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말씀

웃음의 효과

열려라 에바다 2023. 7. 10. 12:25

웃음의 효과    

웃음의 효과
사람이 마음의 기쁨으로 인해 웃으며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1960-70년대 미국의 가장 인기가 있는 저술가이자 인생 컨설던트였던 데일 카네기가
"웃음 예찬"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웃음은 별로 소비되는 것은 없으나, 건설하는 것은 많으며,
주는 사람에게는 해롭지 않으나 받는 사람에게는 넘치고
짧은 인생으로부터 생겨나서 그 기억은 길이 남으며
웃음이 없이 참으로 부자가 된 사람도 없고, 웃음을 가지고 정말 가난한 사람도 없다.
웃음은 가정에 행복을 더하며,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며, 친구 사이를 더욱 가깝게 하고
피곤한 자에게 휴식이 되며, 실망한 자에게는 소망도 되고, 우는 자에게는 위로가 되고
인간의 모든 독을 제거하는 해독제이다.
그런데 웃음은 살수도 없고, 빌릴 수도 없고, 도둑질할 수도 없는 것이다


사탄의 속삭임
사탄이 노리는 일곱 가지 덫. 그것은 의외로 아주 작은 것들입니다.
1. 누구나 하는 것인데, 나라고 죄가 되겠는가
2. 아직 젊으니까 신앙은 이 다음 나이 들어서 해도 늦지 않아.
3. 아주 작은 것이니까 양심에 가책 될 것 없어.
4. 아무도 보지 않으니까 괜찮아.
6. 그동안 너무 힘들게 살았으니까 주어지는 보상이야.
7. 나에게 주어지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지금도 사탄은 이렇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변화
마르틴 루터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근본적인 죄의 문제로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결하게 충성하려는 그에게 끊임없이 찾아와 그의 정결을 깨뜨리며 정욕을 좇게 만드는 죄의 도전 앞에서
그는 기도도 많이 했고 말씀 묵상 연구도 많이 했으며 저 유명한 28계단 성당의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는 것도 시도했습니다.
그런 영적인 해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로마서를 연구하다가 하나님의 빛을 발견하였습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인간을 살피시고 인간의 죄악을 미워하며 불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차라리 그 모든 심판을 자신의 외아들 예수님께 내리시고
그 대신 심판받아야 할 인간을 용서하시고 자녀로 삼으시려는 놀라운 결단을 내리시고
그 일을 행하셨음을 깨달아 알았을 때에 루터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짓말 챔피언
영국에서 거짓말 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날 최고상을 받은 챔피언의 거짓말은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다"였습니다.
1997년ᄂ 4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사람이 하루에 몇 번이나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갈까를 조사했답니다.
조사 결과 사람은 하루에 8분에 한 번꼴로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20명의 몬에 소형 마이크를 부착해 조사했는데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약속시간 늦었을 때 '차가 막혀서'였고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는 직업으로 점원, 정치인, 언론인, 변호사 세일즈맨 심리학자 순으로 나타났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
9월 11일 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쎈터 자리에는 지금도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은 것입니다( We will never forget)라는 큰 현수막을 걸어놓았습니다.
이를 갈면서 복수를 벼르는 문구가 아니라 용서와 화해의 문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류살렘에는 독일 나치에 의해 희생된 600만 유대인을 추모하는 기년관이 있습니다.
그곳의 이름을 '야드바심'이라고 합니다.
야드바심이란 기억이란 말입니다. 그들이 독일 사람들에게 당한 것을 절대로 잊지 말자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잊을 것과 잊지 말 것을 명확하게 구분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잊을 것은 잊지 않고 잊지 않을 것은 잊고 살아갑니다.
여기에 인간의 약함과 악함이 드러납니다.
진정 복있는 자는 준 것을 기억하지 않는 자와 받은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 자입니다.


건초더미 기도회
세계에서 선교사를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는 대학은 윌리엄스대학입니다.
그렇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1805년 윌리엄스대학의 영적인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소그룹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날마다 모여 대학에 영적 바람이 불도록 맹렬히 기도하였습니다.
어느 날 이들이 정원에 모여 기도하고 있을 때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모두가 비를 피하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5명만은 정원에 쌓여 있는 건초더미 속으로 들어가서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그 후 건초더미 기도모임이 생겼습니다.
선교학자 토렛 박사는 "미국 교회들이 해외 선교운동에 대하여 처음으로 자극을 받았던 것은 건초더미 모임에서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모임이 드디어 해외 선교사를 수없이 배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회마다 건초더미 기도모임이 생긴다면 교회마다 부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다
한 성도가 그가 근무하던 직장에서 근거 없는 루머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분하고 원통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사표를 던지고 싶었고,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만나서 싸움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가까운 기도원에 들어가 울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억울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없는 말을 만들어 저를 비난할 수 있습니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의 마음 속에 "그럴 수도 있다"는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이 음성을 듣고 난 성도는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곰곰 생각하고 난 뒤에 "그렇지, 세상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답니다.
그러자 마음 속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을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날이니라"(잠언4:23)


