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지금까지살아온나의글

열려라 에바다 2023. 1. 15. 16:28

비행복추천 0조회 4323.01.14 13:49댓글

 

...........내가 살아온 길


지금부터 태어나면서 현재 2021, 저 박세우의 살아온 길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다.
저는 625전쟁이 끝나갈 1952 6월 달 몹시 가난한 농촌가정에서 태어났답니다. 돌 되기 석 달쯤 고열로 몹시 아파하고 있는 저를 약방에 데려가서 주사를 맞히고 약을 먹이고 하니 잘 놀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지금 소아마비랍니다. 저는 33녀 중 2남으로 누님, 형님, 그리고 저, 아래로 동생 세 명의 형제로 자랐습니다. 그때만 해도 얼마나 가난했는지 할아버지 밥, 아버지 밥을 푸고 나면 어머니는 항상 나물과 물로 배를 채우곤 했답니다. 잘 자라도 여섯 살까지 일어서지를 못했던 저는 6살까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제가 9살 때 초등학교에 입학하러 누나, 형을 따라서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가 얼마나 먼 거리인지 산을 넘고 골을 지나 지금 생각해보니 4~5Km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 가니 누나, 형은 교실로 가고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놀리고 돌멩이질을 하는지 울고만 있다가 집에 와서 그 후로는 학교에 가지 않고 일을 했답니다. 할아버지께서 멍이라고 지금의 망을 새끼로 만들어 주셨답니다. 그것을 메고 산으로 들로 나무도 하고 소 먹일 풀을 베러 다니며 집안일을 하고 또 밭을 매는 일도 하며, 한 해 두 해 지나 열두살 때, 아버지께서 지게를 만들어 주셔서 지게를 지고는 들로 산으로 가서 일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들일을 하시고 저는 소 먹일 풀도 베고 나무도 하며 집안일과 소 키우는 일을 거의 다 했답니다.
한 해, 두 해 지나서 동네 아이들 노는 데에 가서 놀다가 할아버지께 얼마나 맞았는지 지게 작대기가 부러지도록 맞았답니다. 열일곱살 때, 많이 아파서 병원에 어머니와 갔습니다. 의사진찰 결과 어려서 소아마비에 걸렸다는 의사의 말씀에 어머니는 처음 알았고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냐고 물으니 그 때 돈 십오만원이 있으면 고칠 수 있다고 했답니다. 고치고 싶었지만 돈이 있어야지요..그 뒤로 저는 가끔씩 다리, 허리가 아팠고 잘 자라서 학교에 가는 친구가 부럽다는 생각을했습니다. 그 때, 저도 글을 배워보겠다 생각하며 책을 사려고 어머니께 돈을 달라고 했지만 없다며 거절당하고 누나가 하는 것을 보고 기역, 니은, 글자가 어떻게 되는지 한 자, 두 자 배우려고 노력했답니다. 그러던 중 먼 친척 할아버지께서 가르치는 서당에 아버지께서 보내주셔서 아침에 가서 천자문 여덟 글자씩 한문을 배우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 배운 것을 보았습니다. 그다음 아침에 가서 배운 것을 외워야지 못 외우면 긴 담뱃대로 머리를 두 대씩 맞아야 했습니다. 저도 몇 번 맞은 뒤 밤에 다 외울 때까지 열심히 외우고 자곤 했습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여러 명의 형, 동네 친구들이 한문을 배우러 서당에 왔답니다. 저는 천자문을, 친구들은 동몽선습을 했습니다. 친구들은 자주 맞았지만 저는 칭찬해주었답니다. 한자를 가르치면 두자 알 만큼 안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그때는 책 한 권을 다 배우면 떡을 해서 서당에 가져다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몇 년을 천자문 배우고 동몽선습, 명심보감을 조금 배우다 서당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 모두 다 그만두고 집안 일과 바깥 일만하며 커갔습니다.
1973년 제가 스무살 때, 할아버지께서 하늘나라로 가시기까지 칠년 전 시장에 가셨다가 다치셔서 움직이지도 못하신 할아버지 대소변을 다 받아내면서 집안일을 했답니다. 그 이후에도 가끔 무릎이 아파 침을 잘 놓는다는 소문이 있으면 아주 깊은 산골짜기까지 어머님과 참 많이도 다녔답니다. 침도 참 많이 맞고 맞았지만 소용없고 지금까지 아픈 이유가 있답니다. 나무하러 형들을 따라서 삼사십리까지 가서 아침에 가면 오후 네시 넘어야 집에 오니 말입니다. 한 두 시간이라도 놀다 오면 두들겨 맞고 바깥에 쫒겨나며 맞기도 많이 맞으며 컷습니다. 죽으려고 나무하러 가서 낫으로 목을 베려고도 했고 철길에서도 뛰어들려고 하는 순간 구해주었고 한번은 집에서 부모님 말다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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