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말씀

감사 기도로 메뚜기 다 죽은 기적!

열려라 에바다 2023. 6. 24. 08:05

감사 기도로 메뚜기 다 죽은 기적!    

 

*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지름 길

의학공부를 하는 한 미국의 여대생이 있었다. 대학 3학년 때 우연히 마약과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피곤할 때 마다 마약을 복용하곤 했는데 나중엔 그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인턴 과정,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서 의사로 일하몀서도 매일 마약을 복용했다. 그것을 복용하지 않으면 환자를 진료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중에 그 사실이 직장 동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할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마약을 살 수 없는 가난뱅이가 되어버리자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로 마약을 끊어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다했지만 허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비오는 날 저녁에 자살을 결심하고 비를 잔뜩 맞으면서 뚝 옆의 저수지로 나아갔다. 뚝 위에 올라서서 여태껏 한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 오! 하나님,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를 구해 주시옵소서"
비를 맞으면서 아주 간절하게 뜨겁게 기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위가 뜨거워지면서 전신에 그 뜨거움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을 누군가가 양 손으로 거두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그녀는 날듯이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살할려는 마음을 돌이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그 후로 깨끗이 마약을 끊어버렸고 지금은 마약과 알콜 중독으로 삶을 포기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옛것을 완전히 벗어 버리는 일은 내 의지로 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만이 가능하다. 그 도우심을 얻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불가능이 없는 삶(잠재력)


미국의“룩”이라는 잡지에 실려서 화제가 되었던 어떤 실화를 소개합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의 일입니다.
미국 병사 네 명이 차를 타고 정글 속을 달렸읍니다. 길이 너무 좁아서 고전을 하며 전진을 하는데 갑자기 베트콩의 기습을 받았읍니다. 병사들은 황급히 정글에 몸을 숨겼읍니다. 그러다가 잠깐 사격이 주춤할 사이에 나와보니 너무나 기가 막혔읍니다.
전진을 하자니 생명이 위험하고 차를 돌리자니 길이 좁아 돌릴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것입니다. 이때 그들이 어떻게 했는지 압니까. 병사 네 사람이 차의 바퀴 하나씩을 붙잡고 차를 번쩍 들어올렸읍니다. 그리고 차를 가던 길의 반대 방향으로 돌린 다음 그 차를 타고 급히 도망을 쳤읍니다.
그리하여 부대에 돌아와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들이 시험삼아 다시 차를 들어 보려하니 꼽짝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대에서는 꼽짝도 않는 차를 어떻게 정글에서는 번쩍 들어올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발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읍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는 포인트가 다릅니다.
새로운 자아가 되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불가능이 없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전능의 원천이기 때문에 불가능히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을 믿는 믿음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불가능이 없다고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불가능이 없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사실“불가능”이란 말만큼 신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 없읍니다. 그것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본래의 삶은 불가능이 없는 삶입니다.




생명의 능력


살아 있는 물고기를 잡아다가 회를 쳐서 먹어보면 바닷물이 짠데도 불구하고 짠 맛이 전혀 없다. 오히려 소금 물속에서 이렇게 다는 맛이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다
그런데 죽은 물고기는 소금물에 넣으면 그만 짠 맛이 되고 만다. 다 같은 소금물인데 결과는 이렇게 다른 것이다.
이것이 생명의 신비가 아니겠는가?
물고기는 살아 있는 동안 짠 물만 먹고 살지만 하나님게서 물고기의 생명속에 바닷물을 잘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신 것이다.
생명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속에 있다. 물고기 안에서 알이 부화하여 거기에서 생명이 자랄 때 이미 그 알 속에는 생명의 구조와 기능과 모든 원칙이 들어있는 것이다




용서와 사랑


사랑하는 힘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내안에 계 신 보혜사 성령께서 사랑하는 힘을 주셔야만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지 아니하면 원수를 용서해 주거나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몸 찢기고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의 그 용서와 사랑을 생각하며,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럴 때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자격이 있고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는 이런 일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책임문제


주님은 충만하신 분이시다. 주님은 충만하신 분이시므로 어느 누구에게도 부족이 없으신 분이시다. 우리에게 부족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에게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의 그릇이 작기 때문이다. 주님이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 주신 은혜를 간직할 그릇이 없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다. 주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신 분이시다. 믿음의 그릇이 큰 사람은 온통 그의 전 생애가 주님으로 충만했다. 그러나 믿음의 그릇이 작은 사람은 늘 영적 결핍에 시달린다. 은혜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은혜를 받을 그릇이 없기 때문이다.


