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2주 주일설교. 곧 부르시니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마가복음 1장 14~20절) 김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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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 4주 동안은 복음서의 각 1장의 말씀을 나누겠다고 예고해 드렸고, 지난 주에는 마태복음 1장의 내용으로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는 설교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마가복음 1장의 내용으로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마태복음의 특징 기억 나시나요? 마태복음은 ‘천국’과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가르침과 설교가 많고, 그리스도를 부각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아, 구원자)라는 사실을 강하게 강조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 마가복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이 유대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복음서라면 마가복음은 헬라인(헬라문화에 속한 사람들을 지칭)들을 대상으로 쓰여졌습니다. 마태는 율법을 알고있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복음을 증거했지만, 마가는 성경을 모르는 헬라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설명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주제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가 무엇인가요?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을 제일 빠르게, 많이 모으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공짜로 먹을것이나 물건들을 나누어 주는 겁니다. 백화점에서 한정 사은품이나 특별 사은품을 선착순으로 나눠준다고 광고 나가면 새벽부터 줄서는 이른바 오픈런들 많이 하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나 공짜라고 하면 너무나 좋아합니다.
교회 앞에서 떡볶이를 무료 제공 한다고 광고를 내걸고 대형 철판으로 떡볶이 만들고 있으면 주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일 겁니다. “나는 왜 덜 주냐, 조금 더 주면 안 되냐, 왜 한번만 받아야 되냐, 내일 또 주냐” 호응이 대단할 겁니다. 공짜라고 하면 체면도 염치도 없이 갑자기 짐승처럼 돌변하여 난장판 모습으로 돌변하는 장면을 많이 봅니다.
마가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공짜로 뭔가 나누어줄 여력도 없었고 복음을 그런 식으로 전달할 마음 조차 없었습니다. 그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한 방법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표적 사건들을 부각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더라, 38년 된 중풍병자가 일어나 걷더라, 문둥병이 순식 간에 낫더라, 악한 귀신이 다 떠나더라, 죽은 사람이 살아나더라, 천한 사람,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더러운 사람, 못 배운 사람, 여자와 과부, 어린 아이들 까지도 차별하지 않고 가까이 하시더라,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찾아와서 고쳐주고 위로해 주더라, 이런 말들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백성들 중 대부분은 이렇게 소외 받고 힘이 없는 빈민이나 서민 계층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헬라인들은 마가가 전해주는 예수님 이야기에 솔깃 했습니다. 그럼 나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위로 받고 고침 받을 자격이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짜로 먹을 것을 주지는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기적사건으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또한 마가는 예수님이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으로, 그리고 약자들을 위해 모든 무거운 짐을 짊어진 고난의 종으로 일하셨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나(마가)의 친구요, 여러분의 친구요, 세상 모두의 친구로 찾아오셨음을 증거 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유대인이셨지만 헬라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 나라로 초청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전파하였습니다.
이렇게 기적과 고난의 이야기를 앞세우려는 마가의 의도대로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 하시고, 구유에서 나시고, 동방 박사와 목자들의 경배를 받으셨고, 어린 시절 애굽으로 도피했다가 나사렛에서 자라시고, 어린 시절 예루살렘 성전에서 선생들(랍비)들과 토론 하셨다는 등의 성장 과정은 전부 생략 되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는 유대인들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꺼리지만 성경에 전혀 무지한 헬라인들에게는 별로 관심 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칫 지루함을 느낄 만한 자세한 이야기는 전부 생략하고 곧바로 본론으로 시작합니다. 마가복음에 “곧” 이라는 긴박함을 나타내는 단어가 41회나 사용된 것만 보아도 얼마나 빠르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가복음은 모든 준비 내용을 생략하고 예수님이 곧 바로 세례 받으시는 장면으로 시작 합니다. 다른 복음서와는 다르게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후에 광야에서 40일을 지내신 것으로 되어 있는데, 세부적인 시험 내용은 기록하지 않았고 단순하게 시험 받으셨다는 언급이 전부입니다. 하여튼 마가복음은 모든 면에서 급합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준비하게 된 경위는 불과 13절로 다 마치고, 14절부터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 됩니다. 마가가 그렇게도 예수님의 사역 내용을 급하게 전하고 싶어 했으니 예수님이 사역하시는 첫 마디가 굉장히 기대가 됩니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의 첫 마디는 앞으로 있게될 모든 사역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와 기준이 됩니다.
