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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예배와 천상예배(1).

열려라 에바다 2023. 5. 25. 11:53
지상예배와 천상예배(1).
 

천향추천 0조회 1023.05.25 07:34댓글 

 
 
모세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간과 세상을 규정한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따라 인간의 본질과 삶의 질서를 설명한다는 말이다.
성전제도를 생각해 보라.
예루살렘 성전은 지성소를 중심으로 성소와 성소 밖 세상으로 구분된다.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이며 하늘이다.
성소는 제사장만이 들어와서 제사하는 처소이다.
성전 밖은 백성들이 기도하는 처소이다.
이방 땅은 이방인이 거주하는 흑암이 드리워진 땅이다.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드리워져 있다.
하나님의 거처인 하늘과 인간의 처소인 성소 사이에 죄의 휘장이 드리워 있다.
이는 온 세상이 죄 아래에 있음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옛 인류 가운데서 구별된 제사장 나라이다.
이스라엘 가운데서 구별된 자가 제사장이다.
제사장 가운데서 선택된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다.
백성들은 성전 밖에서 기도하며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이것은 옛 백성의 삶의 질서가 어떠한지를 나타낸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대제사장, 제사장, 이스라엘, 이방인의 순서로 삶의 질서가 다름을 말한다.
이러한 차등은 구약에서 여호와의 통치질서이다.
여호와를 중심으로 날과 땅에도 차등이 있다.
이는 죄로 인한 휘장 때문이다.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드리운 휘장의 장벽 때문이다.
따라서 옛 백성들은 휘장 밖 죄 아래에 세워진 육신에 속한 자들이다.
노아나 아브라함 모세와 이스라엘도 육신에 속한 자라는 말이다.
따라서 율법은 육신만을 상관하는 육체의 예법이다(히9:10).
이는 구약백성들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옛 백성의 겉만을 물과 피로 씻으셔서 함께 하셨다.


사도들은 율법 아래에 세워진 유대인들이다.
그들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아 율법을 따라 여호와를 섬긴 자들이다.
그들은 부모와 율법 선생들로부터 율법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모세의 언어와 모세가 말하는 개념에 익숙하다.
모세가 하나님을 중심적으로 설명한 인간과 세상의 의미에 대하여 박식하다.
따라서 사도들이 말하는 하늘과 땅이라는 의미,
아래로부터 나고 위로부터 났다는 말의 의미,
하늘에 속하고 땅에 속하였다는 뜻과 개념, 육과 육신, 영에 속하였다는 의미들을 잘 안다.
이는 하나님 중심적이며 구원 역사적으로 정의한 개념이라는 것을 안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신구약 백성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따라 인간의 본질과 정체성이 달라진다.
인간의 본질과 정체성이 다르면 삶의 질서가 달라진다.
이는 하나님을 아는 신지식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따라서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의 본질과 방식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말하는 영과 육은 헬라철학이 말하는 인간 중심적인 의미가 아니다.
모세나 사도들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간의 본질과 정체성, 삶에 대하여 말한다.
이것이 신구약 성경에서 사용된 언어와 개념이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역사적인 구원이다.
신구약 백성의 삶의 현장에서 주어지는 구원이다.
신구약에서의 구원의 질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에 따라 하나님의 사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신구약의 계시 내용과 질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세상에 사심을 강조한다.
신구약 백성의 삶의 현장에서 동행하는 하나님을 강조한다.
첫 창조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을 향하여 나아가는 시간 속에서,
각 시점의 역사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하나님 사역을 말한다.
따라서 여호와의 사역은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일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역은 종말에 보내신 아들을 통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진행된다.
여호와의 옛 경륜은 땅에 대한 일이다.
이는 죄 아래에서 시행된 여호와의 뜻과 경륜이다.
따라서 아무리 율법을 온전히 지키더라도 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다.
이는 율법이 주지 못하는 것을 주기 위함이다.
따라서 예수의 오심에서 옛 경륜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 시행된다.
율법과는 다른 온전한 구원과 생명의 일이 시행된다.
그것이 예수의 가르침과 행하신 사역이다.
공생애 사역에서 나타난 하늘의 질서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보편적인 일로 확정되어서 시행된다.
이처럼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은 모세의 율법과 충돌한다.
이는 모세의 율법은 땅에 대한 일을 말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늘의 일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제자들과 따르는 무리는 율법이 주지 못하는 구원과 생명을 누린다.
이것이 율법과 복음의 불연속성이다.
이는 신구약 중보자의 차이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삶의 현장에서 주어진 구원이다.
아담 시대 백성들은 아담의 하나님을 아는 구원을 누리게 된다.
이는 여호와께서는 아담을 통해서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노아 시대 사람들은 노아의 하나님 여호와를 아는 생명을 누린다.
이는 여호와께서는 노아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모세 시대 사람들은 모세의 하나님을 믿고 섬겼다.
모세를 믿고 그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여호와를 섬기는 일이다.
신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긴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며 생명이다.
이러한 구원이 주어지는 것은 여호와께서는 각 시대 중보자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중보자에게 자신의 영을 주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약의 중보자는 사람이다.
따라서 구약에서 주어진 여호와의 말씀은 옛 백성의 완악한 수준에 맞춰진 것이다.
구약에서의 제사는 물로 씻고 피를 뿌리도록 요구된다.
구약에서는 물로 씻고 피를 뿌리지 않고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다.
아무리 물로 씻고 피를 뿌리더라도 그들이 나아갈 수 있는 한계는 휘장 밖이다.
이는 율법이 죄 아래에서 시행된 여호와의 뜻과 경륜이기 때문이다.


