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출20:1-12, 요일4:16-21
아름다운 한 여인이 어느 날 자기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던지 저녁에 자기 전에는 아내를 위해 사랑의 고백이 담긴 시를 지어 읽어주면 그 시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행복한 나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아내에게 충격적인 일이 생기게 되었는데, 기억상실증이라고 하는 병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 자기가 왜 살아가는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자기 남편과 가족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렸습니다.
아내는 집을 나가 정처 없이 이곳 저 곳을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남자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한 채 자기 사랑하는 아내를 찾기 위하여 온 마을 온 지역 구석구석을 찾아 여러 달을 다니며 찾았으나 어느 곳에도 사랑하는 아내는 없었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나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서 우연히 자기의 아내를 찾게 되었지만, 여전히 남편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그 동안 지은 시를 가지고 아내에게 접근해, 그 사랑 고백이 담긴 시를 읊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기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던 그가 조금씩, 조금씩 희미하게 사랑에 음성을 분별하기 시작했고, 눈물을 흘리며 그 시를 듣습니다. 그러다가 시가 다 마친 다음에는 자기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한마디를 했습니다. "여보" 드디어 정신이 돌아와 사랑하는 자기 남편을 향해서 '여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자리까지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모든 인간들은 영적인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사는지, 사랑의 하나님께서 돌아오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시는지를 모르고 이곳, 저곳을 방황하며 살아갑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담긴 사랑의 편지와도 같습니다. 오늘 두 본문은 우리가 사랑 안에 거하여 살 때 어떤 복을 받게 되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는데, 두 본문을 중심으로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1.율법을 완성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됩니다.
구약 본문은 율법을 대표하는 십계명이 기록된 내용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계명(1-4계명)과 이웃을 사랑하라(5-10계명)는 계명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주님이 새 계명으로 주신 ‘서로 사랑 하라.’입니다. 롬13:8에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했고, 13:10에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면 모든 율법을 이루고 완성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창조의 원리가 있습니다. 새는 공중에 살고, 물고기는 물에 살고, 나무는 흙에서 살고, 소는 풀을 먹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창조의 원리를 따라 살게 하셨는데, 그 원리 중의 하나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 11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복되게 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자는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을 거룩하게 했다는 것은 그 날은 우리 인간이 마음대로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거룩한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거룩한 일에 참여하는 자는 그 영혼이 거룩해집니다. 그 마음과 육체도 거룩해집니다. 육체가 거룩해지면 모든 육체의 질병까지 깨끗하게 치유를 받고 건강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구약의 율법이니 지금은 안 지켜도 된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구약의 명령대로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올바르지가 않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의 주일로 바뀌어졌습니다. 예수님께 부활하신 날, 즉 안식 후 첫 날을 주일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초대교회는 안식 후 첫 날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골2:16-17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했습니다. 안식일은 장래일의 그림자에 불과 합니다. 주님께서 오시고 부활하신 날이 안식일의 실체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신데, 안식일의 주인이 되는 주님의 날, 즉 주일이 안식일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날 즉 주일에 주일예배를 드려야 축복의 통로가 되어 영육 간에 복을 받게 됩니다. 주일 성수는 하나님을 사랑 하는 구체적이고, 중요한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프랑스 무신론 혁명 당시에 주일예배를 막기 위해 일주일을 10일로 바꾼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모든 산업의 생산량이 40%나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러시아 혁명 당시에는 레닌이 주일을 없애기 위해서 전격적으로 일주일을 8일로 늘렸습니다. 그러자 이상하게 생산량이 30%나 감소했습니다. 레닌은 당황해서 이번엔 일주일을 6일로 줄여보았습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줄어든 생산량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주일을 7일로 되돌려 놓자 신기할 정도로 생산량이 원래대로 회복된 것입니다. 핸드폰, 진공청소기를 사용할 때 배터리를 정기적으로 충전해야만 쓸 수 있고, 자동차도 정기적으로 배터리를 충전 하거나 연료를 채워야 합니다. 사람도 1주일에 하루, 주일날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재충전하도록 창조된 것이 하나님 창조의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예배는 영육이 탈진되는 예방책이며 스트레스가 가득한 이 세상을 이기기 위한 예방약으로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또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바로 경외하는 법을 배워 영원한 천국 백성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도록 마련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을 신뢰하고 맡김으로 두려움이 없게 됩니다.
