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대림절 첫번째 주일설교-뜻밖에 임하지 않게 하소서(눅21:25-36) 새글

열려라 에바다 2022. 11. 26. 07:17

뜻밖에 임하지 않게 하소서

누가복음 21:25-36 (권호만 목사)

 

우리 민족의 비극인 6.25 사변의 특징중에 하나는 예기치 않은 전쟁입니다.

먼저, 북한군의 침략이 예기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사변이 일어나기 전 38선 부근에서는 크고 작은 국경분쟁이 일어났고 그 때마다 우리 국군이 이겼습니다.

북한군이 고의적으로, 자신의 무장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져 준것인데, 이것도 모르고 우리가 강해서 이긴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국방장관이었던 신성모는 ‘전쟁이 일어나면 국군이 북진하여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 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전혀 예상을 못했습니다.

또한 북한군은 주일 새벽에 침략을 감행했습니다.

일요일은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장병들이 조금 늦게 일어나고 점호도 잘 하지 않습니다.

많은 장병들이 외출이나 외박을 하는 긴장이 많이 풀어지는 때입니다.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뜻밖의 침략을 받은 국군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뜻밖의 침략을 만회하는 전략도 인천상륙작전이라는 뜻밖의 작전이었습니다.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상륙작전을 하기에 전혀 좋은 곳이 못되었습니다.

연합군은 상륙작전을 개시하기 전 군산과 원산과 같은 곳을 정탐하여 적들이 그곳에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속여서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한 연합군은 이 뜻밖의 작전으로 전쟁을 완전히 반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마지막 남은 가장 중요한 예언입니다.

이 재림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예수님의 재림으로 역사는 마쳐지게 됩니다.

모든 민족이 심판을 받아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자와 영원히 지옥에 들어갈 자가 결정되는 순간입니다.

이 날보다 더 중요한 날은 없습니다.

이 중요한 날에 어떤 모습으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중요한 날을 뜻밖에 맞이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34절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덫과 같이, 뜻밖에 맞이하는 재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바꿔 이야기하면 잘 준비된 모습으로 맞이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는,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재림은 분명히 있는데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면 그 방법은 단 하나뿐입니다.

재림에 대한 준비는 항상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항상 깨어서 준비를 할 때 주님의 재림을 기쁨으로 잘 맞이할 수 있지만,

준비를 하지 못하면 뜻밖의 재림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938년 10월 30일 저녁 8시부터 9시까지 미국 뉴욕과 뉴저지 일대에 큰 혼란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CBS라디오에서 갑자기 음악 프로가 중단되고 아나운서의 다급한 음성이 흘러나왔습니다.

“지금 막 국방부가 발표한 긴급뉴스입니다.

화성의 괴물들이 침입했고 화성의 괴물들을 방어하던 국군은 전멸되고 말았습니다.

다리와 선박이 파괴되고 모든 교통이 두절 되었습니다

이것은 절대 농담이 아니고 실제 상황입니다.

시민 여러분,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마시고 지하로 대피하여 계속해서 방송을 청취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새 연속극 ‘세계전쟁’의 오프닝 멘트였는데 정규 프로그램 도중에

너무 실감나게 선전을 했기 때문에 일백만 명의 시민이 정신적 장애를 받았고,

수 만 명의 사람이 완전 탈진 상태에 빠지는 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 정도로 놀라고 마는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하는 성경말씀은 절대로 영화 광고나 방송광고가 아닙니다.

농담이 아니고 성도들의 신앙을 분발시키기 위한 처방도 아니고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다른 일은 혹 뜻밖의 일로 맞이한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재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뜻밖의 일로 맞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역사의 심판자로 이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을 뜻밖에 맞이한다고 하면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얼마나 후회스럽겠습니까?

준비된 마음으로, 준비된 신앙으로, 기쁨과 감사와 즐거움으로 신랑 되신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의 재림을 뜻밖의 일이 아닌 준비된 신앙으로, 준비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시대의 징조를 잘 살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분명 언제인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심지어 당사자인 예수님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이 알 수 있는 철저한 비밀에 속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재림의 때에 대한 징조는 알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기에 그 징조를 잘 살펴야 하고 그럴 때 뜻밖에 임하지 않게 될 줄 압니다.

우리가 갑자기 찾아오는 대표적인 병으로 암을 꼽습니다만 사실은 암도 오기 전에 이미 그 증세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것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 그냥 무조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갑자기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재림의 징조를 보여주신 다음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재림의 때가 언제인지를 알기 보다는 재림의 징조를 깨달아 아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고 하셨습니다.(29절)

무화과나무의 잎이 나오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알게 됩니다.

왜 싹이 났는지, 언제 여름이 올 것인지 별다른 조사가 필요 없습니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나뭇잎이 나오면 여름이 가까워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재림의 징조도 경건한 사람이라면 사실 상식으로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징조들을 보면, 전쟁이 일어나고 참된 경건이 사라지고 사랑이 식어집니다.

