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말씀

나는 얼마 짜리로 살고 있는가?

열려라 에바다 2023. 7. 11. 09:27

나폴레옹(1769-1821)의 비극은 1812년 러시아 침공 실패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812년 봄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의 용병을 포함한
 453,000여명의 나폴레옹 직속 군대는 Nimen 江을 도강하여 물밀 듯 러시아를 공격하여 들어갔습니다.
이때 러시아 방위군 사령관 미하일 쿠트조프(Mikhail Kutuzov)는 나폴레옹의 공격을 초토화 작전(scorched earth policy)으로 맞섰습니다. 마침내 러시아의 강추위를 견디지 못한 나폴레옹은 1812년 11월 러시아에서 철수하였는데 이 와중에 특히 Berezina 江 전투에서
 참패하여 453,000명의 군대를 거의 잃고 겨우 10,000여명만 살아 돌아왔습니다.
이 전투에서 러시아 코삭크 기병대의 집중 추적을 받은 나폴레옹은 주변에 근위병도 없는 너무나 다급한 상황을 만나, 어느 외딴 산간
마을 농부의 집 이불 장 속에 숨었습니다. 코삭크 수색대는 집집마다 다니며 프랑스 잔병을 수색하던 중 나폴레옹이 숨어 있는 집에도
들어와 그가 숨어있는 이불장을 긴 총대 앞에 달린 칼로 푹푹 찔러보고는 돌아갔습니다. 구사일생한 나폴레옹에게 집주인 농부가 따뜻한
저녁을 대접하고 있을 때 흩어졌던 나폴레옹의 근위병이 도착하였습니다.
 
그제야 농부는 그가 나폴레옹 황제인줄 알았습니다. 나폴레옹은 그 농부에게 사례하고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농부는 다른
소원은 없고 아까 코삭크 기병대가 폐하가 숨어 있던 이불장을 칼로 푹푹 쑤실 때 기분이 어떠하였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폴레옹의 얼굴빛이 싹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런 무엄한 놈을 보았나 하고는 근위병에게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이 놈을 총살 시켜버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근위병들은 나폴레옹의 명령대로 눈 덮인 러시아 황량한 평원에 말뚝을 세우고, 그 농부를 잡아매고는 다섯 명의 사수가
총살 집행 준비를 하였습니다. 군대- 준비-! 하나, 둘,...하는데 저 쪽에서 황제 직속 근위병이 멈춰라! 소리 지르며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황제의 명으로 총살은 취소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근위병은 말뚝에 매여 창백한 농부에게 다가가 묶은 줄을 풀어준 뒤 품안에서 한 장의 편지를 꺼내 주면서 이것은 폐하께서
그대에게 주라고 하신 편지니 받아보시오 하였습니다. 농부가 떨리는 손으로 그 편지를 열어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져 있었습니다.
<그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이제 알겠는가? 친애하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놀이의 의미
 
1960년대에 프랑스 한 수의사가 동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골치 아픈 문제 하나를 해결하였습니다. 그 수의사가 발견한 방법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비슷한 형태의 모든 문제를 풀어 가는 데도 매우 유용한 암시를 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수의사가 해결한 문제란 무엇인가?
한 목장 주인이 종자가 좋은 말 네 마리를 구입하였는데, 이 네 마리의 말들은 서로 만나기가 무섭게 물고 뜯고 싸우고 사납게
날뛰었습니다. 그 말들을 나란히 매어 마차를 몬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함께 모아 놓기만 하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기 때문입니다.
목장 주인은 할 수 없이 수의사를 찾아가 이 말들을 잘 길들일 수 있는 방법을 좀 가르쳐달라고 하였습니다. 수의사는 어떻게 하면 될까?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한 가지 묘안을 찾아냈습니다.
수의사는 네 마리의 말들을 마구간에 칸칸이 차례로 집어넣었습니다. 말들은 여전히 소란스럽고 서로 으르렁거렸습니다. 수의사는
 칸막이 사이에 구멍을 뚫고 창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창마다 몇 가지 놀이 기구를 매달아 두었습니다. 말들이 머리로 탁탁 받아쳐서
 돌릴 수 있는 바퀴모양의 작난감, 발굽으로 쳐서 한 쪽에서 다른 칸으로 넘길 수 있는 탄력 좋은 공, 끈에 매달아 흔들리도록 만든
알록달록한 놀이 기구 등입니다. 말들은 이런 작난감에 아주 큰 흥미를 보였습니다.
 
