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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 수장절 추수감사절

열려라 에바다 2022. 11. 3. 10:39

초막절 수장절 추수감사절

초막절이란 속크수코트( ַ חֻסּכׁות) 스페토페기아(σκζνοπγια)인데 나뭇가지 오두막 명절이다.
초막절을 수장절이라고도 하는데 수장은 학카시프(ַהג האסיף)거두어 저장하다 추수를 마치고 저장하다. 또한 장막절이라 고도 하는데 장막 미수칸( מְשְכָּן) 유목민 이동 거주지 목자 군인 이동 거주지를 말한다.
 
감사 투다흐(תּוׁדָה) 유카리스티아(ευχαριστια)인데 호의에 대한 인정 표현 은혜에 대한 응답이다.

기념(紀念)은 자카르(זַכֶר)인데 기억하고 감사하다 이다. 지난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신 일과 떠한 여러 가지 교훈된 일을 잊지 않고 감사로 나타내는 절기인 것이다.
 
 
1. 초막절 草幕節), 장막절(帳幕節)을 지키라 명하셨다.
 
초막절과 장막절은 같은 말이다.
초막절(草幕節)은 하나님께서 유월절(逾越節)과 맥추절(麥秋節) 초막절(草幕節) 3대 절기로 지킬 것을 명하셨다.

(레 23:39)너희가 토지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 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1. 초막절 (草幕節) 장막절(帳幕節). 

(레 23:40)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장막(帳幕)이란 미쉬칸(מִשְכָּ ן)이란 말인데 유목민, 병사, 목자들의 이동 거주지를 말한다. 또한 오헬(אהְל)천막이란 말로 천막집이란 말이다. 새 번역 성경에는 장막으로 개혁 성경에는 천막으로 번역되어 있다.

미쉬칸(מִשְכָּ ן)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나타내는 말로[셰키나](하나님의 임재)라는 유대교적 용어와 관계되어 있다. 미쉬칸은, 보통 주거에는 사용되지 않는데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를 의미한다.

오헬(אהְל)은 천막을 뜻하는 말로서, 족장시대의 천막(장막 창 9:2)같이 보통 생활에 씌어 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말의 전후의 관계에서 예배의 장소로서의 장막으로 역되어 있는데(출 33:7) 이것은 천정, 또는 장막 전체가 산양, 염소 털로 짠 직물로 되어 있것을 말한다.
 
장막절을 지키라 한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받고 내려와 하나님의 성막을 지으라 명에 따라 7일 동안 하나님이 임재하실 성막 지을 재료 금, 은, 포목, 목재들을 자원하여 지었다. 그리하여 그 성막을 통하여 출애급하는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다. 이것을 기념하라 하신 것이다.

(신 8:4)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느 9:21)사십년 동안을 들에서 기르시되 결핍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사오며.
 
초막절을 지키라 한 것은 선조들의 마라를 이루기 위해 40년 동안 출애급 생활을 기념 하라 한 것이다. 그들의 고난 그리고 신앙을 기념하여 살 것을 명한 것이다.
 
초막절은 맥추절이 끝날 무렵 7월 15일에서 22일까지 지켰다. 수려한 나무 열매가지 야자나무 잎, 향나무인 도금양 나뭇잎, 미루나무 가지, 등으로 성전 뜻에, 자기들의 가옥 지붕이나 뜰, 또한 광장이나 밭, 안식일 여행 거리에 길에 오두막을 짓고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어울려 7일 동안 생활했다.
 
초막절을 기키란 명하신 뜻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임재 하여 선민들과 함께하여 인도하신 은혜와 선조들의 광야 생활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하게 된 은혜를 기억하여 그들의 선민의 평등 생활을 본 받으라는 뜻인 것이다.
 
2. 수장절(收藏節).
 


