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느헤미아 시대의 예루살렘

열려라 에바다 2022. 10. 30. 16:29

느헤미야는 아주 어려운 상황 아래서 성벽을 중수했다. 그 당시의 예루살렘 동쪽 언덕만 성벽으로 둘러싸였고 동쪽 성벽은 이전 성벽보다 비탈 위 더 높은 곳에 세워져서 성의 크기가 BC 10세기 주거지보다도 훨씬 더 작았다. 넓은 성벽 너머 지역은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에 포함되지 않았고 이전에 성의 일부였던 동쪽 사면이 포함되지 않았다. 더구나 포로기 이후의 재건 때는 과거 BC 10세기의 기념물 구조를 위한 기단이었던 ‘계단 구조’를 재사용한 것이다. 

 
느헤미야 시대의 성벽은 어느 모로 보나 작고 초라했다. 느헤미야의 재건 사업은 단 52일 만에 완성 되었다 (느 6:15). 실로암 못은 다시 성의 식수원으로 사용 되었다. 이는 아마도 바벨론 군대가 기혼 샘을 보호하는 망대들을 파괴한 이후 더 이상 기혼 샘에 접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동쪽 성벽의 중앙부는 그 전의 성벽보다 언덕의 더 놓은 곳에 지어졌다. 원래의 위치와 달라진 두 지점은 각각 ‘성굽이’라고 불렀다.(느 3:19, 24, 25)

예루살렘은 BC 586년에 바벨론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다. 유대인들은 BC 536년에 포로 생활에서 귀환하자마자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지휘 아래 먼저 제단을 복구한 뒤 성전의 기초를 놓았다. 20년 뒤인 BC 516년에 성전 재건은 완성되었다.

솔로몬 시대의 크기보다 작아졌음을 보여 주는 직간접적인 고고학적 증거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느헤미아 시대의 무수한 작은 유물들은 있으나 건물 유적은 거의 없다. 내민 망대(3:25-27)를 1867년에 찰스 워런이 잠정적으로 확인된 것뿐이다.

『ESV 성경지도』, 존 커리드?에이비드 배릿 지음, 이용중 옮김, 부흥과 개혁사 p.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