수의사는 일 주일에 한 번씩 말들의 자리를 교대로 바꾸었습니다. 네 마리의 말들은 차츰 차츰 서로간의 적대감이 잦아들고, 서로 서로
호감을 드러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네 마리의 말들은 죽고 못 사는 사이로 변하였습니다. 네 마리 말을 한 마차에
 매어두어도 전에 와는 달리 서로 머리를 부벼대고, 핥아주며, 따듯한 우정을 나타냈습니다. 네 마리 말들은 서로 놀이하듯 재미나게
 마차도 몰고 신이 나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여러 가지 공동체, 가족, 학교, 회사, 교회, 그리고 갖가지 다양한 공동체 속한 사람들 사이에도 원인 모를 저항감과
반발심, 적대감으로 인하여 불편하고 불행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공동체의 리더는 이 수의사처럼 그 공동체에 적합한 놀이를
개발하여 적용한다면 큰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 혁명, 170-171쪽>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 전래 민담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다섯 살 난 아들을 둔 홀아비가 역시 다섯 살 난 아들을 둔 과부를 맞아들여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동갑 나기 두 아들을 키우게 된
이 여인은 참 마음씨 착한 부인이었습니다. 특히 아이들 양육에 있어서 이 부인의 자세는 참으로 만인의 귀감이 될 만 하였습니다.
부인은 전실 소생의 아이나 자기 소생의 자식이나 한결같이 대하였습니다. 혹 선후를 가를 일이 생기면 언제나 전실 자식을 앞세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전실 자식은 점점 비루먹은 강아지 꼴인데, 그 부인의 친자식은 탐스럽게 잘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것을 보면
똑 같이, 아니 오히려 전실 자식에게 더 잘 하는 것 같은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집안 식구들은 이 부인이 영악하여 남들 앞에서는
전실 자식을 위하는 듯 하면서, 남 안 볼 때는 전실 자식을 구박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부인의 행동을 면밀히 살펴보았으나 남이
 있든지 없든지 부인의 태도는 한결 같았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우연히 부인이 잠든 방을 보게 되었는데 부인은 전실 자식을 품에 안고, 자기 자식은 건너편에 뉘운 채 잠자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남편은 부인을 의심한 것을 크게 뉘우쳤습니다. 전실 자식과 부인이 데리고 온 자식의 발육 상태의 차이는 순전히 생리적인
차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남편이 집안의 중요한 일로 먼길을 떠났다가 새벽녘에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집안 사람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방안에서 일어나는 아주 이상한 현상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날도 부인은 전실 자식을 자기 품에
 안고 자고 있었고, 부인의 친 자식은 건너편에 뉘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부인의 몸에서 이상한 안개 같은 기류가 흘러나와 품에 안은 전실 자식을 건너 뛰어 부인의 친자식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편은 아, 그렇구나, 사랑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초가삼간도 나는 만족하네, 86-87쪽>
 
 
 
 
 .
 몽블랑 만년필 이야기
 
<名品>이란 그것이 옷이든, 자동차든, 악세사리든, 집이든, 골프채든,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그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는, 그리고 그것이 자기만의 것이라는 특별한 감정과 애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그 무엇에 붙이는 명예로운 이름입니다.
소련 고르바초프와 서독 콜 수상의 국제 외교 문서, 동독과 서독의 통일 문서, 등 국제 외교 문서 조인식에는 몽블랑 만년필이 쓰이고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몽블랑인가? 몽블랑 만년필은 세계가 알아주는 만년필 계의 명품이기 때문입니다.
몽블랑 만년필은 1906년 독일 C.J. 휘스, C.W. 다우젠, W. 잔보아 세 사람이 설립한 문구 회사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몽블랑은 처음
심플로라는 이름이었는데, 1910년 유럽에서 최고의 만년필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 위하여 이름을 몽블랑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몽블랑 만년필 펜촉에는 육각형의 하얀 눈송이 심볼과 함께 4810이란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 숫자는 바로 몽블랑(Montblanc)
봉우리 높이 4810M을 나타낸 것입니다.
몽블랑 만년필 펜촉은 18K 금이고, 기계가 아닌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하나 하나 만드는 수제품이란 점이 특징이고 자랑입니다. 이렇게
몽블랑 만년필 한 자루 만드는데는 6 주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몽블랑 마이스터튁 씨리즈로 나온 솔리테어 1497은 14,000달러에 팔려
 만년필 판매가 중 최고 가격으로 1983년 기네스 북에 올라 있는데 2001년 현재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았습니다. 그리고 죤.F.케네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영국 에리자베스 여왕 등 세계적인 명사들이 특히 몽블랑을 애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몽블랑이 명품으로 자리잡은 것은 그저 우연히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전통이란 그냥 저절로 물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명예로운 전통과 명성을 이어 나가기 위한 열정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몽블랑은 그 명성과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지금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척하고, 최고의 서비스를 다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만년필은 여러 회사에서 만든 여러 종류의 만년필이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 몽블랑 만년필을 명품이라고 일컫는 것은 다른
만년필이 따라올 수 없는 몽블랑만의 품격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Noblesse, 2000. 12월호, 210쪽>
나는 사람 가운데 몽블랑 만년필 같은 그런 명품이 되고 싶습니다.
 