(출 23:16)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출 34:22-24)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23)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24)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수장(收藏)이란 말은 칵핫 숙코트(הָז האָסִיף)인데 거두어 저장하다 중단하고 저장하다 등의 의미이다. 곡식 거두는 것을 마치고 곳간에 저장한다는 의미이다.
수장절은 곡식 거두기를 마치고 저장하게 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맥추절(초실절)은 곡식을 거두기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라면 수장절은 곡식 거두기를 마치는 절기로서 맥추절 끝날 때 7월 15일로 22일까지 기키도록 했다. 수장절이라 한 것은 곡식을 거두어 여유롭게 하신 풍성하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라는 뜻이다.

초막을 짓고 기념하라 하신 것은 광야 생활에서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게 생존하게 하신 은혜를 기념하라는 것이며 특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가나안 족속이 차지하고 있었던 땅을 되찾아 주어 풍성한 양식을 주신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장절은 곡식을 거두어 저장할 수 있도록 여유롭게 풍성하게 하신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다.
 
3. 초막절 수장절 지키는 규례.
 


빈부귀천(貧富貴賤) 모두 함께 지키라.
(신 16:14)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위의 말씀은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말하는데 하나님의 같은 백성으로 하나임을 기억하고 또한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서로 화목을 도모할 것을 명한 것이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지키라
(신 16:15)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택한 곳이란 하나님게 제사하는 곳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이 함께 하사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심에 감사하라는 의미이다. 지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례이므로 반드시 수행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복주신대로 힘대로 지키라 했다.
(신 16:17)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복 주실 대로가 아니라 복 주신대로 감사하라고 했다. 가두어 드린대로 즉 많이 거둔자난 적게 거둔 자나 주신대로 지키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도 만찬가지이다. 송아지 드릴 형편이 된 자는 송아지를 그리고 각 형편애로 양을 비둘기를 산비둘기로 제사를 드리라 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가르친 말씀인 달란트 비유에서도 다섯 달란트 맡긴 자도 있고 두달란트 맡긴자도 있고 한달 란트 맡긴자도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의 능력대로 재능대로 맡긴 것이다.
 
4.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
 
1) 청교도(淸敎徒).
    

절기는 신약 시대까지 지켜오다가 이스라엘 망하여 유대인들은 사방에 흩어지고 기독교는 로마의 박해로 인하여 수면 아래로 잠수하게 되면서 모든 절기가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 후 기독교가 로마 국교가 되면서 급성장하고 정치와 함께 병존하면서 교회가 부를 누리게 된다. 신앙이 점점 세속화되고 형식화 되면서 공적인 감사절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청교도들에 의하여 추수감사절로 지켜지게 되었다.
 
초대 교황 그레고리 1세로 하여금 어거스틴과 신학생 40명과 함께 영국 선교사로 파송하여 영국 교회가 세워져 기독교가 영국 국교가 되었다. 그 후 종교 개혁이 일어나고 기독교는 영국에서 꽃을 피우게 되는데 영국이 점점 가톨릭 신앙으로 기울어져 갔다
 
AD 1509년에 헨리 8세가 영국의 왕위를 물려받았다.
헨리 8세는 여섯 차례나 아내를 보았으나 처음 세 아내만이 자녀를 출산했다. 왕가의 자녀들이 각기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왕가의 불행이었다.
 
헨리에게는 자식이 셋이 있었다. 첫째 딸 메리는 캐더린이 낳았다. 둘째 딸 엘리자베스의 어머니는 궁녀 출신의 앤 불린이었다. 에드워드는 제인 시모어라는 여자와의 사이에 태어난 사내 아이였다.
 
에드워드는 가장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남자였으므로 먼저 왕위를 이었다.  에드워드 6세는 헨리 8세의 6개의 신조를 철폐시키고 개신교와 가깝게 되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6세가 일찍 죽자 가톨릭의 세력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헨리 8세의 첫째 딸 메리가 AD 1553년에 즉위했다. 그녀는 어머니 캐더린이 이혼당한 날로부터 서자(庶子)로 취급되었다. 그녀는 37세에 즉위하기까지 20여 년 동안 한 맺힌 세월을 보냈다. 그녀는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원한이 깊어 기회만 있으면 영국을 다시 옛날의 로마교로 돌아가게 하려고 했다.
 