씨 뿌리는 비유를 보라. 어떤 사람은 100배의 결실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아무 결실이 없다. 문제는 씨앗이 안 뿌려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씨앗을 키울 밭이 잘못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은혜 받지 못하는 것이나 은혜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다 자신의 책임일 뿐이다. 누가 복음에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있는데 부자가 음부에 떨어져서 불꽃 가운데서 아브라함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부자: 나사로를 살려 보내서 남은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해 주셔요.
아브라함: 그들에게 선지자가 있다.
부자: 죽은 자가 살아 가면 믿을 것이다.
아브라함: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 살아가도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은혜 받지 못하는 이유가 전하는 자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주님은 은혜 받지 못하는 이유가 전하는 자에게 보다는 받는 자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하셨다. 누가 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받아 드리는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기독교의 본질과 신앙을 정리하는 중대한 싸움이다. 만일 유대인들이 전하는 자에 의해서 은혜 받는 것이 결정된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전하셔도 은혜를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아니한 사람은 은혜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소돔성의 사람들은 천사가 직접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고 죽이려고 했고 니느웨는 3일을 전해야 될 큰 성읍에 요나가 대충 하루만 전하여 모두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던 것이다. 은혜 받지 못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 구원에 대한 책임도 바로 자신에게 있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 만큼 밖에 받아 드리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다 주실 수 있는 분이지만 믿음의 분량 만큼 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네 믿음대로 될찌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기적(기적)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성도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문제에 부닥칩니다. 그 문제는 인간의 힘 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여 살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인도하 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오늘날도 역사합니다. 기적은 문제의 해답이 됩니다. 문제에 부닥쳤을 때 믿지 않는 사람은 절망하지만`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믿기 때문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 께서는 예비하신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위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능력으로 붙드시기 때문에 우리는 원수의 위협을 물리칠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 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 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 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 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4:7- 10)


이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인간의 능력에 의지해 살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해 삽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 그 보배를 얻었으므로 우겨쌈을 당해도 거꾸러 뜨림을 당 해도 핍박을 당해도 능히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내 벗


목사님은 이웃집 젊은이의 방종한 품행이 몹시 거슬렸다. 그래도 누군가 꾸짖어 주려니 하며 한참 두고보기만 했으나, 도저히 더는 못 보아 줄 지경에 이르자, 그 젊은이를 찾아가 타일렀다. 그러나 젊은이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도리어 은근히 경고하는 것이었다. 자기는 높은 고위층 사람과 아주 친하니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그럼 내가 그 고위층에게 찾아가 자네를 고발하겠네."
"그렇다고 그 분이 나를 달리 생각하실 줄 아쇼?"
"그럼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아뢰겠다."
"그 분이야 날 나무라시기에는 너무 너그러우시죠."
목사님은 이 안하무인 무뢰한의 빈정거림에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어, 에라 나도 모르겠다며 내버려 두었다. 얼마 뒤에는 공론이 들끓을 지경으로 젊은이의 평판이 나빠졌다. 목사님은 다시 의무감을 느껴, 단단히 한번 나무라기로 마음먹고 젊은이의 집을 향해 걸어가는데...문득 한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이었다.
"건드리지 말아라. 내가 아끼는 벗이니라."
그만 얼떨떨해진 목사님은 젊은이의 집에 이르러서도 할 말을 잊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나무라러 왔는데...오는 길에 한 목소리가 들리더군. 당신이 아끼시는 벗을 건드리지 말라고."
그 문제아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 분이 날 벗이라고 부르시더라고요?"
그러나 이미 목사님은 그 집을 나온 뒤였다. 몇해 뒤, 목사님은 영등포역 광장 앞을 지나다 우연히 그 젊은이를 만났다. 그 목소리 이야기에 얼마나 감격했던지, 그는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뜨내기 거지가 되었더란다.  "...그리고 벗을 찾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죽었다.
하나님이 죄인의 벗이라? 위험한 말이기도 하나 그만큼 보람찬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을 나 자신에게 적용해 보았다: "하나님은 나를 책망하기에는 너무나 자비로우시다." 그리고 나는 불현듯 기쁜 소식을, 복음을 들었다.-내 일생에 처음으로! (드멜로)




* 다음 호에 계속


안락의자에 앉아서 애독하는 잡지를 펼쳐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다고 가정합시다. 한창 흥미가 절정에 달해 있는데, 그만 “다음 호에 계속”이란 문구가 나오면 얼마나 안타깝고 실망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다음 호에 계속”이란 말이 큰 기쁨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그 예입니다.
스펄젼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님의 자비와 사랑이 계속되고, 또 계속된다는 것을 기억하면 마음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오랜 순례의 생활을 통해 경험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은 이제 거의 다 쓰여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는 끝없이 엮어진 줄과 같고, 끝을 모르는 강물과 같고, 끝없이 돌아가는 바퀴와 같고, 영원한 별빛과 같다. 옛날 베들레헴 아기 예수에게 비쳤던 별이 그때로 없어진 것이 아니고, 미래에 언젠가는 우리를 주님께 인도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책으로 기록한다면, 그것은 속편이 끝없이 나오는 만년 연재물에 해당되는 것이다.”
크리스챤 생활이 재미있는 것은, 날이 갈수록 새로운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과거에 경험했습니까? 다음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구원의 축복을 경험했습니까? 다음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도 다음에 계속될 것입니다.
또 큰 위로가 되는 것은, 심령에 고통을 주는 것들은 이번 호에서 끝나고, 다음 호에는 계속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찬송 시인이 쓴 대로 “점차로 영광만이”남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의 광휘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영원이 있습니다. 하늘의 광채들은 “다음 호에 계속”될 것입니다


감사기도로 메뚜기 다 죽은 기적!


