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인격으로 예우해 드리면서 살아가요 = 신명기21;1-22(240331)

열려라 에바다 2024. 3. 28. 08:13

인격으로 예우해 드리면서 살아가요 = 신명기21;1-22(240331)한상원 목사

 

PW : 믿음              BIW : 예우해 주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의 사람답게 인격으로 예우해 드리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오정과 딸

 

사오정이 딸과 함께 아침 운동을 나갔습니다.

집을 나서 공원 쪽으로 열심히 뛰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사오정을 보고 손짓하며 말하는 것입니다.

아저씨... 운동화 짝짝이로 신었어요.”

순간 사오정이 발을 내려 보니 정말로 한쪽은 흰색, 다른 한쪽은 검은색이었습니다.

운동하던 사람들이 사오정을 보고 마구 웃는 것입니다.

한순간에 동네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오정은 딸에게 말했습니다.

어서 집에 가서 아빠 운동화 가져와. ~창피해서 운동이구 뭐구... 빨리 가져와. 아빠 여기서 기다릴께.”

딸은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그동안 사오정은 등나무 벤치에 앉아서 딸이 돌아오기만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딸이 돌아왔는데 손에 아무것도 없이 빈손이었습니다.

왜 그냥 왔니. 신은?”

그러자 딸이 말했습니다,

아빠 소용없어요. 집에 있는 것도 한쪽은 흰색 또 다른 한쪽은 검은 색이예요.”

그 아버지에 그 딸입니다.

부전자전, 부전녀전입니다.

나이 많은 아버지는 건망증이 심해서 그렇다 치고 생생한 딸마저 이러니 이 일을 어쩝니까?

요즘 커오는 젊은이들을 보면 꼭 사오정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습니다.

관심 없이 사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젊은이들은 올바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살아야 합니다.

정신 줄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정신 줄을 놓아버리면 부활의 주님을 놓아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은 죽음의 권세, 마귀의 권세, 죄의 권세, 권력의 권세를 이기고 당당히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붙잡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나가는 주일입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신앙인들에게 승리의 큰 기쁨과 소망으로 당당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20011015일 밤에 대전시 대덕구 송촌동 일대를 도보로 순찰하던 경찰관을 차량으로 들이받은 뒤에 경찰이 차고 있던 권총을 빼앗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권총으로 20011221일 오전 10시 쯤에 대전 서구 둔산동에 있는 국민은행 지하 주차장에서 현금을 수송하던 직원을 권총으로 싸서 살해하고 현금 3억원을 빼앗고 도주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 사건은 이승만과 이정학이라는 두 사람이 공조하여 발생한 사건인데, 20228월에 두 사람이 체포되었다.

그런데 2002920일에 전주시 덕진구 금영2파출소에서 혼자 근무하던 백선기 경사를 흉기로 찔러서 살해하고 권총3.8구경과 실탄4, 공포탄1발을 빼앗고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20228월에 체포된 두 사람을 심문하는 중에 이승만이가 전주 경찰 살해 사건 당시 현장에서 사라진 권총의 위치를 알고 있다고 실토하게 되었고, 경찰은 울산에서 그 권총을 찾아내게 되었다.

수사원들은 이승만과 이정학을 따로 심문하기도 하고, 대질신문하면서 백선기 경사 살해 사건 당시에 이승만은 전주에 가지 않았고, 이정학이 단독으로 백선기 경사를 살해한 살인범으로 밝혀내게 되었다고 한다.

이로써 21년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미제의 사건이 진실을 밝히게 되었다.

형사들에게는 범인은 흔적을 남기고 반드시 잡힌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CCTV, 블랙박스, 휴대폰 위치 추적과 같은 최첨단의 수사물들을 통해서 범인들을 체포하기가 쉽다고 한다.

그러나 2000년 초반에만 해도 CCTV나 휴대폰이나 블랙박스와 같은 수사물들이 없었기 때문에 범죄 사건이 발생했을 때 수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성경시대에는 어땠을까?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4000년 전에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야말로 고고고고고대사회에서는 사건이 발생할 때 직접 목격한 증인이 없거나 범죄인 스스로 자백하지 않았다면 살인사건에 대하여 수사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던 때다.

잘 교육받고 훈련된 전문적인 수사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땅하게 수사할 묘책이 없었기 때문에 진짜 살인자는 숨어버리고, 애매하게 엉뚱한 사람이 범죄자로 낙인찍혀서 살인자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D4

 

 애매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각 지파와 가문을 따라서 기업을 분배하고 정착하여 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거주할 때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들, 결코 원하지 않는 사건들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는 일어나지 않아도 될 사건들이 수없이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정해진 순리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변수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무고 중에, 부지 중에 발생한 살인자는 급하게 도피성으로 피하여 재판을 받아서 살인할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는데 무지 중에, 부지 중에 발생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재판 결과가 드러나면 도피성에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살인사건은 발생했는데, 살인사건으로 인하여 죽은 사체가 발견이 되었는데, 그 살인사건을 목격한 증인도 없고, 살인자도 자백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그 살인사건을 해결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분명하게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있다든지, 증인이 있다든지, 증거가 있다든지, 살인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든지 하면 살인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증거도, 증인도, 단서도 찾을 수 없는데, 살인사건은 발생하였고, 시신이 있다면 그 살인사건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진짜 살인자도 아닌데, 누군가가 살인 누명을 쓸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진짜 살인자는 꽁꽁 어디엔가 숨어버리고, 애매한 사람이 살인 누명을 써서 감옥살이하거나 사형집행을 당하는 사례들이 종종 발생한다.

 

살인자가 밝혀지지 않은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애매한 사람이 살인자로 누명을 쓰는 과오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해 주고 계신다.

