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과 평지수훈의 비교
I. 산상 수훈(마5:1-10)에 나타난 8복 연구
1복 심령이 가난한 자.
① 스스로의 한계성을 느끼고 하나님 밖에 도와줄 분이 없음을 인정하는 자이며 (시 69:29; 70:5; 74:21; 86:1-6; 사 61:1; 습 3:12)
② 하나님 앞에서 오만한 자들과 반대되는 생 활을 하기 때문에 그 오만한 자들로부터 박해를 받는 자이고(시 37:14 86:14) ③자신의 죄를 통회 하며 자복하는 자이다(시 34:6, 18; 51:17; 사 66:2). 복이 있나니 여기서 복은 하나님 나라의 구원 에 동참한 자가 누리는 특별한 영적인 기쁨을 말한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천국은 인간적인 수 고의 대가로 얻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에서 비롯되는 선물이다.
시 69:29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시 70:5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 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시 74:21 학대 받은 자가 부끄러이 돌아가게 하지 마시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가 주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소서
시 86:1-6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나는 경건허오 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회하심이니이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 를 들으소서
사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 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습 3: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시 37:14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 이고자 하나
시 86:14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시 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시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가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마음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사 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2복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여기서 애통이란 말은 ‘영적인 애통’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이 애통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은 불의에 대한 애통이며 사람들이 자랑하던 바로 그 도덕성과 믿었던 ‘자기 의(self-righteousness)’에 대한 애통이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하는 애통인 것이다. 위 로를 받을 것임이요 스스로의 한계와 하나님의 의를 실현하기 위해 애씀에서 비롯되는 애통은 하나 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므로 하나님 앞에서 위로를 받을 것이며 의롭다 칭함을 받을 것이다.
3복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칼빈(Calvin)은 ‘온유란 부드러운 마음으로 살며 노하기를 더디하며 절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듯 온유란 잘못된 일이 있는 자에 대해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인내함으로 기다리는 자세이다(마 18:21-22). 이것이 바로 예수의 마음이었다(마 11:29). 땅의 기 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상속받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땅을 얻는다는 것은 영원 한 번영과 승리를 의미했다. 바울 역시 그리스도인의 최고 축복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 를 상속받는 것이라고 하였다.
마 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 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 을 얻으리니
4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악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 승리와 그의 나라가 완전히 사는 것 보기를 사모 하여 의롭고 바른 일하기를 갈망하는 자들을 말한다. 배부를 것임이요 의를 구하는 곳에는 영혼의 평안함이 있으며 그 완벽한 영혼의 만족이 바고 신앙의 대가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5복 긍휼히 여기는 자. 예수께서는 저가 자신들의 고통을 참을 준비가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 의 고통까지도 자기의 것으로 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또한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이 불운에 처해 있을 때 도와주며, 시련당할 때 그들과 어께를 같이하는, 한마디로 그들의 상황에 참여하여 그 들로 하여금 부담없이 도움을 청하게 하는 자들을 가리켜 ‘복이 있다’고 부르고 있다. 긍휼히 여김 을 받을 것임이요 인간을 긍휼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을 자격을 갖춘 자 이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긍휼이 반드시 필요하다.
6복 마음이 청결한 자. 헬, ‘카르디아(마음)’은 5:3의 ‘프뉴마티(심령)’와는 달리 정신, 의지, 감정까지를 포함한 인간 존재의 중심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청결(헬, 카다로스)’의 핵심은 탐욕과 두 마음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기려는 마음)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7복 화평하게 하는 자. 이 말은 ‘화목을 사랑하는 자’란 뜻으로 하나님과 화평한 자들이나 또한 불화한 자들 사이에 화목을 가져다주기 위하여 그들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는 자들을 가리 킨다.
8복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고통을 당하는 자들, 즉 우상에게 절하 거나 불의와 타협하기를 거부한 일로 고통당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상기시 키고 있는 바와 같이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 후 3:12)는 말과 같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그러한 자들에게는 예수께서 ‘영원한 나라’의 시민 권을 소유할 권세를 주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 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
II. 누가복음 6장 17-49절의 평지 수훈
지금까지(4:14-6:16) 누가는 예수의 제1차 갈릴리 사역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예수의 제2차 갈릴리 사역(7:1-8:56)에 대하여 증거하기 앞서 그분께서 행하신 위대한 설교를 소개하고 있다. 한편 이 같은 설교는 마태도 그의 복음서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곧 ‘산상수훈’으로 불리는 예수의 유명한 설교(마 5-7장)이다. 하지만 본서와 마태의 기록 사이에는 내용상 약간의 차이점이 발견되고 있으며, 말씀의 배경이 되는 장소 역시 차이가 있다. 즉 마태는 예수께서 설교를 행하신 장소를 산 위(마 5:1)로 소개하고 있는데 반해, 누가는 ‘평지’(17절)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자들 중에는 마태복음의 ‘산상수훈’과 본서의 말씀을 구분 짓기 위하여 편의상 ‘평지수훈’으로 부르는 자들도 있다. 이 같은 평지수훈은
① 축복과 저주(20-26절)
② 원수에 대한 사랑의 법(27-36절)
③ 비판에 대한 교훈(37-42절)
④ 행위의 증거인 열매(43-45절)
⑤ 지혜로운 건축자와 어리석은 건축자(46-49절)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본 설교가 복 받을 자에 대한 언급으로부터 시작하여 지혜로운 건축자와 어리석은 건축자에 대한 언급으로 끝나는 점에 있어서는 ‘산상수훈’과 동일하다. 그렇지만 마태가 비교적 한 곳(마 5-7장)에 예수의 설교를 모아 놓은 것에 비해 누가는 예수의 말씀을 여러 곳(11:2-4; 12:58-59; 13:26-27; 14:34-35; 16:17)에 분산시켜 놓고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이와 같은 설교를 단 한 번만 하셨는지 아니면 유사한 내용의 설교를 기회 있을 때마다 반복하셨는지에 대하여서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성경의 정황을 살펴보건대 예수께서 비슷한 내용의 설교를 여러 차례 행하신 것으로 보는 편이 무난하다.
