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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의 참 의미

열려라 에바다 2024. 3. 25. 09:06

부활신앙의 참 의미        

기독교는 참 독특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갖는 종교심, 경외심 그것을 뛰어넘는다.

그 이유는 부활신앙에 있다.

 

부활신앙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그 핵심은 바로 십자가다.

 

십자가는 원래 가장 끔찍한 죄인들을 위해서 마련된 처형터다.

그 누구도 원치 않고,

그 누구도 싫어할뿐더러,

역겹고, 가장 극악한 장소가 십자가다.

 

그 십자가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종교는 바로 기독교다.

그리고 그 십자가 사건 뒤에 이어지는 것이 부활이다.

 

사람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종교의 범위를 넘어선 지점이 십자가이며,

그 십자가를 넘어 선 이후 사람으로서 이해되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부분이 부활 사건이다.

 

이 둘은 떼어놓을 수 없으며 함께 간다.

그리고 이 둘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상식이 아닌 인간의 종교심으로도 이해할 수 없다.

이해되지 않는 게 아니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인간의 종교심은 거룩하고 좀 더 고상한 것을 추구하는데,

이 부활신앙의 시작은 그 거룩함과 고상함과 완전히 반대를 걷는다.

 

불교도,

이슬람도,

유대교도,

그 어떤 세상의 종교도 종교의 시작을 저렇게 시작하진 않는다.

조금이라도 종교의 창시자를 멋있게 그리거나, 그가 어떻게 위대한 일을 했는지를 묘사한다.

 

그러나 십자가는 원래 그렇게 멋있는 공간이 아니었고,

그렇게 위대한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가장 극악무도한 살인자들과

사회를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죄인들을 위해 마련된 곳이 십자가 아닌가?

 

그 십자가의 이미지가 역사가 흐르면서 변화되었다.

그 극악무도한 자리가 희망의 자리고,

그 죄악 많은 곳이, 의인 많은 곳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실제적으로 그렇게 인식의 변화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금은 극악하거나, 혐오하거나, 무서워하는 이들은 없다.

 

이 십자가가

부활신앙의 시작이다.

 

죽어야지,

살아나는 것이지

 

살아나기 위해서 죽는 건 아니다.

죽음이 항상 먼저다.

의미 없는 죽음이 아닌

온 인류를 구원하는 가장 큰 의미를 지닌 죽음이 십자가 사건이다.

 

그래서 그 죽음은 일반적인 죽음과 비교될 순 없다.

그 죽음 이후에 부활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준다.

 

모든 죗값을 다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고 새로운 몸을 입으셨다.

 

우리의 죄가 모두 사해졌다.

우리의 공로는 아무것도 없다.

단지 그분이 그렇게 그분의 뜻대로 행하셨을 뿐이다.

 

그럼 우리가 다시 살아나는데도 우리의 공로가 필요한가?

우리가 다시 부활하는 것 역시 우리의 공로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그분을 믿는 믿음이라는 너무나도 단순하고 확실한 그것 하나만으로 우리는 부활한다.

우리의 모든 죗값이 사함을 받았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다.

그리고 영원한 부활의 소망을 얻게 되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대가는 그분이 모두 치르셨고

우리는 그 대가를 옆에서 목도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그분의 사랑에 반응할 뿐이다.

 

그분이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우리 주위에 희망을 잃고 슬픔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와 동일한 이웃들에게.

몸소 부활의 삶을 살아낸다.

우리에게 있는 소망의 빛을 어떻게든 보여주기 위해서 몸부림친다.

 

때로는 핍박이 있을 수 있고,

때로는 조롱받을 수 있으나,

때로는 믿는이들에게 배신까지 당하는 상처를 받으면서..

 

그러나 우리 옆에 항상 부활의 그분이 계신다.

모든 이가 우리를 버려도 그분은 항상 살아서 우리 옆에서 위로해 주신다.

때로는 너무 힘겨워 눈물이 내 삶을 온전히 적실 때, 그때 옆에서 조용히 내 눈물을 닦아 주신다.

그리고 본인이 외로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을 조금 보여주신다.

아주 조금...

그것도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크다.

 

 

주변에 아무도 그분의 길을 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외로움 속에서도,

함께 같은 길을 갔던 동료가 나를 떠나버릴 때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믿음의 친구마저 나를 외면할 때,

 

그러한 순간까지도 나를 외면하지 않는 이가 있으니

그분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나는 오늘도 부활신앙을 살아갈 수 있다.

부활신앙은 멈추지 않고 영원하다.

죽음을 이기신 그분의 부활.

내가 당하는 작은 어려움을 어렵다고 할 수 없다.

 

그분이 당한 길을 조금이라도 본 자들은..

그냥 묵묵히 감사하며 기뻐하며 뛰면서 그분의 걸음을 조금씩 흉내 낼 뿐이다.

흉내낼 수 있다는 작은 기쁨에 벅차 하면서 말이다.

 

너무 벅차오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해서

우리의 몸은 이웃들을 향해서 어느새 다가간다.

그 이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내 남편, 내 아내

내 아들, 내 딸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내 부모, 내 친척, 내 이웃, 내 회사 동료, 내 교회 성도.

 

그리고 내 사람이 아닌..

원수 같은 원수.

원수같은 이웃.

원수같은 이웃나라.

원수같은 나의 경쟁자들.

원수같은 나의 대적들에게까지 나아간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