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에 대한 예화
가장 귀한 분
영화의 고장 할리우드에서는 가끔 배우들과 영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아침식사를 나누는 모임이 있다. 이때에는 당대의 최고 인기 배우나 유명 인사를 초빙하여 간단한 연설을 듣는다고 한다. 한번은 매우 아름다운 용모의 여성이 연사로 등단했다. 그녀는 미국의 최고 미인 열 명 중의 한 사람으로 뽑힐 만큼 아름다운 영화배우였다. 이 여자가 마이크 앞에 나오자 박수가 요란스럽게 터져 나왔다.
그런데 그녀는 좌중을 둘러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러분, 나는 지금 사랑에 빠졌습니다.” 장내는 이상야릇한 흥분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도대체 그 행운을 잡은 사나이가 누굽니까?” 여자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영화배우의 일도 그만두려고 합니다.”
과연 그 여자는 자신의 말처럼 할리우드를 떠나서 후에는 목사의 아내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 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누군가가 그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당신은 할리우드의 명예와 부를 물리치고 예수님을 택하신 일에 전연 후회가 없으십니까?” 그녀의 대답은 아래와 같았다. “할리우드의 스타나 영국 여왕의 자리도 지금의 저와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저에게 이처럼 귀하신 분이십니다.” 참으로 멋진 답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부귀. 명예. 행복과 바꿀 수 없는 존귀하신 분이시다.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오라
지금 우리는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시간에 서있습니다. 잘 마무리하고 좋은 계획을 세우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자칫하면 생각도 없이, 계획도 없이, 소망도 없이 새해를 맞이하기 쉽습니다.
새해에 어떤 계획과 다짐을 하고 있습니까?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서 아직 땅을 분배받지 못한 일곱 지파의 대표 21명을 모아놓고 출발예배를 드리며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그려가지고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여기 실로에서 여호와 앞에서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으리라.(수18:8)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오라!"
이 말씀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름대로의 바램과 욕심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려가지고 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새해에 어떤 맹세나 서원을 하는 것을 퍽 두려워합니다. 참으로 옳습니다. 예수님께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러나 새해의 설계조차 생략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사람의 일생은 자기 생각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고 말했습니다. 생각을 심으십시오. 그러면 좋은 행동을 거둘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생각 이상으로는 자라지 못하지 않습니까? 내년도 자신의 모습을 훌륭한 신앙인으로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는 물론 용기와 도전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 희생을 치르고라도 꼭 이루어야할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할 말씀은 "내게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3,9)고 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아무리 그럴싸하고 또 치밀해도 결국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잘 그려가지고 하나님께 나가면 우리의 믿음대로, 구상대로 허락해 주십니다. 송구영신 예배에 오실 때는 내년 한해의 삶의 모습을 그려 오십시오. 희망이 있고, 즐거운 교제가 있고, 용기가 솟는 송구영신 예배가 준비되었습니다.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면 그 아쉬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예수님 그분 때문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예물입니다.
그리스도
말틴 이라는 늙은 구두 수선공은 홀로 살면서 성경을 열심히 읽고 하나님을 즐겁게 하려고 항상 노력하였다.
부유한 바리새인의 집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푸대접을 받은 이야기를 읽고 말틴은 비록 오막살이지만 주 예수가 그의 집을 찾아오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어느 날 밤, 말틴이 잠자는 사이에 "말틴, 말틴, 내일 내가 찾아 갈테니 창문을 지켜보라"는 말소리를 들었다.
꿈이었는지? 아무튼 그 다음 날 그는 손님을 모실 준비를 하고 시계를 보곤 하였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러나 문밖에서 눈을 쓸고 있는 노인을 발견하고 그를 들어오게 하여 따뜻한 차를 주었다. 그러는 동안에는 말틴은 창밖을 지켜보았다. 말틴의 초조한 모습을 보고 그 노인은 누가 오길 기다리고 있는 가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말틴은 잠자는 동안 들은 주 예수의 말씀을 노인에게 일러 주니 그 노인은 눈물을 머금었다.
