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구원의 단계

열려라 에바다 2023. 12. 14. 13:30

구원의 각 단계

태초 이전에 계획되었으며 그리스도에 의해 이미 성취된 이미 성취된 구원이 성령에 의하여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적용될지 에 대한 세부적 고찰이다.

 

소명으로 구원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에 앞서 구원받을 자로서의 선택이 있으나, 그것은 성부의 사역이므로 성령의 사역인 구원의 서정에서 제외된다. 

 

최초로, 작정하심과, 예정하심으로 부르신다...그러면, 예정하지 않으시면 안 부르시나? 그렇지 않다. 

 

마태복음 22: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모든 사람들을 부르신다.. <부르는 사람은 많으나 택함받은 사람은 적다...>예정적 부르심과, 전 인류에 대한 부르심은 다르다...예정적 부르심은 부르는 순간 구원이 주어진다... 예레미야 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예레미야와 같이 또, 구원받은 모든 많은 사람들과 같이 예정적 부르심이 아니어도, 모든 사람들을 부르신다...자유의지를 허용하시는 부르심이요, 선택을 할 수 있게 하시는 허용하심이다! 쉽게 말해서, 로봇으로 만드시지 않으셨고, 자유의지를 박탈하시지 않으셨으며, 천국과 지옥을 선택하게 하신 것이다. 마치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선택하게 하신 것과 같다! 


행13:48, 테타그메노이, 중간태의 형태로, 영생을 얻기로 작정된 자들...과 영생을 얻기로 스스로 작정하는 자들...두 가지의 뜻이 있다.


역대하 15:2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왜 지옥에 가느냐?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기 때문에...하나님은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 버리는 것이다...

 

구원의 길은 좁은 길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버리고, 넓은 길로 가고, 좁은 진리의 길을 버린다...

 

 

구원서정은 9단계로 나눌 수 있다...

 

1. 소명, 2. 회개, 3. 신(信...믿음), 4. 중생(거듭남, 다시 태어남), 5. 칭의(의롭다고 불러주심), 6. 수양(양자 삼으심), 

7. 성화, 8. 성화의 계속(성도의 견인), 9. 영화(천국에서 완성되는 미래의 일)

 

 

  1. 소명(召命) ... 구원으로 부르심... 

 

마태복음 22: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천사들과, 주의 종들을 보내셔서, 천국으로, 혼인잔치로 부르심...)

 

고전7: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1) 의미
  스스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죄인인 인간을 성령의 감화로써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따라 구원에로 부르시는 은혜로운 초대를 말한다(마 11:28 ; 요 7:37). 

  2) 구분
   ⑴ 실물 소명과 말씀 소명-전자는 자연 계시를 통한 소명(요1:9 ; 행17:26 ; 롬1:20 ; 2:14,15).
      후자는 특별 계시를 통한 계명(살후2:14)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말씀 소명만이 죄인의 구원에 유효하다(행4:12). 한편 말씀 소명은 다시 외적 소명과 내적 소명으로 두 가지로 분류된다.
   ⑵ 외적 소명-복음이 다만 죄인들의 귀에만 들려지고 성령의 감화하시는 역사가 뒤따르지 못하므로 구원에는 이르지 못하는 소명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강제적이나마 하나님의 의를 보임으로써 죄인들로 핑계치 못하게 하는 목적을 갖는다(롬 1:20).
   ⑶ 내적 소명-복음이 귀에 들려질 뿐만 아니라, 성령의 중생케 하시는 역사가 수반되어 구원에 이르는 결과를 낳음으로 유효적 소명(calling)이라고 한다(롬 8:30 ; 고전 1:9 ; 엡 1:10).
 

 

 2. 회심(회개와 신앙) 

마가복음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 의미
  회심(回心)은 옛 생활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려는 영적 방향 전환이다.

 

지적, 감성적, 의지적 회심, 즉 회개가 필요하다...

 

눅5:17-19 <스스로 돌이키는 의지적 결단이 필요하다...>

  1.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2.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3.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 특성
   ⑴ 구별성-법적 신분의 변화인 칭의(稱義)와 구별되고, 또한 이것이 원인인 중생과도 다르다.  

                    다만 내면의 변화에 관한 하나님의 재창조 행위이다.
   ⑵ 협동성-중생 이후 신인 협동(神人協同)에 의한 변화 과정이다.
   ⑶ 의식성-하나님과의 교제를 지향하는 의식적(意識的) 방향 전환이다.
   ⑷ 반복성-불 신앙에서 신앙으로서의 회심은 단회적이지만, 신앙 후에도 짓게 되는 죄로 말미암아 거듭 반복될 필요가 있다.

 

  3) 구분
  회심은 율법서 자신을 비추어 봄으로 야기되는 양심의 회개와 복음의 감화에 의한 신앙으로 구분된다.

 

  4) 회심의 첫째 요소-회개(悔改)
   ⑴ 회개의 정의-구원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기의 죄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고 자기의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결심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는 것을 말한다(소요리 문답 87). 그런데 이것은 회심의 소극적 부분이다.
   ⑵ 회개의 요소-마음의 변화이므로, 지성적(롬3:20), 감성적(시51:2,10,14; 고후7:9,10), 결의적(행2:38롬2:4) 요소를 포함한다. 

 

감성적 통탕의 예) 

 

누가복음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가장 진정한 회개는 이전의 죄를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다-마틴 루터-




  5) 회심의 둘째 요소-신앙(信仰)
   ⑴ 신앙의 정의-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의 은혜를 갈구하며, 더욱이 그를 영접함을 말한다. 즉 회심의 적극적 부분으로서 칭의와 관련이 있다.   
   ⑵ 신앙의 요소-신앙은 죄에서 돌이킨 후 인격적으로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참된 신앙은 복음에 관한 지식(딤후1:12), 기쁨과 감격 등의 감성,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살려는 의지적 결단을 포함한다.
   ⑶ 신앙(faith)의 종류
    ① 역사적 신앙-성경 진리를 자기와는 무관하게 역사적 사실로만 믿는 신앙의 형태이다(마7:26 ;약 2:19).
    ② 이적적 신앙-이적을 체험함으로써 혹은 이적의 가능성을 믿음으로써 갖는 신앙이다(마17:20;요11:12). 구원에 이르는 신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아니할 수도 있다.
    ③ 일시적 신앙-일시적 감정 및 이해 타산에 의한 신앙이다(마13:20-21;딤전 1:19 ;딤후4:10).
    ④ 구원적 신앙-성령의 중생으로 말미암는 인격적 신앙이다(갈 2:20 ; 골 3:9,10).

