로스(byblos)”라 부르기 시작했고, 후에 글자가 “biblion”으로 바뀌어 “파피루스 두루마리” 또는 “책”이라는 뜻이 되었다. 후대에는 “책 중의 책”이라는 뜻에서 성경(聖經)을 가리키게 되었다.

 

② 성경은 약 3,500년 전 모세로부터 약 1,900년 전의 사도 요한까지 1,600년 가량에 걸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66권의 책들은 신성한 계시인 정경(正經, canon)으로, 캐논(canon)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칸나(canna)에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갈대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카논(kanon)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카논은 자(ruler) 또는 측량 막대기(measuring stick)를 의미했는데, 자가 없었을 때에는 갈대를 측정기구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자(ruler)는 후에 인증된 “권위(recognized authority)”라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③ 4세기경에 교회는 캐논이라는 단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진 성경들의 목록”을 의미하는 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경”이란 진리와 신앙의 척도가 되는 최고의 텍스트(Text)를 말한다. 정경이라는 용어가 갖는 이상의 의미는 정경이 형성되기 전에 이미 정경 이외의 많은 다른 문서 자료들이 존재했음을 전제한다. 정경이란 용어를 기독교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타나시우스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히브리어 구약 정경은 < 타나크 >라고 하는데, 구약 율법서인 “토라”와 예언서인 “네비임” 그리고 성문서인 “케투빔”의 머리글자를 모아서 붙인 이름이다.

 

2) 신약 정경화(正經化)의 필요성

 

①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경에 대한 신뢰감이 매우 두터웠기 때문에 또 다른 성경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예수님을 직접 목도(目睹)하고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신자들도 많았고, 적어도 그 목격자들의 생생한 보고와 증언을 들으면서 성도들이 그 증거를 믿고 따라서 살았으므로 주님과 주님의 사역에 대한 어떤 기록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사도들이 교회를 인도했을 때에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기대가 강했기 때문에 신약 정경이 곧 만들어지지 않았다.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은 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문서화 작업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 것이다.

 

② 그러나 AD 1세기가 지나면서 사도 시대가 끝나자 수많은 외경(外經)과 위경(僞經), 이단들의 책, 저자를 알 수 없는 내용의 변질되고 조작된 책들이 난무하게 되었다. 정경(正經)으로 인정받으려는 거짓 경전들의 출현은 교회로 하여금 신약 성경의 정경화 작업에 착수하게 하였다. 또한 후일에 “교회의 모든 문서를 불사르라”는 로마의 박해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칙령도 정경의 확립을 재촉했다.

 

③ 신약성경은 9명 가량의 기자들이 반세기에 걸쳐서 기록한 것으로, 내용별로는 복음서, 사도행전, 서신서, 예언서로 나눌 수 있다. 신약성경은 기자의 편지가 수신자인 교회나 개인에게 전달되었고, 이것이 초대교회에서 회람으로 각 지(枝)교회에서 읽혀지다가(골 4:16), 후에 그 사본들이 집성되면서 한 권의 책으로 묶여졌다(=현장에서 현장으로). 현재 신약성경의 사본으로, 부분적으로나 혹은 전체적으로 발견된 헬라어 사본은 모두 합하여 무려 5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 수많은 성경 사본들을 연구 조사하고 서로 비교하여 원본에 보다 가까운 성경을 찾으려는 노력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는데,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이라고 한다.

 

3) 신약의 정경화 과정

 

① 성경학자들은 신약성경 27권 중 초대교회 때부터 승인을 받아온 20권을 “원경(原經)”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7권은 “대경(大經)”이라고 부르는데, 대경은 몇몇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후 4세기에 이르기까지 개개의 책들에 대해 속사도나 여러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 권위와 가치를 인정하면서 마침내 정경으로 받아들여졌다. 많은 문서들 가운데 어떤 것은 정경으로 채택되고, 어떤 것은 채택되지 않았을까? 어째서 어떤 문서들은 마침내 완전히 신약 성서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 책이 교회의 공중 예배에서 읽혀졌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② 신약 정경 27권의 목록은 동방의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으로 있었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에 의해 처음으로 마련되었다. 아타나시우스는 AD 367년에 자기 교구(敎區)의 여러 교회에 부활절 서신을 보내면서 오늘의 신약 성경 27권과 동일한 목록을 제시하였다. 정경 확립의 중요성을 깨달은 동서 교회는 AD 363년 라오디게아 종교회의, AD 393년 히포 종교회의 등 주요한 종교회의를 거쳐 마침내 AD 397년에 어거스틴의 주도 하에 열린 제3차 카르타고 교회 회의에서 정경에 대한 최초의 결정을 내렸다.

 

③ 이 회의에서 규정된 사항 가운데 하나는 교회 내에서는 오로지 정경으로 인정된 책만 읽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결정된 정경 목록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27권의 목록이 되었다. 히브리서는 바울의 서신이라는 이유로 인정되었다. 이후 열린 히포 교회 회의(419년)는 제3차 카르타고 교회 회의의 목록을 거듭 확인하였다. 신약의 정경화는 다소 시간과 과정을 거쳤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4) 신약성경 출현의 과정

 

① 최초의 복음서는 적어도 주후 60년경에 가서야 기록되었다. 이 기간을 전후로 하여 바울의 서신들이 기록되었고 그보다 후에 요한과 기타 서신들이 기록되었다. 1세기 말엽에 가서 바울의 서신들이 최초로 모아졌고, 2세기 중엽에는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들이 모아졌다. 요한복음은 그 후에 공인을 받았다. 오늘날의 신약성경은 속사도 시대 동안 편집되고 확정되었다. 유스티누스의 글에 의하면 일요일의 모임 때 예수님의 언행을 읽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그것은 아마도 오늘날의 복음서였을 것이다.

