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시50:18-19)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열려라 에바다 2023. 10. 30. 11:51

50편 18절-19절: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18절: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일반적으로 도적이 뭐냐? 자기는 땀을 흘리지 않고 남이 수고한 것을 거저먹는 게 도적이다. 계:에 큰 성 바벨론이 나오는데, ‘큰 성’이라고 하는 것은 큰 조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 바벨론 안에는 산을 타고 앉은 여자, 물을 타고 앉은 여자, 짐승을 타고 앉은 여자가 있다고 했는데, 이걸 한 마디로 음녀라고 한다.

 

이건 교회 성도들의 정신 사상을 말하는 거다. 산을 타고 앉았다는 것은 교인들의 교만한 정신을 말한다. 꼭대기에 앉았구나. 물을 타고 앉았다는 것은 세상 물질 부요성의 사상으로 산다는 말이다. 짐승을 타고 앉았다는 것은 짐승과 같은 본능성, 자연적인 본능성, 그러니까 먹고 마시는 것을 목적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이 목적으로 사는 것. 우리도 먹고 마시지만 본능성으로 사는 게 아니다.

 

옛날의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불에 타 없어졌듯이 세상을 목적하며 예수를 믿게 되면, 종교적 바벨론을 키우고자 노력을 하고 충성봉사를 하게 되면 이것도 언젠가는 다 불에 다 타버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자기가 신앙이라고 열심을 내면서 해 놓은 것이 전부는 도적을 맞은 셈이 되는 거다.

 

‘외부 모양 부피 덩어리를 키우자. 키우자’ 하는 것에 교인들의 마음을 모이게 하려면 돈이 필요한 거고, 이러려면 교인들로부터 돈을 짜내는 거다. 이렇게 해서 교회건물을 크게 지으면 이 목사를 성공했다고 한다. 교인들은 그걸 보면서 ‘내가 저 일을 하는데 헌금을 얼마를 냈는데’ 라고 하면서 위안을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껍데기 운동, 표면, 불타질 목적에 다 써버린 거다. 진리말씀을 전하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건물이 필요해서 예배당을 사거나 지은 게 아니라 먼저 건물부터 크게 지어놓고 온갖 인본주의를 써서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 발상부터가 잘못된 거다.

 

교인들의 마음을 하나님을 향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일에 박는 것, 하나님의 심판에 박는 것은 마음 도적이다. 오늘날 이런 목사가 얼마나 많으냐? 교인들로 하여금 자기 신앙의 방향이 땅인지 하늘인지를 볼 수 있는 눈은 열어주지 않고 불에 타서 얼어질 세상 것에 열심을 내게 하는 것은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도적이다. 교인들의 신앙 믿음을 송두리째 뺏어가는 도적이다.

 

‘하나님께 충성봉사하면 세상에서 부자 된다’ 라고 하며 성경을 가지고 교인들의 마음을 물질성에 붙인다든지, 종교적 사업을 크게 이뤄놓으면 부흥인 줄 아는 게 바벨론 사상이다. 그런데 목사들도 이걸 잘 모른다. 성경은 단순히 행동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행동을 하는 사람의 정신세계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이걸 볼 줄 알아야 한다.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외부, 모양, 부피, 덩어리를 키우자고 하는 종교적 사업주의자들이 만나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그 일을 같이 하게 되는데, 이는 마음과 마음, 정신과 정신이 맞으니까 연합이 되는 거다. 오늘날도 보면 하나님이 돌부처와 연합을 했다. 무슨 말이냐? 교회 목사들이 중과 연합이 됐다는 거다. 목사가 중들과 악수를 하는 게 뭐냐? ‘너랑 나랑 원수로 지내자’ 하면서 악수를 하는 거냐, ‘같이 일을 잘 해 보자’ 라고 하면서 악수를 하는 거냐? 같이 잘 해 보자고 악수를 하는 거다. 하나님께서 이걸 가만 보고 계시겠느냐? 분명히 진노를 하신다.

 