 

 

3. 믿음 ... 

마가복음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삼았느니라...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 부터 온 그의 말씀이다...믿음에는 약속이 있다...
행16:31 주 예수를 믿으라...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믿음에는 구원의 약속이 있다...

 

4. 중생(重生)

 

행19: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디도서3:5-7 

  1.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1.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2.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디도서 3장 5-7절은, 성령을 부어 주사(거듭남) 그의 은혜,, 즉 성령의 내주하심을 힘입어 의롭다 하시고, 상속자가 되게하신다...즉, 중생하고, 칭의하시고, 수양, 양자를 삼아 주신다...

 

요한복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1) 의미
  죄로 죽었던(엡 2:1) 영적 생명을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성령께서 역사 하사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고후5:17) 하는 과정이다. 이로써 영적으로 무능력했던 인간은 하나님 나라를 보고 들어갈 수 있으며(요3:3,5),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요 1:12). 

  2) 특성
   ⑴ 전인적 변화(全人的 變化)-부패한 영적 성향의 근본적 변화이다.
   ⑵ 즉각적 변화(卽刻的 變化)-성령에 의한 단번의 변화이다.
   ⑶ 잠재 의식적(潛在意識的) 변화-믿음에 이르게 된 후에야 자신의 내적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요3:8).
   ⑷ 이적적(異蹟的) 변화-인간의 결단에 의한 자연적이고 윤리적인 변화가 아니다.
   ⑸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 변화-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⑹ 영구적(永久的) 변화-절대 최소 되지 않는다.
 
 

 

5. 칭의(稱義)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우리가 어떠한 값도 치르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그의 의가 우리 속에 들어오고, 전가되어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다...

 

  1) 의미
  신앙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가 죄인에게 전가되고, 이에 따라 죄인에 대한 율법의 요구가 만족되어 그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재판적 선언이다. 이로 인하여 성도는 실제로는 죄이지만 의인으로 취급받게 된다.

 

  2) 칭의(justification)의 특성
   ⑴ 은혜성-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는 은혜이다(롬 3:20-24 ; 갈 2:17 ; 벧전 3:9).
   ⑵ 객관성-중생이 영적 상태의 내부 변화라고 한다면, 이것은 객관적 신분상의 변화이다.
   ⑶ 선언성-실제 상태는 죄인이나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하심으로 법적 신분이 의인이 된 것이지 생활에 있어서 무죄 상태가 되었음을 말하지는 않는다(창 15:6 ; 롬 7:24).
   ⑷ 전가성-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 의의가 전가됨의 결과이다(롬 5:18,19).
   ⑸ 즉각성-점진적이 아니라 신앙을 가짐과 동시에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3) 칭의의 요소
   ⑴ 소극적 요소-칭의는 과거, 현재의 죄를 용서하며, 회개할 때에 미래의 죄에 대한 용서이고, 절대 취소되지 않는다(롬 8:32-34). 하나님께서 먼저 버리시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서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⑵ 적극적 요소-칭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양자(養子)가 되는 권리와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영생권을 받는다(요1:12 ; 롬8:15,16 ; 갈3:14).

 
6. (수양, 양자삼음) 양자(養子) 

 

누가복음 20: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1) 의미
  마귀의 자녀였던 죄인 (마3:7요8:44 ; 엡2:3)이 칭의 됨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죄의 공포를 벗는 것(눅15:24)을 말한다(요1:12롬8:17). 

 

  2) 다른 과정과의 관계
   ⑴ 중생과의 관계-중생은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다. 그러나 법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은 양자로 말미암는다.
   ⑵ 칭의와의 관계-칭의가 죄인의 상태를 벗어난다는 소극적 측면이 큰 반면 양자는 의롭다   선언된 자가 누릴 영적인 복을 획득한 자격자가 된다는 적극적 측면을 지닌다. 그러나 전자와 후자는 원인과 결과란 측면에서 불가분의 관계이다.
   ⑶ 성화(聖化)와의 관계-양자는 죄인을 법적으로 하나님 자녀로 인정하는 것을 말하나, 성화는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본 받음으로써 거룩케 되어 간다는 점에서 전자와 후자는   형식과 내용의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3) 성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경우
  신자는 칭의의 결과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지만, 성경은 이외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경우에 대하여 언급한다.
   ⑴ 모든 인생-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시기에 이같이 부른다(행 17:28,29).
   ⑵ 이스라엘-하나님의 선민이었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다(신 32:6 ; 사 1:2 ; 말 1:6).
   ⑶ 그리스도-성자의 자격으로 성부를 아버지로 부르셨다(요 1:14).

 

 

7. 성화(聖化) (성화의 시작)

 

 

잠언 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감화감동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으므로, 성령께서 징계하시며,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1) 의미
  중생으로 말미암아 거룩케 될 기초를 닦은 뒤(벧후 1:3,4),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으로 본인의 결단과 노력에 따라(롬 12:9,16,17 ; 갈 6:7,8,15) 

 

점차 죄의 부패에서 떠나 성결케 되고 선을 행할 능력을 얻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을 말함.


  2) 특성
   ⑴ 소극성과 적극성-죄악된 경향의 제거라는 소극적인 면(롬 6:6 ; 갈 2:20 ; 5:24)과 점차 거룩하여지는 적극적인 면(롬 6:11 ; 갈 2:19)이 있다.
   ⑵ 전인격적-내면적 성향뿐만 아니라 삶이라고 하는 외면적 성향까지 영향을 미친다(롬 12:1 ;살전5:23).
   ⑶ 주관적-칭의는 객관적 신분 변화이지만, 이것은 죄인으로서 가졌던 마음속의 공포와 근심을 제거할 뿐더러 더 나아가 구원받은 거룩한 자로서의 기쁨과 평안을 준다(마 11:28-30).
   ⑷ 현세에서의 미성취-현세에서는 완전히 거룩해질 수 없으나 부활시에 이는 완성된다(롬 3:10; 히12:25 ; 계 14:5). 그러나 성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 지속되어야 한다.