두 환자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수술을 받게 된 어떤 여자와 남자 환자 이야기입니다.
여자는 마취실 앞에서 극도로 긴장했고 두려워 하며 불안해했습니다.
"선생님, 괜찮겠지요, 몹시 떨리네요."
"환자분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녀는 무서웠지만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는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두려워하는 여성 환자를 향해 빈정거렸습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마위실로 들어가며 말했습니다.
"뭐가 그리 무섭다고 야단이람......."
마위실 안에서 여자 환자는 조금 전과는 달리 차분하고 조용히, 그리고 아주 평안히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마취실에 들어오기 전과는 전혀 딴판이 되었습니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큰소리로 횡설수설하며 경련까지 일으켰습니다

두 종류의 사람
카를힐티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라는 그의 일기 11월 4일자에서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우리들이 행복할 때 애교를 떨고 다정하다가도 우리가 불운에 처하게 되면 슬그머니 몸을 숨기는 사람이 있고
또 한사람은 애교는 적으나 내가 불운에 처했을 때 우리를 버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하는 사람인가 생각해 보라.
그리고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 판단해 보라."

고쳐 쓰시는 하나님
한 병사가 사막에서 생활하는 어는 수도사를 찾아가 하나님이 자신의 회개를 받아 주실지 물었습니다.
수도사는 그에게 많은 것을 설명한 후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친구여, 자네는 옷이 찢어졌을 때 그것을 버리는가?"
"아닙니다. 그것을 다시 수선해서 입습니다."
"자네가 옷에도 그렇게 신경을 쓰는데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겠는가?"
여러분은 돈이 찢어지면 그냘 버립니까. 찢어진 부분을 붙여 다시 사용합니다.
이것은 돈의 가치 때문입니다.
가치 없는 것은 버리고도 아쉬움이 없지만 가치 있는 것은 버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고쳐서 다시 씁니다.
우리는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실패할 때마다 회복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쓰십니다


개미와 베짱이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1탄
개미는 열심히 일하고 베짱이는 놀다가 겨울이 되었습니다.
베짱이는 개미에게 얻어먹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사회입니다.
2탄
개미는 열심히 일하다가 허리디스크에 걸려 눕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멀어놓은 재산을 다 탕진하여 거지가 되었습니다.
베짱이는 노래만 하다가 너무 노래를 잘 하게 되어 음반을 냈습니다.
날개 돋힌 듯 팔려 부자가 되었습니다.
가치관의 혼돈 시대를 말합니다
3탄
개미는 목사님을 모셔다가 안수 기도를 받고 다 나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일하여 부자가 되었습니다.
베짱이는 그 많은 돈으로 술, 마약을 하다가 몸이 망가져 죽었습니다.
정상적인 가치관으로 돌아온 이야기입니다.


베토벤의 출생
어느 의과대학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했습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려있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 있습니다.
이 가정에는 아이가 넷 있는데 한 아이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세 아이들도 결핵으로 누워 있어 살아날 가망이 거의 없습니다.
이 심한 폐결핵에 걸려있는 부인이 현재 임신 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랬더니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답변했습니다.
"낙태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 때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금 자네는 베토벤을 죽였네."
오늘날 의료적 판단으로 낙태해야 한다고 결정 내릴지 모를 그 아이가 음악계의 거성이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오늘 우리와 같이 부족하고 미련한 인생들을 하나님이 귀중하게 스시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기에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진짜 사랑을 해보셨습니까?
<전병욱 목사님 칼럼>
1. 사랑은 숭배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의 힘을 과시한다. 그리고 굴복하기를 원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힘을 과시하고, 아버지는 자녀에게 힘을 과시한다. 그러나 사랑은 자기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연약함을 나누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사회적 지위를 들고 나오지 않는다. "삼일교회 담임목사이며, 10여권의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자격증이 몇 개이며..." 이렇게 나가는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랬다면, 아이가 "아빠, 어디 아파?"라고 되물을 것이다.
2. 사랑과 힘은 반비례
사랑과 힘은 반비례한다. 그래서 진짜 사랑하면 지게 되어 있다. 두 사람 가운데 좀 더 사랑하는 사람이 좀 덜 사랑하는 사람에게 끌려간다. 사랑하기에 무력해진다. 솔로몬의 재판을 보라. 아이 하나를 두고 두 여인이 싸운다. 솔로몬이 명령한다. 아이를 둘로 나누라! 이때 진짜 어머니가 포기한다. 진짜 어머니가 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을 통해서 솔로몬은 진짜 어머니를 찾아낸다. 왜? 사랑의 본질은 힘과 반비례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신화는 성공이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패배하신 하나님을 보여준다. 사랑 때문에 패배하신 하나님을 제시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진다. 왜?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진다.
3. 지는 것을 통해서 얻는 생명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이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경쟁에서 이기고, 승전가를 부르기 보다는, 지는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사실은 내가 너를 더 사랑하는거야라고 되새기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성도의 삶이다. 이 새 봄에 이런 성경적인 사랑을 시작할 사람들은 없는가?


