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누가복음 13장 1~9절) 김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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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하면서 회개하는 행위는 백 번 천 번 반복해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제가 자주 힘주어서 강조하는 말씀이 “나는 100% 의인이며 동시에 100% 죄인이다”라는 두 가지 의식의 균형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100% 의인이라는 의식은,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인해 100% 은혜로 인해서 구원 받았으며,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님만 100% 믿는 믿음 안에서 그 구원의 확신을 절대적으로 붙들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00% 죄인이라는 의식은, 나는 구원 받은 의인 임에도 여전히 죄를 반복하며 짓고 있음을 인정(인식,자각)하고, 죄가 죄 됨을 깨닫는 순간 즉시로 그 죄들을 자백하며 회개와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내 몸과 마음과 생각을 성령님께 맡기고 죄와 죽기까지 몸부림치며 싸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인으로서 구원 받았다는 확신속에 내 믿음을 지켜 가는 것, 그리고 죄인으로서 참되게 회개하여 긍휼과 자비를 받으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믿음을 지키는 자와 회개하는 자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100% 의인, 100% 죄인 의식의 균형있는 신앙생활을 잘 지켜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회개하지 않으면 다 망한다는 말씀과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찍어버리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100% 의인, 100% 죄인과 잘 연관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씩 살펴 보면서 성령의 감동 주심으로 내 마음속에 의인과 죄인으로서의 균형있는 감각과 의식이 깨어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사건이 나오는 1~5절을 보겠습니다. 먼저 3절까지 읽어 드립니다.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아멘.
“그 때 마침” 이라는 말을 보십시오. 여기서 그때는 앞선 12장 54~59절에서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는 외식하는 자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자들, 빛을 갚지 않음으로 재판까지 이르렀으면서도 화해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말씀 하셨던 그 때를 말합니다.
즉, 종말이 이르고 심판이 곧 다가올 것임에도 회개하기는커녕 더욱 더 악해지는 인간 군상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던 바로 그 때에 마침 회개를 더욱더 요청하게하는 하나의 사건에 대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 중에 두어 사람이 총독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의 피를 제물에 섞었다고 말합니다. 피를 제물에 섞었다는 말은 실제로 제물위에 죽인 사람들의 피를 뿌렸다는 의미 보다는 제물을 드리는 성전에서 그들을 무참히 죽였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을 포함하여 제자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두어 사람이 이 말을 한 것은 잔인한 폭군 총독 빌라도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죽임당한 갈릴리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는 겁니다.
그들이 죽임 당한 것이 회개하지 않음과 연관이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지만 질문하는 자들의 속내에는 그들이 죽임당한 것은 자신들보다 그 죽임당한 자들이 훨씬 더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대답을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속 마음을 훤히 알고 계시는 예수님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죽임당하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질문한 사람들은 가슴이 뜨끔하고 매우 긴장되었을 겁니다.
예수님은 평소에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 즉 불순종을 죄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기본적으로 율법을 어기는 것만을 죄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죄에 대해서 생각할 때 과정을 건너뛰고 결과만을 가지고 논공행상을 벌였습니다. 죄에 대해서 과정을 점검하지 않으면 회개 행위의 중요성이 전혀 작동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죄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깨트려 주시려고 3절과 같이 말씀 하십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아멘.
“아니라” 라고 단호하게 말씀 하십니다. 빌라도에게 죽임 당한 사람들과 너희들을 비교해 보면, 그 죽임당한 사람들이 너희들보가 죄가 많아서 죽은 것이 결코 아니라고 하십니다. 너희들도 빌라도 근처에 있었다면 똑같이 죽임 당하는 해를 면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빌라도 가까이에 있던 갈릴리 사람들은 죄의 과정을 등한시하여 회개의 기회가 없었지만(회개의 중요성을 가르침 받고 돌이킬 기회), 너희들 에게는 나(예수님)로 인하여 죄의 과정을 바꿀 수 있는 회개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 죄의 결과는 망하는 것, 곧 죽음 뿐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죄를 가든 안은 채 죽는 것은 최대의 불행입니다. 그 죄들을 다 가지고 심판대 앞에서 사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죄를 보고, 깨닫고, 인정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죄를 진실하게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수시로 죄를 인정하고 빠르게 돌이키는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영생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길은 오직 예수 이름을 부르며 회개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입니다. 회개하면 영생의 길로,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 시간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현재의 시간 시간들은 회개의 기회를 주는 너무나도 소중한 기회입니다. 특히, “아니야 너는 100% 죄인이 맞아” 라고 말씀해 주시고, “잘들어 네가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는 길 뿐이야, 회개 과정을 생략하고 망하는 길로 갈래, 내 말을 듣고 회개하여 결말에 영생의 길에서 나를 만날래, 나는 기회를 분명히 주었어, 선택은 네 몫이야” 이런 말씀을 들을 기회를 얻는 자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시면 앞뒤전후 가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신 후에 회개 먼저 하는 것을 자동으로, 습관으로 몸에 배게 하십시오. 회개할 내용이 생각나면 조목 조목 다 회개 하시고, 내용이 생각나지 않으시면, 지난 시간 제 삶 속에서 지었던 모든 죄들을 회개한다는 고백을 진실 되게 드려 보십시오.