  3) 성화(sanctification)의 방편
   ⑴ 말씀-삶의 방향을 분명히 제시하는 객관적 표준이다(벧전 1:22 ; 벧후 1:4).
   ⑵ 성례(聖禮)-성령의 임재와 감동으로 인한 유익이 있다(롬 6:3 ; 고전 12:13 ; 벧전 3:21).
   ⑶ 섭리적 지도-성령과 말씀을 통한 인도는 인간을 의의 길로 이끈다(시119:71;롬2:4;히12:10).
   ⑷ 기도-하나님과의 대화 혹은 교제는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능력을 받게 한다(요 14:22).

 

8. 성도의 견인(堅忍) (성화의 계속)

 

말씀과, 성례(성찬식)을 계속해서 일평생 거행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일평생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에베소서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 의미
  성부에 의하여 선택되어 한 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성화의 과정에서 일시적 방황은 있을 수 있으나 은혜의 상태를 유지하여 결국 구원에 이르게 됨을 말한다. 이 교리는 오직 개혁파에서만 주장한다. 

  2) 증거
   ⑴ 선택 교리-신적 선택은 불변적이다(딤후 2:10).
   ⑵ 하나님의 성품-하나님은 식언(食言)치 아니하신다(민 23:19).
   ⑶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사역-대속과 중보 사역은 지금도 유효하다.
   ⑷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성령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와 영적연합은 영구적이다(요15:4).
   ⑸ 성령의 역사-신자 속에 내주(內住)하시어 그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실패가 없으시다(요 3:36 ; 5:24 ; 6:54).
   ⑹ 구원의 확신-이 땅에서의 구원의 확신은 구원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주신 결과이다. 하나님은 이같은 신자의 소망을 부끄럽게 아니하신다(히 3:14 ; 6:11 ; 10:22 ; 벧후 1:10).   

 

 3) 견인 교리에 대한 반대
  로마 카톨릭과 알미니안파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이 교리에 반대한다.
   ⑴ 인간의 자유 의지와 모순-그러나 인간의 자유 의지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기능을 발휘한다.
   ⑵ 인간을 방종으로 인도-그러나 성도의 견인은 성도로 하여금 좌절치 않고 그 은혜를 붙들게 하려는 것이지 방종케 함이 아니다(빌 4:7). 따라서 만일 견인 교리를 의지하여 방종한다면, 그는 택자가 아니다.
   ⑶ 배교에 관한 성경의 경고와 모순-그러나 배교는 불택자의 몫이다. 신자들은 불택자에 대한 배교의 경고를 통하여 더욱 성화에 매진한다.
   ⑷ 성화에 대한 성경의 권면과 모순-그러나 성화에 대한 권면은 성도로 하여금 성령의 역사에 협동케하여 상급 받을 삶을 살게 하려는 의도이지 구원 자체를 유효케 하려는 것은 아니다.

 

9. 영화(榮化) (구원의 완성)

 

  소명에서 회심까지는 구원의 과거 형태이며, 성화는 현재 형태, 영화는 미래 형태이다. 이는 영화가 죽음 이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원의 길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통합된 형태이다...

 

영화, 즉 구원의 완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서 완성되게 된다...

 

스가랴3:3-5 

  1.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2.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3.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1) 의미
   ⑴ 협의적 의미-우주적 대종말 후 전성도가 부활하여 새 하늘과 새땅에서 행복을 누리게 됨을 말한다. 

 

 

요한계시록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⑵ 광의적 의미-개인적인 죽음과 동시에 그 영혼이 죄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2) 영화(glorification)의 모습
  그리스도의 부활 모습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즉, 첫 열매가 되시는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신자들은 그분과 동일한 썩지 아니할 육체를 입어 부활하며 죄의 세력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영광스러운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다(눅 24:16,30 : 요 20:19 ; 계 21:4).

 

 

고린도전서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구원의 단계

구원과 믿음의 관계

 

구원의 단계

구원의 첫 단계

나는(저자) 이제 다음과 같이 이해하게 되었다.

『예수는 악에 대한 무저항의 명제(命題)로서, 모든 사람에게 무저항이 직접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인가를 말하고 또한 모세시대부터 예수 자신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회적으로 만연되고 있는 원리와 정반대되는 사상을 제시했다. 그 당시에 통용되는 원리는 로마법에 의해서 받아들여졌고 오늘날에도 여러 국가의 법전에서 아직까지 존속되고 있는 원리들이다. 예수는 또한 무저항의 율법을 제시했는데(예수의 가르침에 따른다면 이 무저항의 원리는 우리 사회의 의무적인 원리가 되어야 한다), 이 율법은 인류가 그들 각자가 당하는 악으로부터 해방되는 율법이다. 예수는 인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법률이 악을 고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오히려 악을 증가시킬 뿐이다. 악을 제거하는 수단은 오직 하나뿐이다. 모든 사람에 대한 차별 없이 악을 선으로 갚는 길뿐이다. 너희들은 수천 년 동안 너희들의 원리를 가지고 생활하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너희들의 원리와 반대되는 나의 원리로 살도록 노력하라』 <톨스토이의 나는 무엇을 믿는가?>

 

1. 구원의 순서

『구원의 순서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구원의 순서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해진 구원의 사역이 죄인들의 심령과 삶에 주관적으로 실현되는 과정을 서술하는 용어다. 구원의 순서는 구속 사역의 적용에 있어서 성령의 다양한 활동을 논리적인 순서로 또한 이들을 상호 연관하여 서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구원의 순서에 있어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획득함에 있어서 무엇을 행하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를 적용하는 데 있어서 무엇을 행하시는 가에 강조점이 있다.

1) 독일어권 : 구원의 획득

2) 화란어권 : 구원의 수단

3) 영어권 : 구원의 방법』<조직신학. 벌코프. 구원론 중 일부>.

 

롬8: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본 절은 29절과 함께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구원에 관한 매우 중요한 교리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 ‘믿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예정과 부르심이 믿음에 의해서가 확정되며, 칭의와 영화도 믿음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원의 전 과정에 있어서 ‘믿음’이 전제되어 있으므로 바울은 굳이 그 단어를 삽입시킬 필요가 없었다(이하생략). <호크마>

 

우리에게 적용되는 구원의 순서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성경 전반을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순서를 가진다.

1) 소명(召命. 부르심)

2) 중생(重生. 거듭남)

3) 회심(回心)

4) 칭의(의롭다 함)

5) 양자(養子)

6) 성화(聖化. 거룩하게 됨)

7) 견인(堅忍, 끝까지 보호 받음)

8) 영화. <QA성경>.