이러한 차이점에 대하여 간략히 정리하여 도표로 나타내 보면 아래와 같다.
마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눅 6: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 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산상 수훈과 평지수훈의 비교
(눅6:20-49)
1. 산상 수훈과 평지수훈
누가복음 6장 20졀에서 49절가지와 마태복음 5-7장은 다 같이 예수께서 제1차 갈릴리 사역 기간 (A.D.27-28년경) 중에 갈릴리 지역에서 행하신 일련의 설교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마태는 예수께서 이 설교를 택하신 장소를 ‘산 위’ (마 5:1) 로 소개하고 있고, 누가는 ‘평지’로(6:17) 소개하고 있다. 이에 학자들은 편의상 마태의 기록과 누가의 기록을 구별하기 위하여 마태의 것은 산상 수훈(山上 垂訓)’ 누가의 것은 ‘평지 수훈(平地垂訓)’이라고 일컫는다.
한편 누가의 평지 수훈은 원래는 본문에 기록된 내용만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편의상 눅 11-16장에 흩어 기록된 주의 교훈 중 마태의 산상 수훈과 병행하는 내용들까지도 포함하여 설명하도록 하겠다.
2. 산상 수훈과 평지 수훈의 차이
마태복음의 산상수훈과 누가복음의 평지수훈은 대부분 병행을 이루고 있으나 내용의 배열 순서나 용어 및 내용상 다소 차이가 있다.
특히 마태는 산상수훈의 내용을 한 곳에 모아 둔 반면에 누가는 일부 핵심 내용만 본문에 집중 기록하고, 기타 평지수훈의 많은 내용들을 눅 11-16장에 흩어서 기록하고 있다. 또 그나마 흩어져 있는 내용들을 모두 모아도 누가가 기록한 양은 마태의 것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학자들은 예수께서는 산상수훈 집회 같은 대설교집회를 몇 차례 가지셨으며, 산상수훈에 기록된 여러 교훈들을 기회 있을 때마다 거듭 강조하셨다고 본다.
그런데 마태는 이것을 산상수훈으로 한 곳에 모아 집중 기록한 반면 누가는 그 핵심 내용들을 따로따로 주어졌던 때나 각 문맥에 따라 분산 배치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누가가 흩어서 기록한 내용 가운데 그 교훈이 위치한 문맥의 흐름에 따라 마태가 제시한 것과는 다른 의미들을 가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3. 산상수훈과 평지수훈의 병행 기사
산상수훈과 병행 기록하고 있는 누가의 기록을 도표로 정리해 보도록 한다.
4. 평지 수훈과 산상 수훈의 단독 기사
가. 평지 수훈
마태의 산상수훈에는 나타나지않으나 누가의 평지 수훈에만 나타나는 내요에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1) 세상에서 부요하며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자들에게는 화가 임하리라는 내용이다. 9눅 6:24-26). 이것은 누가가 팔복 중 첫째 복을 기록 할 때 마태와는 달리 ‘심령이’라는 단어를 빼고 단순히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한 사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교훈이다. 이것으로 볼 때 누가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굶주리고 고통받고는 사람들에 대하여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으며, 제자가 스승만큰 온전케 될 것을 권면하는 내용의 기사이다.(눅 6:39-40). 마태는 이 내용을 산상수훈이 아닌 다른 곳에서 기록하고 있으며 그 의미도 조금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마 10;24-25, 15:14)
나. 산상수훈
유대인들을 독자로 하는 마태는 산상수훈에서 모세 율법 가운데 5개 율법과 바리새인들의 종교 규례에 관한 가르침을 예수님의 교훈과 대조하여 보여 줌으로써 예수님이 구약 성경의 완성자이시며, 그의 가르침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보다 훨씬 우월함을 증거하고 있다.(마 5:17,19-24, 27-28, 31, 33-39, 41, 43, 6:1-8, 16-18).
그럼에도 이방인들을 독자로 하는 누가가 유대적인 색채가 짙은 이러한 내용들을 기록하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즉 누가는 구약적인 배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구약 율법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기 보다는 이방인들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예수님의 구속의 복음과 교훈을 집중적으로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5, 결론
이상의 산상 수훈과 평지 수훈의 비교를 통해 우리는 마태와 누가의 복음서 기록의 특징들을 비교해 보았다. 그리고 두 복음서 기자가 예수의 가르침을 기록하되 기계적이고 획일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독자의 특성과 상황을 잘 반영하여 기록한 사실도 발견한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이러한 성경 저자들의 관심과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여야만 성경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랜드종합주석 누가복음 6장 pp154-156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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