교회의 도적들은 육의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을 충동을 잘 하고, 육의 분위기를 잘 타고, 세상 분위기를 잘 타고, 이런 자들끼리 연합하여 육적 종교적 유행바람을 일으키게 되는데, 교인들을 자기들이 목표한 일에 물질 바쳐, 시간 바쳐 충성봉사를 하게 해서 결과적으로 영적인 면은 다 도적을 맞게 한다. 성경대로 말하면 전도를 해서 교인들을 배나 더 지옥자식으로 만들어 놓는다. 많은 교인들이 이런 도둑이 도적인 줄을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믿으면서 한 10년만 가 봐라. 그 사람의 정신이 어떻게 되는지 봐라.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누구와 동류가 되며? 간음하는 자와. 즉 간음하는 자와 친구가 된다는 거다. 우리가 볼 때 예수를 믿는 사람이 도적을 보면 ‘나와 연합을 하여 같이 도적질을 하자’ 라고 하거나 간음하는 자를 보면 ‘나도 좀 같이 하자. 너희들만 재미를 보느냐?’ 라고 하는 자가 있느냐? 일반적으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없지만 성령의 눈을 가지고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의 신앙정신이 세상으로 돌려져 있다면 이것은 세상과 짝해서 간음을 하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은 웬만하면 자기 마음이 세상 쪽으로 붙었는지, 사람 쪽으로 붙었는지, 하나님 쪽으로 붙었는지 스스로 대강은 느낄 수 있다. 부분 부분에서야 생계를 위해 생활을 하는 거지만 그것을 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만들어지는 것으로 들어가 있다면 이건 바로 된 거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편하게 살자는 목적으로 살고, 이를 위해서 교회에 다니고 충성봉사를 한다면 남 보기에는 앞에서 말한 사람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목적은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이건 믿음이 아니라고 하신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게 보이는 세상과 세상의 것을 먹고, 그 정신을 먹고 그것을 보고 매력이 있다고 하며 따라가는 그 신앙정신 사상은 간음이라고 하신다.

 

그러니까 시집장가를 갔다면 아무리 못 살아도 자기 남편을 따라가야 할 텐데 자기 남편이 돈이 없다고 해서 돈 많은 남의 남자를 따라가면 간음이듯이 영적 간음이란 쉽게 말해서 교인이라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로 자기의 몸을 샀으니까 예수님을 따라가야 할 텐데 예수님이 아닌 세상을 따라간다면 이건 신앙 정신적 사상적 간음이다.

 

영의 눈으로 보면 오늘날 교회 안에 세상을 따라가는 영적 간음이 참 많다. 목사부터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예수 잘 믿으면 세상에서 뭐가 어떻게 된다’ 라고 하는 게 영적 간음자다. 교회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붙잡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 주님을 버리고, 이 분의 말씀을 등 뒤로 내버리고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세상을 붙잡고 있다면 이게 다 영적으로 간음하는 자들이다. 육적인 면만 알고 영적인 면을 모르게 되면 ‘저 놈은 도둑놈이다. 저 놈은 7계명을 범한 자다’ 라고 하며 남에게 손가락질을 할지라도 알고 보면 그 말을 하는 자기도 그런 죄를 그대로 짓는 거다.

 

성경에 보면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많은 사람이 잡아와서 예수님께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시험했다. 이에 예수님은 땅에 앉아 글씨를 쓰시고 ‘죄가 없는 자가 이 여자를 돌로 쳐라’ 라고 하니까 여자를 버려두고 다 도망을 가버렸다. 그러니까 간음한 여자를 데리고 온 자들도 영적인 면으로는 자신들도 세상을 사랑하는 영적 간음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안 거다.

 

이걸 그대로 우리에게 가지고 오면 자기 세상을 좋도록 해 달라는 목적으로 예수를 믿는다면 이 사람은 자기 주관의 믿음을 가진 거라서 예수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자기 쪽으로 예수를 끌어들여서 예수님의 만능의 능력으로 자기의 세상적인 욕심을 채우려는 거다. 이것은 신앙 사상적으로 보면 세상과 간음을 하는 거다.

 

우리 주님이 이런 간음자를 그대로 버려두겠느냐? 속에서 얼마나 시기 질투가 나시겠느냐? 주님의 이 마음을 생각해 봐라. 그럼에도 거짓 종들은 이것도 모른 채 아예 노골적으로 교인들에게 세상을 구라하고 가르친다. 어느 목사는 기도하면서 입을 크게 벌리라고 한단다. 왜냐? 복을 많이 받으라고. 복이 입으로 들어오는 거냐? 이건 하나 같이 미친 거다. 세상은 말할 것 없고 기독교 안에도 미친 사람이 참 많다. 정신적 상태로 미친 사람이 참으로 많다.

 

19절: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기독자들의 몸은 주님께서 피로 사신 주님의 몸이요,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전이다. 그런고로 우리의 손도 발도 입도 누구의 것이냐? 주님의 것이다. 내 몸 모두가 주님의 것이다. 내가 먹고 마시고 일하는 것도 주님의 것이다. 내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면 주님을 믿는 내 쪽에서 ‘내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라고 하면 주님이 이 말을 듣고 ‘그래, 다 내 거다’ 라고 하시겠느냐, ‘아니다. 네가 다 써라’ 하시겠느냐? ‘네 거니 네가 써라’ 라고 하신다. 그러니 우리의 입은 누구를 찬송할 입이냐? 주님을 찬송할 입이고, 그리고 우리의 입은 천국복음, 하늘나라를 전할 입이다.

