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편 17절-18절: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17절: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하나님의 교훈은 성령님께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생명의 말씀이요, 사람의 심령골수를 찔러 쪼개는 역사를 한다. 또한 사람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것, 하고자 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낱낱이 들춰내고 구별시키고 분별시켜서 깨달음을 준다. 또 육의 생각이 무엇인지 영의 생각이 무엇인지 구별케 하는 깨달음을 준다. 또 현재 자기가 새사람이 주격인지 옛사람이 주격인지 알게 하신다. 자기 속의 사람을 알게 한다는 말이다.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악한 자들과 그의 인도자들은 진리이치를 대단히 싫어한다. 왜 싫어하느냐? 진리이치는 악인 자기의 정신을 고치고, 마음을 고치고, 소원과 목적을 고치자고 하는데 악인은 자기가 진리이치의 말씀대로 하면 죽을 것 같으니까,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으니까 마음 속에 독을 품고 반발심을 가지고 성질을 내면서 옳은 교훈을 버리는 거다. 옳은 교훈을 들을 때 자기의 양심이 찔리는데도 자기의 체면이 있고 명예가 있어서 하나님의 교훈을 미워하는 거다.
일반사람들은 세상의 고위직의 직함을 가지고 사람들을 속인다. 아랫사람의 이름을 빌려서 속이는 게 아니라 고위직의 직함을 가지고 속인다. 교회의 악한 종들은, 거짓 목사들은 교회 안에서 성경을 가지고 자기를 숨기고 남을 속인다. 그런데 이런 거짓 종들은, 심지어 이단자들도 성경을 들고 기독교 종교적인 제도나 간판을 타고 오기 때문에 교인들로서는 이 자들이 거짓 종이요 악한 자라는 것을 잘 모른다. 이런 자들이 국가로부터 허가를 받은 종교계 안에 들어있다면 세상사람들도 이들이 진짜인 줄로만 알지 악한 자들이라는 것을 전혀 모른다.
그러면 국가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은 교회는, 다른 말로 하면 특정 교단 교파에 등록되지 않은 교회는 이단이냐? 가짜냐? 꼭 그렇지는 않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 앞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진리본질로만 나가는 교회이기 때문에, 목사이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다.
사실 교회는 세상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는 거다. 왜냐? 기독교는 땅에서 솟은 게 아니라 하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 믿는 세상사람들은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지식으로 사는 자들인데 하늘의 지식을 가진 하나님의 종이 일반사회에 가서 ‘내가 복음을 전할까요, 말까요’ 하고 허락을 받아서는 안 되는 거다. 이런 사고방식은 틀린 거다. 복음의 정신은 그런 게 아니다. 성경의 선지자들을 보면 국가로부터 허가가 되고 안 되고 와는 상관이 없이 하늘로부터 온 복음을 전했다.
복음이 어떤 민족에 속한 거냐? 어느 나라에 속한 거냐? 어느 국가에 속한 거냐? 어느 사회에 속한 거냐? 아니다. 복음은 사람에 속한 거다. 사람 자체에 속해있다. 즉 사람을 위해 복음이 필요한 거다. ‘어느 나라 사람이던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져라’ 이게 복음이다. 이게 주님이 전하신 복음이다. 어느 나라이던 이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그 나라는 표면적으로도 튼튼해진다. 일등국민이 된다. 껍데기로 받아들인 나라일지라도 안 받아들인 나라보다 훨씬 낫다. 그러니 알맹이로 받아들인다면 얼마나 더 하겠느냐?