 

<롬8:38,39> 세상에 있는 어떠한 일들로도 이들을 예수님 사랑 안에서 끊을 수 없기에 죽임(죽음으로 아버지 나라에 감).

 

구원의 순서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구원을 위해 돌아가심으로 객관적이며 역사적인 속죄 사역을 완성하셨다. 성도 각자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근거로 하여 구원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고 이때 비로소 구원 받은 자가 된다. 그러나 인간은 자의로 구원에 참여할 수 없으며, 오직 성령께서 아래와 같이 개개인의 마음과 생활에 구원을 적용할 때에야 비로소 구원이 성취된다.

 

소명

그리스도에 의하여 준비된 구원을 믿음으로 받으라고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이다.

외적 소명 : 성령은 전도자를 통하여 복음을 죄인에게 전파하신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부르심 만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마22:14. 막16:15,16. 행13:46).

내적 소명 : 외적 소명이 구원의 결실을 맺기 위하여는 성령의 내적인 감동하심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내적 감동은 진실한 의미의 유효한 소명이다(행13:48. 고전1:23,24).

 

중생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영적 생명을 다시 살리시는 성령의 역사(요3:3,5)이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했고

전적으로 무능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약1:18) 이러한 중생의 역사가 없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

 

회심

중생으로 생겨난 새로운 성향으로 세상과 죄악을 향하여 살던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려는 새로운 각오이다.

회심의 소극적 요소 : 율법을 통하여 죄를 깨닫고(지적 요소. 롬3:20), 자기의 죄를 미워하며(감정적 요소. 고전7:9,10), 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려는(의지적 요소. 롬2:4) 회개를 가리킨다.

회심의 적극적 요소 :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여(지적 요소. 딤후1:12), 그 말씀을 구원의 진리라고 찬동하며(감정적 요소), 그 말씀을 신뢰하며 그대로, 살아가려는 결의(의지적 요소. 히6:11)인 신앙을 가리킨다.

 

칭의

인간은 죄인이므로(욥9:2. 전7:20. 롬3:10) 멸망 받을 수 밖에 없으나 의롭다 인정받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 즉 칭의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의를 전가 받아 영생에 참여하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롬3:24).

 

양자

마귀의 자녀였던 죄인을 칭의로 인하여 하나님을 믿는 자, 즉 하나님의 법적 자녀로 삼으시고 영원한

상속권과 자녀의 친서를 부여하여 주신다(롬8:17. 벧전1:4).

 

성화

중생된 성도의 마음 속에 있는 죄의 오염을 점차 제거하여 완전히 성결하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도록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요16:13. 요일2:27. 벧전2:2. 벧후3:18) 성도들을 인내(롬5:4)하도록하며 연단(히5:14. 벧전1:7)하여 경건의 연습(딤전4:7)을 시키는 것이다.

 

성도의 견인

성령의 역사로 내적 소명을 받음으로 중생하여 진실한 성도가 된 자는 성령께서 끝까지 구원의 은혜

를 거두지 아니하므로 인하여 완전 타락하거나 배교할 수 없다(요10:28,29. 딤후1:12. 4:18).

 

영화

성령의 보호하심으로 인하여 성도는 천국에 들어가며(엡4:30), 장차 우리의 몸이 부활하여 영광의 몸

으로 변화되고(빌3:21), 영원히 하나님과 영적인 친교를 나눌 것이다(계21:3). <강병도성경연구>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생애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본 절(롬8:30)에서는 하나님께서 성도의 생애를 인도하시는 과정, 즉 예정, 소명, 칭의, 영화의 4단계가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구원의 과정은 신학적 용어로 ‘구원의 서정’이라고 불리운다. 구원 받은 성도는 먼저 하나님께 택정함을 받고 다음에 외적 소명(인간의 전도)을 받으며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후 신령한 몸과 마음을 지닌 하늘나라 백성으로 영광스럽게 되어 진다. 이러한 구원의 과정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일어지는 것으로서 인간의 행위나 의지에 의존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의 실수나 부족함 같은 것 때문에 이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 되어 지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이러한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구원의 과정을 ‘과거형’ 시체로 서술하였다.

더우기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영화’ 마저도 이미 일어난 것처럼 과거형으로 진술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한 신학자는 본 절을 ‘성경 가운데 가장 담대한 귀 절’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귀 절을 통해서 바울처럼 우리의 구원에 대한 분명한 신앙을 확립하고 더욱 담대하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계속해야만 할 것이다(수1:6. 요16:33. 딤후4:7).

한편 본 절과 관련된 다른 성경 귀 절들을 종합하여 신학자들은 구원의 서정을 9단계로 재 구성하였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소명, 중생, 회개, 믿음, 칭의, 수양(하나님의 양자가 됨), 성화, 견인, 영화, 여기에서 소명의 전 단계로 ‘택정’이 포함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구원의 서정은 10단계가 된다. 이 모든 구원의 서정은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논리적인 개념 가운데서 그 순서가 정해졌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이 구원의 서정 중 몇 단계가 단 한 순간에 동시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 <강병도성경연구>

 

구원의 확신<롬8:31-39>

1) 하나님이 먼저 사랑 하심 : 롬5:6-9

2) 끝까지 사랑 하심 : 요13:1

3) 믿을 때까지 거듭 남 : 요1:12,13

4) 믿는 자체가 은혜 임 : 엡2:8

5) 믿음이 곧 구원 ; 요3;14-18

6)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으 심 : 히10:17

7) 주께 나오는 자는 버리지 않으 심 : 요6:39

8) 죄는 자백할 때 다 용서 됨 : 요일1:9

9) 아무것도 주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 : 롬8:31-39

10) 성도도 실수가 있을 수 있음 : 엡4:14,15

11) 성도는 주안에서 계속 자랄 수 있음 : 벧후3:18. <큰성경>.

 

2. 구원의 계획

기독교 교리의 조직 신학적 연구에서 구원의 계획은 첫 번째 연구 주제이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구원은 주님께 속한 것이고 따라서 구원의 계획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둘째,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그것은 영원하게 계획되어 있고, 그 계획은 모든 단계의 실행 이전에 존재하며, 실행과 실현의 모든 측면들은 하늘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예비하셨다면, 그것은 인간의 영역에서 즉 현세의 역사적 영역에서 효력을 발생하는 구원임에 틀림없다. 시간 속에서 성취되는 구원은 매우 많은 요소와 요인과 측면들을 갖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두 가지 이유에 기인한다.