노인이 떠난 지 얼마 후에 말틴은 창밖에서 울부짖는 아기를 데리고 떨고 있는 부인을 보았다. 그는 곧 그들을 불러 들여 뜨거운 스프를 마시게 하고 어린애를 싸주라고 낡은 것이나마 외투를 내어 주었다. 그 부인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말틴은 역시 그 여인에게도 주 예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주 예수께서 여기를 찾아오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은 없을 테니까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말하며 그 부인도 이별을 고하였다.
이제 저녁이 되었는데도 예수 그리스도는 오시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해서 밖을 내다보고 있으니까 불쌍한 사과장사 노파가 쉬고 있는데 어떤 소년이 노파의 사과를 훔치려 하고 있었다. 말틴은 부리나케 뛰어나가 악을 쓰는 노파를 달래며 소년을 위해서 사과 값을 치러 주고 소년에게 조용히 타일렀다. 소년은 그의 행위를 깊이 뉘우치며 부끄러운 나머지 노파의 사과 광주리를 들어다 주었다.
밤이 되었다. 말틴은 성경을 들고 읽으려 할 때 어두운 한 모퉁이에서 "말틴, 말틴 나를 모르겠느냐!" 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요?"라고 말틴은 얼결에 반문하였다.
"나다" 하더니 잠시 후에 눈을 쓸고 있던 노인이 거기에 서 있었다. 또 "나다" 하면서 어린애를 안은 여인이 나타났고 "나다" 하며 사과장수 노파와 소년이 나타나 잠시 동안 미소를 짓더니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말틴은 그날 결국 주 예수가 그를 방문하였음을 깨닫고 무척 기뻐하였다.(롬 12:9,19)
그리스도의 사랑
영국의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 대륙의 전도 책임자로 있을 때 그는 가끔 전도를 희망하는 후보자를 면접하였다. 한번은 봉사하기로 결심한 한 사람을 만나 “왜 당신은 해외 선교사로 가기를 원합니까.”하고 물었다. 선교사 후보자는 대답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 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가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또 다른 한 명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리스도 밖에서 타락하고 있기 때문에 선교사로 나가기를 원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때 허드슨 테일러는 말하기를 “그 모든 동기들은 좋지만 시험과 시련 그리고 고생. 심지어 죽음의 순간을 당할 때, 그것은 당신을 구하지 못합니다. 단지 한 가지 동기가 당신을 어려운 시험과 시련에서 견디게 해줄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 있는 선교사가 한번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당신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진실로 좋아해서 하십니까.” 그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아닙니다. 나와 처는 먼지와 이 고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초라한, 냄새가 나는 이런 오두막집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가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당신이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위험하거나 불쾌한 조건에서 나도 시험을 당할 때 주님을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진정한 봉사를 하게 할 것입니다.
내가 확실히 아는 예수
예수님을 믿는 한 남자에게 믿지 않는 그의 친구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네는 예수님을 믿으니 그에 대해 잘 알고 있겠지? 그 예수라는 사람 어디서 태어났나?"
"모르겠네."
"그럼 몇 살에 죽었나?"
"잘 몰라."
"그의 형제들은 몇이었나?"
"그것도 모르겠네."
"그럼, 자네는 그렇게 모르면서도 그를 믿는다고 하는 건가?"
"그래, 그 분에 대해 나는 별로 잘 알지 못하네, 그리고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지. 그러나 내가 확실히 아는 게 있네. 3년 전만 해도 나는 술주정뱅이였고 우리 가족은 늘 다투었지.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했었네.
그러나 지금 난 술을 끊었고 우리 가정은 화목하다네. 이제 아이들은 내가 돌아오는 시간을 기다린다네. 이 모든 것이 내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되어 진 것임을 나는 알고 있네."