메리는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 헨리 8세가 로마 교황에 반대하여 제정한 법령을 폐지했다. AD 1554년 11월 30일 탄원서(supplication)를 제출하여 로마 교황으로부터 죄의 사면을 받았다. 메리부부는 국회의원을 거느리고 교황의 사절 앞에 무릎을 꿇고 로마 교회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그리고 개신교를 박해했다. 메리는 적어도 1,200명의 성직자들을 파면시켰다. 그녀의 짧은 통치기간 동안 감옥에서 아사(餓死)한 자 말고도 286명이 넘는 프로테스탄트가 화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수많은 개신교 사람들이 구금과 재산 강탈의 고통을 당했다.
 백성들이 그를 '피의 메리'라고 불렀던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도 잃었고 말년에는 로마 교황청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메리의 일생은 비극적으로 끝났다. 후세 사람들은 집에서 기르는 개 이름을 메리라고 지어서 불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도 모른 채 우리나라에서도 개를 '메리! 메리!'라고 부르고 있다.  

AD 1558년 메리에게 왕위를 물려받은 엘리자베스는 영국 정치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았다. 그녀는 28세에 왕위에 올라 AD 1603년까지 거의 반세기를 치세하였다.
 
그녀의 재위 시는 영국의 영광의 시대였다. 백성들은 부유하였고 세계의 상권(商權)은 영국인에게 있었다. 그리고 많은 석학들과 예술가들을 배출시켰다.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어머니가 간통죄의 혐의로 사형을 당한 후 유년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 그 와중에서도 그녀는 고전, 외국어, 신학 등 학문에 몰두했다.

 헨리 8세의 세 자녀 중에 엘리자베스가 가장 탁월했다. 그의 출생과 자기 생모의 결혼을 부인한 로마 가톨릭에 대한 그녀의 반감은 자연히 신교로 기울게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AD 1559년 4월 29일 국회에서 많은 반대 끝에 교회 수장령을 통과시켰다. 그해 5월에는 국회에서 통일령(The Act uniformity)을 가결시켰다.
 
메리의 박해를 피해 대륙으로 피신했던 많은 개신교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엘리자베스가 등극했다는 소식을 듣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엘리자베스의 정책은 의식적이고 획일적인 로마 가토릭과 비슷했다.
  대륙에서 돌아온 8백여 명의 개혁자들이 선봉이 된 이 청교도(Puritan)들은 [교회 수장령],[통일령],[기도서]를 반대했다. 그리고 이전의 42개 신조를 수정해 만든 [39개의 신조](1536)등과 같은 것으로 영국 교회의 체제를 반대하며 영국 정부를 위협했다.
 
이렇게 되어 자연히 청교도들에게 영국국교의 핍박이 가해졌다. 이에 맞서 청교도들도 가일층 투쟁에 나섰다. 엘리자베스 여왕 말년에 이르러 청교도(퓨리탄) 세력은 프로테스탄트의 4분의 3을 차지하게 되었다. 화려했던 엘리자베스 치세는 AD 1603년으로 끝이 났다. 여왕이 죽은 후에 후사가 없었다.  
영국의 왕가의 대가 끊기자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왕위에 오르게 되어 영국의 제임스 1세가 되었고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두 나라는 서로 통합이 되어 스튜어트(Stuart)왕가로 새롭게 시작되었다.
 
청교도들은 제임스 1세가 장로교를 신봉하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라는 점에서 엘리자베스와는 달리 청교도 입장을 고려해 줄 줄 믿었다. 그들은 천인의 탄원(Millenary Petition)이라는 청원서를 냈다. 그러나 제임스 1세는 청교도 운동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도리어 그들을 이정하지도 않았다.
 
