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2(마2:1-12)
천향추천 0조회 1223.10.12 05:38댓글
헤롯은 예수의 출생지를 알고자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소집한다.
이는 그들이 모세의 율법 곧 구약성경에 박식하기 때문이다.
헤롯은 처세에 노련하고 간사하며 평판에 민감한 자이다.
그래서 예수를 죽이기 위한 군대를 보내지 아니하고 동방의 박사들을 이용한다.
동방박사들을 조용히 불러서
“아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도 알려주도록 하라.
그리하여 나도 가서 경배하게 하라”
고 말한다(마2:8).
왜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왔는가?
별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유대 왕의 도성이 예루살렘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경륜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박사들이 베들레헴으로 향할 때 별이 홀연히 다시 나타난다.
그들은 별의 인도함을 받아서 예수께서 나신 집에 도착하게 된다.
그들은 집에 들어가서 아기와 모친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려서 경배한다(마2:11).
그러나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은 박사들과 동행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방의 권세자 헤롯의 자문관 노릇만 다하였을 뿐이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율법 아래에서 크고 먼저 된 자이다.
크고 먼저 되었다는 말은 모세의 언어이며 개념이다.
이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간의 어떠함을 규정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크고 먼저 된 자는 누구인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세워진 대제사장이다.
그러므로 대제사장만이 하나님의 처소인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다.
이스라엘 가운데서 가장 작고 나중 된 자가 누구인가?
유대 사회에서 죄인의 표상인 세리와 창기들이다.
이처럼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대제사장과 제사장, 레위인과 유대인, 이방인의 순서로 차등의 질서가 있었다.
이러한 차등의 질서는 하나님께서 가리신 휘장의 장벽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드리워진 죄 때문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크고 먼저 된 자는
대제사장과 장로들, 율법 선생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다.
그들 모두는 당시의 유대 사회에서 크고 먼저 된 자이다.
그들은 유대 사회에서 사회적인 특권과 지위, 안락하고 평안한 삶을 살았다.
따라서 그들은 율법 아래의 유복하고 풍족한 삶에만 관심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에 초점이 맞춰진 삶을 살지 않았다.
사회적인 지위와 명예만을 탐닉하는 삶을 살았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께 나아왔던 젊은 관헌의 경우가 잘 보여준다(마19:16-22).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말씀하신다(마19:30).
예수의 출생 장소에 대해서도 마태와 누가는 다르게 기록한다.
누가복음은 요셉이 다윗의 후손으로서 나사렛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구스도의 명령을 따라 호적을 하기 위하여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갔을 때 아내 마리아가 예수를 해산하여 구유에 뉘었다(눅2:1-7).
그때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다윗의 동네에 구주께서 나신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눅2:8-11).
목자들은 속히 베들레헴에 가서 구유에 누이신 아기를 보고 경배한 후에
천사가 전한 말을 요셉과 마리아에게 고하였다고 기록한다(눅2:16-20).
그러나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나신 것은
선지자가 기록한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한다(마2:5-6).
이처럼 마태는 예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하신 종말의 구원자이며 다윗의 후손 왕임을 강조한다.
예루살렘 근처 유대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다.
이는 갈릴리 지역에 있는 베들레헴과는 다르다(수19:15-16, 삿12:8-11)
특히 마태는 미가서를 인용할 때 미가서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는다.
그는 미가서 내용을 변형하여 인용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미가서의 예언을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메시야 성취 인용이다.
미가서 본문을 찾아보라.
미가서에서 말하는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이다(미5:2).
멸망한 나라 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은 초라한 작은 마을에 불과하다.
그러나 마태는 “작지 아니하다”고 변형하여 인용한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베들레헴은 작지 아니한 마을이 되었다.
이처럼 베들레헴이나 나사렛과 같은 마을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입는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되고 큰 것이 된다.
이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연관되어서 봉사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약의 하나님 나라와 선지자들의 말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덧입어서 하늘의 질서로 완성된다.
개혁신학(칼빈주의 신학, 장로교 신학)은
신구약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성령으로 영감이 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한다.
이는 액면 그대로 지켜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주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태는 미가서를 인용할 때 미가서 본문 그대로 인용하지 않는다.
미가서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니라”
라고 기록한다(미5:2).
그런데 마태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고 변형하여 인용한다(마2:6).
이처럼 미가서에서 베들레헴이 가장 작은 마을이라고 기록한다.
그러나 마태는 베들레헴이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다고 변형한다.
신구약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언약문서이다.
그런데 사도들이 구약을 인용할 때에는 구약 본문을 변형하여 인용한다.
이는 신구약에서의 구원 역사적이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에 베들레헴은 유대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었다.
그러나 이제 베들레헴은 유대에서 작은 마을이 아니다.
이는 천하 만민이 복종하는 천국 왕이 나신 마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베들레헴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그 위상이 높아져 있다.
마태가 미가서 인용을 통해서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따라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신 왕이라고 말한다.
그는 다윗 정도의 왕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유를 다스리시는 왕이라고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만유의 주관자라고 말한다.
따라서 모세가 전한 율법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구약성경이 말하는 바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종말에 하나님께서 율법 아래에 보내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라고 말한다.
박사들이 헤롯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을 향하여 나아간다.
그때 자신들을 인도하던 그 별이 다시 나타나서 예수께서 누이신 집 위에 머물러 섰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다.
그 별이 아기 예수께서 누이신 곳으로 인도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별의 인도를 받은 자들은 동방의 박사들이다.
별이 무엇인지 알기 위한 천문학은 성경 해석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셨다.
죄 아래에 있는 옛 백성과 세상을 붙드시고 경영하여 오셨다.
종말에는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이러한 구원 경륜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전지하심과 전능하심을 발휘하신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사용하여 자기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동원하신다.
따라서 별의 무엇인지는 마태가 말하고자 하는 초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박사들이 수준과 관심사에 맞춰서 별을 사용하신 것이다.
그들 삶의 환경과 관심사를 아시고 그들에게 맞는 계시로 예수께로 인도하신 것이다.
성경은 기록과 사실의 일치는 오류가 없는 성령의 영감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구원 역사를 획기적인 새로운 단계로 진행하신다.
구원 역사에서 새로운 일은 이전의 빛으로 판단할 수가 없으며 다시 반복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예전에 이루어진 일을 다시 확인할 수가 없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언약서이다.
성경은 신구약 백성의 본질과 위치에 맞게 체결된 언약서이다.
따라서 신구약 성경은 신구약 백성의 본질과 삶의 질서가 무엇인지를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인인 사도로부터 신약성경을 받았다.
우리는 성경의 기원을 탐구할 위치에도 있지 않다.
박사들은 아기와 어머니 마리아가 있음을 보고 아기께 경배를 드렸다.
마태복음에서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활동을 여러 번 언급한다.
그러나 요셉은 박사들이 아기에게 경배하는 장면에서는 철저하게 배제된다.
또 아기와 그 어머니를 한 단어처럼 사용하며 기록한다.
이는 아기 예수께서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마리아를 통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2:11).
어떤 이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수의 삼중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애굽의 피난 경비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해석들은 마태복음에서 예수의 탄생기사 문맥과 무관한 자의적인 생각이다.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께 경배하고 그 왕께 합당한 귀한 예물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린 것이다.
이는 동방지역 출신인 박사들의 삶의 상황과 그들의 눈높이에서
유대인의 왕에게 합당하다고 생각하여 예비한 예물이다.
이는 당시에 왕에게만 진상할 수 있는 가장 귀한 물품이 아니었나 라고 생각되는 예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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