구원은 죄와 비참과 죽음에 있어서 우리의 다양한 필요들을 참작한다. 만약 우리의 필요 또는 경향의 어떤 면이 간과된다면, 구원은 완전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은 죄와 그 결과들로부터 최소한 구원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 지혜, 능력, 은총, 사랑의 부요를 나타내며 그것과 일치하는 최대한의 구원이다. <조직신학. 죤 머레이. 구원론 중 일부>.

 

3.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은 이미 그의 예지로 인간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인간이 죄에 빠져서 전적으로 파멸되리라는 사실을 온전히 알고 계셨다. 그래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구속의 방법을 목적하시고 계획하셨다. 그 때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 한 때”를 의미하는 것이다(엡1:4). 이 목적은 인간 성품과 성경 안에 나타난바 되었다.

 

1) 인간의 성품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목적

인간의 타락은 인간의 원래의 무죄성과 거룩성을 상실케 했지만, 그래도 인간으로부터 그의 모든 영적 지식을 모조리 빼앗아 간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죄에 관한 지식과 제사의 필요성에 나타난다.

 

2) 성경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목적

신약이 구약의 완성이며 설명인 이상, 우리는 원천적으로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계시를 알기 위해서는 구약으로 가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최초의 복음으로 시작해서 모든 계획 전반이 형성되기 까지 계속된다. 이는 율법, 예언서에 나타난다. <조직신학, 헨리디이슨. 구원론 중 일부>.

 

4. 구원의 서정

1) 유효적 소명(召命)

소명론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관한 교리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 대책에서는 물론 무자격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행위에 있어서도 특출 나게 드러났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명을 그리스도에 의해 마련된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초대하시는 은혜의 행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스트롱은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일반적 또는 외부적 소명과 선택 받은 자에게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유효적 소명과를 엄연히 구별한다. 그러나 선택에 관한 우리의 개념이 정확하다면, 그러한 구분에 대한 정당한 근거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한 단순한 성경의 개요를 따르고자 한다.

 

① 소명 받은 사람들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제공된 것이라고 성경은 가리킨다. 구원이 제공된 대상을 보면 다음과 같다.

“미리 정하신 자들”에게와(롬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모든 자들”에게와(마1:28),

“믿는 모든 자에게”(요3:15,16, 4:14, 11:26, 계22: 17),

“땅 끝 모든 사람에게”와(사45:22, 겔33:11, 마28:19, 막16: 14, 요12:32, 딤전2:4, 벧후3:9),

“만나는 사람대로”이다(마22:9).

이런 성경 구절로 미루어 보아 모든 사람에 대한 일반적 소명과 선택 받은 사람에 대한 특수적 소명과를 구분할 수는 없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일반적 소명은 진실하고 그의 특수적 소명은 불가항력적인가를 결정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조롱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제공하시면 그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원하신 즉, 하나님을 선택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동일한 도움을 주시려 하신다.

 

② 소명의 목적

하나님은 생활의 변화, 선행, 세례, 교회의 회원 등이 되라고 사람을 부르신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일들도 그 자체적으로 다 옳은 일이긴 하지만, 이것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신 소명에 대한 확고한 결실일 따름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불러온 방향은 회개와 믿음이다. 다시 반복하거니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회개와 믿음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어떤 일을 행해내라고 부르신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일을 행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③ 소명의 수단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는데 쓰는 수단은 다양하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을 부르신다. 그러기에 세상의 모든 지역에 성경을 들여보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사람을 부르신다. 성령은 죄인이 와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촉구하신다.

㉱하나님은 그 분의 종들을 통해서 사람을 부르신다. 요나는 한 도성을 회개토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들어 쓰신 인간 사신에 대한 하나의 예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도 중생함을 받은 사람에 의해 구원받지 못한 자에게 전달되어 짐이 사실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애에 미친 말씀의 위력을 간증한다.

㉲끝으로 하나님은 사람에게 섭리적인 다루심을 통해 사람을 부르신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사람들을 회개토록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성공되지 않을 경우 하나님이 심판을 내린다.

 

2) 회심(回心)

구원체험의 논리적 순서는 무엇일까? 물론 여기에는 시간적인 순서는 없다. 즉 회심, 칭의, 중생, 그리스도와의 연합, 양자 등 이 모든 일들은 동시에 일어난다. 다만 성화만이 하나의 행위면서 하나의 과정이 된다. 그러나 시간적인 순서는 없지만 논리상의 순서는 있다. 이제 우리는 위에서 제시한 순서를 따라 설명하겠다. 우리가 회심부터 순서상 먼저 논의하게 된 것은 성경이 사람을 향해 스스로 돌이켜 오라고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심은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것이다. 그것은 회개와 믿음의 두 요소로 구성된다. 우리는 후에 사람은 회개하고 믿으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는 하나님께 돌아올 수도 없으며 회개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

선행적(先行的) 은혜가 사람으로 하여금 할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일은 인간이 돌아서기 위해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찿는 일이다. 인간이 이런 일은 할 수 있다고 성경이 여러 구절로 말하고 있다(시85:4, 아1:4, 행31:18, 애5:21). 사람이 하나님을 불러 찿으면 하나님은 그에게 진정한 회개와 신앙을 주신다. 성경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의롭게 하며, 자기 자신을 중생시키며, 자기 자신을 양자로 삼으라고 요구하지는 결코 아니했다. 하나님 만이 이런 일들을 하실 수 있다. 회개와 믿음이 칭의로 인도되고, 칭의는 생명으로 인도됨이 분명하다. 이것의 역(逆)은 결코 없다. 이제 우리는 회심 속에 있던 두 가지 요소를 고찰하려 한다.

