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주일설교.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디모데전서 1장 12~17절) 김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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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간절한 기다림의 시간을 소망 중에 보내고 드디어 성탄의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2천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잉태 되어 이 땅에 육신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예수”라는 이름과,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다 라는 “임마누엘”의 이름을 가지시고 낮고 비천한 육신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참으로 겸손의 왕이십니다.
함께 예배 드리는 여러분 모두에게 기쁨의 좋은 소식이신 예수님이 거룩한 성령으로 각 사람의 심령 가운데 충만하게 찾아오시고 만나주시는 감동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탄의 아침에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가운데 예수님이 진정으로 마음으로 믿어지고 입으로 시인(고백)되어져서 구원에 이르게 되는 인도함을 받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 이십니다. 그런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한 말씀이 요한 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이 말씀은 거의 다 외우고 계실 겁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으 주시고, 멸망에서 벗어 나게 하시고, 영생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이 한 구절이면 모든 것이 다 설명이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여도 자신의 아들을 내어 준다는 것은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이 안 됩니다.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측량할 길이 없이 무한히 넓고, 깊고, 영원 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는는 사랑, 멸망, 영생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사랑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시기 때문에 가운데에 위치해 놓고, 멸망은 사랑 앞에, 그리고 영생을 사랑 뒤에 배치해 보십시오. 멸망, 사랑, 영생이 되는데 이 순서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전부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심판과 멸당을 당할 과거를 살았지만, 현재는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으며 사랑을 독차지 하고 살아가고 있으며, 죽음 이후에는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영생의 나라로 인도함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의 과거는 멸망, 현재는 사랑, 미래는 영생,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소망과 약속의 순서이자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 복음 3장 16절은 예수님의 구원을 한 구절로 압축하여 놓은 복음의 핵심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의 자발적인 신앙고백이자 간증이기도 합니다. 이 고백에서 사도 바울도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정확하게 드러냅니다. 과거는 멸망, 현재는 사랑(은혜), 미래는 심판이 아닌 영생,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자기 고백은 요한 복음 3장 16절에 나타난 복음의 기쁜 소식 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끌어 주셨고, 어떻게 이끌어 가고 있고, 어떻게 이끌어 갈지를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성탄의 아침에 우리 모두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집중해서 들으시고 이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도록 내 인생의 시간들 위에 적용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선포 될 때에, 멸망, 사랑, 영생의 순서가 뚜렷하게 우리 가슴에 각인 되시는 성령의 감동이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순서에 의해서 살펴 보면 사도 바울의 과거는 멸망으로 나아가는 인생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과거를 고백하는 12~13절을 읽어 드립니다.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아멘.
사도 바울은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 였다고 고백하면서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을 때에 알지 못하고 한 행동이었다고 고백 합니다. 몰라서 그랬었다고 변명하는 것으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려 주시는 은혜 가운데 죄가 죄됨을 알게 하시는 은혜가 가장 큰 은혜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과 행동이 멸망 당할 만큼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있는 죄악이라는 깨닫는 것이 또한 은혜입니다. 최종적으로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고 입술을 벌려 그 죄악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죄를 짓는 즉시로 그 때마다 벌을 내리고 징계를 가하고 심판을 하시기로 작정 하셨다면 우리는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매일 같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에 던져지고도 남았을 겁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과거에 유대인으로 열심을 내며 살아갔을 때 예수님을 믿는 자들과 교회를 비방하고, 박해하고, 폭행 했던 일들이 얼마나 무서훈 형벌을 받을 만을 만큼 악한 행동 이었는지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죄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긍휼을 입었기 때문에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긍휼은 불쌍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우리가 지은 죄들을 낱낱이 고발하시면서도 그 죄들을 심판하기에 앞서 긍휼을 입게 하셔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기회 주심, 이것이 바로 긍휼히 여기고 사랑해 주시는 마음입니다.