옛 백성들은 휘장 밖 세상에 세워진 자들이다.
그들은 휘장 안 하늘에 세워진 자들이 아니다.
따라서 옛 백성이 드린 제사는 휘장 밖 죄 아래에서 드린 예배이다.
아담이나 노아, 아브라함과 모세가 드린 제사는 세상에서 드린 제사이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세상에 속한 성소라고 말한다(히9:1).
구약 중보자들이 드린 제사는 그들에게 속한 백성들도 참여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세상 속에 사신다.
옛 백성이 살아가는 세상의 기본질서,
곧 시간과 공간의 질서 가운데 들어오셔서 사신다.
따라서 구약의 제사는 세상에 속한 성소에 계시는 하나님께 땅에 속한 백성이 드리는 제사이다.
여호와께서는 세상에 사신다.
이는 땅에 대한 일을 하늘의 질서로 온전케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가나안에 나라가 세워지는 순간을 바라보고,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의 발걸음에 맞춰서 옛 세상을 경영하신다.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과 함께 옛 시대를 경영하신 것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으로 오신다(갈4:4).
사람이 되신 하나님 예수께서는 죽음의 순간을 향하여 한 걸음씩 걸으신다.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율법이 주지 못하는 것을 주기 위함이다.
이처럼 옛 백성들은 그들의 중보자 말에 순종하여 여호와를 섬기는 삶을 살았다.
노아나 아브라함 시대에는 노아와 아브라함의 말을 믿는 것이 여호와를 믿는 일이다.
이는 여호와께서는 노아와 아브라함을 통해서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노아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보내신다.
이는 율법이 주지 못하는 것을 주기 위함이다.
율법은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
아무리 율법을 온전히 지키더라도 율법으로는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
그런데 개혁신학(칼빈주의 신학, 장로교 신학)은
예수께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셔서 얻은 의를 믿는 자에게 전가하신다고 말한다.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얻은 의는 율법의 의일 뿐이다.
율법의 의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 수 없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 아래의 삶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말한다(빌3:7-9).
또 율법은 그 아래에 있는 자를 온전케 하지 못한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로 세우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 못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신약시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가?
반드시 하나님의 그 아들을 통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는 신약시대의 중보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말은 아버지의 음성이며
그리스도의 사역은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행하신 일이다.
종말에는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말을 듣지 않고 모세의 말에 순종하는가?
왜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서 폐지한 십일조를 다시 살려서 하나님을 대적하는가?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일임을 알지 못하는가?
율법은 모세 언약의 내용이다.
모세 언약의 내용은 언약 당사자인 이스라엘을 구속한다.
이는 언약 당사자인 이스라엘이 이행해야 하는 내용이다.
그대는 모세에게 속하였는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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