국가로부터 허가를 받고 성경의 껍데기만을 따서 눈에 보이는 일을 하면서 ‘나는 국가로부터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진짜다’ 라고 한다면 이건 하나님 앞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 본문이 이 말을 하는 거다. 국가로부터 허가를 냈던 안 냈던, 교회건물이 있던 없던 상관이 없이 하나님의 진리본질에서 이탈이 된 것은 전부가 하나님 앞에 이단이고, 거짓이고, 외식이다. 이런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지를 않는다. 그러니 복음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행동을 어떻게 하라는 게 아니라, 단순히 눈에 보이는 교회에 잘 나가고 안 나가고 이걸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을 뚫고 들어가서 내가 신앙하고 있는 것, 하고자 하는 것을 다 분별시키고 구별시키는 거다. 말씀을 통해 옳고 그른 것이 구별 분별이 될 때 바른 판단을 해서 옳은 것을 붙잡을 수 있는 거다. 안 그러면 네가 죽는다. 네가 하나님의 심판에 회부가 된다. 이런 걸 가르쳐 주는 게 복음이다.
오늘날 발에 밟힐 정도로 널려있는 게 목사님들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보면 성직매매가 사방팔방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해서 목사가 된 사람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우리 입장에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하나님의 진리본질로 나가지 않는 목사는 가짜요 거짓으로 보는 거다. 이런 거짓 목사들이 사람들을 많이 모아놓고 무슨 짓을 하겠느냐? 교인들 벗겨먹는 짓밖에 더 하겠느냐? 하나님의 진리본질을 아는 입장에서는 이런 게 발견이 되는 거지 일반 불신세상은, 그리고 세상 속화된 교회는 눈을 뜨고도 모르는 거다. 불신세상이 어떤 교회를 참 교회로 알아주겠느냐?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성경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사건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사람들의 소원과 목적과 그 결과와 심판이 들어있어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고, 진리이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 뜻대로의 소원과 목적을 품게 하고, 영인의 성장과 영능의 실력을 닦아서 영원히 존영자가 될 있는 이치가 수도 없이 들어있다. 그런데 악한 종들은 한 마디로 이런 뜻을 다 뒤로 던져버린다. 말씀 속에 들어있는 엄청난 보화와 존귀 영광성을 다 뒤로 던져버린다.
그러면 이 좋은 것을 자기의 등 뒤로 던져버리는 이유가 뭐냐? 하나님의 것보다 자기 것이 더 좋다는 거다. 하늘의 것보다 땅의 것이 더 좋다는 뜻이고, 신령한 것보다 눈에 나타나 보이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거다. 하나님의 교훈을 등 뒤로 버린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들어있다. 악한 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하나님의 것을 비교해 보면 악한 자들이 주장하는 것들은 전부가 불타지고 썩어지고 버리고 갈 것들인데, 악한 자들은 어리석게도 영원히 갈 것도 아니고 가져갈 것도 아닌 것들을 붙잡고 고집을 피우는 거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이런 자들이 성경을 들고 가르친다고 하니 무엇을 가르치겠느냐?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구속도, 구원도 모르는 사람이 성경을 들고 가르친다면 뭘 가르칠까? 개인적인 신비로운 체험이나 종교적 업적밖에 더 있겠느냐? 그리고 교회에서 이런 자들에게 직분을 주면 필연적으로 계:에서 말하는 666운동을 대단히 많이 하게 된다. 이게 계:에서 말하는 음녀다. 계:의 음녀란 불신세계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교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교훈을 버리면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면 인간을 모르게 된다. 자기 부모를 모르는데 자기가 누구에게서 태어났는지, 어느 고을에서 언제 태어났는지 어떻게 알겠느냐?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구속을 모르면 기독교의 구원에 대해 알지를 못한다. 하늘로부터 된 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인데 성경을 모르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구원을 어떻게 알 거냐? 그러니 신비스런 체험이나 강조하고 종교사업밖에 더 벌이겠느냐?
목사라면 알지 못하면 알려고 노력을 해야 할 텐데 복음의 본질도 모르고 구원도 모른 채 종교적인 제도를 타고 딴 짓을 하고 있다면 이는 기독교 본질, 하나님의 뜻에서 이탈이 된 것이니 이런 목사를 자타가 아무리 사명자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악한 지도자일 뿐이다. 이런 자에게는 진노의 심판의 불밖에 없는 거다.
