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백성이 지닌 모습 창23:1-11, 벧전2:9-12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올바르게 인식하는 일은 참 중요합니다. 그것은 그 존재에 맞는 삶으로 살아가도록 요구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힘도 주기 때문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쓴 「백범일지」에 보면 그의 두 아들 인과 신에게 보내는 글에 김구 선생은 우리는 안동 김씨로 신라의 경순왕의 혈통인데 조선시대의 문(文)을 존중하고 무(武)를 천히 여기는 풍습 때문에 완전히 상놈이 되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도진순 주해, 22-23). 김구 선생이 그의 두 아들에게 가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야기하는 의도는 그 존재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처음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고 교회가 세워지고 난 후부터 이 땅에 살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자에 대한 특별한 기대감, 또는 기대심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신자들이 특별한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창기의 우리나라 기독교 신자들은 주로 일찍 서구문물을 받아들인 지식인들이었는데, 그 중에 조만식, 안창호, 이승만, 주요한, 남궁억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애국자들이었고 특별한 방식의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들과 함께 대다수 신자들은 우리 국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은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하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친절하고 상냥하다’, ‘어떤 일을 맡겨도 믿을만하다’, ‘약속을 잘 지킨다.’, ‘자녀들을 잘 교육한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등의 이미지를 심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신자라는 존재에 합당한 삶의 양식입니다.
구약 본문은 아브라함이 사라의 장례를 치르면서 헷 사람들에게 보여준 모습과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어떻게 비쳐졌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약 본문에는 성도가 어떠한 신분의 사람인지와 그에 걸 맞는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늘 백성이 지닌 모습”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항상 나그네임을 기억하고 기회를 붙잡고 살아갑니다.
짧은 인생을 하루 소풍에 비유한 천상병 시인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말하며 자신의 삶을 하루 소풍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약4:14에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아침 안개는 햇빛이 비취면 곧 사라져버립니다. 인생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인생을 가리켜 “초로인생”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풀잎에 맺혀있는 이슬같이 잠깐이라는 뜻입니다. “오늘의 홍안 내일의 백골”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오늘의 예쁜 얼굴이 내일이면 흰 뼈로 변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한 결 같이 잠깐이라는 뜻입니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근처에 기자라는 곳에 유명한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피라미드 옆에는 사자의 몸에 사람 얼굴을 가진 석상(石像), 스핑크스라 불리는 괴물이 앉아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길가에 자리 잡은 이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내었다고 합니다. 수수께끼에 옳게 대답을 하는 사람은 살려 보내고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석상 스핑크스가 후다닥 삼켜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 수수께끼는 이렇습니다. “아침에는 네 다리로 걷고, 낮에는 두 다리로 걷고, 저녁에는 세 다리로 걷는 존재가 무엇이냐?”라는 것입니다. 이 수수께끼의 답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어려서는 엉금엉금 네 다리로 기어 다니고, 젊어서는 두 발로 우뚝 서 다니고, 늙으면 지팡이를 짚고 세 다리로 다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의 의미는 인생은 하루 같이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은 아침과 같고, 젊은 시절은 낮과 같고, 늙은 시절은 저녁과 같이 잠깐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 4절 말씀에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을 가리켜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라’했습니다. 남의 집에서 임시로 산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도 바로 왕 앞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표현하기를 ‘내 나그네 길의 세월...’(창 47:9)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도 자신의 영광스러웠던 삶을 가리켜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대상 29:15)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또 말하기를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시편103:15-16)라고 했습니다.
신약 본문 벧전2:11에서 사도 베드로도 말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정성을 다해 섬기며,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인생은 나그네라는 인식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나그네처럼 잠시 머물다 떠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거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신실한 성도는 이 사실을 늘 마음에 새기고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헛된 일에 마음을 빼앗겨 살지 않게 됩니다. 구원의 기회, 은혜 받을 기회, 세월을 아껴 주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할 기회를 붙잡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 모두 항상 나그네임을 기억하고 기회를 잘 붙잡는 자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돌아갈 하늘 본향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나그네의 삶이 끝난 후 돌아 갈 집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처럼 숙박업이 발달한 시대에는 나그네 생활도 편안합니다. 호텔의 생활환경은 가정집보다 훨씬 더 편합니다. 식사와 오락 운동시설 샤워 실까지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호텔이나 여관의 손님으로 머무는 동안은 이 좋은 시설들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편리합니다. 하지만 투숙객이 그 호텔을 떠날 때에는 모든 것을 두고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호텔의 소유일 뿐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그네에 비유된 인생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은 호텔이나 여관의 손님 같이 모든 것을 자유롭게 쓰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삶을 마치고 우리들의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로 갈 때에는 호텔의 투숙객처럼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딤전 6:7)라고 했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빈손으로 가더라도 돌아갈 집이 예비 된 사람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하늘 백성들을 위해 예비한 처소는 세상의 아무리 좋은 고급 호텔보다도 더 좋은 모든 것이 예비 되어 부족함이 없는 곳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수난 당하실 것을 예고하실 때 제자들은 마음에 근심하고 염려했습니다. 주님은 그러한 그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 하지 말라 내가 너희 있을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시며 위로 하셨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은 나그네 인생길에 구세주요, 선한 목자요, 믿음직한 동행자요, 공급자요, 친구가 되어주시고, 영원한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분입니다.
