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1주 주일설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 (마태복음 1장 18~25절) 김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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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림절 첫 주일입니다. 대림절이 있는 12월이 되면 한 해가 정말 빠르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한 해 동안 바쁘게, 열심히 살았지만 만족한 마음이 드는 것보다 아쉬움이 훨씬 많습니다.
지난 주 설교 내용 대로 나중에 몰아서 한꺼번에 뭔가 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매일 매일의 헌신과 충성과 봉사와 순종과 섬기는 작은 언행들이 쌓이고 쌓이면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풍성한 열매가 되는 겁니다. 내일은 없다, 오늘만 있다라는 마음으로 살아 가시라고 말씀 드린 것 기억 하실 겁니다.
오늘 하루에 충실하시는 습관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라며, 이번 대림절 기간 동안에는 지난 한해를 잘 정리하시고 예수님을 맞이하는 기다리는 소망의 마음으로 차분하게 보내 시되, 특별히 매일 매일의 삶을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아 내는데 집중하여 우리 예수님을 가장 영광스럽게 영접하는 은혜 받은 자녀의 모습으로 준비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번 대림절 4주 동안의 설교는 각 복음서의 1장에 나오는 이야기들로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1장의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계보가 나옵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록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관하여 유대인들이 호응할 만한 이야기를 중점으로 기록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분명하게 아브라함과 다윗왕을 계승한 정통 후손임을 명백히 밝혀 주었습니다.
또한 구약의 많은 예언과 기록들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메시아(그리스도, 구원자)이며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려 했습니다. 한 마디로 마태복음서는 유대인들에게 다윗 왕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분이 혈통적으로 완전한 유다지파의 후손임을 드러낸 마태는 곧이어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본문 18~20절을 보겠습니다.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멘.
마태복음에는 여러 가지 마태 만의 특징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마태는 하나님의 나라 라는 표현 대신에 “천국”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천국”이라는 단어가 37번이 나오는데, 디모데후서 4장 18절을 한 곳을 제외한 36번은 전부 마태복음에서만 등장 합니다.
하나만 더 덧붙이면, 마태는 천국에 복음이라는 말을 붙여서 “천국 복음”이라는 용어를 사용 했는데, 이 역시 마태복음에서만 세 번 등장하는 유일한 표현입니다. 이 외에 유일하게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 했다던가, 산상 수훈과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훈들의 분량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마태복음만의 이러한 특징 중의 하나가 오늘 본문 18절 시작에 등장합니다. 어떤 것일까요? 바로 “그리스도”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너무나 많이 설명 들으셔서 다 아실 겁니다.
‘메시아’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는 ‘마시아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마시아흐(מָשִׁיחַ)’가 신약성경의 언어인 헬라어(그리스어)로는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이고, 이를 영어 단어 ‘Christ’에서 우리 말 성경으로 ‘그리스도’라고 번역한 겁니다.
마태복음의 1장 1절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시작이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앞에 내세웁니다. 오늘 본문 18절에서도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라고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 했습니다.
마태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곧 그리스도(구원자) 이셨고, 그리스도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라는 확고한 믿음의 고백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러한 믿음이 이제는 유대인 동료들에게 전파 되어서, 유대인들이 피 눈물나게 간절하게 고대하는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 이라는 사실을 확인 시켜 주려 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메시아, 구원자) 이시고, 그리스도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라는 이 고백 만이 성경이 가르쳐 주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서도 이 고백이 믿어 지고, 고백 되어 지고, 지켜 지고, 찬양하고, 전파 하는 것이 곧 신앙생활이며,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천국 백성으로 인정 받게 참 믿음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거나 인용 하실 때가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라고 붙여서 사용하는 것을 습관화 해 보십시오. 기도 마칠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성경 구절 인용 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 하시기를”, 영광과 감사를 올려 드릴 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귀와 찬양을 받으옵소서”, 귀신을 대적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 마귀, 귀신은 떠나가라” 라고 하시면서, 마태의 고백이 곧 나의 고백이라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선포 하십시오.