모래 알맹이
먼 거리를 걸어온 여행자에게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여행 중 당신을 가장 괴롭힌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뜨거운 태양입니까, 거친 들을 혼자 걷는 것이었습니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포장되지 않은 자갈길이었습니까, 아니면 가파른 언덕길이었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차가운 밤공기였겠군요."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었습니까?"
"그런 것들은 견딜만 했습니다. 여행 중 가장 나를 괴롭혔던 것은 신발 속에 스며든 작은 모래 알맹이였습니다."
종종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소한 문제입니다.

약한 자와 건강한 자
모노 뉴클레오시스란 병이 있습니다.
피에 단핵을 가지고 있는 세포들이 많아지는 전염병입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과 건강한 사람이 입맞춤을 하면 환자가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이 그 병에 걸리게 됩니다.
모든 병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사람이 감기에 걸린 사람과 있으면 건강한 사람으로 인해 감기에 걸린 사람이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이 감기에 걸립니다.
올바른 소수가 잘못된 다수에게 영향을 주기 힘듭니다.
바른 사랑이 잘못된 사상을 바꾸기가 힘듭니다.
좋은 말 열 마디보다 나쁜 말 한 마디가 더 힘이 있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악한 사람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 더 건강해야 하고 영적 기운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악한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업인과 정직
은행에서 돈을 대출 받았던 한 기업인이 1.4 후퇴 때 은행에 찾아가 돈을 갚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창구 직원은 이 난리통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갚을 필요가 없다며 피난이나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이 기업인은 굳이 돈을 갚고 난 후에야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후에 이 기업인이 제주도에서 군부대에 생선을 납품하는 원양어업에 뛰어들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돈도 담보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업자금 융자를 신청하기 위해 은행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은행장이 1.4 후퇴 때 빌린 돈을 갚고 피난을 간 이 기업인을 알아보고 결국 무담보로 2억 원을 융자해 주었답니다. 위의 이야기는 [사랑에 빚진 자]라는 책에 실린 한국유리 회장 최태섭 장로의 실화입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시11:7)

모유예찬
영국의 정신의학자인 메리니 클라인은 모유를 먹고 자란 아이와 우유를 먹고 자란 아이의 성장과정과 성장 후의 정서및 지능을 비교 연구했습니다.
모유를 먹고 자란 사람은 신뢰감과 사랑, 협동심, 감사하는 마음등 선량치가 높은데 비해 우유를 먹고 자란 사람은 성장과정에서 병치레가 잦았으며 탐욕과 질투심이 많고 고집스러운 불량치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영적인 모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 아닐까요?

연단의 효능
영국의 조지 왕이 도자기 공장을 ㅏᄋ문했습니다.
순찰하는 길목에 2개의 꽃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한 도자기는 보기에도 도자기답게 윤기가 흘렀습니다.
생동감이 넘쳤고 예술품으로서 그 자태가 출중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도자기는 우선 외모가 볼품이 없을 뿐 아니라 빛깔조차 흐릿하고 가치가 없어보였습니다.
그래서 조지 왕이 안내자에게 물었습니다.
"이 도자기는 이렇게 윤기가 나는데 저 도자기는 왜 저렇게 볼품이 없는가?"
"이 도자기는 불에 구워졌끼 때문에 윤기가 나고 저 도자기는 아직 불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윤기가 나질 않습니다."
연단은 때로 물건이나 사람을 세련되게 만들고 윤기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에 실패를 주시고 연단을 주시고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의 표적
캐나다 동북쪽에 사는 아이누이츠라는 에스키모복이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도 고수하는 그들만의 관습이 있다고 합니다. 악령을 쫓기 위해 문이나 현관에 물건을 달아맵니다.
매의 깃털이나 동물의 가죽 혹은 독수리의 깃 등을 문에 달아놓으면 악령을 쫓아낸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부적과 같은 것입니다. 부적을 붙여본 경험이 있습니까?우리의 신령한 표적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문이나 현관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비에 새기고 다닐 표적입니다.
이 말씀을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에 붙이고, 손목에 배달아 놓는 것입니다. 말씀을 늘 붙이고 새기고 다니는 사람은 악한 영이 넘보지 못합니다. 말씀을 떠나 사는 사람을 마귀는 가장 좋아합니다. 언제든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존파와 사랑
지난날 사회를 어지럽히던 살인자 김현양이 예수님의 종이 되었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이 세상 서로를 존중하며 아껴주는 마음을 가지고 베풀면 저 같은 죄인은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잊지 말고 전해 주세요. 이재명님이 나눠주신 사랑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조금 남은 생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가야겠지요. 이재명 선생인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김현양 올림.
이글은 1995년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지존파 중 한 사람이 그들을 돌보아준 이재명 집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처음 체포되었을 때 고개를 빳빳이 들고 죄를 뉘우치지 안던 그 모습은 어디가고 이렇게 순한 양처럼 바뀌었을까요? 모두 싸늘한 눈초리를 보내고 가족조차 외면할 때 오직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만이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으로 접근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닫힌 마음이 열렸습니다. 오직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뿐입니다.