 
 
나침반 이야기
 
2001년 1월 31일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길을 걷다가 건국대학교 앞 책방에 들러 성공회대학교 신영복 교수가 1995년부터 1996년
 8월까지 중앙일보에 기행 엽서로 연재했던 글을 묶어 낸 <나무야 나무야>를 읽다가 마음에 와 닿고 맥이 서로 통하는 글 몇 줄
약간 각색하여 여기 소개합니다.
하나. 나침판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이 바들바들 떨고 있습니다. 여윈 바늘 끝이 그렇게 떨고 있는 한 그 나침반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지가 살아 있음이 분명하며, 그리고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은 옳다고 믿어도 좋습니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운 그 떨림을 멈춘 채, 어느 한 쪽만을 가리키며 고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 남침판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나침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 역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조금씩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합니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며 내용입니다.
"편안함" 그것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불편함"은 흐르는 강물입니다. 흐르는 강물은
수많은 소리와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는 추억의 물이며 어딘가를 희망하는 잠들지 않는 물입니다.
셋. 갈채와 통곡
관객들의 뜨거운 갈채와 함께 막이 내리면 그는 분장실에 홀로 남아 통곡하였습니다. 당신은 그 통곡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갈채는 그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주인공에게 바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에 그는 통곡하였습니다. "나는 왜 드라마의
그 주인공처럼 살지 못하고 무대 위의 그림자로 살고 있는가?" 이것이 그의 통곡의 이유였습니다.
텅 빈 분장실에 홀로 남아 쏟아내는 그의 통곡 때문에 당신은 그를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통곡은 그를 인간으로 세워놓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1996, 돌베개, 52, 82, 128쪽>
 
 
 
 


쓰레기 밭, 시금치 밭
 
그 부자의 으리으리한 집 앞에는 널찍한 빈터가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빈터에 갖가지 쓰레기를 버렸습니다. 쓰레기장이 되어
버린 빈터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습니다.
부자는 많은 돈을 들여 쓰레기를 치웠습니다. 그러나 며칠 못가서 빈터는 다시 쓰레기장이 되었습니다. 부자는 또 돈을 들여 쓰레기를
 치우고 "이 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고 큼지막한 팻말을 세웠습니다. 그랬는데도 별효과는 없었습니다. 부자는 또 돈을 들여
쓰레기를 치우고 철조망을 둘러치고,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자는 고발 조치 함!" 라고 쓴 팻말을 세웠습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효과가
 있었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침내 부자는 쓰레기 버리는 사람을 붙들어 고발하고 벌금을 물게 하였습니다. 그제야 동네 사람들은
 좀 조심하는 듯 하였으나 도로아미타불입니다. 부자는 이 동네 것들은 아주 쌍놈들이라고 욕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시골에서 부자의 아버지가 상경하였습니다. 노인은 부자 아들의 불평을 들었습니다. 노인은 다음 날 아침 빈터로 나가서 철조망을 다 걷어내고, 쓰레기와 함께 넘어진 팻말 판자도 다 태워버렸습니다. 그리고 삽과 괭이로 빈터를 땀 흘려 파헤치고 돌을 골라내고 두둑을
 만들어 밭을 만들어 갔습니다.
노인은 빈터에 만든 밭에다 무엇인가 정성껏 심었습니다. 며칠 동안 노인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밭에다 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촉촉한 비가 내리고 나자 빈터 밭에는 파란 새싹이 솟아났습니다. 그것은 시금치였습니다. 시금치는 며칠 사이 파랗게 먹을 수 있을 만큼 잘 자랐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빈터 시금치 밭둑에 "필요하신 분은 조금씩 뜯어 가십시오!" 라고 쓴 팻말을 세웠습니다.
노인은 부자 아들에게 "애야, 시금치가 다 쇠면 상추, 파, 오이 같은 것들을 심어두어라. 그리고 꽃도 좀 심고..." 그렇게 부탁하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부자 아들은 아버지가 일러 준 대로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네 사람들과 점점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보니
이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쌍놈들이 아니었습니다. 쌍놈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참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빈터는 이제 더 이상 쓰레기장이 아니라 동네의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다음 해 봄, 그 동네 그 빈터에서는 "동네 노인정 준공 기념 잔치"가 열렸습니다. 그날 시골에서 올라 온 부자의 아버지 노인은
부자 아들에게 "애야, 내 기분이 그만이다. 내 술 한잔 받거라" 하며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을 건네었습니다.
<유성 온빛교회 허광오 목사, 1997. 6.29.주보>
 