별거 아닌 것 같죠,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도 드실 겁니다. 해 보십시오. 은혜와 평안이 충만 하실 겁니다. 저는 기도 마칠 때 항상 “나의 왕, 나의 주인, 나의 구원자, 나의 친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대림절 기간 동안 온전하고 진실 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 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여러분의 작은 고백이 은혜로 역사하여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을 천국 백성 답게 변화와 성장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여러분의 입술에서 “예수는 그리스도 이시고, 그리스도는 오직 예수 한 분 뿐”이라는 고백이 거룩한 성탄의 아침 까지 간절한 소망 가운데 끊이지 않고 선포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마태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 매우 특별하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그 핵심에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18절에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고 하였고, 20절에도 “그(마리아)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아기가 잉태되고 출산 되었다는 마태의 이 증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가치를 신적으로 부각 시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기획되거나, 부풀려지거나, 과장 되거나, 억지스럽거나, 강제 교육용 시나리오로 작성 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증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적으로 목격 되었던 실제적인 사실을, 직접 경험하고 직접 목격한 다수의 진술 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기록된 절대적인 진리이며, 이 증언된 사실을 믿고 지키는 것이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 시초가 됩니다.
지난 주에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는 설교 말씀 중에서 우리가 처음 시작한 것을 소망 중에 끝까지 견고하게 붙잡으면 하나님의 집 앞에 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고 하였는데, 누구든지 처음 믿음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믿는 것이며 그 시작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 예수를 절대적으로 신뢰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홀로 아기가 생겨서 출산했다는 이 이야기가 진짜로 믿어지십니까? 아멘이신가요? 다 아멘이라고 대답하시는데, 그럼 도대체 이것을 믿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성경에 그렇다고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런가요? 교회에서 듣고 배운 것이 그렇다고 해서 믿으시는 건가요? 잘은 모르겠는데 교회다니다 보니 왠지 안 믿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따라서 그냥 믿는 것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여러분 스스로가 나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왜, 도대체 이 이야기를 믿는다고 생각하는지를 질문하여 보시고, 나름대로 답을 해 보십시오. 막연하면 안 됩니다. 분명하고도 확실한 근거와 이유가 있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믿음의 증언이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이야기 이고, 둘째는 예수님의 죽음 가운데 삼일 만에 부활하신 이야기이고, 세 번째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한 본체이신 삼위일체 하나님 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가지 중에 하나라도 믿고 있지 않다거나, 믿어지지 않는 다면 그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가지를 다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가지를 왜 믿고 있는지,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잘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무조건 믿느냐, 아니면 알고(이해하고) 믿느냐” 이 문제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계속 논쟁이 되어 왔는데 이를 신앙과 이성의 조화와 부조화 논쟁이라고 부릅니다. 좀 어렵죠.
고백론으로 유명한 어거스틴을 아실 겁니다. 어거스틴이 개종 후 처음 저술한 「독백록」(Soliloqia)에서 자기가 믿게 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하나님을 불러놓고는, 자기는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을 잘 모르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 나는 당신께로 가기만을 소원합니다. / 나는 당신께로 갑니다. / 어떻게 가는지 가르쳐 주시기를 다시 간구합니다. / 내가 기도에서 말한 모든 것들을 알기를 소원합니다. / 내가 이런 것들을 어떻게 말할 수 있었습니까? / 내가 마음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말한 것은 아닙니다. / 여러 곳에서 모은 것들, 그래서 나의 기억에 저장한 것들, 그래서 내가 그저 믿게 된 것들을 말한 것뿐입니다. / 그러나 아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정말 간절하게 하나님을 알기를 소원했고 이해하기를 소원했으며 간절함의 시간을 통하여서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I believe in order to understand / Credo ut intelligam)라고 천명했습니다. 인간의 이성 보다 믿음을 앞세우고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는 이런 고백을 기초로 하여 자신이 믿게 된 신앙의 조항들을 이해하기 위해 평생에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 이 말의 반대는 “나는 믿기 위해서 이해한다”라는 말입니다. 믿기 위해서 이해 한다는 말은 신앙보다 이성(지성, 지식)을 앞세우는 말입니다. 나는 여기에 속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설명을 듣기 원합니다.