 

(1) 회개(悔改)의 요소

회개와 믿음은 밀접히 연결되어 있지만 이것들을 개별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 회개의 중요성

회개의 중요성은 그것이 마땅히 인식 되어져야 할 만큼 오늘날 언제나 그렇게 인식되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복음전도자들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으라고 촉구는 하면서도 구원받지 못한 자는 지금 잃어버린바 된 사람이며 따라서 구주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회개에 관한 설교에 많이 강조점을 두고 있다. 회개는 구약 예언자들의 멧세지였다. 회개는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와 12제자와 특히 오순절 날의 베드로의 설교의 주요 열쇠였다. 회개는 또한 바울의 설교에 기본적이었다. 시대가 변천했다고 해서 오늘날 회개가 불필요하게 된 것은 아니다. 회개는 결정적으로 모든 사람에 대한 명령이다. 유대인 환경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아덴에서 바울이 말한 것도 바로 이 회개다. 회개는 모든 천국에 있는 자들까지도 극히 관심을 쏟는 일거리다. 이것은 기초 중에서도 기초이다. 왜냐하면 회개는 구원에 절대적인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나. 회개의 의미

표준사전은 회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죄에 관련된 마음과 성향을 진지하고도 철저하게 변화시킨 것으로서 개인의 죄책감과 무력감이 내포되며, 하나님의 자비를 이해하며 죄로부터 탈피내지는 구원받고자 하는 강한 욕구와 죄를 자발적으로 버리는 소행이 내포된다. 이 사전의 정의가 좀 난삽(難澁)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대단히 훌륭한 정의다. 회개는 넓은 의미로 말해서 근본적으로 마음의 변화임을 주목하기 바란다. 그렇지만 회개는 지적인 면과 정적인 면과 의지적 변동의 세면이 있다.

 

㉠ 지적(知的)요소

이것은 견해의 변화이다. 즉 이것은 죄와 하나님과 자아에 대한 견해의 변화다. 죄는 죄책감으로 인식되고 하나님은 정당하게 의를 요구하시는 분으로 인식되고, 자아는 죄로 더러워졌으며,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자로 인식된다. 성경은 이런 국면을 죄에 대한 지식으로 언급되고 있다. 시51:3,7. 욥4:56, 눅15;17, 18, 19절은 회개의 지적인 요소를 다루고 있다.

 

㉡ 정적(情的)요소

이는 감정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것은 아주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회개의 국면으로서, 그 의미는 ‘슬퍼하다’이다. 그런즉 우리는 죄에 대해 슬퍼하고 용서를 갈구하는 것이 회개의 국면임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은 이런 사상을 ‘뉘우친다, 후회한다’는 의미로 표시하고 있다.

 

㉢ 의지(意志)요소

이 요소는 의지와 성향(性向)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것은 죄로부터의 내적 돌아섬이다(이하 일부 생략).

 

회개라는 말의 설명에 대해 고찰된 바로는 이런 것도 있다. 즉 회개는 이행해야 할 하나의 ‘행위’로 제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다. 방금 보아온 바와 같이 하나의 행위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은 로마 카토릭의 가르침인데 그것은 비성서적이다. 죄를 자백하는 것과, 사람에게 저지른 과오에 대한 보상 등은 회개의 열매들이지, 그것들이 회개자체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회개하기 위하여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회개한다면 구원을 받는다. 회개란 하나님께 돌린 하나의 만족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구원 받기 이전에 취해야 할 필수적인 우리 마음의 상태다. 더 나아가서, 참된 회개는 신앙과 별도로 결코 존재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동시에 하나님께 돌아옴이 없이 죄에서부터 돌아설 수는 없다. 이것은 반대로 말한다면 참된 신앙은 회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된다. 그런즉 회개와 신앙 양자는 불가분리적으로 함께 붙어있다.

 

다. 회개에 이르는 수단

회개에 이르는 수단에 대해서 꼭 한마디 해야만 하겠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반스의 말을 들어보자.

“그런데 우리 인간은 회개할 수 없는 데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진단 말인가? 그런즉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무능력성을 느끼고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위탁하여 그가 우리 마음속에 이 은혜로운 역사를 행해 주시기를 탄원하기 위해 회개로 나아오게 된 것이다”.

 

인간 편에서 볼 때 회개는 여러 가지 사실로 인해 오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적과, 죽은 자 가운데서 한 사람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일까지도 회개를 일으키는 데에는 아직 불충분하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복음전파,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징계, 진리의 신앙, 하나님의 새로운 환상 등은 하나님께서 회개를 일으키시는 데에 사용하는 결정적인 수단들이다.

 

(2) 믿음의 요소

회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신앙의 경우에 있어서도 이 교리는 교리 자체가 마땅히 받아야 할 주의를 집중적으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의 신앙은 무관심적 태도로 보고 오직 그 사람의 행위에만 크게 강조를 퍼붓고 있다. 인간의 생활은 자기가 믿고 있는 신앙에 지배를 받는다. 또 종교에 있어서는 자기가 믿고 있는 대상에 따라 지배를 받는다. 이반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가나안 여인은 끈질긴 인내를 가졌고(마15장), 백부장은 겸손했으며(마8장), 장님은 열심을 가졌다(막10장). 그러나 예수께서 이들 개개인에게서 보시고 상을 주신 것은 그런 행위들이 아니라 단순히 믿음이었다”

이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이로서 믿음의 위치를 생각게 된다. 우리는 믿음을 회심의 한 요소로 고찰할까 한다.

 

㉮ 믿음의 중요성

그리스도인의 체험 속에 있는 믿음의 위치를 생각해보자. 성경은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부음을 받았다. 우리는 믿음으로 거룩하게 되었다. 우리는 믿음으로 보호를 받는다. 우리는 믿음으로 세움을 받는다. 우리는 믿음으로 병을 고치며, 믿음으로 행하며, 믿음으로 어려움을 타개한다. 이젠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믿음의 가치를 보자. 하나님은 그를 기쁘시게 하는 데에는 믿음이 필수적이라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불신앙을 큰 죄로 보신다. 따라서 하나님은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에 제한을 가하신다고 하셨다. 끝으로, 그리스도인의 봉사에 있어서 믿음의 위치를 생각해 보자. 믿음은 우리를 다른 사람에게 항구적인 축복을 만든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위해 수고할 수 있도록 이끈다. 믿음은 봉사하는 데에 인내를 갖게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한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 확실히 이런 유익들은 믿음의 중요성을 밝힌다.

 

㉯ 믿음의 의미

우리는 흔히 혼동을 일으키는 용어들 간의 의미를 명백히 구분하는 일부터 하기로 하자. 그런 용어들이란 ‘신념’, ‘소망’, ‘특정한 신앙’, ‘신앙’이다.