14, 15절을 읽어 드립니다.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것이 예수님의 장엄하신 일성입니다. 지난 마태 복음에서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 하면서, 예수님은 확실한 메시아(그리스도)이시고, 메시아(그리스도)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임을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 라는 진리를 유대인들에게 전파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에 비해 마가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가까이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하자”라는 고백, 그리고 증언을 헬라인들에게 전파하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첫 마디가 마가의 신앙 고백이자, 모든 사람의 신앙 고백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예수님의 일생 일대의 사역 목표는 회개, 복음, 하나님 나라, 믿음 이었는데, 마가 또한 독자인 헬라인들이 마가 복음서를 읽으며 마음에 감동을 받아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하게 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사역목표 였습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의 제자이기에 메시아(그리스도)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증거 하는데 있어서, 회개, 복음, 믿음,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전파하는데 집중하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올바르게 계승하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14절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복음이 하나님으로부터 기인 한다는 것을 먼저 알려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시작, 근원, 시초, 원인, 발단의 근거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데, 이 복음 되시는 예수님 자신 조차도 출발점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임을 앞세우고 계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인정하고 선포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영광을 하나님께 맨 처음으로 올려드리는 지극히 겸손하고 순종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쑥스러워 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모든 계획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 되었음을 선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행동하는 모든 사람들의 일과 계획 속에 적극 개입 하셔서 가장 큰 성공을 누리게 하시고 그로 인해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일 지라도 하나님 보다 앞서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는 것,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복음의 주체이면서도 하나님을 먼저 내세우는 모범을 우리에게 잘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 하십니다. 때는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는 지금 현재 시점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그리스도), 구원자의 통치가 시작 되었다는 개시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공간적인 장소의 개념이 아닌 통치의 의미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눈에 보이도록 가까이 서 계신 지금 이 곳이 곧 하나님의 나라가 온 것이다 라는 실현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하였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신 겁니다.
복음, 곧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실 주인이시라는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곧 하나님이요, 내가 있는 곳이 하나님 나라요, 나와 가까이 있는자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자들이요, 내 말을 듣고 따르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왕권적인 담대한 선포를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고, 이미 왔다라는 이 사실을 널리 알리고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의 목표였던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내가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영적 영안이 열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도록 가까이에 다가가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생활을 해 나가려는 순간 순간이 다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깨닫고 매 순간마다 회개하고, 매 순간 복음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매 순간 부활 영생을 믿고 살아가게 되면 우리는 틀림 없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도록 숨겨 있는 곳이 아닙니다. 또한 죽고 부활한 후에만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현재 내 마음 안에서, 내 삶의 자리에서 얼마든지 역사 할 수 있습니다.
단,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복음이신 예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고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항상 가까이에서 동행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에 사역을 시작함과 동시에 첫 마디 말씀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크나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자신과 함께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갈 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나라가 나에게 준 선물임에 깊이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그 하나님의 나라를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아니하고, 무엇 과도 바꾸지 않으려고 굳게 지켜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한 핵심은 회개하고 복음이신 예수님을 믿는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대림절 둘 째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더욱 더 간절히 소망하며, 진실한 회개와 굳쎈 믿음의 고백을 드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가까이 맞이 하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 하신 후에 그 나라에 들어갈 대상들을 부르시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부름의 영광을 받은 사람들은 갈릴리 어부 들이었습니다. 16~18절을 읽어 드립니다.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아멘.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자기 백성은 누구일까요? 자기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만한 사람들을 말하며, 예수님은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기에 그들을 한 사람씩 부르시고 함께 동행하게 하셨습니다. 즉,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게 되는 천국 백성으로 인도함을 받는 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부름을 받으셨나요? 우리는 전부 회개와 복음과 믿음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일들은 내 자의대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이 감동 주시고 은혜 주셔서 발생한 일입니다. 부르심의 과정이나 방법은 다르지만 우리도 갈릴리 호수의 제자들처럼 다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름을 받는 자들에게는 분명하게 요구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제일 먼저 시몬(유대식 이름, 헬라식 이름은 베드로-페트로스)과 그의 동생인 안드레를 부르시면서 “나를 따라오라 내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요구사항이 나옵니디. 바로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입니다. 고기잡이 하고 있는 어부에게 다자고짜 밑도 끝도 없이 “나를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어떠한 말씀이든지 말씀이 선포 되면 무조건, 즉시 따라오라는 절대 순종의 요구가 예수님의 첫 번째 요구 사항입니다.
그런데 따라오라고 하시는 이유가 어처구니 없게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낚는다는 의미는 그들을 제자로 삼고 가까이에서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나를 경험하게 하고, 그들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는 증인으로 삼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정을 오랜 시간 배우고 깨달아서 알고 있지만, 당시 어부들이 사람을 낚게 해주겠다는 황당무계한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 했을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그 반응이 실로 놀랍습니다.
18절에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주겠다는 그 말 한미만 하셨을 뿐인데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들의 주업인 고기잡는 일을 즉시 멈추고 그물까지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 반응이 믿어 지십니까? 마가는 급하게 전달하려는 습관을 따라서 예수님과 두 형제가 따라오라는 말씀이 오고가는 중간에 예수님과 옥신각신 하다가 마지 못해 따라 나서기는 했지만, 그런저런 복잡한 대화들은 다 생략하고 따라갔다는 것만 뽑아내서 단순하게 기록한 것일까요?
그렇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상상하는 것은 진짜 공상이고 허상일 뿐입니다. 말씀은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두 형제는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 한 마디를 듣고 강력한 부르심에 이끌려서 주저 없이 말씀이 떨어지는 즉시 그대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는 부르실 대상자를 직접 선택하신다는 것과, 그리고 그 대상자에게 찾아가셔서 직접 말씀 하신다는 겁니다. 선택과 부르심은 오직 예수님의 주권적인 결단에 의해 이루어지며 거부 할 수 없는 강력한 순종으로 역사합니다.
