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칠 복으로 본 계시록 (계 1:3)

열려라 에바다 2024. 1. 15. 10:51

칠 복으로 본 계시록 (계 1:3)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7복 이해의 중요성>

                                         계시록의 7복
계시록의 복은?

(마카리오스-μακάριος)
계1:3의 복은 계시록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이 받는 복이기 때문에 계시록의 복을 결정짓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계1:1의 “복”은 헬라어로 (마카리오스-μακάριος)로 문자적 의미로는 “축복, 복, 행복, 복 주심, 행복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마카리오스의 용례를 보면 딤전1:11의 “복되신 하나님”과 딤전6:15의 “하나님은 복되시고” 등으로 하나님이 곧 복이시다.
 
복의 용례

① 하나님이 복(시16:2) ② 베라카(예배가 복)
③ 바라크(기도가 복) ④ 율로기아(찬송이 복)
⑤ 감사가 복(단4:34) ⑥ 베라카 (영생이 복)
⑦ 토브(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
⑧ 인자하심이 복(시69:16) ⑨ 말씀이 복(왕하20:19)
 

계시록과 산상수훈의 복 비교
 
<계시록의 7복>
1. 읽고 듣고 행하는 자의 복이다(계1:3).
2. 자아처리의 복이다(계14:13).
3. 거룩의 복이다(계16:15).
4. 신부가 되는 복이다(계19:9).
5. 부활생명의 복이다(계20:6).
6. 지키는 자의 복이다(계22:7).
7. 성결의 복이다(계22:14).
 
<산상수훈의 8~9복>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1)​
2.​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3.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4. 의에 주린 자는 배부를 것임이요(마5:6)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7.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마5:9)​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5:10)
9.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1~12)​
<비교 결과>
1. 공통점이 있다.
2. 상이점이 발견되지 않는다.
3. 신령한 복이다.
4. 변화 받은 자의 복이다.
5. 장성한 자의 복이다.
6. 하나님이 복이시다.
7. 하늘의 복이다.
 
도표1
 
 
 
 
 
 
 
 
 
 
 
 
해석에 미치는 영향

계1:3의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하심과 같이 7복은 계시록의 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계시록 해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계시록에 나타난 7가지의 복을 종합해 본 결과 계시록의 복은 신령한 복으로 산상수훈의 8복이나 성경의 중심사상과 다르지 않다. 그 내용으로 볼 때 계시록은 초보에서 장성한 자에 이르기까지 신앙훈련을 위한 영적교과서다. 그렇지 않고 계시록을 종말에 나타날 세속사와 교회사의 전개로 본다면 이런 복이 성립될 수 없고 전반적인 해석 자체가 불가하며 세속사에 대한 풍부한 자료조차 제공하지 않는다.


계시록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것은 계시록의 해석 방향을 설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마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3절) 하셨듯 계시록의 복은 전반적인 계시록의 내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의 복은 계시록을 통해서 나타날 결과이기도 하고, 계시록의 내용이 무엇인지 중요한 힌트나 유추 혹은 증명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의 사이사이에 나타난 7복 역시 계시록의 흐름을 알려주고 계시록이 어떤 책인지 시사해 주는 바가 큽니다.


계1:1의 “복”은 헬라어로 (마카리오스-μακάριος)로 “축복, 복, 행복, 복 주심, 행복의 근원”이라는 뜻으로 마5:3-11의 8복의 문형과 유사합니다. 8복은 천국의 복이요 신령한 복입니다. 계1:3의 "복"(마카리오스-μακάριος)은 그 용례로 볼 때 딤전1:11의 “복되신 하나님”과 딤전6:15의 “하나님은 복되시고” 등 하나님이 곧 복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3절의 이 예언의 말씀”이 계시록 전체를 가리키므로 3절의 복이 계시록의 복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계시록의 복이 영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성찬이 형상화된 복음인 것처럼 계시록은 비유와 상징과 교훈으로 표현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참고로 1:1의 '계시록의 서론'도 계시록이 무엇인지 힌트가 담긴 계시록적인 서론입니다. 1:4-5의 '계시록의 축도'도 그렇고, 8절의 '하나님에 대한 소개'도 계시록적인 소개입니다. 1:10절 이하의 7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 역시 '계시록적인 예수의 모습'으로 계시록을 통해 우리에게 희망하시는 계시록의 목적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처럼 본문의 복 역시 계시록적인 복입니다.


칠 복으로 본 계시록은 어떤 책입니까?


1. 계시록은 신령한 복의 책입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그런데 내용을 모르면 지킬 수 있을까요? 계시록의 복은 계시록의 내용을 아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계시록 주석이나 많은 강해서가 나와 있지만 그 복이 계시록이 강조하는 "복"(마카리오스-μακάριος)인지, 그리고 그 복됨이 뚜렷하게 느끼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계1:3절 자체만 해도 계시록의 복이 무엇이고 계시록이 무엇인지 그 힌트가 담겨 있습니다.