구약 본문은 아브라함이 평생을 함께 지낸 사라의 죽음 앞에서 인간적인 정으로 슬퍼하며 애통하였으나 장지를 구하기 위해 헷 족속에게 가서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의 상속자로 인정받은 족장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나는 나그네라고 한 것은 그의 기업이 단지 이 세상에 것만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11:13-16) 했습니다.
우리가 만일 돌아갈 본향이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쌍하고 허무한 인생이 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9)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데,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세상 것들을 포기해야 될 때도 있고, 손해 볼 때도 있고, 시간, 물질, 노력, 정성을 들여야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늘 본향에 소망을 두고 사는 성도들은 이런 것들이 장래에 보화를 쌓는 것인 줄 알기에 기쁨으로 감내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 돌아갈 하늘 본향에 소망을 두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성도의 존귀한 신분을 알고 신분에 걸맞게 구원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구약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아내의 묘실을 위해 헷 족속을 만났을 때 그들은 6절에 보면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 좋은 것을 택하여 죽은 자를 장사 하소서.”했습니다. 헷 족속이 얼마나 아브라함을 존경했으면 이렇게 말하면서 11절에 매장지 모두 그냥 다 가져가라는 것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겸손히 몸을 굽히며 댓 가를 지불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막벨라 굴을 매장지로 구할 때 무상으로 얻을 수 있었지만, (6,11절) 정당한 값을 지불했고 당시에 매매절차가 많은 증인 앞에서 구두로 행하여 졌기에 공적 모임이 잦은 성문에서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확실하게 자기의 소유지로 구입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사람 보다 하나님만을 신뢰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과 달리 사람의 인심은 좋다가도 후에 불리하면 마음이 변할 수도 있는 것을 알았기에 증인들이 보는 앞에서 댓 가를 지불하고 확실한 소유지로 삼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았던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법적인 방법으로라도 자기의 유익을 얻겠다고 아우성치는 이 땅에서 그냥 다 가질 수 있는 것도 정당한 값을 지불하는 깨끗한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습니까?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앞세워 부정한 방법으로 치부하다가 그것이 백일하에 들어나면서 질타를 받고 쫓겨나는 추한 모습을 보게 됩니까? 주님은 성도들을 향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하셨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편지’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신약 본문 벧전2:9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은 어떤 신분의 사람이며, 어떤 특권을 부여받은 자들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이러한 신분임을 바로 알고 행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로 살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신분의 사람이기에 11절에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육체의 정욕’은 죄악 된 인간의 본성을 말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사도 요한이 쓴 요한1서 2:16에 죄악 된 세상을 가리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죄악 된 정욕 혹은 본성은 때로는 물질의 욕구일 수도 있고, 성적인 욕구일 수도 있고, 권력의 욕구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 12절에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각자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여러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성도만이 가져야 되는 삶이 있는데, 높아지기보다 겸손히 낮아지는 자가 되고, 섬김을 받기보다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되며,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하며, 나의 유익 보다 남의 유익을 위해 사는 것이고, 남을 비방하고 훼방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나 보다 낫게 여기고 세워주는 자가 되어야 하고, 악한 행실을 버리고 선한 행실을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성도의 존귀한 신분을 알고 그 신분에 걸맞게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며 살다가 주님과 함께 영원한 영광에 이르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늘 백성이 지닌 모습”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항상 나그네임을 기억하고 기회를 붙잡고 살아갑니다.
◇.돌아갈 하늘 본향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성도의 존귀한 신분을 알고 신분에 걸맞게 구원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아멘.
<2023. 10. 06. 호현낙선>
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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