구약의 모세와 기드온과 사무엘과 에스더를 부르시고, 신약에서 12제자와 바울과 실라와, 루디아와 디모데와 디도를 부르신 분은 동일하게 예수님(삼위일체 하나님) 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들 모두를 사용하시려 직접 선택 하시고, 부르시고, 제자로 삼아 증인의 삶을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다는 말씀처럼, 부름을 받은 자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있음을 체험하는 감격을 누리리게 됩니다. 부르심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믿음을 증거하며, 회개의 삶을 살아내라는 선포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강력한 부르심의 능력이 “나를 따라오라 내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 속에서 나타나자 베드로와 안드레는 예수님의 그 얼굴, 그 눈빛, 그 말씀을 직접 대하고서 압도되는 위엄 앞에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즉각적이고 절대적인 순종으로 반응하게 된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이 직접 나를 선택 하시고 나를 불러 주셨다면 우리는 즉시 내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순종으로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왜일까요? 그 반응은 내가 이끌어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말씀 하시고 하나님이신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은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굴복시키고 복종하게 하는 은혜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시라고 말씀 드렸는데, 예수님이 여러분을 부르시는 것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너는 내 아들이야, 딸이야, 너는 내 제자야, 너는 내 자녀야, 너는 천국 백성이야, 자, 나와 함께 가자, 나와 동행하자,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부활 영생의 증인이 되게 해줄게” 이런 말씀을 들어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던 두 형제와 같은 반응을 보이신 기억이 있는 분이고,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데도 즉각 반응 하지 못하고 여전히 예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미온적인 태도와 거부의 반응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에수님은 찾아 오시는 분입니다. 왜 찾아 오나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복음을 믿게 하시고, 나를 따라오라는 부르심의 음성을 들려 주시려는 것입니다.
대림절은 그 찾아오심, 부르심의 대상이 나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나에게 오셔서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을 들려 주시기를 소망하는 절기입니다. 처음 부르심을 받았던 베드로와 안드레가 곧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두 형제에 이어 야고보와 요한 형제도 부르십니다. 19절 20절입니다.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아멘.
예수님이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자 이 두 형제는 배에서 함께 일하던 자기의 아버지인 세베데와 품꾼 들과, 배와, 깁고 있던 그물을 다 버리고 즉시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앞서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버리고 간 것도 대단한데 이 두 형제는 아버지까지 그냥 남겨 두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다니, 이것은 제대로 미쳤거나 아니면 강력한 권능이 역사했거나 둘 중 하나로 밖에는 설명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두 번째 사항이 나옵니다. 첫 번째요구사항이 무조건, 즉시로 따라오라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요구사항은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가족도, 재산도, 직업도, 물건도 즉시 버리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마음으로나 짐으로나 불필요한 것들은 싹 다 버리라는 겁니다. 다 좋은데 가족까지도 버리라는 이 요구는 정말로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고 하시면서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집안 식구끼리 너무 사랑하다 보니 그만 예수님을 사랑하기를 소홀히 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머뭇거리고 있다면, 가족끼리 불화를 일으켜서 라도 사이를 갈라 놓고 다시 예수님 만을 바라보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부르심에 무반응을 보이고, 사람(가족) 때문에, 물건 때문에 여러가지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따라가기를 주저하는 사람은 결코 사람을 낚는 제자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부르심에 무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까이 하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회개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믿고 살지 않겠다는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 오시는 목적은 부르시기 위하여, 따라오도록 만드시기 하여, 가진 것을 다 버리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가까이 경험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창조주가 나같이 먼지와 지푸라기 같이 하찮은 존재에게 찾아오신다는 것만 생각해도 가슴이 떨리고 감동의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습니다.
대림절은 당연하게도 아기 예수 탄생을 소망하며 간절히 간구하며 기다리는 절기 입니가. 하지만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대림절이 부르심에 대비하는 절기,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갈 준비를 하는 절기,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고 누릴 준비를 하는 절기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시고 지금 찾아 오고 계시며, 우리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시며 “나를 따라오라”라고 불러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따라오라”는 부르심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으시고 즉시 따라가실 준비가 되어 있으시죠?하셔야만 합니다. 가족까지 미련 없이 과감하게 버리고 떠나실 준비를 단딘하 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칭찬해 주시는 순종의 반응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대림절 남은 기간 동안 복음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굳게 붙잡고 간절하게 기도하며, 진실로 참회 하며, “나를 따라오라”고 불러 주실 우리 주님 만을 맞이할 준비를 하십시오. 그리고, 즉시 따라 나설 수 있는 믿음의 결단으로 증인과 제자의 길로 당당히 나아가시는 예비된 천국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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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으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저희들입 ㅜ르심에 반응하여 즉시 따라나서고, 다 버리고, 오직 부활영생의 증인과 제자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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