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합력하여 선을 이루자

열려라 에바다 2023. 10. 21. 07:59

제 목 : 합력하여 선을 이루자 !

< The contention was so sharp

between them >

성 경 : 사도행전 15 1  - 41

(2023. 10. 22 주일 예배)

설 교 : 전 원 준 목사 (010-3847-8457)

(산상교회=http://cafe.daum.net/ssb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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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119영광을. 411주님께. 주님이홀로. > ( 특 송 = 여기에 모인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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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6-12) (6)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일을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함께 오니라. (7) 많은 논쟁이 있은 뒤에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사람들아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이방인들이 내 입을 통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매우 오래 전에 우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신 것 같이 그들에게도 주사 그들에게 증언하시며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사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 차별도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이제 너희가 어찌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나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 하느냐? (11) 오직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을 줄을 믿노라, 하니라.

 

(12) 이에 온 무리가 조용히 하고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서

어떤 기적들과 이적들을 행하셨는지 밝히 말하는 것을 들으니라.

 

( 15:36-41) (36) 며칠 뒤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이르되, 우리가 전에 주의 말씀을 선포한 모든 도시로 다시 가서 우리 형제들을 방문하고 그들이 어떻게 행하는지 알아보자, 하니 (37) 바나바는 마가라는 이름의 요한을 데리고 가고자 결심하였으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자기들과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니라. (39) 그들 사이에 다툼이 격렬하여 그들이 서로 갈라져 떠나니 이처럼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키프러스로 가고

 

(40) 형제들이 바울을 하나님의 은혜에 맡기매

그는 실라를 택한 뒤에 떠나서 (41)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지나가며 교회들을 굳건하게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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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돌담 = 그림

90%가 현무암 (인터넷에서 설명을 찾았으나 )

모양도 제각각. 돌에 구명. 쓸모없는 돌 같다.

이 돌로 담을 만들 때= 서로 엉켜 잡아주는 역할,

바람과 해풍을 막아주면서, 큰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게하는 비결이 돌 구멍으로 바랍을 통과시킴으로 담을 보호.

 

0 오늘 우리 성도들같다 라는 생각함.

각자 모습과 생각을 달라도 믿음으로 서로 연합.

세상의 모든 풍랑을 잘 견디어 내는 모습.

 

오늘 본문 행15장에 교회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유대 전통을 성도들을 어지럽게 하였습니다.

문제를 햐결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자 !”라는 제목.

 

 

1. 사도 배드로를 통하여 올바른 신앙을 인도하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 15: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사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 차별도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 15:11) 오직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을 줄을 믿노라, 하니라.

 

행전 1장부터 12장까지 베드로의 놀라운 사역을

하였습니다.

13장 부터는 베드로의 행적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15장에 가서 교회에 문제가 생기니

베드로가 나타납니다.

어려운 문제를 말씀으로 잘 정리하여 주었습니다.

결과 교리 적인 문제가 한번에 해결이 된 것입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 맥아더 장군.

한국 속담 =

어른 말 잘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앞으로 이 시대는 젊은이들이 발전 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 13:1) 지혜로운 아들은 자기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나 비웃는 자는 책망을 귀담아 듣지 아니하느니라.

 

2. 바나바와 사울의 의견 차이로 갈라지는 사역 속에서도 하니님은 역사하십니다.

 

1) 바울 사도의 제안 =

 

( 15:36) 며칠 뒤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이르되, 우리가 전에 주의 말씀을 선포한 모든 도시로 다시 가서 우리 형제들을 방문하고 그들이 어떻게 행하는지 알아보자, 하니

 

바울은 안대옥에서 아주 좋은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냥 평안하게 있을 수가 없엇습니다.

바울이 바나바에게 1차 전도여행 때 복음을 전했던 각 성으로 다시 찾아 방문하자고 제안합니다.

 

 

2) 바나바도 이제 동의 하여 = 제안을 합니다.

 

( 15:37) 바나바는 마가라는 이름의 요한을 데리고 가고자 결심하였으나

 

바나바는 즉시 마가도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0 마가는 1차 전도여행 때 같이 출발했던 사람.

0 바나바의 사촌 동생 입니다.

 

0 마가는 성경의 마가복음을 쓴 바로 그 마가인데, 요한이라고도 하고 마가라고도 합니다.

 

0 어쨌든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그들의 수행원으로 함께 했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뭐라고 반응합니까?

 

 

3) 바울의 반대 반응 =

 

( 15: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자기들과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니라.

 

바울은 마가를 데리고 가자는 바나바의 제안에

대하여 반대 의사를 보입니다.

 

0 마가는 구브로 (바나바 고향에 갔을 때 만나,

전도여행의 수행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 13:5) 살라미에 이르러 유대인들의 회당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또한 요한을 자기들을 섬기는 자로 두었더라.

 

 

0 마가는 중도에서 힘들어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 13:13) 이제 바울과 그의 일행이 바보에서 배 타고 떠나 밤빌리아의 버가에 이르렀을 때에 요한은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0 마가는 자신이 생각한 것 보다 전도 사역이

너무 힘들었을 것입니다.

0 또 반대하는 무리속에 피신을 다니는 것이

얼마나 겁이나고 하였겠습니까 ?

0 병이 났을지도 모릅니다.

 

버가에 도착했을 때 전도 팀을 이탈했습니다.

물론 이야기하고 갔겠지만

나는 더 이상 못 가겠습니다.’ 하고 이탈하여 집으로 돌아가 버린 사람입니다.

