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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부모

열려라 에바다 2022. 9. 20. 13:57

성경적인 부모

출애굽기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오늘날 가정이 붕괴된다고 말을 합니다. 가정의 가치가 훼손되고 폄하되며, 가족 구성원 간의 사랑은 식어갈 뿐 아니라 나홀로 족이 늘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세대입니다. 크리스천 가정 또한 이런 현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정부나 기관에서 시행하는 대책들은 그 어떤 것이라 해도 결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되지 못합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크리스천으로서 우리가 관심을 갖고 답을 찾기 위해서 직시해야 할 것은 성경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가정 그리고 부모·자녀의 역할, 권위, 책임 등 본질적인 원리들을 배우고, 회복하고 그 원리들을 세워가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부모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은 대리자

창 1:21-22, 21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육지의 짐승과 바다의 생물 그리고 공중의 새들을 만드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은 사람에게 주는 것인데 하나님은 인간이 아닌 생물에게도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복(바라크)은 히브리어로 '유익한 능력을 부여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어떠한 능력입니까? 바로 22절의 생육하고 번성하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에게 주신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에게 주신 동일한 복을 인간에게도 주셨습니다(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에 더하여 특별한 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피조물들, 즉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능력입니다. 사자와 코끼리를 다루고, 사람보다 몇 배나 큰 범고래를 춤추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누가 다스립니까? 두말할 것 없이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다스리시고, 인간에게는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한 것이 이 땅의 창조질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태초의 창조질서를 깬 것은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고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통치자가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인간은 서로 경쟁하고 다투며 그 와중에 모든 피조물은 신음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 가정에서 부부가 다투면 그 아이들이 고통 가운데 신음하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이처럼 인간으로 말미암아 훼손되었습니다. 결국 훼손된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회복되려면 답은 하나입니다. 동물이 정신차려야 합니까? 자연이 회복되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회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하나님과 인간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며,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세계를 회복시키시되 태초의 모습, 즉 에덴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66:22,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요한계시록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하나님께서 구원사역을 마치시는 마지막 때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지으시고 그곳에 구원받은 자녀들이 있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신천지의 십사만 사천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 하나님과 영원히 새 하늘과 새 땅(새 에덴), 즉 천국에서 함께 하시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네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고 하지 않으시고, '너와 너희 자손'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구원이 단지 개인 구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나무에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듯이 믿음의 가문을 통해 거두시겠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개척사에 보면 18세기 초 두 명의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젊은이가 청운의 꿈을 안고, 배를 타고 신대륙인 미국에 내렸습니다. 그 두 사람은 마르크 슐츠와 조나단 에드워즈입니다. 두 사람은 똑같이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그런데 마르크 슐츠는 ‘내가 이곳에서 큰돈을 벌어 부자가 되어서 내 자손에게는 가난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도록 돈을 벌어야 하겠다' 생각하고 뉴욕에 술집을 차려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결국 그의 소원대로 엄청난 돈을 벌어서 당대에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

그런 반면에 조나단 에드워즈는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왔으니 바른 신앙생활을 통하여 이 신앙의 자유의 나라인 이곳에서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했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150년이 지나 5대 자손들이 태어난 후에 뉴욕시 교육위원회에서는 컴퓨터로 이 두 사람의 자손들을 추적해 어떻게 되었는지 조사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돈을 벌어서 많은 재산을 남겨 자손들을 잘 살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한 마르크 슐츠의 자손은 5대를 내려가면서 1,062명의 자손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교도소에서 5년 이상 형을 산 자손이 96명, 창녀가 된 자손이 65명, 정신이상, 알코올 중독자만 58명, 자신의 이름도 쓸 줄 모르는 문맹자가 460명이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5대를 내려가면서 1,394명의 자손을 두었습니다. 자손들 중에는 부통령 1명, 주지사 3명, 예일 대학교 총장을 비롯한 대학총장 13명, 교수, 교사 86명, 인구 6백만 이상의 대도시 시장 3명, 장.차관 82명, 변호사 149명, 판.검사 48명, 의사 68명, 교수 65명, 세계적인 사업가 75명, 뛰어난 발명가 25명, 군인이 76명, 문학가가 75명, 장로 집사가 286명, 그리고 목사도 116명이나 있었습니다. 어마어마한 명문가문입니다.