 

그런데 악인들이 자기의 입을 누구에게 줬다는 거냐? 악에게 줬다. 이게 무슨 말이냐? 악한 일에 쓰이는 이용물이 됐다는 거다. 그러니까 세상과 세상 것을 자랑하고, 불에 타질 것을 목적적으로 건설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을 것만 가르친다는 뜻이다. 이게 거짓 종들의 입이다.

 

예수님께서 바리새교인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했는데, 사람이 독사에 물리면 온 몸에 독이 올라서 죽듯이 종교적 업적을 쌓는 것은 세상에 속한 것이니, 이렇게 되면 이 사람은 세상 독이 올라서 자기 속에서 신앙정신은 죽어버리고 세상만 자꾸 사는 거다. 이렇게 해서 세상을 아무리 많이 가졌다고 해도 이 세상은 언젠가는 다 불에 타지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심판 때 자기도 심판을 받게 되는 거다.

 

‘예수 믿고 세상에서 크게 잘 되어라’ 라고 하면 축복의 말인데 이게 왜 악한 말이라고 하느냐? ‘예수 믿고 세상에서 축복 받아 잘 살아라’ 라고 하면 온 교인들이 ‘아멘, 아멘’ 하는데 이게 왜 악한 말이냐? 잘 되라고 해서 ‘아멘’ 하는 건데 이게 왜 악한 말이냐? 이러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이 하는 그걸 악한 거라고 하는 우리가 미친 거고,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미친 건데, 누가 이걸 심판하는 거냐? 주님이 오셔서 심판을 하신다.

 

우리가 제 삼자적 입장에서 본다면 세상을 목적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과, 예수를 믿고 구원을 이뤄서 온전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 중에 어느 쪽 사람이 바른 믿음 같으냐? 세상이냐, 온전이냐? 온전 쪽이다. 그렇다면 온전 쪽이 바로 믿는 것이라고 판단을 하는 자기는 지금 어느 쪽으로 믿고 있느냐? 세상과 세상 것을 자랑하고 불에 타질 것을 건설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오늘날 앞에서 말한 세상정신으로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선악과를 따먹고 망하라는 게 아니라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라고 하는 마귀의 말에 다 ‘아멘’ 할 거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마귀의 그 말을 악하다고 하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생명과는 따먹지 말고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라’ 라고 했다면 ‘아멘’ 해야 하느냐, 안 해야 하느냐?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실 분도 아니고, 이런 말을 한다면 하나님이 아니다. 혹시 하나님이 이런 말을 한다면 이건 틀림없이 마귀가 하나님의 가면을 둘러쓰고 그 말을 하는 거다.

 

그러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라고 하는 뱀의 말이 왜 악한 거냐? 사람을 하나님 앞에 악하게 만드니까 악한 말이다. 그러면 ‘악하다. 선하다’ 하는 게 뭐냐? 하나님 앞에 악한 게 뭐냐? 뭘 보고 악하다고 하는 거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은 다 악한 거다. ‘사람을 때렸네. 죽였네’ 이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악하게 취급을 해 버린다. 악한 사람은 그 다음에 행동적으로 사람을 살리던 죽이던 별 짓이 다 나오는 거다. 실지로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얼마나 별 짓이 다 나왔느냐?

 

우리는 악하다고 하는 시점을 알아야 한다. 악하다는 것은 벌써 말씀에서 떠난 거다. 즉 말씀을 듣기 싫어한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말씀에서 떠났는지, 안 떠났는지?’ 하는 것은 예배의 태도에서 알 수 있다.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려고 온 건지, 구경하러 온 건지, 잠자러 온 건지?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들어간다. 성한 사람도 늘 ‘난 아프다. 난 못 일어난다’ 하고 있으면 이 사람은 정말로 아파진다. 우리교인들은 세상을 힘 있게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 노래도 부르고 대화도 해 가면서 웃어가면서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왜냐? 구원이 있으니까. 그렇지 못하면 괴로움을 만들어 가면서 괴롭게 산다.

 

마:에서 보면 마귀가 예수님께 ‘배고프게 있지 말고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안 죽는다. 나에게 한 번만 절을 하면 세상영광을 다 주겠다’ 라고 했는데, 이게 왜 악한 말이냐? ‘배가 고픈데 만능의 능력을 가지고도 왜 그렇게 있느냐? 그 능력을 어디에 써먹을 거냐? 돌로 떡을 만들어서 먹어라’ 하는 게 왜 악한 말이냐?