앞서 요한 복음 3장 16절을 말씀 드렸는데 바로 그 다음 구절인 17절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죄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진노하심으로 당장 징계하시고 심판하시지 아니하시고 그러한 죄들을 짓고 살아가는 인간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지은 죄들을 깨닫고, 회개하고, 다시는 죄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게 하시려고 모든 행위가 긍휼을 베푸시는 분,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를 찾아오신 날이 바로 오늘 성탄의 아침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주시려고 찾아 오셨고,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이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는 사실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악하게 살았는데도, 예수님은 사도 바울을 믿음으로 인도하셨고, 그가 누구보다도 충성된 순종으로 일하게 하셨고, 그에게 사도라는 엄청난 영광의 직분을 허락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이러한 드라마틱한 인생의 반전을 떠올리며 자신의 과거를 고백할 때마다 12절에서 같이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 부터 그토록 큰 긍휼과 은혜를 받은 사도 바울은 예수님에게 드릴 것이 하나도 없어서 그저 진실한 마음으로 고백할 뿐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도 바울의 이러한 과거를 고백하는 참회의 마음과 감사의 고백을 진실 되게 받으셨습니다. 정말 예수님으로부터 긍휼을 입은 자라면, 정말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라면, 진실한 마음으로 매일 감사, 일평생 감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가리고 숨기고 싶은 흑역사로 남아 있는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들을 아들과 같은 제자 디모데에게 낱낱이 고백하는 것은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누구 앞에서라도 진실 되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진정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인정 하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긍휼과 용서의 기회를 허락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 하십시오.
성탄절 아침에 아기 예수님은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고, 내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해 주시려고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숨길 것도 없고 숨기지도 못합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의 죄와 악을 주님 앞에 다 고백하고, 긍휼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이 곳에서 예수님 이야기를 들으며, 믿음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고백하는 이 순간이 은혜 중의 은혜임을 깨닫고 무한한 감사를 올려 드리시기 바랍니다. 고백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멸망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죄인 이었음을, 긍휼을 입은 자였음을 오늘 이 자리에서 고백하시면서, 다시는 죄에 끌여 다니지 아니하도록 오직 믿음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가시는 예수님과 함께 거룩한 동행으로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과거가 멸망이었다면, 우리의 현재는 사랑입니다. 14~15절을 읽어 드립니다.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아멘.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과거에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 였다고 고백했는데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 였다는 극한의 고백까지 합니다. 그렇게 최종적인 멸망에 이를 처지였는데 15절에서와 같이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신 예수님 때문에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현재 상태는 14절 말씀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은혜가 풍성한 상태였습니다. 더럽고 추악한 죄악에서 해방 되었다는 자유함을 누리며, 순간 순간 마다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하늘의 참 평안을 누리며,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넘쳐서 항상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한 겁니다.
이러한 모든 풍성한 상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과 동시에 시작되었습니다.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은 충성된 주의 사자 중의 사자로 180도 변화된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이 맡겨진 일에 순종하는 지금 현재의 순간을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거나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믿음과 사랑과 은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온 세상, 온 우주를 다 품은 듯한 가슴 벅찬 감동과 감격을 맛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온 주우 만물을 창조 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도 바울 안에 충만하게 임하셨기 때문에, 바울은 온 우주를 품은 것 같은 풍성한 상태를 고백한 것입니다.
14절 말씀은 제게도 너무나 특별한 은혜의 말씀입니다. 10여 년 전에 기도원에서 일주일 동안 지내면서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던 기간에 이 말씀이 제 마음에 커다란 태양빛과도 같이 강렬하게 쏟아져 내린 적이 있습니다. 그 때의 감격, 감동, 두려움, 풍성한 은혜들은 지금도 생방송 되듯이 제 기억 속에 뚜렷하게 재생이 되고는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이 임할 때, 아, 나는 정말 사도 바울과 같이 죄인 중의 괴수 이구나,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진실한 자기 고백, 자기 부정의 신앙 고백이 일어나기를 원하시는구나, 내가 현재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며, 성령의 감동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 믿음과, 사랑과, 은혜가 가장 풍성한 시간이구나 라는 것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 때 당시를 기억해 보면 큰 망치로 한 대 맞은 정도가 아니라 수십 번 두들겨 맞은 듯한 커다란 충격과 전율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받은 후에 “이 땅에 오직 주 밖에 없네 그 무엇도 나를 채울 수 없네 주님의 평안 내 안에 있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네”라는 찬양을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신학교 시절부터 풍성한 은혜에 감격하던 모든 시간 속에서 이 찬양은 항상 저 만의 신앙 고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없었다면, 은혜 주시는 성령의 역사가 없었다면, 나의 존재는 죄인 중의 괴수 일 뿐입니다.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 믿음의 예수님, 은혜의 성령님이 계셨기 때문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고, 여러분도 동일한 상황이 일어났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 예배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기 고백입니다. 우리의 현재 상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예수님의 믿음 안에, 성령님의 은혜 안에 있음을 체험 하시고, 고백 하시고, 빼앗기지 아니하는 참 보배로 영원토록 간직 하십시오.
