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거룩한 예식

열려라 에바다 2024. 3. 20. 08:22

거룩한 예식

성례란 성찬과 세례인데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셨기 때문에 거룩한 예식입니다.

로마카톨릭의 견진성사, 고해성사, 신품상사, 종부성사, 혼인성사 이상 다섯 가지도 성레라고 하는데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

세례를 받는 조건은 교회의 일원이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도 유아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 입으로 신앙 고백을 하지 않았는데 세례 줄 수 있는가요? 그러나 유아에게는 영적부모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동일한 언약 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유아세례를 베풉니다. 구약의 언약 백성들이 성인이 아니어도 유아일 때 할례를 받았듯이, 은혜 언약 안에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세례는 반드시 온몸이 물이 다 잠겨야 하나요?

방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죄가 씻겼다는 인식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교회나 다른 교단에서 받은 세례는 무효인가요?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다른 교단에서 받은 세례도 인정합니다. 천주교의 세례도 인정합니다.

세례를 못받고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세례 자체가 있어서 효력이 있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는 구원의 표입니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하셨고 떡과 포도주를 주고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연합과 교제를 확실하게 해주는 것이 성찬의 목적입니다.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육체가 된다는 화체설(로마 카톨릭), 빵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가 함께 계신다는 공재설(루터)이 아닙니다. 떡과 포도주는 주님이 고난당하신 몸을 단순히 기념하는 상징설(츠빙글리)입니다. 이것은 성례전적 참된 의미를 놓치고 있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주님의 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하는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살피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하는 지식과 주님을 양식으로 삼는 믿음, 회개와 사랑과 새로운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성찬식은 마치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의 순간을 목격하는 것과 같습니다.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찟기심을 보여주며, 포도주 잔을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가 쏟아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성찬식은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양식을 얻고 자라간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의롭게 됩니까?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면 믿음은 어떻게 생깁니까? 복음의 설교와 성례를 통해서 옵니다. 믿음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이 말은 우리가 믿음이 생길 때까지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령님은 참된 믿음을 주실 때 은혜의 외적수단을 사용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복음으로 가르치고 성레로 확증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신약에서 몇 개의 성례를 제정하셨습니까? 두 개입니다. 세례와 성찬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으로서, 신자를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믿음이요, 구원을 일으키는 믿음이요, 더 나아가 선한 행위를 일으키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요 하나님입니다(엡 2;8-9). 그러면 아무리 노력해도 믿어지지 않으니까 믿지 않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참된 믿음을 주실 때 성령님께서 사용하시는 외적인 은혜의 수단이 있습니다. 복음의 설교는 우리의 믿음을 일으키고, 성례는 우리의 믿음을 굳세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강단에서 복음의 설교가 선포되고 성례가 신실하게 시행될 때,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믿음을 일으키고 굳세게 합니다.

 

설교뿐 아니라 성찬도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는 한 형태입니다(고전 11:26).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이루신 제사 덕분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물로 씻는 예식을 제정하시고, 그의 피와 성령으로 나의 영혼에 더러운 모든 죄가 씻겨졌음을 약속하셨습니다.

 

물로 몸의 더러운 것을 씻듯이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짐은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은혜로 우리가 죄 사함 받았음을 뜻합니다(히 9;22). 성령으로 씻겨짐은 우리가 성령으로 새롭게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로 거룩하게 되어 점점 더 죄에 대하여 죽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3:5).

 

세례를 통해 우리 죄가 용서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고 성찬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 홍해를 건넌 것과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생수를 마신 것이 바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다 함께 홍해에서 씻었고, 광야에서 신령한 음식을 먹고, 신령한 생수를 마셨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본질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깨끗하게 살 필요가 뭐가 있냐?

차라리 적당하게 더럽게 사는 것이 훨씬 편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마태복음 22장에 왕이 베푼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 가운데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쫓겨나는 것을 봅니다. 죄인들은 누더기 옷만 있을 뿐이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 예복을 준비하십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석한 자들이 세마포 옷을 입었는데 그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오직 정결케 된 자만이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례란 하나님과 자기 백성 사이의 언약관계를 보증하는 예식입니다.

유아들도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어른들 못지않게 유아들에게도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속죄와 믿음을 일으키는 성령이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아들도 언약의 표인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에 연합되고 불신자의 자녀와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런 일이 구약에서는 할례를 통하여 이루어졌으나 신약에서는 세례로 제정되었습니다. 유아세레는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유아세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세례는 자기 입으로 직접 신앙을 고백해서 받는 것이 의미가 있지, 전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아이 때 받는 것은 아무 의미도 유익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믿음을 철저하게 개인적으로만 보는 한계가 있습니다. 부모의 신앙과 자녀의 신앙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봅니다(창 17:7).

세례는 죄 씻음 자체가 아니라 죄 씻음에 대한 약속입니다.

성찬도 예수님이 제정하셨습니다. 그를 기념하여 이 뗀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떡이 나를 위해 떼어지고 전이 나에게 분배되는 것을 내 눈이 보는 것처럼 확실히 예수님의 몸이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드려지고 찟기셨으며 그이 피도 나를 위해 쏟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그의 흘리신 피를 마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믿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로써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약속을 언제 하셨습니까? 고린도전서 11:23-26절에서, 고린도전서 10:16-17절에서 하셨습니다.

세례는 개인에게 일평생 한번만 시행되는 것에 반하여 성찬은 지속적으로 시행됩니다. 세례는 신앙을 고백하는 특정 개인에게 시행되지만 성찬은 세례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이 나누는 것, 교분에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성찬식에 참여하는 자들은 먼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의 대속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서 주님의 떡이 떼어지고 잔이 분배되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확실합니다. 주님의 떡과 잔을 받아서 입으로 맛보는 것처럼 확실합니다.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제로 변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떡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고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피라고 말합니까? 마치 떡과 포도주가 육신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듯이 십자가에서 달리신 그의 몸과 흘리신 피가 우리 영혼을 영생으로 이끄는 참된 양식과 음료라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기념하면서 이 거룩한 표들을 육신의 입으로 받아 먹는 것처럼 실제로 성령의 역사에 의해 우리가 그의 참된 몸과 피에 참예합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과 순종이 확실하게 우리의 것이 되어 마치 우리 자신이 직접 모든 고난을 당하고 우리의 죄 값을 치룬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