ㄱ. "예언의 말씀" - 예언에 대한 정의에 따라 계시록의 해석은 달라집니다. 미래를 예언하는 예언서인가? 그렇다면 재림의 징조와 관련된 세속사의 전개로 보아야 하겠지만, 읽고 듣고 지킴으로 행할 수 있고, 7교회에 주신 말씀이나, 계시록의 사이사이 나타나는 교훈들처럼 우리에게 주신 영적 메시지라는 점에서, 고전14:22의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는 성경적이고 교훈적인 성격이 강함을 알 수 있습니다. 눅11:28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신 말씀이 계시록의 해석의 키입니다. 즉 계시록의 복됨은 예수님이 전파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같습니다.


ㄴ. "읽는 자" - 내용을 알 수 없다면 어떻게 읽는 자가 복이 될까요? 그러나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입니다. 계시록을 읽는 자가 복되다는 것은 읽기만 해도 그 내용을 알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의 기록적 양식으로 볼 때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서 용례를 수없이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성경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어 있다면 계시록을 읽기만 해도 이해에 많은 힌트를 얻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을 읽기만 해도 그 내용이 성경과 연결이 되면서 윤곽이 드러나게 됩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접근하려는 계시의존사색만 가져도 충분히 계시록 이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계시록이 난해한 모습으로 다가왔던 것은 무엇보다 성경에 대한 무지입니다. 신령한 관점에서 성경을  이해하는 눈이 없기 때문에 계시록에 구약적인 묘사가 나타나 있어도 깨닫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난해한 책이라는 선입견과 아울러 복음보다는 재림의 징조나 세속사라는 편견으로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일 만큼 그들의 정치적 메시아관을 바꾸기가 어려웠듯 계시록에 대한 편견을 바꾸기가 그토록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런 편견을 갖게 된 동기 중 하나는 계시록을 마 24장의 확대판으로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재림의 징조는 마 24장 등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재림의 징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주님 오실 날을 알려는 것과 흡사한 모양새가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ㄷ. "듣는 자들" - 복수형으로 강단의 메시지를 전재한 말씀입니다. 강단에서 메시지가 선포될 정도면 이미 의미를 이해했음을 전제한 것입니다. 계시록을 교회의 사자들에게 주셨으니 그 말씀을 해석하여 선포한다면 듣는 자가 복될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현실의 비극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선포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입니다. 계시록이 주어진 경로를 생각할 때 계시록 강해는 본 교회 담임교역자가 가르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된 계시록이 강단이나 소그룹에서 전해진다면 그 교회는 복된 교회입니다. 그런 점에서 듣는 자는 읽는 자보다 한층 복됩니다. 계시록의 말씀이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길러내는 신앙훈련의 교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세한 것은 제자들에게 따로 가르치셨습니다.


ㄹ. "지키는 자" - 지킨다는 것은 계시록이 지킬 수 있는 말씀이라는 의미와 아울러 내용을 안다는 것을 전재한 표현입니다. 이처럼 계시록은 성도가 힘써 지켜야 할 말씀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등 경건의 말씀 안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이는 계시록의 정체에 대한 중요한 힌트가 됩니다. 신28:1에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이라 했고, 눅8:15에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 한 말씀과 같습니다. 이처럼 계시록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지킬 수 있고 복도 성경적인 복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2. 계시록은 옛자아를 죽이는 책입니다.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주 안에서 죽은 자란 일반적으로 예수 믿고 임종한 자를 가리키지만, 문맥을 보면 특수한 어떤 죽음입니다. “지금 이후로” 개역성경에서는 지금을 ‘자금’ 즉 스스로 지금 죽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살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고 우리가 영적으로 매일 죽어야 하는 죽음입니다. 스스로 죽어야 하고, 지금 죽어야 하고, 내일도 죽어야 하고, 주 안에서 죽어야 하는 이 죽음은 어떤 죽음일까요?


힌트를 드리면 이 말씀이 나팔 재앙에서 주어졌습니다. 인재앙은 성경이 열리는 것이고, 나팔재앙은 나팔이 복음이니까 말씀의 감화력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죽음이란 말씀의 감화를 받아 내 생각과 주관이 깨뜨려지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아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그런 점에서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자아가 죽는 비밀입니다. 성도의 육신의 죽음도 복되지만 우리가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충성하고 변하지 않는 자아의 죽음도 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산제사요 산 순교입니다.


