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있는 모든 자와 빚진 자 파울 (백대영 목사)
로마서 1장 1~17절은 로마서 서문(opening)입니다.1) 로마서 1장 1~17절은 세 부분으로 단락을 나눌 수 있습니다.
1~7절은 발신인과 수신인을 밝히는 부분으로 전에 살펴보았습니다.2) “서”가 편지라는 뜻이잖습니까?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것입니다. “수신인”은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8~15절은 감사와 이유(occasion)를 밝히는 부분입니다.3)
16~17절은 로마서의 주제(theme)입니다.4)
이 중에 오늘 본문은 “감사” 부분입니다. 그리스어 편지들 “서문”에 자주 신(神)들에 대한 감사가 있었습니다. 파울도 그의 편지의 앞부분에 자주 감사와 기도를 포함하였습니다.5)
1. 파울은 로마 안에 신자들에 관하여 감사하였습니다.
로마서 1장 8~15절에 “내가 나의 하나님께 너희에 관하여 감사하니, 너희의 믿음이 그 온 세상 안에 포고되고 있기(being)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나의 증인이시니 그에 내가 나의 영(spirit) 안에 섬기니, 얼마나 끊임없이(how unceasingly) 너희의 회상을 내가 만드는 것이라.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뜻 안에 너희를 향해 오기에 성공하기를 요구하니. 이는 내가 너희를 보기 위하여 간절히 바람이니(long to see you), 너희를 확립하기 위하여 내가 어떤 영적인 은사를 나눠주기 위하여서나. 이것은 서로 너희와 나의 믿음을 통해 너희 안에 함께 격려되려 함이나. 너희를 향하여 왔기에 내가 자주 계획한 것을 모르기에 원하지 아니하고 내가 지금에까지 방해함을 받았으니(have been prevented), 남은 이방인들 안에처럼 어떠한 열매를 너희 안에도 가졌기 위하여서라. 내가 그리스인과 야만인과 지혜로운 자들과 어리석은 자들에 빚진 자라. 나는 로마 안에 너희에게도 좋은 소식을 전도하기에 열망하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8절은 “첫째로”, “먼저”라는 용어(프로톤)로 시작됩니다. 파울은 먼저 그의 하나님께 로마의 성도들에 관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가 “먼저”만 말하고 “다음으로”는 말하지 아니하는 것이 특이합니다.
먼저 파울은 그의 하나님께 예수 크리스트를 통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파울은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누구의 하나님? 남편의 하나님? 부모님의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 아니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의 하나님, 이것을 좀 들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내가 평소에 친밀한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셈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으로 구약성경에 처음 쓰였습니다(창 9:26).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하나님과 땅의 하나님”이십니다(창 24:3).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종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셨고(창 24:12),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알려 주십니다(창 26:24).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이십니다(창 28:13). 야곱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의 하나님”으로 지칭하였습니다(창 31:5). “나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라반이 “드라빔”에게 처음 씁니다(창 31:30). 야곱은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창 32:9). 요셉은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으로 지칭하였습니다(창 43:23).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도 “너의 아버지의 하나님”이 되셨고(출 3:6),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셨습니다(출 3:18, 5:3).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지칭하십니다(출 20:10). 야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하나님’이셨습니다(출 24:45).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뒤에 “이스라엘 왕국”을 건국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왕국은 나라가 남북으로 둘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북쪽의 왕국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으며 남쪽의 왕국은 유다 지파의 이름을 가져와서 “유다” 왕국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상들을 예배하였다가 아시리아 제국에 멸망하였습니다. “제국”은 “왕국”보다 더 큰 것인데, 성경에 보면 5개의 제국이 나옵니다.
맨 처음 이스라엘은 강대국 “이집트”의 노예가 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탈출시키셨는데 출애굽기에 기록되었습니다.
그 후에 어떤 제국이 있냐 하면 “아시리아”라는 강대국이 있었습니다. 북쪽 왕국 이스라엘은 이 아시리아에 멸망한 것입니다.
남쪽 유다 왕국도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들을 섬기다가 망하게 되는데, 유다 왕국은 “바벨론” 제국에 멸망한 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70년이 지나고서 “페르시아”라는 제국이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켰는데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유대인을 그 고향에 돌아가게 허락한 것입니다.
