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회개하시고 성령으로 거듭나시기를 구하십시오.
백 번, 천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을 빼고서 믿음과 은혜를 논하는 것은
기본 뼈대도 없이 집을 짓자고 하는 것과 같은 소리입니다.
성령으로 회개하여 거듭나지 아니하면
어느 누구도 절대로 천국 문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에게 혹은 나 스스로 믿음 좋을 것이란 생각은
버리십시오.
모든 평가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고, 주님이 하십니다.
거듭난 사람은 어떤 상황이 와도 사람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과 나와의 그 일대일 관계에만 충실합니다.
사람의 시선보다 주님의 시선을 훨씬 두려워합니다.
하여, 혼자 있을 때 더 주님을 의식하고 바로 서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역사로 이루어집니다.
입으로는 믿음을 말하고 구원받았다고 외치지만,
그 사람의 언행 그리고 댓글 다는 것만 봐도 금방 분별 됩니다.
그 믿음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분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성령님과 연합된 분들은 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달고 다닙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은은한 영적 향기가 주변을 채웁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 가지고 거듭났다 여긴다든지,
믿음이 남들보다 좋다고 여긴다든지,
자신은 이미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든지,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서슴없이 확신합니다.
교회에서도 구원을 확신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다고 단죄합니다.
이런 분위기 탓에 막연하게 믿음을 좋게 보이려고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거의 결정된 것처럼 말합니다.
이는 아주 위험천만한 현실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는데도,
혹은... 거듭난 자에게 보이는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자연스럽게 나타나지도 않는데도
분위기에 이끌려 막연하게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믿음과 은혜로 구원받았을 거라 장담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대속과 보혈 피는
간절히 회개하여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에게 맞춰진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상당한 영적 논리가 숨어있습니다.
믿음과 거듭남과 구원을
식은 죽 먹기식으로 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육체적 생명이 태어날 때는
반드시 두 개의 유전자가 필요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아메바처럼 혼자 자가증식하지 못합니다.
남자와 여자라는 두 생명체가 반드시 연합되어야 합니다.
좀 더 생물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정자와 난자가 꼭 있어야 합니다.
난자 홀로도 안 되고, 정자 홀로도 생명은 잉태되지 않습니다.
난자는 정자를 만나야 수정되고
비로소....... 아름다운 생명체로 거듭납니다.
이것이 육체적 생명의 탄생이고 시작입니다.
난자는 정자를 만나지 못한다면 죽어서 밖으로 버려질 뿐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첫 번째 탄생인 육체적 탄생입니다.
그러나
이 첫 번째 탄생은 완벽하지 못하여 그대로 두면 육이 죽을 때
영혼도 같이 멸망하여 사망(지옥)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영적인 탄생이 중요합니다.
이 영적인 탄생은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을 만나지 못하면 내 영은 그대로 버려집니다.
마치 난자가 정자를 만나지 못하면 죽어서 밖으로 버려지듯 말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머리로 성경을 아는 지식이 아닙니다.
완전히 나 자신이 영적인 존재로 바뀌는 과정이 있어야
두 번째 탄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즉, 정자와 난자가 만나듯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과 내 영이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난자가 정자를 만나 육체적 탄생이 시작되듯,
우리의 영은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을 만나야 영적인 잉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가지라면 포도나무 줄기에 접붙임 당해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정자와 난자가 연합되듯,
성령님과 우리의 영이 연합되어야 영적 탄생이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면 수정되고 세포가 증식되어 사람의 모양을 갖춰가듯,
우리의 영이 성령님과 수정(접붙임, 연합)되어야
믿음이 영적 세포분열 하면서 성장해가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커갑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거듭난 자)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 4장 13-14절)
성령님과 수정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성경 지식과 경험만 쌓여갈 뿐이지 영적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성령으로 연합되었을 때 위력을 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절대적인 현상입니다.
내가 성경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데,
내가 교회 오래 다녔는데,
내가 장로인데,
내가 목사인데,
내가 권사인데,
내가 집사인데,
다 필요 없습니다.
성령님과 수정(연합)되지 않으면 다 소용없는 것들입니다.