다이아몬드의 가치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네 개의 C로 결정된다고 한다. 즉 캐럿(carat), 컷 (cut), 컬러(color), 클래리티(clarity)이다. 미국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것도 같은 순서인 것이다. 캐럿은 크기니까 사람도 주머니의 크기로, 컷은 모양이니까 생김생김 옷, 자동차 등으로, 컬러는 색깔이니까 피부의 색깔로, 클래리티는 순결로 곧 흠을 따지는 것이니까 도덕적인 행실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 네 가지 면에서 사람들에게 그럴 듯한 평점을 받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빛 속에 먼지처럼 드러나는 인간을 볼 때 걸작 품은 하나도 없다.
오직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무리 손길이다. 그것은 다섯 번째 C, 그리스도(Christ)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는 일, 만신창이인 나를 하나님의 마무리 손길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맡겨 용서를 받고 새 사람이 되는 길만이 나의 인생을 걸작 품으로 남기는 일이다.
룸살롱의 크리스마스
천구백구십년 겨울, 나는 그때 강남에 있는 한 룸살롱의 웨이터로 일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위장취업인 셈이다. 우물가(유흥가 선교)를 시작하면서 어떻게 접촉점을 찾아나갈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묘수를 찾아내게 되었는데 그것이 술집에 웨이터로 취직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위장을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유흥가 사람들에게는 자기들의 세계와는 다른 어떤 분위기가 느껴졌던 모양이다. 은연 중에 그들은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최대한 애를 썼다. 손님이 없는 무료한 초저녁 시간을 메우기 위해 동료 웨이터들과 함께 동전 따먹기 놀이를 하거나, 아가씨(호스티스)대기실에 들어가 고스톱을 치거나, 웨이터 보조(룸살롱의 룸서비스 맨)들의 일을 도와 룸을 청소하기도 했다.
또 성냥과 담배를 준비해 가지고 로비에 나와 앉아 있다가 담배를 찾는 아가씨들이 있으면 불을 붙여 주었고, 짓궂은 손님들의 잔인한 요구(?)를 견디다 못해 수치로 얼굴이 엉망이 되어 로비로 뛰어나와 울음을 터뜨리면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를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날은 일을 끝내고 나이든 마담들과 함께 포장마차에 앉아 그들의 푸념을 아침까지 들어주기도 했다. 아마도 그런 노력들은 내게서 풍기는 거룩한 체 잘하는 역겨운 성직자의 냄새를 얼마만큼은 희석시켜 주었으리라.
우리는 친해졌다.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속 깊은 내면의 비밀이나 고통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세계를 점점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예수님께서 낮고 천한 사람들에게 바리새인들보다 관대하게 대했던 이유를 가슴으로 깨닫게 되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다. 24일은 보통 날보다도 손님이 많았다. 여덟 시가 되기도 전에 여덟 개의 룸이 모두 찼고 단골손님들조차도 돌아가야 했다. 나는 선물과 케잌을 준비하고 생일 초대장을 만들었다. 나는 모든 웨이터와 호스티스들에게 생일 축하파티에 참석해 줄 것을 부탁했다. 누구의 생일파티냐고 물었지만 웃어만 주었다.
밤은 점점 깊어졌다. 술좌석은 달아올랐다. 그리고 '루돌프 사슴 코'와 같은 캐럴송이, 심지어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가요처럼 연주되기도 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노래에 맞추어 고함을 쳤고 술을 마셨고 온갖 음담패설과 음란한 행위를 즐겼다. 술과 음란과 욕설과 거룩한 캐럴송, 그게 세상이었다. 마침내 열두시가 넘었고 셔터가 내려지자 손님들은 아가씨를 끼고 여관으로 갔다.
우리 웨이터들과, 짝짓기에 참여하지 못한 아가씨들은 대충 정리를 끝내고 B룸으로 모였다. 두시 삼십분이었다. 모인 사람을 세어보니 열일곱 명이나 되었다.
