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에 보배를 가졌으니 요14:1-8, 고후4:7-10
성경에 보면 사람을 그릇으로 비유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행9:15에는 사도 바울에게 이방인의 사도로 사명을 주실 때,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롬9:21에는 하나님을 토기를 빗는 토기장이로, 우리를 토기장이가 만든 그릇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딤후2:20-21에는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그릇도 있고 천하게 쓰이는 그릇도 있다.‘고 말하면서 귀히 쓰임 받는 그릇이 되려면 깨끗해야할 것을 강조합니다.
그릇 중에서도 질그릇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64:8에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지음 받은 질그릇자체는 아무 권한이 없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애4:2에는 깨지기 쉬운 연약한 존재임을 가리키는 질항아리로 비유되었습니다. 본문 고후4:7의 ‘질그릇’은 별로 가치 없고, 연약한 상태에 있는 인간을 말하며, 질그릇 속에 담긴 보배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성도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마치 질그릇에 보배를 담은 것과 같아 보배로운 자가 됩니다. 질그릇에 담겨진 보배 때문에 질그릇도 함께 가치가 올라갑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질그릇에 보배를 가졌으니”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예수 그리스도는 인생 최고의 보배입니다.
복음서 본문 요14: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다.’고 하셨는데, 길은 우리의 삶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 나라의 문명 척도는 그 나라의 길 형편과 정비례 한다고 말합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문화와 문명의 발전은 길을 통해 이룩되어 집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빨리 발전한 이유 중 하나로 바로 일찍 고속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 가나 사방팔방으로 길이 뚫려 철도와 고속도로가 나고 포장이 잘 되어 있어 교통이 얼마나 편리한지 모릅니다.
이처럼 길이 잘 나는 것도 중요한데,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이 존귀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인생의 길을 잘 찾아가는 가는 것입니다. 앞서간 많은 성인들이 이 길을 찾아 헤맸습니다. 공자는 아침에 길을 찾을 수 있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석가도 길을 찾기 위해 집을 나와 10년을 방황했다고 합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만이 속죄의 길, 구원의 길, 영생의 길을 열어 놓으신 분이요, 인생길의 안내자가 되신 분이기에 ‘내가 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라는 ‘알레데이아’는 ‘껍질을 벗긴다.’ 라는 뜻입니다. 껍질이 벗겨지면 알맹이의 모습이 보이듯 진리 되시는 예수님 앞에 설 때 자신의 참 모습을 모르고 살다가 나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자신의 본 모습을 보고 고백했습니다. 삭게오가 진리의 주님을 만나면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토색한 것 4배로 갚겠다는 결단이 일어났습니다. 사울이 혈기가 등등하여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가다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새사람이 되어 예수님을 증거 하는 자로 변화되어 살다가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속죄의 문을 여시고, 부활을 통해 영생의 문을 여신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죄의 속박, 사단의 속박, 율법의 속박, 죽음의 속박, 미움과 증오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유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요8:31)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 참 안식과 평안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마11:28)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이 ‘트램방’ 마을에 네이팜탄 폭탄을 투하해 마을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고, 그 불길 속에서 겁에 질린 한 소녀가 알몸으로 도망쳐 뛰쳐나왔습니다. 그 소녀는 온 몸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A.P통신의 닉 우트 기자는 ‘네이팜 소녀’의 비참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 사진으로 그는 풀리쳐 상을 받았습니다. 그 소녀의 이름은 ‘킴 푹’인데, 그녀는 현재 세계평화를 호소하는 유엔의 명예대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말하기를 “나를 전쟁의 상징으로 기억하지 말아 주세요. 한 때는 열일곱 번이나 수술을 받으며 사람들을 증오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내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나는 모든 사람을 용서했습니다. 그때부터 행복과 사랑이 보였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생명이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명은 단순한 육의 생명만이 아니라, 영생에 이르게 하는 영의 생명을 말합니다. 생명 되시는 주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요10:10) 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요11:24-25)하셨습니다.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그 안에 거하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요3:16) 했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예수님보다 더 좋은 보배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최고의 보배이신 주님 안에 거하는 성도가 됩시다.