즉, 성령으로 진실로 회개하여 거듭나지 아니하면
육으로만 보는 그 많은 경험과 지식은 휴짓조각에 불과합니다.
믿음의 개념은... 진실로 성령님과 연합되었을 때 쓰이는 말입니다.
그 후부터 믿음의 시작이고 그 믿음이 그분의 이끄심으로
점진적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입으로 아무리 주여주여 외쳐본들 그분과 연합되어
올바른 믿음의 길을 가지 않으면 주님은 다 모른다 하실 겁니다.
그러므로
지식과 입으로만 믿노라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즉, 꼭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을 받기 위해 구하고, 두드리고, 찾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막연하게 교회당만 다니면 구원받을 거란 기대는 접으십시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주님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나의 자아와 세상의 오물을 모두 십자가에 못 박히길 결단해야 합니다.
온전히 내 인간적인 욕심과 기질을 다 버리길 결단하십시오.
그렇지 아니하면 성령님은 나에게 오시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듯,
우리 역시 모든 세상의 악한 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비우는 과정이 있어야 주님은 기뻐하시며
우리와 연합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변화되지 아니한 사람들이 그저 교리적 이론만 앞세우며...
내가 아닌 주님이 나의 모든 것을 견인한다고 외칩니다.
그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장 5절)
그러나 그분과 연합되지도 않았으면서 자기 자아가 요구하는 대로
스스로의 길을 가면서도
주님이 견인한다고 속는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런 현상은 아주 위험합니다.
삶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와 성령의 열매(주님 성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나를 견인한다고 합니다.
믿노라 혹은 구원받았노라 하면서 육신이 요구하는 대로 삶을 산다면
이방인들로부터 그게 믿는 자의 모습이냐고 하면서 놀림만 당합니다.
나의 그릇된 삶조차 주님께서 견인한다고 착각할 수 있고,
육적인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데도 성령님이 견인한다고 하면
이것은 아무 상관도 없는 주님을 욕 먹이는 짓입니다.
자기 행할 대로 하면서
성령께서 견인한다고 스스로에게 속지 마십시오.
성령을 받았나 받지 않았나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대입하여 보십시오.
내가 과연 주님이 가르치신 말씀대로 살고 있나 아닌가 확인하십시오.
내가 늘 거룩한 예배의 삶을 살고 있나 스스로 확증하란 것입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고린도후서 13장 5절)
예수님께서 구원받는 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그 길은 협착하여 찾는 이가 매우 적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무조건 그런 것입니다.
내가 성령으로 거듭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산다면
반드시 이방인으로부터 핍박이 들어옵니다.
조롱이 아닌 핍박입니다.
조롱은 나에게 직접적인 위해가 안 되지만, 핍박은 바로 위해가 됩니다.
조롱은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들이 받는 비아냥이고,
핍박은 거듭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들이 겪어야 하는
내 삶에 직접 치고 들어오는 고난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은... 세상이 요구하는 삶과는 반대이기에
반드시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어있습니다.
내 삶이 세상과 충돌하지 않고 세상의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면 내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믿음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채우기 위해
광야로 몰아가신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견인한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를 견인하여 연단시키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런 것을 성령님에 의한 견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별 탈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견인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글을 마무리합니다.
육체의 태어남이 정자와 난자가 연합되지 못하면 생명이 태어나지 못하듯,
우리의 영이 성령님과 연합되지 못하면 우리는 살았다 하나 죽은 자가 됩니다.
교회에서 봉사와 사명도 좋지만 먼저 성령님과 연합되기를 구하십시오.
성령님과 실질적으로 연합됨이 없는 교회당 생활은 세월만 낭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때가 거반 되었습니다.
사람에 따라 불의의 질병과 사고로 갑작스런 개인적 종말도 올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성령님을 구하십시오.
간절히 두드리고 구하고 찾으십시오.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런 자녀에게는 성령을 거저 주신다고 말입니다.
부디,
그리스도의 영과 연합되지 못한 영적 무정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과 연합된 영적 유정란이 되어 새 생명으로 거듭나십시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
랑별파파(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출처: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온라인 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랑별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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