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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전파 이전에 죽은 자들의 구원

열려라 에바다 2024. 1. 6. 20:41

복음전파 이전에 죽은 자들의 구원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첫사람 아담은 불순종의 죄를 범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하여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눈물, 슬픔, 고통, 질병, 사망이 있는 이 세상에서 죄인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해주시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아무 죄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화목제물을 삼으셨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모든 죄를 사함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복된 소식이 구약시대의 사람들이나 복음을 들을 수 없는 곳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1. 양심이 증거가 되는 양심심판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생령 곧 살아있는 영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이후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마음 안에 죄가 들어와 환경을 통해 보고 들으며 나름대로 지식을 쌓아가게 되니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가치관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것을 양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면 원래 하나님께서 주신 영의 마음과 죄로 인하여 들어온 비진리의 마음, 또한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양심이라는 세가지 마음으로 구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롬 7:22-23).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의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 행위에 따라 구원의 여부를 결정하셨습니다. 율법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어 구원에 이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율법은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신 것이요,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이 없었으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의 사람들은 마음에 심겨진 의의 도, 곧 양심을 좇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양심의 법이 행위의 기준이 되니 선한 사람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악을 행치 아니하지만 악한 사람은 자기 유익을 좇아 악을 행하며 살았습니다.

   로마서 2장 14-15절에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양심의 법이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에게는 양심이 율법이 되게 하시고 그 행위에 따라서 구원의 여부를 결정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양심심판입니다.

   2. 선한 양심은 양심심판으로 윗음부에 거하다가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말씀하신 대로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양심을 통해 신을 인정하고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자연만물의 오묘한 변화와 조화를 보면서 조물주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선을 좇아 살았습니다.

또한 양심에서 내세가 있음을 증거하므로 현세의 쾌락을 좇아 자기의 정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신을 지키며 절제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세종대왕이나 이율곡 선생, 이순신 장군이나 유관순 열사와 같은 분들의 경우를 보아도 참으로 선한 양심을 지녔기 때문에 신을 찾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복음을 듣지 못하였어도 위로는 신을 인정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부모를 공경하고 나라에 충성하였고, 이율곡 선생은 하늘의 지혜를 받아 외적의 침입을 예감하고 10만 양성설 등을 나라에 건의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를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죽은 사람들이 대기하던 윗음부와 아래음부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를 먹으며 살았지만 마음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죽은 후에는 그 영혼이 아브라함 품에 안겼고,
부자는 이 세상에서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며 살았지만 죽은 후에는 그 영혼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게 되었다는 내용인데 이들은 모두 복음을 듣지 못하였지만 선한 양심을 지닌 나사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윗음부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그렇지 못한 부자는 아랫음부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14장 9절을 보면 악인들이 그의 영화를 잃어버리고 고통 중에 있는 곳인 아래 음부가 나옵니다.
아래 음부는 악인들이 고통을 받는 곳이지만 거지 나사로가 의인 아브라함과 함께 있던
윗음부는 창세이래로 마음이 선하여 양심 심판을 통해 구원받은 영혼들이 편안하게 있는 곳입니다.
 
   3. 복음을 전하는 영들의 전도를 받아 구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에 3일 동안 음부에 내려가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곧 윗음부에 있는 구원받을만한 영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므로 그동안 복음을 듣지 못했던 사람들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2장 40절에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했고 에베소서 4장 9절에는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하셨습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3장 19절에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도 죽으면 3일 동안 윗음부에 내려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따라서 복음을 듣지 못해서 구원받지 못하는 영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섭리에 감사하며 더욱 행함있는 믿음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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