성경 말씀대로 경건하게 생활하려는 청교도들과 이미 형식주의적 신앙생활에 젖은 영국의 국교도들 간에는 많은 신앙의 갈등이 있었다. 그런데 영국의 국왕은 영국의 국교도와는 다른 신앙 견해를 가진 청교도들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신앙적 자유를 허락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네덜란드로 건너갔다.
 
그러나 11년간의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은 무척 고된 것이었으며, 올바른 신앙인으로 자녀를 교육하기란 더더욱 힘이 들었다. 이에 청교도들은 신대륙으로 가기 위해 7년 동안 힘들여 일해서 번 돈으로 배를 샀다. 그러나 스피드웰이란 이름을 가진 그 배는 장기간 항해에 적합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다른 배를 구입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메이플라워이다.
 
이 배 역시 180톤의 작은 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신앙의 열정에 불타는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AD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인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것이다.
 
이 신대륙은 그 전 1492년에 서반아 사람 콜럼버스가 발견해 놓았던 땅이었다. 마침내 AD 1620년 12월 26일에 플리머스 해변에서 감사와 찬송이 울려 퍼졌다.
 
2) 추수감사(秋收感謝)

 

청교도들은 먹을 물과 양식이 부족한 가운데 행해진 65일간의 항해가 험난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꿈에 부풀게 했던 신대륙에서의 생활도 생각처럼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도착한 때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심한 식량난과 추위, 기후 차와 영양실조들의 원인으로 인해 첫 겨울에 102명 가운데 44명이나 죽었으며 그 나머지도 질병에 시달렸으므로 항상 일손 부족으로 인한 격무에 시달려야 했다. 그때 심한 고통 속에 있던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은 마음 좋은 인디언들이었다.
 
 이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청교도들에게 옥수수 등의 곡물을 가져다주었고, 농사짓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다음해인 AD 1621년 청교도들은 풍성한 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다. 그 해에 청교도들은 친절한 인디언들을 초대해 추수한 곡식과 칠면조 고기 등을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의 기쁜 첫 추수 감사절을 가졌다.
 
오늘날의 추수 감사절을 유래케 한 미국은 청교도들이 신대륙 이주 후 첫 추수 감사절 예배를 행한 신대륙의 땅에 첫발을 내디딘 1620년 1월 21일을 기념하는 뜻에서 11월 넷째 주 목요일을 추수 감사절로 정하고 있다(2. 유래 참조). 한편 영국은 전통적으로 8월 1일을 추수 감사절(Lamas)로 지키고 있다. 그리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부활절 후 40일, 즉 승천일(목요일)전 3일간을 추수 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AD 1623년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추수 감사절을 공식 절기로 선포하였으며, AD 1789년에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톤이 이를 전국적으로 지킬 것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은 추수 감사절이 왕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중단하였다. 그 뒤로 추수 감사절은 일부 주에서만 비공식적으로 지켜지게 되었고, 그 기념일도 주마다 달랐다.
 
AD 1863년 링컨 대통령이 추수 감사절을 미국의 연례적인 축일로 선포하면서부터 였다. 이는 Godey's Lady's Book의 편저자였던 사라 요세파 헤일 여사의 '추수 감사절은 미국의 건립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졌음을 기념하는 연례적인 절기로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이 당시 미국에서는 남북 전쟁이 진해되고 있었는데, 추수 감사절 하루 동안은 전쟁이 중지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음력 8월 15일, 즉 추석이 이 날에 해당하였다. 이때 사람들은 풍성한 수확을 기뻐하며 조상들을 생각하여 성묘하고, 햇곡식으로 빚은 떡과 과일을 이웃과 나누어 먹으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기독교 전래 이후 교회에서는 교단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미국인 선교사가 조선에 입국한 것을 기념하여 11월 셋째 주 일요일을 추수 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원래 미국 선교사의 조선 입국은 11월 셋째 주 수요일이었으나 그 후 요일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3) 추수 감사절의 풍습.
 