이미 저와 여러분 가운데 에드워즈 목사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 노력하신 분들이 많이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가정과 자녀들은 에드워즈 가문만 못할까?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야 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믿음과 축복의 본질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에드워즈 가문을 통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첫째, 에드워즈는 믿음의 3대손이며 세상적으로 천재로서 이미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세상의 문화를 소비하는데 쓰지 않고, 천국을 침노하는데 사용했다는 것입니다​(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지혜를 주신 것은 세상에서 성공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지혜로 이 땅에서 지경을 넓혀가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물질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성경의 역사와 더불어 교회사를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의 천사인데, 어느 한 시대로 가서 각자 영혼의 추수를 해 오라고 한다면 어느 시대로 가겠습니까? 저라면 로마 압제의 시대, 일제 압제의 시대로 가겠습니다.

교회와 가정과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며 눈물 뿌리는 회개와 인내의 삶이 없다면 그 사람의 인생에서 무슨 수확을 기대하겠습니까?

시 126:5-6, 5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자녀와 가정의 영혼을 위해 눈물 뿌리며 기도하고 계십니까?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둘째, 에드워즈는 자신이 부모 세대로부터 받은 축복을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믿음의 가정을 세우는데 헌신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부합한 창조적인 삶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그냥 씨만 뿌리고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에드워즈 목사가 자녀를 11명 낳았다고 축복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11명의 모든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생육하게 하였습니다. 자녀들을 살아있는 영적 존재로 성장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복을 흘러나가게 하는 즉, 믿음의 가정을 세우는 것입니다.

에드워즈 목사는 자녀들에게 성경을 제대로 읽히기 위해서 10대 초반에 히브리어와 헬라어 그리고 라틴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도록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는 자녀들에게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기도하도록 교육했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가족들과 약 1시간에 걸친 대화의 시간을 가져 청교도적 경건을 자녀들에게 자상히 가르쳤습니다. 지난주 제 아들이 5일의 휴가를 받아 집에 다녀갔습니다. 아들과 대화하느라 거의 매일 12시를 넘겨서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새벽에 일어나기에 조금 피곤하기는 했지만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저희 교회는 이번 5월 가정의 달을 계기로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자율적으로 동참하는 것이지만, 저는 이번을 계기로 여러분 모두의 가정이 에드워즈 목사의 가정처럼 신앙의 명문가로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은 대리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정을 만드시고, 그 가정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아버지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권위를 위임하셨습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가정에 권위자를 세우시지 권력자를 세우시지 않습니다. 육신의 부모와 자녀이기 전에 모두 하나님의 자녀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간혹 유대인의 가정, 또는 세상의 가정에서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녀들에게 복이 주어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더라도 왜 세상의 자녀들도 효도하는 것으로 복을 받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일반 은총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거나 알지 못하더라도 창조섭리에 따라 행하는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가 성경적 원리에 따라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어떻겠습니까?