신약 본문 요일4:18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했습니다. 세상에는 두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심리학자인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은 현대인을 괴롭히는 두려움의 원인을 약 일곱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질병에 대한 두려움, *사랑 상실에 대한 두려움, *노쇠에 대한 두려움, *자유를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우리에게 생에 대한 활기와 열정을 시들게 하고, 불행과 무기력으로 몰아넣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게도 하고, 자신 안에 있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합니다.
성경에는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무려 365번이나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마치 1년 365일, 매일 ‘두려워 말라’고 말씀 하시는 것 같습니다. 딤후1:7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보혈을 통해 죄 사함의 길을 열어 주시고, 성령이 임하시므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시며 성결케 하시어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고 강하고 담대한 능력과 사랑과 근신의 마음을 주십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관계가 이루어져,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두려운 일들을 하나님께 맡기는 자가 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5:7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 하는 자는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43:1에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말3:17에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라 하셨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길 때 주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겁에 질려 이리 뛰고 저리 피하고 야단법석이었는데 어느 노 성도는 자기 집에 조용히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소동 속에서도 기쁜 얼굴로 계실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부인은 "나는 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그토록 흔드시는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생각과 그러는 가운데서도 나를 그분의 손안에 안전하게 붙들어 주신다는 생각으로 기쁨에 잠겨 무서워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라고 말했다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맡길 때 모세처럼 대적과 홍해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고,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장대한 가나안 족속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다니엘처럼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며, 다윗처럼 사자와 곰, 골리앗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며,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박해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신뢰하고 맡김으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성도들이 됩시다.
3.더 큰 사랑과 은총을 받게 되고,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구약 본문 출20:6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주님 은혜가 1, 2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려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는 약속입니다. 천대까지 은혜주시겠다는 것은 영원히 은혜와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가난도, 질병도, 고통도,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세상에서도 은혜와 돌보심을 받을 뿐 아니라, 그 은총이 천국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신약 본문 요일4:18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했습니다. 주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이 없고, 심판 날에도 담대하게 됩니다. 사랑은 최고의 덕목이요, 최고의 은사요, 가장 좋은 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3장에서 천사의 말과 예언과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 했고, 많은 구제와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유익이 없다 했으며,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을 감내합니다. 1936년 12월 11일, 영국 국왕이었던 에드워드 8세가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나는 지금 이 시간 국왕 자리를 포기한다.'고 하였습니다. 온 나라와 세계에 큰 충격이었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왕이 된지 1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다시 왕이 발표를 합니다. '내가 왕의 자리를 포기하는 것은 내 사랑하는 여인 월리스 심슨과 결혼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영국은 국왕도 교회법을 지켜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렇습니다. 교회법이 모든 법 위에 있습니다. 의회도 교회법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국왕이 결혼을 할 때는 이혼한 부인과는 결혼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심슨이라고 하는 부인은 미국 여자인데 결혼을 두 번이나 한 분이었습니다. 도무지 결혼이 이루어질 수 없었고, 심슨도 이 일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거절하고 본인이 반대했지만 에드워드 8세가 죽음을 불사 하면서까지 결혼을 하려고 합니다. 그 결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결국 그래서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고 왕궁을 떠나서 조용한 곳에 가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이보다 더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사랑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일개 국왕의 자리를 버리는 게 아니라 하늘의 영광스런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혼한 여인 정도가 아니라 죄와 허물투성이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무 죄도 없으신 분이 자청해 죄인이 되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살인강도 취급을 당하시며 온갖 수모를 다 겪으시면서 십자가에서 화목 재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 되도록,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여 죽기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역사에 최고의 사랑이요, 복음이요, 기쁨이요, 소망입니다. 그래서 요일4:10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했습니다. 이 주님 사랑 안에 거하면 모든 두려움이 물러갑니다. 우리 모두 사랑 안에 거하여 하나님의 더 큰 사랑과 은총을 받고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율법을 완성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맡김으로 두려움이 없게 됩니다.
★.더 큰 사랑과 은총을 받게 되고,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아멘.
<2023. 10. 26. 호현낙선>
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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