성탄의 아침에 우리 모두에게 믿음과, 사랑과, 은혜를 풍성하게 채워주시려 이 땅에 오신 구원자 아기 예수님께 진실한 감사와 영광과 존귀를 올려 드리는 아름 다운 신앙 고백들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지기를 축복합니다.
멸망의 과거, 사랑의 현재를 지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미래를 영생에 초점을 맞추어 고백합니다. 16~17절을 읽어 드립니다.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가 대림절 기간에 예수님을 왜 기다렸습니까? 왜 많은 시간을 들여 예수님을 믿으려 하는 것입니까? 왜 예배당에 나와 반복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까?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예수님에게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만이 영생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끝까지 이기는 자들에게 영생의 나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에는 영생이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몇 구절을 읽어 드리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40)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아멘.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많은 말씀들이 예수 믿는 믿음으로 영생에 이르고, 예수 믿지 아니함으로 진노와 멸망에 이른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누릴 자들을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는 유일한 주권자가 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영생이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렇듯 예수님이 오시기를 소망하는 대림절을 보냈고, 복된 소식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에서기쁨으로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정통 유대인이라는 혈통에 대해서 말도 못할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 된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유명한 학파 문하생으로 공부한 엄청난 지식 수준을 일생의 큰 자산으로 여겼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가고, 매질하고, 죽이기 까지 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며 그 업적을 자랑스러운 이력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단 한번 만남으로 자신이 그토록 자랑하고 자부심을 가졌던 업적과 이력들, 그리고 율법의 지식들을 배설물 같이 여기고 전부 버렸습니다. 그리고 버려지고 텅 빈 그의 마음에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순종, 오직 영생으로 기득 채웠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에게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가문도, 오래 사는 것도 다 필요 없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오직 예수 부활 영생의 소망 만이 그의 유일한 미래였습니다. 바울은 영생의 나라에 세워진 푯대를 향하여 성령에 이끌리어 앞만 보며 나아가기를 힘썼습니다.
그런 선택을 한 바울의 인생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도 내게 유익이라, 내 은혜가 내게 족하다, 예수께 받은 사명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강한 신념으로 충성과 헌신을 다하였습니다. 그의 모든 행적과 일생은 사도행전과 13편의 편지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영생을 소망하는 자의 삶이 이러합니다. 16절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길)을 보여 주시려고(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사도 바울 자신에게 긍휼(죄 용서와 거듭남)을 주셨다고 고백하면서 17절 말씀으로 찬송을 올려 드렸습니다.
우리 다함께 17절 말씀을 큰 소리로 합독 합니다.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것이 오직 영생의 미래를 향한 사도 바울의 신앙 고백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함께 합독하며 고백함으로 우리의 미래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항상 영생을 주시는 나의 왕, 나의 주인, 나의 구원자, 나의 친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진심어린 고백을 계속해서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기쁨의 좋은 소식을 맞이한 성탄의 아침에 우리는 멸망이라는 과거, 사랑이라는 현재, 영생이라는 미래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인생이나 우리나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멸망에 있었다는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믿음으로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 모두가 마음이 평안하기를 원하십니다. 죄로 인해 끌려다니는 인생이 되지 않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 나라를 보고, 듣고, 소망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모든 선물을 가지고 우리에게 성탄으로 찾아오신 분이 바로 우리의 구원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가정에게, 이웃에게, 온 세상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믿음과 사랑과 함께 풍성해져셔 구원의 은총이 각 사람에게 임하여지는 복된 성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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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멸망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저희들의 과거를 청산해 주시고, 사랑과 은혜와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영생의 소망으로 인도하여 주시니 무한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기쁨의 좋은 소식을 맞이한 우리 모두가 구원 영생의 은혜를 굳게 붙잡고 예수님과 함께 아름다운 동행을 이루아 나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성탄의 주인공이시며 믿음의 주인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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