신념은 흔히 신앙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것은 신앙의 단 한 가지 요소, 즉 지적인 것을 지시할 때 사용된다. 우리는 신념이란 말의 무분별한 사용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소망이란 말은 신앙이 과거 현재 미래에 관여해서 사용되는 데에 비해 특이하게 미래에 관련된다. 소망은 욕구에다가 기대를 합친 것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성경적인 소망은 그 속에 지식의 요소를 갖고 있다. 그것은 성경에 계시된 진리에 근거한 소망인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신앙이란 말의 의미는 성경에 들어있는 기독 교리의 총화다. 신뢰라는 말은 구약의 특징이요, ‘신앙과 믿는 다라’는 말은 신약의 특징이다. 신뢰는 구약에서 152회 나오는데 –

“그것이 히브리어로 번역되기는 보호를 받는다, 의지한다, 기다린다로 되었다”

 

㉰ 믿음의 근원

하나님 편과 사람의 편이 있다.

㉠ 하나님 편 :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신앙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 인간편 : 인간 편에서 볼 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생긴다.

 

에베소서2:8절은 “믿음”보다 “구원”을 가리키고 있다. 성경은 우리의 필요를 알리며 약속을 진술하고 상태를 지시하며 구원의 축복을 가리킨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적 신념으로 시작된다. 신앙은 예수를 바라봄으로써 생긴다. 이 관념은 그리스도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우리의 모범이며 영감이라는 뜻으로 통한다.

기도가 믿음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수단으로 명백히 제시되어 있다. 기도는 불신앙에서의 구출 수단이며 믿음을 증진시키는 수단으로 부각된다. 예수의 기도는 우리를 믿음 안에 지켜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적은 믿음으로 출발했으나 우리가 가진 믿음을 활용하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더 증진시킬 것이다.

 

㉱ 믿음의 결과

믿음의 결과에 대해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두 가지 사실만을 들어 지면과 시간을 할애할까 한다.

㉠ 확신(確信) : 확신은 성령의 증거로 옴이 사실이지만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약속을 가리킨다. 확신은 우리가 그 약속들을 믿을 때에 온다. 이 확신과 밀접히 관계된 것들은 화평, 안식이며, 이에 따른 기쁨이 온다.

㉡ 선행(善行) : 믿음은 필연적으로 선행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선한 일을 위하여’ 구원을 받았다. 예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야고보는 ‘행위로’ 믿음의 표현을 강조했다. 바울은 영혼을 구원하는 데에는 ‘선행’은 부족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행위가 믿음의 결과라는 사실은 강조했다. 이 행위 속에는 어떤 형태의 그리스도인 봉사도 있다.

 

3) 칭의(稱義)와 중생(重生)

① 칭의론

회심 다음에 칭의가 온다. 성경은 칭의의 교리를 매우 강조하고 있으나 역사의 과정 속에서 이 칭의의 교리는 크게 탈선되고 실제로 무시되고 있었다. 이 칭의론을 그 본연의 위치에 복귀시킨 것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영예다. 하기는 우리가 종교개혁자들 가운데 있는 중생 및 칭의의 교리를 탐구해 보노라면 다소간에 실망되는 바가 없지 않아 있다. 그것은 이런 교리들이 웨슬리 부흥운동이 있기까지는 충분한 강조를 받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뻐하는 사실은 종교개혁이 교회에게 칭의의 기본적인 교리를 안겨다 주었다는 점이다. 프로테스탄트주의 자들은 오랫동안 무시되어 왔던 이 진리의 회복의 중요성을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이 교리를 보다 세밀하게 여러 국면을 더듬어 고찰하려고 한다.

 

칭의의 정의 : 사람은 출생하면서부터 악한자의 자녀이며, 또한 범법자며, 죄인이다. 중생(重生)에서 사람은 새 생명과 새 성품을 얻고, 칭의에서는 새로운 지위(地位)를 얻는다. 칭의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의롭다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로 정의될 수 있다(이하 일부 생략).

 

② 중생(重生)론

이런 교리들을 우리는 개별적으로 분리해서 생각해 보기는 하지만 이런 교리들은 분리된 영적 체험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우리는 또 다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중생의 의미

칭의는 생명 안에서 지배되는 것으로서 ‘생명의 칭의’로 언급된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 마음의 변화는 중생, 신생(新生)이라 불리우고, 인간 편에서 볼 때는 회심이라 불리 운다. 중생에 있어서 우리 사람은 수동적 자세이나, 회심에 있어서는 능동적 자세이다. 우리는 중생의 정의를 신적 생명이 사람에게 교통한 것과, 새로운 성품이나 마음에 참여한 것과, 새로운 피조물이 생기는 것으로 내린다. 이런 것들은 모두 중생에 관한 성서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다수의 설명을 요하는 고려점이 있다.

첫째로 마음이란 말은 성경에서 인간자체를 의미한다. 그 마음이란 생각하고 느끼고 의지활동을 하며 행동하는 주체이다. 이로 보건대 중생이란 인간 자체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둘째로, 중생은 인간의 실체상의 변화는 아니다.

 

㉯ 중생의 필요성

성경은 계속 이렇게 반복해서 선언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보기 이전에 먼저 반드시 중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의 이런 주장들은 이성과 양심의 지지도 받는다. 거룩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용납조건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성은 나면서부터 부패했다. 부패한 인간성이 도덕적으로 의식을 깨닫게 되자 실제적인 범법에 대한 죄책이 된다. 이런 상태에서 인류는 하나님과 교통할 수가 없다. 지금 인간 속에 이와 같은 도덕적 변화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성령께서 마음을 새롭게 해서 마음에다가 하나님의 생명과 성품을 전해준다. 성경은 이 경험을 신생(新生)으로 말한다. 이 신생으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나면서부터 모든 사람은 ‘진노의 자녀’, ‘불순종의 자녀’와, ‘이 세대의 자녀’, 그리고 ‘마귀의 자녀들’이라 했다. 마지막 말은 요한복음8:44절에서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자에게 대해서 특별히 사용되기도 했다.

오직 중생만이 하나님과 교제를 가능케 하는 거룩한 성품을 죄인 속에 산출시킬 수 있다. 이 중생에는 어린이가 성장해 가는 것과 같은 요소는 있지만 겨우 어린 아이로만 성장하고 그치는 따위의 요소는 없다. 양자와 중생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중생에 의해 죄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가족으로 소개되는가 하면, 양자에 의해서는 이미 아들 된 사람이 성인(成人)된 아들의 위치로 올라가게 된다. 구약 선지자들도 칭의와 마찬가지로 중생을 받았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양자는 받지 아니했다.