그러자 돌아가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한 자들은 고국 땅에 돌아옵니다. 그들은 돌아와서 집을 짓고 성벽을 쌓고 성전을 재건축하고 살았습니다.
그 후에 몇백 년이 지났고 이번에는 “로마”라는 제국이 생겨났습니다. 로마가 그 지역을 비롯한 서아시아, 유럽 지역을 모두 정복한 것입니다.
예수님 태어나신 당시에 유대인들은 로마의 속국이 되고 만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 당시에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는 민족이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다스리는 왕은 에돔 사람인데 그는 에서의 후손인 것이며, 그의 이름은 헤롯이었습니다.
헤롯이라는 사람이 로마에 가서 황제에게 유대인의 왕권을 받아 왔고, 그가 팔레스타인 땅에 와서 왕이 되어서 다스린 것입니다.
그 왕이 헤롯 대왕이며, 헤롯 대왕 때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헤롯이 죽고서는 헤롯의 아들들이 팔레스타인을 나누어서 다스렸으므로 그들은 왕으로 불리지 않고 “분봉왕”으로 불렸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 세금을 바치는 행위가 옳은지 물었는데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행위가 옳은지 물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속국인 까닭에 로마에 세금을 바쳐야만 한 것입니다. 마침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으로 박아 죽이고 만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며, 그들의 종교는 유대교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로마를 잘 섬기고 세금을 잘 바치고 그랬다면 괜찮았겠죠! 그런데 ‘우리가 독립해야지’ 그러면서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 군대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유대인들은 철저히 망하고 세계 각지로 흩어진 것입니다. 나라가 멸망했기 때문에 유럽 지역으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유럽 사람들하고 같이 살며 결혼해서 피가 섞인 것입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어떻습니까?
원래 유대인은 중동 사람들처럼 우리처럼 이런 피부 색깔을 가졌는데, 지금 유대인들의 피부 색깔은 백인하고 별로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원더우먼”이라는 영화가 있고 구 주인공이 “갤 가돗”이라는 여자인데 그 여배우 프로필을 보면 국적이 “이스라엘”입니다.
국적을 모르고 그냥 영화 보면 미국 사람이겠지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야벳 계열의 백인들과 거의 똑같이 생긴 것입니다.
그들이 오늘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아브라함의 피가 남은 것입니까? 피가 10% 남아 있는지, 20% 남아 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피가 백인들과 완전히 섞였으므로 백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까?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 그래서 하나님의 원수 된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이 2천 년간 유럽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피가 섞이었습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각지에 천만 명의 인구수를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유대인, 혼혈 유대인들을 가리켜 “아슈케나짐”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아슈케나짐”은 동유럽(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에 정착했던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6)
디아스포라 이후 유럽에서 천 년을 넘게 살면서 대대로 혼혈을 거쳐서 외모는 유럽 백인과 별 차이가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7)
아슈케나짐이 전체 유대인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에서 살던 아슈케나짐 후손들입니다.8) 그들은 다른 나라들에 살면서 후손들이 다른 민족들과 피가 섞였습니다.
전 세계의 유대인들 가운데 90% 가까이 차지할 만큼 절대다수였으나, 홀로코스트로 인하여 그 수가 80%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고 합니다.9) 여전히 오늘날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다섯 명에서 네 명에 해당합니다.
“아슈케나짐”이라는 명칭은 성경 속의 창세기·예레미야에서 등장하는 고메르의 아들 “아쉬크나즈”(Ashkenaz)의 이름에서 나왔습니다.
11세기 유럽 영주들은 집단 유대인들(게토)을 성경 단어들로 불렀는데 라인란트 일대의 유대인들에게는 “아쉬크나즈”(אַשְׁכְּנַז)의 이름에서 따온 “아슈케나짐”이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창 10:3, 렘 51:27).10)
이 “아슈케나짐”이라는 명칭은 전 유럽 상류층에게 퍼져 나가게 되고, 서유럽 전역에서 유대인들을 “아슈케나짐”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11)
이 사람들이 세계의 각지에 흩어져서 살았고 자기 나라가 없었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그 기술력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빌붙어서 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특히 금융 계통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유대인들은 프로이센 왕국에서 은행업이나 주식 시장으로 진출하였고 프로이센 금융업, 주식매매 등에 종사자 중 1/5이 유대인이었습니다.12)
그들이 팔레스타인에 땅을 사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만들었는데 팔레스타인 땅을 하나씩 하나씩 사서 이스라엘의 영토를 넓히게 됩니다.