그 결과는 13절에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성령과 자아 그리고 수고의 그침이 밀접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옛자아가 깨뜨려지지 않고는 성령으로 인한 평안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신 것처럼 자아는 우리가 힘써야 할 부분입니다. 그래서 히4:6에 복음을 믿고 순종하면 안식에 들어간다고 했고,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습니다. 이처럼 계시록은 내가 죽고 예수가 사는 경건의 비밀이 담긴 책입니다.


3. 계시록은 거룩에 이르는 성화의 책입니다.


계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신랑 예수 오시기를 기다리며 자기를 거룩하게 준비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계시록이 그런 책입니다. 그런데 이 옷을 지키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수여하신 옷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와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은 동의어지만 협의와 광의적인 관점에서 칭의와 성화를 암시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 용서뿐만 아니라 예수 안에 새 피조물이 되었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되 영원한 영광과 함께 구원하신 것을(딤후2:10) 감사하면서 그 믿음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성화 및 신부단장의 비밀은 예수 안의 복음에 서서 죄를 떨어버리고 의로 변화되는 예수 공로입니다. 그래서 엡5:26-27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한 바와 같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진리는 칭의는 물론 성화 영화까지도 포함된다는 복음 이해가 중요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진리에 굳게 서는 것이 온전함에 이르는 비밀입니다(고전15:1-2). 이처럼 계시록은 성화의 책입니다.


4. 계시록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책입니다.


계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기록하라”라는 것은 성경을 암시하는 용어입니다. 그래서 바로 뒤에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증합니다. 그만큼 귀중하고 복된 일일 뿐 아니라 태초부터 예정하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주석가들의 견해를 보면 “어린양의 혼인잔치란 주를 영접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하고도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그랜드주석 계시록 147p)고 영적으로도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장차도 있겠지만 이 땅에서 신부의 수준에 이른 은혜로운 삶이기도 합니다.


마22:14에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하셨는데 이처럼 그리스도의 신부의 수준에 이른 자가 많지 않습니다. 신부가 되려면 세상을 사랑함을 버리고 주님만 사랑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시45:10-11에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했습니다. 그런데 날마다 고향만 생각하며 운다면 신랑이 그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세상을 사랑한다면 이젠 신랑 예수만 사랑하고 예수님 때문에 날마다 기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계시록은 예수님의 신부 만드는 책입니다.


5. 계시록은 영생을 누리는 책입니다.


계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 여기 첫째 부활에 대해서 전천년설에서는 성도의 육체의 부활로 보나, 무천년설에서는 중생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합니다. 여기서 전천년설을 지지할 수 없는 것은 성경은 육체의 사망을 사망이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첫째 사망은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과 결별이요, 둘째 사망은 계21:8에 나오듯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첫째 부활은 예수 믿어 중생하는 영의 부활이요, 둘째 부활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육체까지도 온전해지는 그 부활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요5:25절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지금 살아난다 하셨습니다.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계20:6을 보면 첫째 부활이란 예수 믿어 거룩해지고 제사장이 되고 왕노릇하는 영적 부활을 가리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계시록은 그리스도 예수의 성령 안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아가는 책입니다.


6. 계시록은 경건훈련의 교과서입니다.


계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내가 속히 오리니” 재림만 생각하는 자들은 속히 오신다면서 아직까지 안 오시냐고 의문합니다. 그러나 원문으로 보면 “엘코마이” 현재형입니다. 내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림은 물론 현재적으로도 성령으로 임하시고 계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영으로 임하셔서 수많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변화시키시고 역사의 종말에는 온전히 나타나실 것입니다. 사모하는 자에게 지금도 성령으로 임하십니다. 어떤 형태로든 주님의 임하심은 우리를 온전히 변화시키십니다.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이 두루마리는 계시록입니다. 그동안 살펴보았듯 계시록은 성도를 양육하는 경건훈련의 교과서요, 제자교육의 훈련서입니다. 주님은 준비된 자에게 지금도 오시고 장차 온전히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경건훈련의 교과서입니다.


7. 계시록은 천국잔치에 참여하는 책입니다.


계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두루마기는 행실입니다. 두루마기를 빤다는 것은 진실로 돌이키는 회개를 의미합니다. 더 이상 세상을 추구하지 않고 주님만 사랑하고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요15:3에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하신 것처럼 말씀으로 마음과 삶을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여 항상 묵상하는 것이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시1:1) 비밀이기도 합니다. 그래야 생명나무를 통하여 생명으로 풍성하고 은혜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은혜와 영생과 복을 누리는 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의 7복의 7은 완전수입니다. 이처럼 계시록은 우리에게 완전한 복, 혹은 완전하게 하시는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신령한 자로 만드는 양육의 책입니다(딛2:11-14).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인 계시록으로 양육을 받아 경건치 않은 것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며 선한 일에 열심하는 가장 복된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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