십계명 중 처음 네 개의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 6개는 인간에 대한 것입니다. 그 여섯 가지 중에서 첫 번째 계명, 즉 제5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부모에 대한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가장 먼저이며, 가장 중요하고, 다른 모든 계명의 근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권위와 존엄성에 대해서는 히브리 언어에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히브리어로 '아바'(abba)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아바'는 첫 번째 알파벳 알렙(aleph)과 두 번째 알파벳 베트(bet)로 구성되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첫 번째 알파벳을 숫자 1로 나타내거나 가장 으뜸, 또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이처럼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알파벳 두 글자로 구성된 단어가 바로 '아버지'를 지칭하는 '아바'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아버지를 어떻게 부르는지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봤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거의 모든 나라들이 비슷한 발음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중국-baba, 인도네시아-bapak, 터키-baba, 헝가리어-apa, 알바니아-babai,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papa). 오랜 시간 민족과 나라가 나뉘고 언어가 나뉘었지만 아버지라는 '아바'의 발음은 오랜 세월 많은 나라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그저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대교 랍비들은 아버지는 가정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과 동일한 권위를 갖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유대 정통 보수주의자들은 이 확신을 유지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가정에는 아버지만 앉는 자리가 따로 구별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러한 아버지의 외형적인 권위에 중점을 두기보다 아버지를 비롯한 가정 구성원의 역할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골 3:18-21, 18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20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21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하늘의 아버지도 믿음의 자녀들의 인격을 존중하십니다. 성령께서도 무조건 우리 마음을 열고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그런 짓을 하는 것은 마귀뿐입니다. 성령께서는 오히려 문밖에서 우리가 문을 열어주기까지 기다리십니다. 억지가 아닌 진정한 마음의 회개와 돌이킴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의 말씀은 가정의 질서와 화목을 위한 시금석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중에서 어느 말씀 하나만 들어다가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8절에서 21절의 말씀은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말씀이 동시에 성취가 되어야 합니다. 예컨대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반칙입니다. 자녀를 존중하지 않고 무조건 강압적으로 순종을 요구하는 것 역시 반칙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순종하십시오. 그래야지 그 말씀이 우리의 삶에 성취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원리입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아버지로서, 아내로서, 부모로서, 그리고 자녀로서 자신의 입장이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결코 다투고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일단 멈추십시오. 그리고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가십시오. 진실함으로 그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아뢰십시오. 내 마음에 흡족함이 있을 때까지 충분히 기도하시고 그리고 다시 대화하십시오. 때론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을 통해서 분명히 하나가 되는 때가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갈등을 해소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까지 희생시키셨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부부나 자녀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한두 번 기도하고 포기하거나 문제를 내던져서야 되겠습니까?

2. 부모는 신앙의플랜터(planter)입니다

저희 아파트 지역에 요즘 거의 날마다 나무를 실은 트럭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작년에 심은 나무 중에서 죽은 것을 뽑아내고 다시 이식해서 심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의 씨앗은 부모나 자녀나 각자의 마음 밭에 뿌려집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대한 책임은 각자에게 있습니다.

겔 18:2-3, 2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3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자녀들이 믿음에 대한 책임을 부모에게 핑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의 책임은 없습니까? 부모의 역할은 플랜터(이식하는 자)입니다. 자녀들에게 소화도 시키지 못하는 말씀 몇 구절을 가지고 툭툭 던지면서 똑바로 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부모가 그 말씀대로 살아낸 것을 가지고 자녀들의 마음에 이식 시켜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대로 이식이 되지 않으면 다시 파내고, 건강하고 싱싱한 나무를 가꾼 후 다시 자녀의 마음에 이식시켜 주는 것입니다.

어디서 모종 하나 주워와서 심듯이 자녀의 마음에 그렇게 심지 마십시오. 부모의 마음이 황량한데, 그곳에서 아무리 오랫동안 나무 묘목을 심어 놓은들 죽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부모의 자신의 마음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자녀에게 이식시켜 줄 믿음의 나무를 소중하게 가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녀들이 어떤 인생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부모 자신이 자신 안에 소중하게 가꾸어두었던 것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 마음 밭에 심어도 살아날 수 있는 묘목이 되는 것입니다.

신 6:4-7, 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5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부모인 여러분이 먼저 들으십시오. 순종하십시오. 쉐마 로뎀나무교회! 로뎀나무교회 모든 성도들은 들을지어다. 듣고 순종하십시오. 그럴 때 자녀들은 비로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고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선생이 되려 하지 말고 스승이 되십시오. 신앙은 본을 보이는 것을 통하여 전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급하게 서두르지 마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마음 밭부터 먼저 개간하시고 정성스럽게 가꾸십시오. 비록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자녀들은 그러한 부모의 모습을 보며 본을 받는 것입니다. 저희 로뎀나무교회 모든 식구들이 하나님의 온전한 믿음의 가정으로써 생명나무와 같이 우뚝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참조 : '신앙유산 서약' / 21C 목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