처처에 기근이 있고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 거짓 선지자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납니다.

이러한 징조들은 오늘날 그대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모든 것들을 재림의 징조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날이 임박하고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모두 ‘말세다.’ 하는 말을 합니다.

지금이 말세라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기억하시고 그 날이 뜻밖에 임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서는 안 됩니다.

 

34절에 보면,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에 꼭 언급하시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노아시대의 홍수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너무 악해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홍수를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홍수가 나기 120년 전에 노아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방주를 짓도록 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구원을 받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준비하지를 못했고 노아의 가족 외에는 모두가 홍수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일을 설명하면서 성경은 그 당시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8-39).

홍수가 나서 멸망받기 까지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갑자기 임한 것이 아닌데 왜 깨닫지 못했습니까?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 너무 몰두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에 정신을 팔려서 이 중요한 일을 깨닫지 못하고 멸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은 나쁜 일이 아니고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일입니다.

문제는 이런 것들에 너무 집중하고 정신이 팔려서 가장 중요한 일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집중하는 일이 나쁜 일이 아니고 쓸모가 없는 일도 아닐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일 수 있고 꼭 필요한 것일 수 있고 그러기에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돈도 벌어야 하고 건강을 위해 운동도 하고 등산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에 빠져서 더 중요한,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고 주님의 재림이 언제인지도 잊어버리는 그런 안타까운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이 둔하여져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나에게 바치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100세에 얻은 아들, 그 귀하고 그 사랑스러운 아들에게 빠져서 그 아들을 준 나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그 아들보다도 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독자를 바치라는 시험을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사는 재미에 빠져서, 세상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여 뜻밖의 재림이 아니라 기쁨으로 맞이하는 재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36절에 보면,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고 했습니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 여기에서 깨어 있다는 말은 ‘졸음을 쫓아버린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 졸지 말고 깨어 있는 영적 파수꾼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에 유혹을 받는다든지,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여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도록 해야겠지만 나아가 적극적으로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주님 앞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모이기를 페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올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일 때 믿음이 생기고, 모일 때 서로 격려를 하고 격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모이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이는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잘 모여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격려하는 것이 재림을 잘 준비하는 삶입니다.

무디 목사님이 한 사람을 찾아가 교회에 나올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교회에 안 나가도 신앙생활을 잘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무디 목사님이 말없이 벽난로에서 이글이글 타고 있는 석탄 덩어리를 집게로 꺼내 따로 따로 땅에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렇게 잘 타던 석탄 덩어리는 불이 점점 약해지더니 마침내 시커먼 석탄 덩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열심 있고 신앙이 좋아도 교회에서 멀어지면 이렇게 됩니다.

교회에 모이지 않고 혼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모여야 하고, 아무리 바빠도 모여야 하고, 돈 버는 일이 중요해도 모여야 합니다.

추워도 모여야 하고 더워도 모여야 하고 기분이 나빠도, 기분이 좋아도 모여야 합니다.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할 때 말씀과 기도와 사랑을 통해서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주님의 재림을 잘 준비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기도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깨어 있는 삶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으로 기도하는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에 대한 대표적인 권면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쉬는 것은 죄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면서 나는 깨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깨어있는 자는 기도에 힘쓰는 자입니다. 기도에 힘쓰는 자가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 고 말씀했습니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그런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 주님을 바라볼 수 있고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영적으로 둔하여지지 않고 그럼으로 주님께서 재림하실 징조를 알게 되고 재림을 잘 준비하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부중지어(釜中之魚)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중국 한나라 때 백성을 괴롭히는 흉악한 도적떼들이 있었습니다.

피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고 사람들이 두려워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이때 광능군 태수가 된 장강이 도적떼들의 산채에 들어가서 두목을 만나 설득하여 더 이상 도적질을 하지 않도록 설득을 했습니다.

태수의 말에 감동을 받은 두목은 자기들의 삶을 회개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저희들은 떼를 지어 도적질하므로 목숨을 이어 왔지만

그것은 마치 물고기가 솥 안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아 오래 가지 못할 것을 압니다.”

장차 삶아져서 먹힐 것을 모르고 솥 안에서 헤엄치며 놀고 있는 물고기와 같았다는 고백이 바로 부중지어입니다.

여러분, 얼마 있지 않아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도 모르고 이 세상이 전부인양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이 세상에서 조금 잘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나라 천국이 있습니다.

그 나라를 주시기 위하여 주님은 언젠가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 주님의 재림이 뜻밖의 사건으로 임하지 않아야 복 있는 사람입니다.

기쁨으로 준비된 마음으로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될 때 진정 복 있는 사람입니다.

잘 준비하여 언제 주님이 오시더라도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주님을 환영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2022.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