나는 전등을 끄고 케익에 불을 붙였다. 분위기는 조금 산만했다. 남궁마담이 누구의 생일이냐고 질문했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차근차근 위대한 그분의 생일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분이 누구며 그분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말해 주었다. 또 그분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누구에게 관심을 가지셨고 어떻게 사셨는지도 말해 주었다.
나의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산만했던 분위기는 숙연해졌고 그들은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부유함으로 거만했던 자들의 친구가 아니라, 가난하고 외롭고 비틀거리는 상한 마음들을 눈물로 어루만져 주었던 단아한 그의 사랑은 지금 듣고 있는 그들의 심정을 가장 잘 덮어주고 있었다. 누군가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고 마침내는 여기저기서 눈물을 찍어내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가슴에 안는 순간이었다. 가장 음란하고 추악한 일에 쓰임 받던 그들이, 그리고 그곳 공간이... 가장 거룩하게 드려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가슴이 미어지도록 소리쳐 불렀다.
그날 이후에 나는 그들로부터 예수님에 대해 좀 더 알려달라는 요구를 받게 되었고 그 룸살롱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매주 성경공부모임이 열려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모임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성경공부모임을 2년 만에 끝을 보게 되었는데 이유는, 그 룸살롱의 주인이 신앙을 이유로 전업을 했기 때문이었다.
머지않아 크리스마스가 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내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왜 오셨는지 아기 예수님이 계신 마구간은 어디인지 그리고 어떻게 사셨는지 물어보고 싶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8)
목자들의 성탄절
연말이면 의례히 맞이하게 되는 것이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을 영어로 '크리스마스(Christmas)' 즉, 그리스도에게 예배드린다는 뜻입니다. 프랑스 말로는 '노엘(Noel)' 독일 말로는 '바이나흐텐(Weihnachten)'이라 부릅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에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주님을 맞이하였는가를 살펴보면, 대략 세 종류의 형태를 가려낼 수 있습니다.
첫째, 박사들의 태도:
예수 탄생을 제일 먼저 알게 된 사람은 동방에 별을 보고 연구하던 박사들입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를 왕으로 추앙하여 황금, 유향, 몰약의 귀한 예물을 가지고 먼 길을 직접 찾아와서 경배하였습니다.
둘째, 헤롯왕의 태도:
박사들에게 예수 탄생을 전해 듣고, 유대인의 왕으로 출생했다는 아기 예수를 권력의 원수로 취급하여 불안과 공포심을 가지고 그를 죽이기 위해 많은 어린 아이를 살해하는 성탄절이 되었습니다.
셋째, 목자들의 태도:
밤을 새워 가며 양떼를 지키느라고 들에 있을 때에 주의 천사를 통해 구세주가 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정성된 마음으로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찬미하며 돌아갔습니다.
위에 열거한 것처럼 동방박사는 보물을 가지고 예수를 왕으로 경배하였고, 세상의 최고 지위에 있는 헤롯왕은 칼을 가지고 예수를 원수로 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목자들은 밤새워 자기가 맡은 일에만 몰두하다가 천사들을 통해 듣고 순진한 믿음과 찬미로 그리스도의 나심을 충심으로 축하했습니다.
빈 배에 오신다.
예수님이 없는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베드로가 빈 배에 예수님을 모셔 들였을 때 그의 인생은 새로운 의미로 변모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령 속에 예수님 대신 물질이나 지위나 명예나 권세 나 영화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인생의 깊은 곳으로 갈 수 없으며 따라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이 진실로 의미 있고 복된 인생을 살려면 회개함으로 탐심을 버리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심령 속에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하시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태복음 4:17),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0, 21)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선 [빈 배]에 오십니다. 탐욕으로 가득 찬 심령에는 예수님께서 오실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누구든지 천국을 체험하려면 모든 죄를 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의와 평강과 희락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인도로 깊은 인생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