우리 주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겸비하는 자에게 용서의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이러한 삶이 반복되고 습관으로 사는 것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그토록 외치셨는지를 기억하시면 회개와 하나님 나라가 함께 있음을 잊지 않으실 겁니다.
회개에 대하여 이어지는 4, 5절 말씀을 읽어 드립니다.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아멘.
망대는 적을 감시하는 감시탑입니다. 실로암(연못)에 망대 공사를 하던 중 망대가 무너져서 18명이 죽는 사고가 났습니다. 사람들은 이 18명 역시 죄가 많아서 죽었다고 그 결과만을 두고 논평을 해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망대에 깔려 죽은 18명보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의 죄가 더하다(더 많고, 더 중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죽임당하여 했다면 지금 당장 예루살렘 성을 무너트려서 거기에 있는 사람이 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앞서 이야기 하신 동일한 말씀을 다시 한번 말씀 하십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아멘.
우리의 일반적인 감정으로는 “왜 악인이 형통함을 얻는가?”라는 불평과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악인이 벌을 달게 받는 것을 보면 “당해도 싸다, 더 당해야 되는데 처벌이 너무 약하다”라는 분노의 감정을 당연한 것처럼 표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을 지닌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천국의 예비된 백성으로서의 신분으로서 한 번 더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들의 이러한 감정선은 그야말로 결과만을 중시하는 유대인들의 사고방식과 다를바 없습니다.
이런 사고 방식에는 “나”를 전혀 대입 하지 않습니다. 형통함을 얻는 악인, 그리고 처벌 받은 악인의 행태가 곧 나 일수도 있다는 과정의 점검 과정은 생략 되고 그로 인한 회개 의식은 너무나도 희미하다는 말씀입니다.
100% 의인, 100% 죄인의식이 또 나와야 합니다. 나는 빌라도에게 죽임 당한 갈릴리 사람이나 망대가 무너져 죽은 18명의 사람 속에 포함 되었어도 한 마디 변병도 하지 못할 죄인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100% 죄인 의식입니다.
그런데 나는 갈릴리 사람들이 죽은 사건을 말하면서도,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의 사건을 말하면서도, 그 사건을 논평하고, 비평하고, 남의 이야기 하듯만 한다면 나는 100% 의인이라는 자만과 착각에만 빠져 잇기 십상입니다.
대개의 미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이런 믿음의 오류를 안고 있습니다. 나는 구원 받았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다, 나는 이미 충분히 다 했다고 안주하며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져 지냅니다. 천국은 그렇게 안일한 의식으로 대충 살다가 쉽게 들어가기가 허용 되는 곳이 결코 아닙니다.
100% 죄인이라는 의식이 없는 사람은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간과하는 일반인이나 똑 같이 되는 겁니다 회개의 기회를 스스로 차 버리는 어리석은 죄인이 되는 겁니다. 이러면 당장 죽음을 면했을 뿐이지 멸망으로 가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정말 여러분에게 진심어린 권면을 해 드립니다. 신앙생활에서 기도가 전혀 없다면, 회개가 전혀 없다면 그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구원 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성령 안에서 회개하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회개하는 것을 단 하루라도 멈추지 말고 지속해야 하며, 기도와 회개가 즐겁고 행복한 신앙 습관이 되도록 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주님 앞에 매 순간마다 무릎 꿇려야 합니다. 철저하게 복종 시켜야 합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우리 주님의 간곡한 명령의 말씀이 내 인생의 남은 시간 위에 던져진 기회의 말씀으로 붙잡으셔서, 더 기도하고, 더 회개하고, 진실하고 겸손한 자세로 내게 주신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 나라의 예비된 백성들로 소망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두 번째 이야기인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가 나무 비유 이야기 중에서 먼저 6, 7절을 읽어 드립니다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아멘.