믿어준다 것은 말을 들어보고 이해가 되어야 수긍을 하는 겁니다. 말이 안되면 신뢰하지 못합니다. 믿음을 바탕으로 내가 믿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가려는 신앙 우선 주의 보다, 이해하고, 이해 되는 것만 단계적으로 믿어가는 이성 우선주의는 항상 충돌을 합니다. 인간의 이성이 작용하는 한은 신앙과 이성과의 조화와 부조화 현상은 끊임 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다시 앞에서 했던 질문을 또 해 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예수님이 죽음에서 삼일 만에 부활, 삼위 일체, 이러한 신앙의 난제들을 “이해하기 위해 믿으십니까? 아니면 믿기 위해서 이해를 하십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들은 이후에 내 마음의 생각과 믿음의 척도를 확실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은 어설프게, 대충 대충, 긴가 민가 하듯 불확실하게 소유 되어서는 진리의 씨앗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구원을 이루어가는 확실한 기둥으로 성장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이 동정녀 탄생의 출생 이야기를 확고부동하게 믿게 만드는 근거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성령입니다. 마태는 성령으로 잉태 되었다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기록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이 동정녀 탄생이 이루어지게 하신 주체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면 무슨 이성이고, 이해고, 논리와 설명이 필요 합니까? 하나님이 하셨다면 하신 겁니다. 그냥 믿으면 됩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지 못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그 믿음의 근거가 성령이 하신 일, 곧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 창조와 우주 만물을 만드신 분입니다. 전지 전능 하신 분이십니다. 전지 전능, 모르는 것이 없으시고 하실 수 없는 것이 없다는 뜻이죠. 하나님이 계시다, 존재 하신다는 사실을 기본적으로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동정녀 탄생을 못 믿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 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은 처녀인 상태에서 얼마든지 자녀들을 출산하게 만드실 수도 있으십니다. 마리아와 같은 처녀로 아기를 잉태 하게 하는 상황을 지금 당장 이 세상의 수십억 명에게서 동시에, 즉시 일어나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단 한 사람에게서만 그 일이 일어나게 하셨다는 것이 더 기적 아닙니까?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계획하시고 일하신다는 명백한 증거이며, 하나님 만이 유일하시며 전능하신 분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신 일입니다. 이런 위대한 사건 앞에서 의문과 불신과 조소와 무시의 말을 던지는 것은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하심 자체를 부정하는 불손한 태도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해요? 저한테 설명좀 해 주세요. 듣고 이해 되면 나도 믿을께요? 라고 질문을 한다면 뭐라고 대답 하시겠습니까? 만약에 나에게 질문을 한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제 대답은, 『“하나님이 하셨으니까요? 하나님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이 아닙니다. 실제로 존재 하실 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살아계신 분이고 전지 전능 하신 분입니다. 황당하게 들리시죠.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어요. 하나님이 계신지, 그 분이 전지 전능 하신 분인지 어떻게 아느냐고요? 내가 그 증거예요.
나도 이전에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않고는 알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살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하나님은 내 마음에 찾아 오셨어요, 그 분은 나에게 믿음 이라는 선물을 주셨죠. 믿음이 무엇인지 저도 궁금했어요, 그 믿음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진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내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삶 속에서 느끼게 하고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더라구요.
하나님은 제게 믿음 이라는 선물을 주신 후에는 제가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좋은 것들, 예를 들면 평안과 감사와 사랑과 소망과 웃음과 기쁨 같은 것들을 풍성하게 누리게 하셨어요. 이런 것들을 은혜라고 말하는데 이 은혜는 자격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예기치 못한 선물이라는 뜻이더라구요.