 

② 유스티누스의 제자 타티아누스가 사복음서를 종합하여 전기(傳記)로 만들어서 < 디아테사론 - Diatessaron >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 160년 전후의 일이다. 이 책은 400년경 4권의 복음서로 각각 나누어질 때까지 시리아 근동지방에서 사용한 표준 복음서였다. 〈 디아테사론 〉의 인용문은 고대 시리아 문헌에 나타나지만 사본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3세기의 그리스어 파피루스 단편이 1933년 이라크 바그다드의 유로푸스에서 발견되었다.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로 된 사본이 있고, 중세에 유럽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③ 사도의 서신을 복음서와 같이 성경의 일부로 취급한 최초의 사람은 마르키온이다. 마르키온은 주후 140년경에 최초의 정경 목록을 내놓았는데 누가복음과 바울 서신 중 10개만 포함되어 있었다. 마르키온은 구약성경을 일체 배척하고 성경을 오직 복음서와 사도 서신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마르키온의 정경 작업은 영지주의자들이 사도들의 이름을 붙인 자기들의 복음서와 묵시록을 사용한 것(=위경)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일이었기 때문에 교회의 올바른 정경 작업을 촉구하는 자극이 되었다. 이와 함께 몬타누스파의 예언으로 말미암은 소위 “새로운 계시”의 등장도 정경 형성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④ 2세기 말에는 소위 사도들의 “행전(行傳)”들이라는 책이 몇 가지 나왔는데 여기에는 누가복음에 기록되지 않은 사도들의 선교 활동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나 빌라도의 생애에 관한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는 몇 가지 복음서들도 나왔다. 이런 책들은 소설에 가까운 책들이었으며, 가현설자나 결혼을 거부하는 주장을 하는 일부 이단들의 주장을 널리 퍼트리는데 기여했다.

⑤ 2세기 말에 기독교 저술가들은 교회가 공인한 책을 모두 밝힐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레니우스는 오직 네 권의 복음서가 있다는 사실을 말했다. < 무라토리 단편 >으로 알려진 최초의 정경 목록은 200년경 로마에서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헌은 1740년 이탈리아의 역사가 무라토리가 밀라노의 도서관에서 발견한 것인데 첫 부분은 분실되었으나 남은 부분에는 네 권의 복음서와 바울의 13개의 서신서들 및 사도행전과 요한의 두 서신, 유다서와 요한계시록, 솔로몬의 지혜서, 그리고 공인이 유보된 베드로 묵시록 등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전후서와 히브리서, 야고보서, 요한삼서는 빠져 있었다.

 

⑥ < 페쉬타 - Peshitta >는 2 세기 중엽 이전에 에뎃사에서 기록된 시리아역 신약성경으로서 3세기말경 부터 시리아 교회가 사용했다. 페시타라는 이름은 9세기에 모세스 바르 케파가 시리아역 성경을 라틴역 성경인 불가타처럼 공동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하여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그 이름은 더 복잡한 시리아의 헥사플라 성경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⑦ 150년경에는 복음서와 사도들의 서신을 합한 신약성경이라는 것이 일반 교회에 존재하지 않았으나,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등의 시대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의 신약성경은 짧은 시간 동안 급속히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세기 말 경에는 오늘날 신약성경에 수록된 문서의 대부분이 이미 성경으로서 사용되고 있었다. 당시에 아직도 성경으로 승인되지 않고 있었던 책들은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후서, 요한2,3서,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이었다.

 

⑧ 3세기 초까지 정경의 주요 목록에 대해 교회적인 의견 일치가 이루어졌지만 몇 권의 책은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서방교회는 히브리서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몬타누스파가 히브리서 6장을 배교자들의 회심을 거부하는 근거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계시록은 천년왕국을 주장하는 책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천년왕국론을 반대하는 동방교회에서는 인기가 없었다.

 

⑨ 4세기 초까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된 책은 베드로후서, 요한2서와 3서, 유다서였다. 요한계시록도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동방교회는 결국 367년에 신약성경 27권을 정경으로 확정하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또한 정경에 들지는 못했지만 훌륭한 신앙 문서로 평가된 < 디다케(열두 사도의 교훈집) >와 < 헤르마스의 목자서 >는 교회에서 읽을 수 있는 책으로 허용되었다. 또한 정경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유익한 글로 인정된 또 다른 책은 < 클레멘트 1서 >와 < 바나바 서신 >이다.

 

⑩ 그밖에 시리아 교회는 수 세기 동안 타티아누스의 < 디아테사론 >을 네 권의 분리된 복음서 대신 사용했다. 후에 시리아 교회는 요한계시록을 거절하였고 히브리서 등 공동 서신들의 권위를 낮게 평가했다. 그러다가 6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모든 책을 인정하게 되었다. 서방교회에서 정경이 확정되고 공인된 것은 393년의 히포(Hippo – 북아프리카의 항구도시) 공의회와 397년의 카르타고(Carthage) 공의회에서였다.

 

5) 신약 정경 확정의 기준

 

① 신적 권위 - 신적 권위는 구약의 선지서들이 인정받은 방법으로써, 기록된 말씀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와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② 사도성 - “사도들이 기록한 것인가?” 사도들의 권위는 예수님에 의해 공인된 권위이므로 이 기준은 정당하다.

③ 내용 - “내용의 주제나 그 주제의 영적인 특징이 성경으로서 합당한가?” 이러한 기준에 의해 거짓 문서들은 제거되었다.

④ 보편성 - 교회가 전반적으로 그 문서를 받아들이고 있는가?

⑤ 영감성 - “하나님의 감동으로”(딤후 3:16)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⑥ 전통성 - 고대로부터 전통적으로 사용해왔는가?

⑦ “그리스도 중심적인가?” - 가장 중요한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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