(1) 초막절 율법공부

 

초막절의 영적 의미는 이 세상은 임시적인 초막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표시였다. 회장에서는 전도서가 낭독되고, 성전에서는 성대한 희생제사가 연일 행해졌다. 또한 율법의 낭독 연간계획의 최종을 독파하는 말로서 중요시되어 [신야트 토라토-라-hr;wOT-tj'm]c(simchath- torah)](율법의 기쁨, Rejcicing of the Law)의 말로 불리웠다.
 
구약 시대에 초막절에 7일간에 성경을 읽었다. 율법을 지키는 삶을 살기 위해 필수적으로 독경을 했다. 성경을 읽으면서 네 식물의 묶음을 한손에 들고 읽었다.
 
① 에트로그

오랫동안 수 세기를 거치면서 많은 랍비들이 성경에 언급된 아름다운 과일에 대한 토론을 거친 다음, 결론적으로 에트로그라는 과일을 지목했다.   그 크기는 노랗게 익은 레몬보다 좀 더 큰 식물인데, 맛과 향이 좋은 열매다. 그래서 성경을 잘 알고 선한 행위를 하는 착한 사람을 상징한다고 한다.
 
② 버들나무 가지 (오른쪽에서 2번째)

우리나라의 수양버들가지 나무, 미르나무 가지와 거의 엇비슷하다. 이 식물은 맛도 없고 향기도 없기 때문에  악한 사람이며, 율법도 없는 사람을 비유한다고 한다.
 
③ 하다스(오른 쪽에서 세 번째)

한국에 없는 식물이지만, 혹자는 동백나무 잎 혹은 사철나무 잎과 비슷하지만, 한국의 잎보다는 작은 것이 특징이다. 물이 없는 땅에서 자라는 대부분의 식물들은 잎이 작아야 수분 증발을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식물은 향기는 있지만, 맛은 없다. 그래서 사람은 착하지만 율법은 없는 사람과 비교한다.
 
④ 루라브(오른 쪽에서 네번째 어린 종려가지 나무잎)

이것은 종려가지의 잎이 새로 돋아나는 새순인데, 이것은 향기는 없지만, 맛 나는 열매의 잎이다.   그래서 율법은 있지만, 악한 사람을 지칭한다고 한다. 유대인들이 수천 년 간 전 세계 사람들을 4가지의 종류의 사람들로 구분해서 가슴에 품고 기도해 왔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기만 하다.  그들의 생각이 얼마나 창의적인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 추수절 감사와 나눔


추수 감사절의 근본 목적은 한 해 동안 보살펴 주시고 축복해 주셔서 풍성한 수확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뜻을 표하고 또한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데 있다. 1621년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신대륙에서의 첫 수확하게 된 청교도들은 추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실질적으로 신대륙 생활에 도움을 준 이웃 인디언들을 초대해 추수한 곡물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즐거워했다.
 
이러한 풍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사람들은 추수 감사절에 새 곡물로 만든 음식과 추수 감사절에 관련된 음식을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추수 감사절과 관련하여 가장 널리 알려진 풍습으로 칠면조 고기를 먹는 것이 있다. 칠면조 고기를 먹는 풍습은 첫 추수 감사절 때 새 사냥을 갔던 사람이 칠면조를 잡아와 먹기 시작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오늘날에도 일부 지방에서는 이날 식탁에 5개의 옥수수를 올려놓는데, 이는 청교도들이 식량난으로 고생할 때 한 사람의 하루 식량으로 배당되었던 옥수수 5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각 가정의 부모는 첫 추수 감사절이 지켜지기까지 고생했던 그들 선조들의 수고를 설명해 주며 자녀들과 함께 그 옥수수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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