 

㉰ 중생의 수단

성경은 중생을 하나님의 역사(役事)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 중생의 체험 속에는 다수의 수단과 대행인(代行因)이 있다.

 

하나님의 의지 : ‘우리는 하나님의 뜻으로 낳다’(요1:13). 야고보의 말은 보다 명확하다.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1:18).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 우리는 중생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기초하고 있음과(요3:14-16), 그리스도의 부활도 동일하게 우리의 중생에 관계되고 있음을(벧전1:3)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 하나님의 말씀 역시 우리의 중생에 필수적이다(약1:18). 동일한 사상이 요3:5, 벧전1:23절에도 나타나있다. 요3:5절의 물은 세례가 아니라는 사실은 에베소서5:26절에서 우리의 정결케 함이 말씀을 가리킨다는 사실로 보아서도 분명하다.

이와 마찬가지 방법으로 디도서3:5절도 설명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물은 중생시키는 힘을 소유하지 않음이 분명한 연고다. 바울은 복음으로 고린도인들을 낳았다(고전4:15). 그러나 그들 중에 세례를 준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전1:14,16). 에베소의 12제자들은 바울이 그들에게 왔을 때에 세례는 받았으나, 그들이 아직 진실로 구원받지 아니했다. 삭개오, 회개한 강도, 고넬료도 세례를 받기 이전이지만 구원을 받았다고 선언되었다. 터틀리안은 세례의 중생의 교리를 주장한 초대 교부의 한 사람이었다.

 

말씀의 사역자들 : 사역자들의 공헌은 단순히 진리를 선포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결정 내리기를 호소하는 데에 있다.

참고 : 고전4:15. 몬1:10. 갈4:19. 사66:8.

 

성령 : 중생에 있어서의 실질적인 대행자는 성령이다(요3:5,6. 딛3:5). 진리 자체는 의지(意志)를 제압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중생 받지 못한 마음은 그 진리가 성령에 의해 작용되기 전까지는 진리를 증오한다.

 

㉱ 중생의 결과

성경은 중생 뒤에는 다수의 결정적인 결과가 있다고 선언한다. 그것들은 성품에 관한 것으로서 사람이 중생을 받았느냐는 여부를 시험하는 것으로 도움을 준다. 하나님으로 난 사람은 시험을 이긴다고 했다. 중생한 사람은 의를 실천한다. 중생한 사람의 태도는 달라진다. 그는 이제 극히 자연스럽게(습관적으로)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원수와, 잃어버림을 당한 사람을 역시 사랑한다. 중생한 사람은 일정한 자녀의 특권을 즐길 수 있다. 그 특권이란 자기의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심과, 아버지의 뜻을 계시해 주심과, 지켜 주심의 특권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출생한 사람은 또한 하나님의 후사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가 된다. 유업으로 실제적으로 들어가는 일은 대부분 아직 미래의 일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지금이라도 성령의 은사 안에서 그 유업의 보증을 누리고 있다. 이런 결과는 이 세상에 직접적으로 가시(可視)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가족의 한 사람으로 출생한 사람에게 너무도 생생한 실질적인 사실임이 명백함은 말할 것도 없다. <조직신학. 헨리디이슨. 구원론 중 일부>

 

믿음과 구원의 관계

하나님의 믿음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3:21-26)

여기 분명히 22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라고 복음을, 구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은 어떤 분들에게는 굉장히 오해되어 있는 표현 중에 하나인데 –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구원에 관한 설명을 할 때 제일 중요한 단어는 ‘예수’입니다. 믿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예수가 핵심입니다. 여기서 믿음은 자기 책임이나 자기 결단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예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 이것이 구원인데 여기서 말하는 구원을 얻는 믿음은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신뢰나 누구 편을 드는 결단을 말하지 않습니다. 구원에서 말하는 믿음은 은혜입니다. 행위가 아닙니다.

엡2:8,9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구원에 관한 믿음을 설명할 때는 그 믿음이 신뢰나 결단이 아니라는 것이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믿음은 행위가 아니다. 그래서 자랑할 수 없다”입니다. 믿음은 은혜이고 선물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얘기할 때의 믿음은 인과율 즉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 아닙니다. 인과율은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원인을 자기가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원인을 제공해서 그 결과를 얻을 때는 자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에 관해서는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은혜이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내가 선택한 원인에 의해서 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믿음이라는 법칙으로 우리에게 선물로 준 것이기에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이하생략』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성경의 표현에서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초점은 예수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그 믿음을 내 선택이나 결단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구원은 은혜로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날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로 결정하는 것은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비로소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의”라고 설명한 이 ‘의’를 로마서3장에서도 자랑할 수 가 없다고 얘기를 하고 에베소서에서도 자랑할 수 없다고 얘기합니다. 바로 은혜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선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하생략』

 

『구원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니며 무슨 결정을 하고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는 일이 아닙니다. 다만 선물로 생기는 일임에도 ‘예수를 믿으라’고 얘기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보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어 예수를 주시는 그 내용 속에서의 행위이며 원리에서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믿음의 행위입니다. 인격의 대상이 아닌 것에 은혜나 용서 또는 긍휼을 베풀거나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믿음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행위”라고 얘기하면 금방 이해가 되지만 “구원을 베푸신 것이 하나님의 믿음의 행위라” 하면 아주 낯섭니다. “하나님이 뭐가 부족한 게 있으셔서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믿음은 그런 단어입니다』

 

『구원이란 대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등하게 대접하시는 것입니다. 그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보내신 것 아닙니까? 우리가 값을 지불하고 물건을 살 때 물건이 대등한 가치를 지녀야 그 값을 지불하는 것 아닙니까? 지불하는 값이 얻으려는 물건보다 턱없이 비싸면 값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지불하신 다는 것은 말하자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이런 차원에서 대등한 가치로 인정하신다는 뜻입니다. 참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신이십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맞먹는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그러나 인격적 가치에서는 우리를 그렇게 높이 하나님이 대접하십니다. 만들 때부터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것입니다. 생기를 불어넣어 우리를 생명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고급한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창조에서나 구원에서나 그리고 신앙의 모든 내용에서, 믿음이 모든 신앙 행위의 원리와 내용의 최고인데 그것이 인격적 대접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라는 단어에 관한 아주 중요한 이해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좋아진다는 것은 결국 나중에 보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참 고급해 지는 것입니다』<박영선목사 지음. 믿음의 본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