죄수와 수도사
범죄심리학자인 소퍼 박사는 형무소에 있는 죄수와 수도원에 사는 수도사의 차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무소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불평과 요구만을 말합니다.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는 하루 종일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도 만일 감사의 기도 대신 불만의 기도만을 드린다면 형무소의 죄수와 별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멘?
어떤 목사님이 설교 중에 "믿습니까?"라고 물으면 모든 성도들이 "아멘!아멘!"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의 마음에 성도들이 정말 믿음이 있어 아멘을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주일, 목사님은 설교를 시작하기 전 무조건 "믿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모두 아멘이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확신하십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아멘을 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다시 "믿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역시 모두 아멘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또 "확신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역시 아멘은 없었습니다.
"여러분! '믿습니까'와 '확신합니까'가 무엇이 다릅니까?
그리고 또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했는데 아멘이라고들 하셨습니까?
나는 아직 설교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하나님만 바라보았더라면
마르틴 루터가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의자 옆에 앉아있던 개가 루터가 식사하는 모습을 열심히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손이 밥그릇으로 가면 눈이 밥그릇으로, 손이 입으로 가면 또 입으로 손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다녔습니다.
그 모습을 본 루터가 개에게 감동되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에게 고기 한 점을 던져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정신 없이 먹어치우고는 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루터는 한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한말 "개가 내 손을 쳐다보는 것처럼 나도 하나님만 바라보았더라면 하나님은 내게 더 크게 감동하셨을 것이다."

진리가 어색한 사회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지팡이로 뱀이 되게 했을 때에 애굽의 술객들도 따라 했습니다.
애굽에는 당시 뱀에게 최면을 걸어 지팡이처럼 빳빳하게 만드는 요술이 있었다고 합니다.
뱀을 지팡이처럼 가지고 다니다 다시 움직이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지팡이로 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속임수입니다.
결국 모든 술수는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요술이라는 것도 사람의 눈을 순간적으로 속이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진리와 비진리가 혼돈된 사회입니다.
가짜와 진짜가 혼돈된 사회입니다. 언뜻 봐서는 구분이 안 되는 사회입니다.
참되게 살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이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사회입니다.
맥스 루케이도가 이런 사회를 꼬집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어색케 하리라."

가장 선한 것과 악한 것
어느 나라의 왕이 두 신하를 불러서 한 가지씩 임무를 맡겼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과 가장 선한 것을 가져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임무를 맡은 신하들은 온 세상을 두루 다닌 후에 상자 하나씩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은 신하의 상자를 열어보니 거기에는 사람의 혀가 들어 있었습니다.
가장 악한 것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은 신하의 상자를 열어보니 거기에도 사람의 혀가 들어 있었습니다.


최고의 명예
플루타르크가 전하는 바에 다르면 고대 올림픽에 레슬링 경기가 있는데
그 경기에서 이긴 자에게는 전투할 때 왕의 옆에 서서 왕을 호위하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스파르탄이라고 하는 레슬링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경기를 포기하면 매우 많은 뇌물을 받을 수 있었으나 그는 그것을 거절해버렸습니다.
결국 맹렬한 경기 끝에 그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 그런데 스파르탄이여. 이 승리는 너에게 있어서는 매우 값진 것일 터인데 너는 이 승리로 무엇을 얻었는가?"
그때 스파르탄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다만 전쟁터에서 임금 앞에 서서 왕을 지키며 왕을 위해 싸우는 특권만을 얻었다."
그의 보상은 섬기는 일이며 필요하다면 임금을 위해서 죽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택함받았다고 자각한 것도 섬기기 위한 택함이지 명예를 위한 택함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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