제가 받은 은혜중에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은혜는 용서였어요. 무슨 용서이냐구요? 믿음을 받은 사람이 그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들을 계속 받으면서 살아가게 되면, 나중에 죽을지라도 하나님이 계시는 나라에서 영원토록 살게 해 주신다는 것이 용서였어요. 믿음, 은혜, 용서를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이시더라구요.
하나님을 알게 된 이후 저는 그때서야 깨달았죠. 하나님은 이해 하는 것으로 알게 되는 분이 아니라 믿음으로 알게 되는 분이구나 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죠. 내가 만난 하나님은 나 같이 악하고, 거짓말 많이 하고, 음란하고, 폭언하고, 가족도 잘 돌보지 못하고, 자존심만 내세우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말로만 다하려고 하고, 허황과 공상에 빠져 살고, 로또 같은 요향이나 바라고, 아무런 비전도 없이 시간만 허비하며 허랑 방탕한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 제가 하나님은 제게 찾아 오시고,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제 과거를 완전하게 정리해주시고 다시 새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용서해 주셨어요. 마음에 여유와 웃음과 기쁨과 평안을 주셨어요. 나는 지금 누가 나에게 천억원을 준다해도 옛날의 나로 절대로 돌아가지 않아요. 나를 이렇게 바꾸어 주신 분이 하나님 이잖아요. 그 분 때문에 180도 변화된 내가 그 증거인데, 내가 그렇게 변화된 사실을 실제로 경험했는데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어요.
제가 경험한 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신 분이에요.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느냐고 제게 물어 보셨죠. 제가 백 번 설명을 드려도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는(존재하시는)분이라는 사실과, 성경에서 홍해 바다가 갈라졌다,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 이런 말들은 이해 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진짜 좋은 선물을 드릴께요. 하나님이 안 믿어지고 의심이 들면, 그냥 하나님의 이름을 한번만 불러 보세요 그리고 나서 하나님 어디서 듣고 계시면 나에게도 찾아 오실 수 있으시겠죠. 하나님이 진짜 계시다면 나에게도 믿음의 선물을 주세요 라고 소원해 보세요. 하나님이 대답 하실 것입니다. 제가 받은 선물을 당신도 똑 같이 받을 수 있어요. 한 번 도전해 보세요.』
쓰다 보니 간증 아닌 간증처럼 되어 버렸네요. 성령으로 잉태된 에수님의 출생 이야기는 신비한 이야기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신화나 전설이라고 할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이해시키고 설명해야할 성질이 아닙니다. 믿음만이 이 사실을 진짜 진리로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
그 믿음 조차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에, 하나님이 나에게 찾아시고, 그 분이 살아 계신 분이고, 전지 전능 하신 분이라는 위엄을 보여 주실 때 우리는 비로소 동정녀 탄생의 비밀을 믿을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선물을 바라고 소원하는 것이 이 어려운 성경 난제가 이해 되어지고 믿어지게 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대림절은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믿어지지 않는 동정녀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이 절기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구하는 가장 좋은 기간입니다. 간절히 구하고 바라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과 찾아 오심과 만나 주심과 믿음의 선물을 풍성하게 주시는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2천년 전에 주셨던 믿음과 은혜의 선물, 그 벅찬 감동이 담긴 21~25절까지를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아멘.
아기 예수님은 나에게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가장 큰 은혜와 기쁨을 누리게 되는 만남의 시간이 바로 아기 예수 탄생일 입니다. 처녀에게서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이름뜻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으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의 ‘임마누엘’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예수,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시는 임마 누엘, 그 이름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와 동행하여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용서 받은 자요, 믿음 있는 자요, 은혜 받은 자요, 소망 있는 자요, 생명의 길로 인도 함 받는 자임을 늘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를 만나 주시려고 찾아오시는 그 기쁘고 복된 날을 우리 모두가 간절히 사모하며, 선물을 받을 준비를 갖추고 겸손하게, 거룩하게, 대림절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지켜 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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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 죄를 구원하시려 처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 예수를 보내 주시니 감사와 영광과 존귀를 올려 드립니다. 경배하며 아기 예수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하시되,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 주심에 감사함으로 대림절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 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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