이 비유에서 나오는 상징을 살펴 보면, 한 사람은 포도원 농장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열매는 회개를,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을, 그리고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을 각각 상징 합니다. 요한 복음 15장의 포도 나무 비유에서도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요 15:1)라고 하신 것과 유사 합니다.
농장의 주인 입장에서는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찍어서 뽑아 버리고 다른 나무를 심는 것이 당연 합니다. 그 무화과나무가 3년 동안이나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고 하니 이 나무를 그냥 방치해 둘 농장 주인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농장 주인은 포도원 지기에게 땅만 버릴 수 없으니 당장 그 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엄하게 명령 합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처럼 심각한 영적 기근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영적 기근을 해소할 유일한 방법인 회개와 돌이킴과 성령 충만을 구하는 회복의 기도를 전혀 드리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마음 밭이 얼마나 심각한 가뭄에 시달려서 쩍쩍 갈라지는 메마른 땅처럼 변했는지를 깨닫지도 못하고 심각성을 느끼지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나무를 찍어 버리라는 농장 주인의 명령에 포도원 지기는 이렇게 대답 합니다. 본문 마지막 내용인 8, 9절을 읽어 드립니다.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아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당장 뽑아 버리라는 명령을 막아서고 있는 분이 포도원지기로 비유 되는 예수님 이십니다. 포도원지기는 농장 주인에게 간청 하기를, 내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들을 특별 관리해서 거름도 많이 주고 잘 돌봐 줄 터이니 과연 다시 열매 맺는지, 맺지 않는지 한 번만 더 지켜 보시기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특별관리하여 잘 돌봐 주었음에도 열매가 좋지 않으면 그때는 찍어 버리셔도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한 번만 나무에게 열매 맺을 기회를 더 주십시오. 간절히 요청을 하였습니다.
무화과 나무는 당시의 완악하고 목이 곧은 이스라엘을 상징하지만, 이 시대에 회개하지 않음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모든 자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포도원지기 되시는 우리의 중보자 예수님 때문에 목숨이 살아 있는 겁니다. 사탄이 죄의 사슬로 우리를 결박하고 숨통을 조이는 것을 예수님이 물리쳐 주셔서 우리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게도 우리 스스로 죄를 다시 초청하고, 죄와 연합하고, 죄들 속에 푹 빠져서 스스로 숨통을 조이는 멸망의 길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불량품 무화과 나무가 되어 메말라 죽을 지경입니다. 당장 찍어 버림 받을 진노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당장 찍어버려진 채 뽑혀나가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지경이지만, 여전히 우리가 숨쉬고, 일하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올 수 있는 것은 “주인이여 금년에는 그대로 두소서”라고 우리의 영혼을 강력하게 지켜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찍어 버릴 위기의 대상이 나 자신 이라는 사실을 진짜 제대로 인식하고, 인정할 때 우리는 예수님이 특별히 살펴주시고 거름 주시는 믿음의 양분을 충분하게 흡수 할 수 있습니다.
찍어 버림 당하지 않는 보호의 손길을 받으며 다시는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겠다는 남다른 각오와 결심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면서 내 몸과 영혼을 거룩하게 지켜 가고자 최선을 다 할 때 드디어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사는 이 순간이 나의 운명이나 의지나 노력이나 열심히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에, 거름 주심 때문에, 금년에도 그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열매 맺지 못하면 즉시 찍어버려도 좋다는 우리 주님의 마지막 말씀도 깊이 새기고 간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건과 비유에서 빌라도에게 죽임당한 갈릴리 사람들, 망대가 무너져 죽은 18명의 사람들, 그리고 열매 맺지 못하여 뿌리채 뽑힐 처지에 놓인 무화과 나무 비유 들은 전부 다 영적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내 자신의 마음에 다시금 회개와 돌이킴의 각성을 촉구하시는 기회 주심과 강력한 명령의 말씀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들을 기회를 가진 자가 복이 있습니다. 듣고 순종하는 자는 더 복이 있습니다. 순종하여 열매 맺는 자는 더 더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여 믿음의 거름을 채우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는 가장 큰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믿음을 헛되게 여기지 아니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셔서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우리 주님이 보호 하시고 지켜 주시는 은혜가 있음에 항상 감사하시며, 오늘도 회개, 내일도 회개,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회개의 삶으로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로 자라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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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믿음 없음과 회개 없음과 열매 없음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회개하지 않으면 이같이 다 망하리라,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오늘 말씀이 회개의 결단으로 역사하여 주님과 동행하며 거룩과 성령충만의 삶을 살아가는 거름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온전함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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