일반적으로 좋은 누룩은 사람 속에 들어가서 사람의 신체에 상당한 유익을 주지만 나쁜 누룩은 사람을 정신을 잃게 하고 병이 들어서 죽게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의 교훈도 좋은 누룩이 있는가 하면 악한 누룩이 있는데, 악한 누룩은 사람의 정신을 썩게 한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는데, 이는 그들의 교훈을 주의하라는 거다. 이들의 가르침을 받으면 사람 속에 세상바람이 들어간다.
바리새인들은 원래가 이방인이 아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성경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사나 서기관들을 가리켜 성경을 가지고 사람을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 악한 자들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여, 화 있을진저’ 라고 하면서 그들의 속 중심을 지적을 했다. 그러면 왜 이들을 악하다고 하신 거냐? 성경을 가지고 외식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람의 속은 내버려둔 채 자꾸 껍데기를 강조하고 싸 발랐다. 그러니 이들의 교훈을 들으면 사람의 속이 자꾸 더 썩을 수밖에 없는 거다.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셨는데, 벳새다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장정만 해도 오천 명을 먹이신 분이 당신의 능력이 모라자서, 일손이 모자라서 당신의 일을 돕게 하려고 열두 제자를 불렀겠느냐?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분이, 바다를 잔잔케 하신 분이 능력이 없어서 당신의 일을 해 달라는 목적으로 나를 당신의 백성으로 불렀겠느냐? 천지만물을 만드신 분이 능력이 없어서, 사람을 수없이 만든 분이 좋은 사람이 없어서 악한 자들을 불러서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시겠느냐?
신령천국이 불타질 이 세상만도 못해서 인간 자기를 불러서 지상건설을 하라고 성경을 주신 거냐? 지극히 거룩한 분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속사람이 마귀를 닮았어도 일만 크게 잘 하면 큰 상급을 주고 면류관을 씌워주시겠느냐? 사람의 속 중심을 아시는 분이 양떼를 이리에게 맡기시겠느냐? 말하자면 사기꾼에게 참 교회를 맡기시겠느냐? 십자가만 붙이면 교회냐? 아니다. 그럼에도 십자가를 붙이고 성경을 들고 교회를 한다고 하면서 진리본질에서 떠난 그룹운동이 많다.
18절: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누가 도적을 본즉 연합을 하느냐? 악한 인도자가. 그러니까 악한 인도자는 도적을 잘 알아보는 모양이다. 속이 잘 맞기 때문에 서로가 손을 잘 잡는 거다.
도적을 모르는 사람도 있느냐? 다 잘 안다. 남의 재산과 물건을 훔쳐가는 자가 도둑이다. 재산을 도적맞으면 평생 동안 시간 들이고 노력하고 땀을 흘린 것이 다 허사가 돼버린다. 다 도적을 맞아서 거지신세가 되면 한숨이요 고통이요 눈물이요 원망이요 한탄이요 통곡이요, 돌이킬 수없는 마음의 상처가 크다. 그런데 본문이 말을 하듯이 성경을 가르치는 기독교 종교계에도 도적이 있다. 목사님들의 세계에도 도적이 있다는 말이다. 신약성경에서 거짓 종들을 말하는데, 이들이 도적이다.
세상의 도적을 보면 여러 종류가 있다. 첫째는 남의 물건을 훔쳐가는 도적이 있다. 그리고 물건을 훔쳐가는 도적만이 아니라 사람을 훔쳐가는 도적도 있다. 총각도적도 있고 처녀도적도 있다. 물건을 훔쳐가는 도둑을 보면 옛날에는 금반지나 금비녀 등을 훔쳐가려고 밤에 돌아다니면서 빈집을 털어갔는데, 요즘은 아예 대낮에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빈집에 있는 물건을 대놓고 전부 훔쳐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사람을 도적질해서 가족들에게 돈을 가져오라고 하는 도적도 있다.