 
 
 나는 얼마 짜리로 살고 있는가?
 
인도의 성자 나나크데브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사람의 참되고 진실한 가치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나나크데브는 "내일 다시 오시면 그 때 말씀드리리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나크데브는 그 사람에게 눈부신 보석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보석을 가지고 시장으로 가서 값을 물어보시오.
하지만 아무리 비싸게 준다해도 팔지는 말고, 그냥 가게마다 들러 값을 물어보기만 하시오"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과일가게 주인에게 그 보석을 보여주고 얼마로 쳐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과일가게 주인은 오렌지 두 알 값으로 쳐 드리지요
 하였습니다. 다음은 감자가게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감자가게 주인은 감자 네 근 값으로 쳐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대장장이는 500냥 쳐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보석가게들을 찾아갔습니다. 그 사람이 새로 찾아간 보석가게 주인마다 천냥, 오천냥, 만냥 하면서 점점 더 많은 돈을 주겠노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그 사람은 그 도시에서 제일 유명한 보석가게를 찾아갔습니다. 보석가게 주인은 그 보석을 보더니 눈을 똥그랗게 뜨고, 몇 번이나 감정을 되풀이하고 나서 말하였습니다. "손님, 정말 훌륭한 보석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보석은 값을 붙일 수 없을 만큼 귀한
 보석입니다. 굳이 값을 매긴다면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해야겠지요. 파실 생각이시라면 저에게 파시지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보석을 챙겨들고 나나크데브에게로 돌아가서 자신이 겪은 일을 모두 말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나나크데브는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람의 진정한 가치가 어떠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겠군요? 사람이란 존재는 오렌지 두 알 값 정도의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감자 네 근 값 정도의 가치를 지닐 수도 있습니다. 500냥 정도의 가치를 지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란 돈으로 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고귀한 가치를 지닐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가치란 각 사람마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품은 생각을 어떻게 현실화 시켜나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족집게 칭찬은 하지 말라!
 
우리 목회자들은 생일 잔치, 회갑연, 심방, 특별한 날을 위한 마련한 잔치 자리에 초대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전에 어떤 권사님의
남편 생일 축하 잔치에 초대받은 적이 있습니다.
잔치 상이 들어오기 전에 함께 심방 간 전도사님, 장로님, 집사님들과 함께 축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진수성찬의
잔치 상이 들어왔습니다. 특별히 그 권사님이 남도 출신이라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산해진미로 상다리가 정말 휘어질 정도로 잘 차린 생일 잔치 상이었습니다. 별거 별거 다 있었습니다. 모두를 한 참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야, 이거 참 있다 하였고, 누군가는 나는 저것이 참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분위기라 나도 한 마디 쯤 하여야 할 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음식 가운데 나는 해파리 냉채가 제일 맛있었습니다. 그 때가
여름이었는데, 해파리 냉채는 아주 시원하였고, 졸깃졸깃하고, 자근자근 씹히는 게 여간 맛깔진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해파리 냉채의
묘미는 겨자의 배합에 있는 법인데, 그 날 그 해파리 냉채는 일류 중국 집에서 만든 것보다 더 우수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해파리
냉채가 제일 맛있다 에서부터 시작하여 해파리 냉채 예찬을 한참하고 자리를 파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습니다. 그 잔치 날 이후부터 목사님 때문에 그 권사님이 시험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무엇 때문에
 시험에 들었는가?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참 공교로운 것이었습니다. 그 날 차린 그 여러 가지 많은 음식들은 모두 그 권사님이
장만하고 손수 요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제일 맛있다고 예찬한 바로 고 해파리 냉채만은 그 권사님이 만든 것이 아니고,
그 남편 집사님의 친구 부인이 만들어 가지고 온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줄을 알았나? 거 참 곤란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얼마 후 그 권사님도 기분을 풀고 화평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참 곤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어느 자리에 가서도 이것도 맛있고 저것도 맛있다는 식으로 두루뭉수리로 맛있다는 소리는 해도, 어느 한 가지를
 족집게로 집어내어 요것이 그중 제일 맛있다는 칭찬은 결코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창의적 사고 다섯 단계
 