 

만화 같은 말이겠지만 만일 예수님도 배가 고프고, 마귀도 배가 고플 때 마귀가 하는 말이 ‘예수야, 이리 와라. 우리 배가 고픈데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서 같이 먹자. 이를 위해 우리 같이 기도하자’ 라고 한다면 이게 악한 말이냐, 선한 말이냐? 이게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예수 믿는 사람 속에 이런 정신적 작용이 되는 걸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교인들을 향해서 ‘세상 일이 만사형통하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라고 하는데, 이게 왜 악한 말이냐? 일반사람들이 들을 때는 좋게 보이겠지만 우리가 볼 때는 이런 게 다 악한 거다.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많다. 세상사람들은 꿈에 용을 보면 운수 대통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마귀를 봤다고 할 정도다. 정 반대다.

 

세상교회는 모두가 ‘부자가 되는 복을 받아라’ 하고, 교인들은 이 말을 들으면 ‘아멘 아멘’ 하는데 이게 왜 악한 말이냐? 세상교회는 대 은사집회를 여는데 이게 왜 악한 거냐? 어떻게 하건 예수이름으로 종교적 바벨론을 크게 만들면 하나님께 영광일 텐데 이게 왜 악한 것이며, 무엇 때문에 세상이 불탈 때 이걸 다 불에 태우는 거냐?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해서 다 부자가 되는데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다 거지로 사느냐? 또는 믿는 우리가 축복을 달라고 하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만 축복을 달라고 기도를 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게 되는 거냐? 맨날 세상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이런 기도를 하지 않는 우리보다 더 잘 사느냐? 맨날 세상 복을 구하는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면 신앙이 바로 된 게 있겠느냐? 이런 사람일수록 맨 세상 물욕심만 가득 차 있다.

 

지금 왜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으냐?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 복 받고, 부자로 살고, 건강하고, 만사형통하고’ 라는 게 이치에 맞는 말이냐? 안 맞지 않느냐? 그런데 왜 이치에도 맞지 않는 말을 교회에서 공공연히 하고 있느냐 그 말이다. 이치가 안 맞는 말은 전부가 거짓말에 속하는 거다.

 

하나님의 본질적 교훈, 생명 길, 좁은 길, 진리의 길에서 이탈시켜서 세상 넓은 길, 사망 길로 가게 하는 모든 가르침들은 악한 입들이다.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은 교인들을 가르친다고 하는 게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사람으로, 교만하고 거만하고 불에 타질 사람으로 만들어서 영적인 면에 완전히 멸망을 시켜놓고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사람으로 만드는 악한 자들이다. 우리는 악한 사람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궤사’가 뭐냐?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게 궤사다. 악한 인도자는 거짓말을 잘 만들어 낸다. 그러면 교회 지도자가 어떻게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거냐? 일반적으로 사실이 아닌 말을 만들어서 세상에 퍼뜨린다는 거냐? 일반세상은 이런 거짓말이 많다. 세상에 이런 거짓말이 많을수록 사람들이 고통과 고난을 당하고 불행에 빠지게 된다. 이런 모든 거짓말은 자기의 사리사욕과 직결이 되어있다.

 

신앙 면에서의 거짓말이란 아무리 성경구절을 붙여서 말을 할지라도 천국이라고 하는 실상세계의 뜻이 아닌 세상과 세상에 속한 말이라면 이것은 영원한 천국에 관한 것이 아니라서 거짓말이다. 왜냐? 언젠가는 불타고 없어질 임시적인 땅을 목적으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이 아닌 언젠가는 없어질 임시적인 것에 목적을 붙여서 말을 하면 이것은 거짓말이다.

 

성경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로건 행동으로건 사건으로건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던 전부가 창세 전부터 있었던 실존의 세계, 실상의 세계인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세계를 말해주고 있다. 내가 앞으로 갈 세계를 말해주고 있다. 이 세계를 말해주는 것을 이 세상으로 돌려서 말을 한다면 전부가 거짓말이 돼버리는 거다. 그런데 말씀의 구별력 분별력이 없으면 마귀가 예수님에게 했던 것처럼 성경구절을 붙이면서 세상을 자랑하고 가지라고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려니’ 하고 따라가게 된다.

 

세상이 듣기 좋도록 하는 말은 전부가 마귀의 말이요, 이런 말을 하는 자는 악한 거짓 종이다. ‘성경을 들고 다닌다. 성경을 들고 말한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이구나’ 이게 아니라 성경구절을 들어서 말을 해도 ‘목적을 어디에 붙여서 말을 하느냐?’에 따라 세상 말일 수도 있고, 천국 말일 수도 있는 거다. ‘성경구절을 붙여서 말을 하느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느 목적에 성경구절을 붙이느냐?’ 이게 문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