또한 사람의 마음을 훔쳐가는 도적도 있는데, 이건 단수가 높은 도적이다. 사람의 몸은 그대로 두고 사람의 마음을 훔치면 자기 손으로 스스로 갖다 주게 된다. 강압적으로 빼앗아 가는 도적이 있는가 하면 사람의 마음을 붕붕 뜨게 해서 스스로 가지고 오게 사람을 이용해 먹는 도적도 있다.
교회 안에도 도적이 있는데, 교회에서 세상을 가르치는 것이 거짓 종이요 도적인데, 이들이 교인들로부터 재산이나 물질을 억지로 빼앗느냐, 아니면 교인들 마음에 세상바람을 잔뜩 집어넣어서 스스로 가져오게 하느냐? 성경구절을 대면서 ‘십일조를 내면 부자가 된다’ 라고 하면 세상부자가 되길 원하는 교인들은 자기 스스로 십일조를 내게 되는데, 이런 사람은 세상부자가 되기 원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내는 거다.
교회 안의 거짓 종들은 교인들로 하여금 육신에 관한, 세상에 관한 소원 목적을 품게 해서 영적인 깨달음의 소득을 깡그리 망하게 하는 도적이다. 이런 거짓 종들은 성경을 가지고 정신적 사상적 영적 세계를 망하게 하는 도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적인 줄을 잘 모른다. 교인들도 잘 모른다. 목사님들도 잘 모른다. 성경 속에 숨어있는 도적이기 때문에, 성경을 이용하는 도적이기 때문에. 그러나 진리이치의 말씀을 깨달은 사람 앞에서는 금방 드러난다. 못 속인다. 하나님의 본질과, 예수 그리스도의 소원 목적과, 예수님의 취미성 추구성 지향성과, 구원의 격차성 등을 알면 교회 안의 도적을 알게 된다. 이걸 모르면 자기가 도적이면서도 도적인 줄을 모른다.
교회 안의 도적이란 교회 안에서 어떤 물질적인 것을 도둑질을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에 입각해서 자기가 이질로 되어있다면, 그리고 이런 자기이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면 도적의 입장이 돼버리는 거다. 성질적으로 그렇다. ‘거짓 사람인지, 참 사람인지’ 하는 것은 표면이나 껍데기나 교회의 제도로 나누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에 의해 나눠지는 거다.
우리는 자기를 주님의 종으로만 착각을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자기를 질적인 면으로 심사를 해야 만이 자기 신앙이 바로 서는 거다. 바로 못 선 상태에서 교인들을 가르치게 되면 그 교회는 난장판이 돼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눈을 가져야 한다. 진리이치의 말씀을 잘 깨달아 들어가면 성령의 눈을 가지게 된다.
일반적으로도 사람이 옷을 입은 것이나 얼굴 생김새를 보고 도둑인지 사기꾼인지 알 수 없다. 행동으로 도둑질을 하거나 사기를 치고 난 후에 이 사람을 도둑이나 사기꾼이라고 알게 되면 다 도둑맞고 사기를 당한 후이기 때문에 이미 늦었다. 행동으로 나타나기 전에 대화에서 사람의 정신의 판단이 나와야 한다. 세상사람들은 사람을 볼 때 겉모양, 허우대가 멀쩡하면 좋은 사람으로 본다. 우리는 육신의 눈이 있어서 사람의 겉 표면을 보고 판단하는 것을 일체 무시할 수는 없는 거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이는 그게 다가 아니다. 사람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교회 안의 도적이란 하나님의 본질에서 이탈된 정신과 사상을 가르치고, 이런 정신 사상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진리지식을 가르쳐 줘도 여전히 세상기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지식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자기를 고치지도 않는다면 인간들의 마음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고 성경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가 사람을 보면 사람은 행동을 하기 전에 생각부터 먼저 한다. 그래서 좋은 생각을 하게 되면 좋을 일을 하게 되고, 나쁜 생각을 하게 되면 나쁜 일을 하는 게 인간이다. 이런 정도는 일반적으로 다 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생각은 향방이 있는 것이라서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온전으로 이뤄질 수 있는 이치에서 비뚤어진 채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거나 아무리 좋은 일을 할지라도 영의 눈을 가지고 볼 때는 거짓 종이라고 한다.