과거에는 Know-How가 뛰어난 사람이나 기업이 주도권을 가진 시대였습니다. 컴퓨터 시대에는 Know-Where가 뛰어난 사람이나
기업이 주도권을 가지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2000년대의 미래 사회는 무엇보다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이나 기업이 주도권을 잡는
 시대입니다.
다음은 <창의력 개발>을 위한 탱크주의 배순훈의 5단계 제안입니다.
제1단계. 문제를 정의하라(Problem Definition)
자신이 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하여 왜? 왜? 왜? 라고 세 번 자문하라. 그러면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해지고 문제의 범위가 확실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파악하지도 않고 대충 그럴 것이다라는 선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문제 자체를 정확히 알라.
제2단계. 철저히 공부하라(Preparation)
문제가 명확하게 정의되고 나면 그 다음 할 일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를 철저히 공부하라. 밤에 꿈을 꿀 정도로 철저히 하라.
제3단계. 까맣게 잊어버려라(Incubation)
원래 인큐베이션이란 닭이 알을 품고 부화를 기다리는 과정을 말한다. 무언가 창의적인 생각을 해 내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철저히 공부한 그 모든 것을 마음속에 품고 아이디어를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빙산은 수면 위가 전체의 8.3%이고 수면 아래에 91.7%가 잠겨 있다.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비율도 그와 같다고 하겠다. 이 과정은 인간의 이 무의식의 능력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제4단계. 순간적으로 번쩍 하는 것을 포착하라(Illumination)
벌거벗은 줄도 모른 채 목욕탕에서 뛰쳐나와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의 경우이다. 어느 날 문득 번쩍 하며 영감이 떠오르는 법이다.
제5단계. 반짝인다고 모두 황금은 아니다(Follow-Up)
번쩍 했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경험에 비추어보면 100번 번쩍 했는데 그 중 99%는 별 볼일 없는 것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이 마지막 단계는 번쩍한 아이디어가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공상에 불과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물불 가리지말고 밀어붙이면 된다.
(배순훈, 기본으로 돌아가자, 중앙M&B, 211-245쪽)
 
 
 
삼십육계 줄행랑(走爲上)
 
천하의 병법은 손자, 오자, 사마법, 위료자, 육도, 삼략, 이위공문대 등 병법 칠서로 집약되고 있습니다. 이 외에 1941 중일 전쟁 중
섬서성 빈주 고서점에서 필사본으로 발견되어 널리 알려진 秘本兵法 三十六計가 있습니다.
이 비본병법 삼십육계는 제1계만천과해, 제2계 위위구조, 제3계 차도살인...이렇게 나가다가 제34계 고육계, 제35계 연환계 그리고
 맨 마지막 제36계가 走爲上으로 그 뜻은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끔 "이런 때는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야!"
하는 소리를 하는데 이 말은 바로 비본병법 제36계에서 나온 말입니다.
비본병법 제36계 走爲上은 도망하는 것을 상책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적의 병력이 압도적으로 커서 싸워 이길 수 없다면 항복, 화해,
도망 치는 세가지 길뿐입니다. 이 경우 항복하는 것은 완전히 패배하는 것이고, 화해하는 것은 반쯤 패하는 것이고, 도망치는 것은
 아직 패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 패하지 않았다면 언젠가 승리로 전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싸움에서 도망하는 것이 최상은 아닙니다. 오히려 도망치고 물러나는 것은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大局의 전세를
무시하고, 눈앞에 局地戰에 사로잡혀 기책과 묘책을 도모하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짓입니다. 대국적으로 보아 전세가 불리하다면,
 미련 없이 물러서는 것이 현명한 일이란 말입니다. 국지전의 小策을 농하기보다는 속히 도망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입니다.
나갈 줄만 알고, 물러갈 줄 모르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물러갈 줄만 알고 나갈 줄 모르는 것도 어리석음입니다. 나가고, 물러감의 때를
 바로 포착하는 것이 지혜요, 병법의 요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도 그렇습니다. 가야 할 때 가지 못하고,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설 줄 몰라서 낭패를 당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삼십육계 줄행랑은 무슨 일이건 도망치는 것이 상수라는 뜻이 아닙니다. 물러날 때는 과감하게 물러날 줄 아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질풍노도와 같이 나갈 것이란 전제가 깔려 있는 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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