고조할아버지가,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여기 살았는데, 땅을 다 뺏어가면 팔레스타인 사람이 화나겠습니까? 화 안 나겠습니까? 당연히 화가 나겠죠!
할아버지도 여기서 살고 아버지도 여기서 살았고 나도 여기서 사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자기 조상이 살았던 집이라면서 집 내놓으라고 그러면 집 내놓겠습니까? 안 내놓겠습니까?
그렇게 하니까 팔레스타인 사람하고 자주 싸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뒷배경에서는 미국과 이란의 싸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100% 아브라함의 핏줄인 것이 아닙니다. 다른 민족과 피가 섞였거나, 아브라함의 핏줄이 전혀 아닐 수 있습니다.
아슈케나짐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자손하고는 거리가 멀며 육체적으로 아브라함의 혈통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백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국명을 쓰고 있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요?
그러면 그들이 영적으로 “이스라엘”입니까? 그렇게 불릴 수 없습니다. 파울은 육체의 할례가 참 할례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바로 영적으로 이스라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으십니다.
만일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동을 해야 할 것인데, 아브라함은 메시아의 날을 기대하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았으며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이라는 국명으로 사는 자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도 참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이라는 국명을 가진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만 같을 뿐, 참 이스라엘과는 무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시라, 그들과 원수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들은 하나님과 원수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시라 우리의 하나님이신 분이시며 참 이스라엘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파울에게 친한 관계 속에 있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고, 여러분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 가능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와 수단과 원인(through)이신 분이십니다.
파울은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 “모든 너희에 관하여” 감사하였는데.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 안에 포고함을(proclaim)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울은 다른 신자들의 믿음 때문에 감사하였습니다.
“온 세상”(whole world)은 오늘날의 관점에서의 온 세상이라기보다는 로마제국 안의 온 세상을 뜻합니다. 로마제국의 수도에서 일어나는 일은 즉시 제국 안의 모든 지역에 널리 퍼졌을 것입니다.
사도 파울의 기도 내용은 사람들의 믿음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었는데,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포고되기 때문에 파울은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로마서 1장 9절에 보면 파울은 하나님께서 그의 증인이시라고 말하며, 파울은 “그 하나님께(whom) 내가 섬기노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그의 영(spirit) 안에(with) 섬긴다고 말하였습니다(롬 1:9).
이처럼 하나님께 섬기는 것은 진지한 섬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13) 우리는 우리의 가장 내면적인 인격의 지정의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9절의 “항상 내 기도에”라는 말은 원어에 10절 앞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것은 10절 끝의 “요구하다”라는 용어와 연결하여 읽는 것이 좋습니다. 파울은 항상 그의 기도들에 요구하고 있습니다(롬 1:10).
파울이 로마의 성도들을 방문하려는 욕구는 오래 계속된 것입니다.14)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은 한계나 표준을 뛰어넘는 믿음입니다.15)
2. 파울은 로마 안에 신자들을 보고자 갈망하였습니다.
로마서 1장 11절에 “이는 내가 너희를 보기 위하여 간절히 바람이니, 내가 어떤 영적인 은사를 나눠주기 위해서라.”라고 기록하였습니다.
1장 12절에 파울은 이것을 서로 함께 격려되기 위한 것으로 말합니다. 파울은 서로 안위함을 얻기 위해 영적인 은사를 나눠주려고 하였습니다. 받은 은사들이 서로 다르기에 영적인 은사를 나눠주면 함께 격려됩니다. 파울은 그들과 자신의 믿음을 통하여 서로 함께 격려되고자 하였습니다.
1장 13절에 그는 그들이 모르기 원하지 아니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주 그는 그들을 향하여 오기에 계획하였으니(지금까지 방해되었노라), 열매를 그가 그들 안에도 다른 이방인들 안에처럼 가졌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기 원하실 때 환경을 조성하십니다. 우리가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16)
파울의 경우는 아마도 그가 복음을 전하느라 바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쪽 일에 바쁠 때, 다른 쪽 일을 하는 것에 방해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가 다른 도시들에서 복음을 전하느라 로마에 갈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들 안에도 다른 이방인들 안에처럼 열매를 가지기 원하였으나, “열매”는 양적으로 많은 열매와 질적으로 좋은 열매를 모두 의미합니다. 숫자가 증가하는 성장과 믿음이 증진하는 성숙이 모든 필요한 것입니다.
