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바울의 복음, 나의 복음, 너의 복음(딤후2:8-13)

열려라 에바다 2023. 10. 21. 08:01

바울의 복음, 나의 복음, 너의 복음: 딤모데후서 2:8-13 (권호만 목사)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4 6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바울은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날 시각이 가까워온 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쓰는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바울을 사로잡은 한 마디는 복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생애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복음에 대한 헌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이방인에게로 보내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을 중심으로 평생 복음을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됩니다.

1 2 3차에 걸친 세계 선교여행도 당연히 이방인 지역에 올인하여 복음을 전했고

죄수의 몸이기는 했지만 당시 세계의 중심으로 알려진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죄수의 몸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을 때 그는 마지막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기

위하여 당시 땅 끝으로 알려진 서바나(지금의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복음을 향한 그의 열정은 죽음도 막지 못하였습니다.

죽음을 직감한 그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향하여 자신의 뒤를 이어

복음을 전할 것을 강력하게 부탁하고 있는데요,

오늘 본문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바울은 복음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에 온전히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덟 번 죽을 뻔 고비를 맞지는 않았을 것입니다.(고후11:23이하)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낸 것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여정에서 맞이했던 고난이었습니다.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중의 위험을 당한 것은 복음을 위해서는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한 위험이었습니다.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으면서 복음을 전한 것을 보면 바울은 정말 복음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에 온전히 헌신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정말 이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왜 복음에 미쳤을까요?

왜 복음을 전하는 일에 그렇게 헌신하고 열정적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바울의 복음, 바울이 믿고 깨닫고 전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쳤던 바울의 복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무엇인가를 설명합니다.

 

8절 말씀을 보면,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다윗의 씨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다윗의 씨로 태어나신 분이라는 말씀은 크게 두 가지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메시아로 예언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오래 동안 예언하셨습니다.

그 예언된 메시야 구세주가 바로 다윗의 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씨로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인간과 똑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물론 죄는 없으셨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삶을 사셨기에 그 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아니었다면 피를 흘릴 수 없었을 것이고 우리를 위한 대속의 피를 흘리지 않았다면 우리를 구속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셨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가장 참혹한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 속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대속한 죽음이었고 우리를 대속하셨기에 우리는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대속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하여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고 해도

만약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 분은 사랑의 성자를 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는 될 수 없었습니다.

자신도 죽음을 이기지 못하고 죽으셨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사흘 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주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씨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된다는 것이 사도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그 복음이 왜 중요한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과 영원한 영광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를 믿고 섬기는 것입니까?

예수 안에는 구원과 영원한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아멘.

앞에서도 간단하게 언급하였습니다만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할 메시아로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분도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었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분도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자는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4:12)

예수님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자신밖에 없다고 말씀합니다.

 

종교 다원론자들은 산에 올라가는 등산길이 여러 개가 있는 것처럼

구원의 길도 여러 개가 있다고 하면서 기독교의 구원론도 그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말입니다.

많은 이단 교주들은 자신이 메시아다, 구세주다, 자신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선전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그것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기독교가 너무 독선적이라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한 구원의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황제숭배를 거역하다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수많은 선조들이 조상숭배를 거절하다가 순교를 당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일생동안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온전히 자신의 생을 바치고

목숨을 바쳐 헌신한 이유도 구원의 길이 오직 예수님밖에 없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이단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으니까

예수님의 새 이름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성령시대에는 예수님의 새 이름을 믿어야 한다고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예수님의 새 이름이 자기들의 교주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새 이름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과거에도 지금도 영원토록 예수님이십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1:21)

삼위일체 하나님 중 한 위이신 예수님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그 분을 믿는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른 이름 믿지 마시고 다른 이름에 유혹받지 마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을 믿을 수 있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사도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상에서 말한 것은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었고 사도 바울이 믿는 복음이었습니다.

그 복음이 나를 구원하고 나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이 믿고 전한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그 복음을 믿어야 하고 그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성경에 있는 진리는 내가 부인하든 시인하든 어디까지나 성경적 진리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성경적 진리를 내가 나의 진리로 받아들일 때 나의 진리가 됩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나의 힘이신 여호와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18)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고 노래합니다.

누구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누구의 방패가 되시는 분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반석이요 나의 요새시오 나의 방패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믿을 때 그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방패로 산성으로 믿을 때 평안하게 안심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여러분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기 바랍니다.

다윗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요셉의 하나님, 바울의 하나님으로만 믿지 마시고 나의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모든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고 영생의 축복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분으로 믿는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의 고백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복음을 위하여 얼마나 헌신하는가? 열정을 보이는가? 하는 점입니다.

11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주와 함께 죽어야 한다. 주와 함께 참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는데요,

당시 이 편지를 받는 디모데와 성도들은 많이 위축되어 있었습니다.(1:6-7)

핍박을 생각하면서 두려운 마음이 있었던 것 같고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침묵하거나 열심을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성도들을 위하여 너희는 그리스도의 병사요 믿음의 길을 달려가는 경기자요 열심히 농사를 짓는 농부라고 말씀합니다.(2:1-6)

그런 부름에 합당하게 살아서 병사와 같이 고난을 각오하고 승리자의 관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경기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너희들을 먹이시고 범사에 총명도 주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전하는 것인데요,

11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절에서는 참으면 또한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일한 구원의 복음이라고 믿는다면

이 복음을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고난도 참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각오와 헌신과 열정이 없이 어떻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했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믿는다는 것을 여러 가지로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는 것이 한 증거입니다.

사실 예전에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며 세례를 받는 것은 엄청난 위험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복음을 나의 복음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삶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할 일 다 하고 시간이 있으면 예배에 참여했다고 하면

이제는 다른 어떤 일이 있어도 제켜두고 예배에 먼저 참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내가 담대하게 증거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부끄러워한다든지 자신 없어 한다면 어떻게 복음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복음만이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복음이라고 믿는다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하고 어떤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어떤 핍박 속에서도 예수님을 믿고 시인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전해준 복음이 바울의 복음으로만 남아서는 안 될 줄 압니다.

바울이 전해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어야 하고

바울이 전해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하고 나의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전해준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고 내가 전해준 복음이

또 다른 누구의 복음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담대하게 자신 있게

나의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23.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