만일 목사님이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가르친다면 이 목사님의 소원 목적이 천국을 향해 있겠느냐, 세상을 향해 있겠느냐? 세상이다. 따라서 이런 상태로는 아무리 성경을 들고 가르친다고 해도 거짓 종이 되는 거다. 목사님만이 아니라 교인이 신앙하는 정신이 그렇다면 이는 거짓 신앙자요 거짓 교인이다.
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때 누구의 뜻대로 살겠다고 받은 거냐? 하나님의 뜻, 말씀대로 살겠다고 세례를 받은 게 아니냐? 세상 뜻대로 살겠다고 세례를 받은 게 아니지 않느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왜 교훈을 받는 거냐?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가 뭐냐? 하나님의 성품을 입는 게 하나님의 의를 입는 거다. 말씀 깨달음을 받고 총명자가 되고 영특자가 되는 게 하나님의 의를 입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이 생각부터 영리하고 못하고, 똑똑하지 못하고, 깨달음을 받지 못했다면 자기 마음의 생각이 세상인지, 천국인지 어떻게 분별이 되겠느냐? 예수를 믿으면서도 세상적인 생각이 그대로 들어있다면 이 사람이 자식을 키우고 교훈하는 것도 세상으로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 가정이 뭐가 되겠느냐? 하나님의 가정이 되겠느냐? 가정천국이 되겠느냐? 모르면 그렇게 되는 거다.
사람의 마음에는 천국을 향한 생각이 있고, 땅을 향한 생각이 있다. 그 중간은 없다. 땅을 향한 생각은 그 소원 목적이 땅에 있다. 땅의 것은 세상의 것이요, 세상의 것은 전부가 임시적인 것이요, 임시적인 것은 전부가 불에 타지는 거다. 이건 이방인들이 구하는 거다. 그리고 불타질 것을 구하는 것은 성령의 일을 거스리는 육의 생각이다.
영의 생각을 따라 사는 사람은 매사를 성령의 감화를 쫓아 새사람이 주격이 되어 움직이게 되는데, 이렇게 살면 하나님의 온전한 인격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이런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이 만들어지게 한다. 늙은이를 만나도 젊은이를 만나도 사람이 만들어지게 한다. 이렇게 사람이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 사람 역시도 영광의 사람이 되는 거다.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육의 생각은 넓은 길, 사망 길, 심판으로 나가게 하고, 영의 생각은 좁은 길, 생명 길, 영생으로 나가게 한다. 그런데 이방세계는 성경을 모르니까, 하나님을 모르니까 우리가 논할 필요가 없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이 육의 생각을 가지고 세상 것을 소원 목적하는 것이 큰 문제다. 본문은 이런 사람을 말하는 거다.
그러니까 첫째는 목사님에게 하는 말이다. 따라서 교인들은 목사님으로부터 설교말씀을 들을 때 ‘아, 이 목사님은 성경은 읽어놓고 맨날 세상만 말하는구나. 성경을 읽어놓고 하나님의 말씀의 뜻은 등 뒤로 내버리는구나’ 이걸 알아야 한다. 목사님이 이렇다면 선한 종이냐, 악한 종이냐? 악한 종이다. 악한 종이라면 거기에서 다 도망가야 한다. 말씀의 구별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그 자리에 있다가 사기를 당하는 거다. 그렇게 해서 손해를 보게 되면 어떻게 다 배상을 받느냐? 자기 일생이 다 날아가는 건데 이에 대한 한탄성이 없겠느냐?
교회는 질이 문제다. 교회간판을 달았던 안 달았던, 기독교 제도에 속했던 안 속했던 교회는 교훈의 질이 중요하다. 육의 생각을 가진 채 ‘예수 믿네’ 라고 한다거나, 육의 생각을 가진 채 열심히 충성봉사를 한다면 이는 거짓 종이고, 도적이고, 악한 자에 속하는 거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늘 신앙의 질을 놓고 생각해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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