미국 역사에 기적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미네소타 주의 이야기이다. 1874년부터 77년까지 3년에 걸친 가뭄과 심한 메뚜기 떼로 농작물은 전멸하고 대경제공황에 빠졌다.
1877년 4월 27일 주지사 필스베리씨는 모든 주민에게 감사기도의 날을 선포하였다. 농작물이 전멸하였으나 몸이 살아있고 앞으로도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자는 것이다. 미네소타 주민 전체의 감사기도가 하늘을 덮었다.  정말 믿기 어려운 사실은 들판을 덮었던 메뚜기 떼가 며칠 사이에 전부 죽은 것이다.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설명을 시도하나 기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기도가 범죄율 낮춘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1993년 454명이 살해됨으로써 미국의 살해수도라고 불린 적이 있다. 그러나 6년후 워싱턴의 범죄율은 폭력범죄율이 60%까지 떨어졌고 1993년 454명이던 피살자수가 232명으로 줄었다. 강도는 70%나 감소되었고 강간도 40%나 줄었다.
이는 미국에서 일어난 기도운동 ‘미국을 위한 중보자들’과 전세계의 지속적인 중보기도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중보기도 그룹이 “사기사건이 은폐되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자 시장인 마리온 베리가 약물단속에 적발돼 구속되는 일이 일어났으며 정부와 도시지도자들은 위해 기도하는 이 기도운동은 1997년 연중무휴로 지속되었다.
6천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매주 최근의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기도하였고 이들은 전화번호부를 이용하여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기도명단에 올려서 기도하였다. 그리고 몇몇 국회의 크리스천 의원들도 매주 기도모임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과테말라 알모롱가라는 인구 2만명의 작은 도시에서는 돌세례를 퍼부었던 깡패들이 모두가 변화되어 지역 목사들이 되었고 마을사람 90%가 복음화되었으며, 4개의 감옥처는 폐쇄되어 이젠 관청업무나 결혼예식장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안개를 걷어주신 하나님


한 증기선이 뉴펀들랜드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 날은 수요일이었는데 바다에는 안개가 많이 끼어 배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 선객이 선장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선장님, 저는 토요일 오후까지 퀘벡에 도착해야 합니다. 그 때까지 그 곳에 배가 도착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저는 평생 동안 약속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습니다. 정말 불가능한가요?"
"저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지금으로서는 도리가 없군요"
"그러면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선장은 이 같은 상황에서 난데없이 기도를 하자는 이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보세요! 지금 안개가 얼마나 짙은 지 안 보이십니까?"
그러나 선객은 "내 눈은 안개가 얼마나 짙은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생을 움직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고 있소"라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뜻에 합당하다면 이 안개를 5분 내에 걷어주십시오. 하나님이 저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퀘백에서의 약속을 아시지 않습니까? 바로 돌아오는 토요일입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가 기도를 마치자마자 안개가 걷히는 것이 아닙니까? 기도의 주인공은 바로 조지 뮬러였습니다. 그는 교회의 집회를 위해 퀘백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십니다.






기상을 주관한 죠지뮬러의 기도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뮬러는 애쉴리 다운이라는 큰 고아원을 세워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갑자기 고아원의 보일러가 고장났습니다. 보일러를 고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려야 하기 때문에 고아원은 온통 비상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은 조지 뮬러에게 뛰어와서 "목사님, 목사님! 큰일 났습니다.영아들이 있는 건물에도 보일러가 고장나서 아이들이 다 얼어 죽게 되었습니다"하며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외침을 뒤로 하고 조지 뮬러는 일어나 성경책을 옆구리에 낀 채 교회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밤을 새워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했습니다. "날씨를 주장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어린아이들은 다 하나님이 제게 맡겨주신 생명들입니다. 이 어린 생명들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저는 총무일 뿐입니다. 하나님, 시간과 때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일주일 동안 봄 날씨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조지 뮬러가 부르짖어 간구하는 동안 갑자기 동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영국 전체가 봄 날씨로 바뀌었습니다. 그 때는 지금과 같은 기상 이변도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조지 뮬러의 기도를 들으시고 북풍을 멈추고 동남풍을 불게 하셔서 영국 전체가 따뜻한 온실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보일러를 고친 다음 정상적으로 가동하자 영국에는 다시 한겨울의 세찬 바람이 쌩쌩 불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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