 

이 길이 요즘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즐겁게

여행 가는 것도 아니고, 강도의 위험과 홍수나

지진이나 기근 등의 위험이 있는 아주 힘든 길인데,

헌신되지 않고 한 번 자기들을 버리고 간 사람을 다시 데리고 간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 헬라어 원문을 보면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가고자 한 동사와,

바울이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 동사가 모두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에서 미완료형이라는 것은 행동이 계속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바나바가 한두 번 마가를 데려가자고

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마가를 데리고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바울은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3.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무엇입니까 ?

 

( 15:39) 그들 사이에 다툼이 격렬하여 그들이 서로 갈라져 떠나니 이처럼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키프러스로 가고

 

 

바나바는 계속 마가를 데려가자고 하고,

바울은 안 된다고 계속 맞섰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됩니까?

갈라지게 되어 서로 다른 곳으로 사역지 떠납니다.

 

우리말 다툼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가 영어로는 disagreement로 번역되었는데

헬라어로는 파록시스모스(paroxysmos)’입니다.

 

여기서 paroxysm이라는 영어 단어가 나왔습니다. ‘발작이나 발열이라는 뜻의 의학 용어.

 

이 단어에는 설전이나 불일치라는 뜻이 있는데, 그러니까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우며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굉장히 흥분하면서 자기 의견을 내세우며 설전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치고받고 싸운 게 아니라,

말로 논쟁을 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끝내 의견이 일치하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불일치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갈라서고 맙니다.

 

= 이 사실은 우리를 대단히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대체 바울과 바나바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초대교회 최고 지도자 그룹에 속한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이며 사도들입니다.

 

그들은 2천 년 교회 역사상 최초로 이방 땅 안디옥에 세워진 이방인 교회의 지도자들이고,

교회 역사상 최초로 지중해 세계 전도여행에 오른 선교사들입니다.

 

그들은 최소한 1년에서 최대 2년 정도까지 소요된 것으로 추정되는 1차 선교여행 동안에,

온갖 고난과 위험 속에서도 완벽한 팀워크를

보여준 동역자들입니다.

안디옥 교회를 지켜 낸 복음의 일꾼이며 용사들입니다.

 

= 조심할 점 =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얼마든지 이렇게

다투고 갈라설 수 있구나 생각하며,

자신의 허물이나 모난 성품으로 이 사람 저 사람과 부딪치고 헤어지며 교회가 분열하고 갈라지는 것도 괜찮다고 합리화하는 데 사용하는 본문이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 성경에 묘사된 바나바는 성품이 아주 온화하고

착한 사람입니다. 덕이 많고, 남을 세워주며,

격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남들에게 위로를 잘하고 권면을 잘하고

덕을 세우는지, 그의 이름이 바나바가 되었습니다.

 

원래 바나바는 그의 이름이 아니라 별명입니다. ‘위로의 아들’, ‘권면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 정도로 남을 잘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겠다고 살기등등하던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심했을 때,

모든 크리스천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뭔가 수를 쓰는 거다.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를 잔멸하려고 위장전술을 펴는 거다.’라는 식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아니다. 주님께서 정말 이 사람을 이방인의 도구로 쓰시려고 부르셨다. 택하신 그릇이다.

주님께서 택하신 이 사람을 우리도 받아들여야

한다.’ 하며 설득하고 추천해서 예루살렘 교회가 사울을 받아들이도록 해준 사람이 바로 이 바나바입니다.

 

나중에 사울이 자기를 아무도 써주지 않으니까

고향(다소)에 가서 13년 정도 칩거하고 있었는데, 그런 사울을 불러다가 안디옥에서 자기와 함께

사역을 감당하며 펼치도록 장을 마련해준 사람,

데리고 온 사람, 기회를 준 사람, 발탁한 사람,

키워준 사람이 바로 이 바나바입니다.

 

1차 전도여행 때 원래는 바나바와 사울이었는데 중간에 바울과 바나바로 바뀝니다.

 

그 바울을 앞에 세우며 나보다 네가 더 잘한다. 네가 해라.’ 하고 앞세워준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 없이는 사도 바울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 바나바가 전도여행에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제안합니다. 인간적인 정이나 상식으로 보면, 바나바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사람이 바울인데 그의 요청을 거절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피상적으로만 보면 바울은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철면피로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말 바울이 나쁜 사람이어서 여기서 반대하는 것일까요?

 

38절을 다시 한 번 잘 보시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는 마가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런데 바울이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마가를 데리고 가면 안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마가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데 그러지 않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자

고 하며 정확히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라고 하지 않고,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라고 합니다.

 

만약에 바울이 여기서 마가를 데리고 가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면,

이것은 마가라는 사람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이 뭐냐 하면,

나는 마가라는 사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아직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이전처럼 행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은 안 됩니다.

이 사람이 변화된 다음이면 몰라도

지금은 아닙니다.’라는 뜻입니다.

 

 

 = 이 이것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나에게 미운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이 다 미워 보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입니다.

 

 

= 바울의 마음 =

바울은 마가가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바나바는 마가가 아직 변화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다시 한 번 기회를 줘서

같이 다니며 전도여행을 하다 보면 변화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측면을 강조한 것입니다.

 

역시 바나바다운 태도 아닙니까?

바나바는 위로의 사람이니까 다시 기회를 주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사람을 데려갔다가는 아직

변화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더 어려워질 수도 있고, 이 사람 자체도 더 안 좋아질 수도 있고,

우리의 복음 사역이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옳습니까?

바울이 옳습니까 ?

바나바가 옳습니까 ?

사실 둘 다 옳습니다.

 

교회도 똑같습니다.

우리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합하여 함께 할 때,

주님의 놀라운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 말년에 마가의 행적 =

 

( 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바울은 마가를 영접하라고 골로새 교회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딤후 4:11) 오직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마가를 데리고 함께 오라. 그가 사역을 위해 내게 유익하니라.

 

(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찬 송 = 여기에 모인 우리

 

출처: 산상 성서 침례 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빌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