2.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서신서 본문 고후4:8-9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심히 나약하지만 내 안에 세상을 이기신 전능하신 주님이 거하시면 달라집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한다 했습니다. 원수마귀는 우리를 해하려고 사방으로 우리를 에워싸고 고통을 줄때가 있습니다. 물질의 문제로, 건강의 문제로, 자녀의 문제로, 사업의 문제로, 직장의 문제로, 인간관계의 문제로, 죄악의 문제로 우리를 에워싸고 실망과 좌절 속에 우리를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낙심 하거나 쓰러지지 아니하고 에워싸임 속에서도 벗어 날 수 있는 것은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보배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서신을 보낸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그러한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되었습니다. 동족의 위험, 칼의 위험, 바다의 위험, 죽음의 위험이 사방에서 공격해 오는 것과 같은 상황을 만나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마다 성자 예수님과 함께 성부 하나님께서 눈동자처럼 보호해 주셨고, 성령께서 능력을 공급해 주셨고, 돕는 천사들과 사람들을 붙여 주셔서 올무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때로 답답한 일들을 만나거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큰 난관에 처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그러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20년 만에 형, 에서를 만나기 위해 형을 찾아왔는데, 400인을 거느리고 나온 형의 소식을 듣고 죽음의 위기를 느끼며 얍복강에서 밤을 새워 씨름하는 기도를 드린 야곱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애급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뒤에서 추격하는 군사들과 앞을 가로막은 홍해 앞에서 얼마나 답답한 마음을 가졌겠습니까?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려 도망치다가 자신을 삼켜버린 커다란 고기 뱃속에서 얼마나 답답해했겠습니까? 불시험을 당한 욥, 사자굴에 들어간 다니엘, 교만한 하만에 의해 몰살의 위기에 처한 바사의 모르드개와 에스더와 유대인들, 귀신 들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 억울하게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 등 답답한 일을 당했을 때 모두 주께 맡기고 기도하여 주의 도우심으로 승리했듯이 우리도 주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엄청난 핍박과 고난의 삶을 살아가며 신앙생활 한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한 가지 이유로 가문에서 쫓겨나고 직장을 잃고, 재산을 몰수 당하기도하고, 옥에 갇히고, 고문과 더불어 죽임을 당하는 시련 가운데서도 하늘 소망과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우리는 핍박을 받을 때에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결코 버린바 되지 않고 오히려 그 핍박을 통하여 주님 앞에 설 때 하늘의 상급을 넘치도록 받게 되는 축복이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의지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이기는 성도들이 됩시다.
3.선한 싸움에 이긴 자들에게 영원한 처소가 예비 되어 있습니다.
본문 요14:2-3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잠시 머물다 떠나갑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인간의 삶을 나그네, 안개, 그림자, 연기, 신기루, 풀, 꽃, 바람과 같다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짧고 빠르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느끼는 것은 살면 살수록 이와 같은 단어들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건강, 젊음, 권력, 인기, 명예, 물질.... 다 한 순간이고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허무하게 사라집니다. 아무리 움켜잡으려고 해도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들이 가진 참소망은 이처럼 잠간 있다가 없어지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롬8:24-25에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셨습니다. ‘처소’는 영어 성경에는 ‘맨션’(mansion)으로 번역했습니다. 일식적인 지상의 장소가 아닌 영원한 안식처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처소는 제자들로 하여금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돌아갈 천국이 있는 사람은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처소는 성도들의 영원한 소망이며 영생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입니다.
보험 중에 생명 보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사망 보험으로 가짜 생명보험입니다. 죽음 앞에서 생명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죽어야 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담보로 하여 죽음을 보장해주는 것이 세상의 생명 보험입니다. 그것은 일시적이고 영원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육체로는 잠시 살지만 그 후에는 영원히 사는 세계가 있습니다. 불타는 지옥의 형벌에 떨어져 고통 가운데서 영원히 살든지, 천국의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면서 영원히 살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천국 생명 보험에 가입한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보험은 죽음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생명을 보장해줍니다. 보험료가 얼마나 될까요? 대단히 비쌉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보험료는 세상의 어떤 부자라도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이어서 부자가 가진 전 재산과 목숨을 다 내놔도 그 보험료를 지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희생의 피로 그 값을 이미 다 지불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믿고 회개하는 자의 죄를 용서 하시고, 기억도 않으시며,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사도 요한은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1:7)했습니다. 이런 예수님이시기에 질그릇 같은 우리의 최고의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선한 싸움에 승리자가 되어 주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하늘 기업의 후사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질그릇에 보배를 가졌으니”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 최고의 보배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선한 싸움에 이긴 자들에게 영원한 처소가 예비 되어 있습니다. 아멘.
<2023. 10. 19. 호현낙선>
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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