3. 파울은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1장 14절에 “그리스인과 야만인,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에 내가 빚진 자라.”라고 파울은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그 자신이 모든 부류의 자들에게 빚진 자라고 말합니다(롬 1:14). 그리스 사람들과 야만인들, 지혜로운 자들과 어리석은 자들을 말합니다.
14절의 “야만인”은 그리스어가 아닌 말로 말하는 모든 민족을 뜻하며, 종종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그런 민족들의 문화를 암시하기도 합니다.17)
하지만 파울은 그와 같은 열등한 집단에서 유대인은 제외했을 것이며, 파울은 유대인 외에 이방인을 그리스인과 야만인으로 나눈 것입니다.18) 그리스인의 관점으로 “야만인”에는 유대인이 포함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 “야만인”이라는 말(바르바로스)은 “낯선 말”을 뜻하며, 그리스어를 쓰는 그리스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스 사람은 그리스어를 쓰지 않는 사람을 야만인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리스인들과 야만인들에게”라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를 뜻한 것이며, “지혜로운 자들과 어리석은 자들에게”도 이와 같은 의미로 보면 됩니다.
그는 이들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자신은 빚진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파울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사도 파울은 자기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빚은 갚아야 하는 채무입니다. 사도 파울은 의무감을 가졌습니다.
15절에 로마 안에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싶어 한다고 말합니다. 파울은 이와 같은 이유로 그들을 보기를 간절히 바랐던(long) 것입니다.
신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빚을 갚아야만 하는 “빚진 자”입니다. 파울은 로마 안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여기 “복음을 전하다”는 말은 개종을 목표 삼는 전도가 아닙니다.19)
이것은 처음 복음 전도의 후속 작업인 교육 및 제자 훈련을 뜻합니다. 여기에 교회가 뿌리를 내리기까지의 일련의 활동 전체가 포함됩니다.20)
그는 로마의 성도들을 방문하고자 하는 자신의 소망을 유지합니다.21)
그는 복음을 전하는 것을 최초의 전파에 한정하지 아니하였습니다.22)
그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기에 로마에 가고자 하였습니다.23)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미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에게도 필요합니다. “복음”의 내용 가운데는 크리스트교 신앙의 기본적인 내용뿐만이 아니라 성숙한 제자로 만들어지기 위한 훈련 내용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파울은 복음을 전하고 싶어 하였기에 그들을 보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우리의 로마는 어디입니까? 아들입니까? 부모님입니다. 친척입니까? 우리는 그들에게 “빚진 자”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싶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이런 소원을 마음에 품을 때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뻐하십니다. 성도들이여 주의 뜻 안에 여러분의 소원을 이룰 것입니다(찬송가 21장).
1)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W. B. Eerdmans, 1996), 33. 『NICNT 로마서』, 손주철 옮김 (서울: 솔로몬, 2012), 75.
2)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33. 『NICNT 로마서』, 75.
3)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33. 『NICNT 로마서』, 97.
4)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33. 『NICNT 로마서』, 108.
5)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33. 『NICNT 로마서』, 97.
6) https://namu.wiki/w/%EC%95%84%EC%8A%88%EC%BC%80%EB%82%98%EC%A7%90
7) 위 사이트.
8) 위 사이트.
9) 위 사이트.
10) 위 사이트.
11) 위 사이트.
12) 위 사이트.
13)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258.
14) James D. G. Dunn, 『로마서 1-8』, WBC 성경주석 38상, 김철·채천석 옮김 (서울: 솔로몬, 2003), 135.
15) 한병수, 『로마서에 반하다』 (군포: 도서출판 다함, 2021), 71.
1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7』, 249.
17) Moo, 『NICNT 로마서』, 105.
18) Moo, 『NICNT 로마서』, 105.
19) Dunn, Romans 1-8, WBC 38A, 34.
20) Moo, 『NICNT 로마서』, 107.
21) Dunn, 『로마서 1-8』, WBC 성경주석, 140.
22) Dunn, 『로마서 1-8』, WBC 성경주석, 141.
23) Moo, 『NICNT 로마서』, 102.
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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