살인사건이 발생한 성읍 지파의 장로들과 레위인 지역에 살고 있는 제사장들이 살인사건이 발생한 성읍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의 거리를 측정한다.

가장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을 모은다.

장로들은 자신들의 성읍민이 살인자가 아니라는 증거를 보이기 위해서 일해 보지도 않고, 멍에를 매어보지도 않은 암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온다.

재판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성읍의 장로들이 이 암송아지를 이끌고 한 번도 씨를 뿌리거나 경작하지 않고 항상 물이 흐르는 골짜기로 가서 그 암송아지의 목을 꺾으라고 하신다.

성읍의 장로들은 암송아지의 목이 꺾인 물에 손을 씻으면서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라고 말하라고 하신다.

그러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래서 9절에서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분명히 무언가가 그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피살자가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그 피살자는 꼭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을 죽였을까?

피살자가 혼자 다니다가 맹수에 의해서 찢겨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맹독을 가진 뱀에 물려서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옛날 말에 사람이 죽으려고 하면 접시 물에도 빠져 죽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사람이 죽으려고 하면 그야말로 별일이 아닌데도 죽을 수 있는 것이다.

꼭 사람이 그 사람을 죽였을 것이라고 확정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수없이 변수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렇게 발생하는 변수에 의해서 그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건을 은혜로 해결하는 것이다.

살인자가 되었건, 무엇이 되었던 그 사람을 죽게 만든 사건에 대하여 암송아지가 죽음으로써 대속하는 것이다.

항상 흐르는 물이 있는 골짜기에서 그 일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 모든 문제를 덮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애매한 사람이 살인자의 누명을 쓰는 과오가 발생하지 않고, 살인이 발생함으로 인하여 부정하게 된 성읍을 다시 정결한 성읍으로 회복시켜 나가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자유인의 신분으로 예우해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이웃 적대국과 전쟁하던 중에 많은 전쟁포로를 전리품으로 얻는 경우가 있다.

전쟁포로들 중에는 여인들도 포함될 수 있다.

전쟁포로가 된 여인들 중에서 마음에 쏙 드는 여인이 있어서 그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전쟁포로가 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그리고 그 여인이 아내가 되기를 원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여인은 전쟁포로로 여기지 말고 인격으로 예우해 주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아내로 맞이하고 싶은 전쟁포로 여인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머리를 밀고 손톱을 깎고 전쟁포로 의복을 벗기고 집에서 살면서 그 여인의 부모를 위해서 한 달 동안 애곡하는 기간을 주라고 말씀하신다.

그런 후에 그 여인과 혼인하여 정식 아내로 맞이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아내로 맞이한 후에 혹시 마음이 변하여 그 여인과 이혼하려고 하면 여인을 다시 종으로 다른 사람에게 매매하지 말고 자유인으로 풀어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본래는 전쟁포로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종으로 삼아서 매매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아내로 맞이했던 여인이기 때문에 더 이상 종의 신분이 아니라 자유인의 신분이 되었던 여인이다.

그러므로 자유인의 신분으로 여인을 풀어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비록 전쟁포로였던 여인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과 혼인함으로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에 이혼당한 이후에도 여전히 자유인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자유인의 신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재혼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본래 태생은 이방인의 여인이었지만, 자유인의 신분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여인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여인으로, 곧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도 본래 죄의 종이었고,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자유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의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의로 자유인의 신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의인으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축복을 받아 누리는 것이다.

 

 정도(正道)를 따라서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본래부터 일부일처제를 허락하신 분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으로 인하여 일부다처제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고, 때로는 다부일처제가 묵인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지구촌에 생존하는 수많은 민족들 중에는 가족법과 민족문화에 따라서 일부일처제가 합당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다처제도 존재하고 있고, 다부일처제도 존재하고 있다.

오늘 성경에서는 일부다처제로 인해서 발생한 사건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일부다처제 중에서 사람의 마음이 오락가락하다 보면 어느 부인은 사랑하고, 어느 부인은 미워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미워하는 여인에게서 낳은 아들이 장자일 경우이다.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낳은 아들이 장자인 경우에는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지만, 미워하는 여인에게서 낳은 아들이 장자인 경우에는 재산을 상속할 때 누구를 장자로 세워서 좀 더 많은 유산을 물려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이란 인지상정으로 미워하는 여인의 아들을 장자로 세워서 재산을 상속해 주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여인의 아들이 진짜 장자가 아니라 차자, 삼자, 사자가 될지라도 사랑하는 여인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서 재산을 좀 더 많이 상속해 주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생겨났을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해진 정도(正道)를 따라서 결정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비록 미워하는 여인의 아들일지라도 진짜 가장 먼저 낳은 아들, 장자라면 그 아들에게 장자권을 상속하고, 다른 아들들보다 갑절의 재산을 상속해 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16-17절에서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대로 재산권 상속에 관한 법률로 정해지는 것이다.

이런 법이 정해지기 전에는 차자가 장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적으로 아브라함의 장자는 이스마엘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차자인 이삭을 장자로 세워주신다.

에서와 야곱의 관계에서도 에서가 장자이지만, 하나님은 에서는 미워하시고 야곱을 사랑하면서 야곱에게 장자권을 허락해 주신다.

야곱에게도 르우벤이 장자이지만, 하나님은 네 번째인 유다와 열한 번째인 요셉에게 장자권의 명분을 허락해 주신다.

레위의 아들들 중에도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 삼형제 중에서 하나님은 두 번째인 고핫에게 장자권의 명분을 세워주시면서 고핫 자손에게서 미리암, 아론,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주신다.

그러나 모압 평지에서 토라를 완성한 이후, 율법을 완성한 이후에는 오늘 기록한 법에 따라서 재산권 상속의 법률로 정하는 것이다.

 

 부모님을 하나님의 대리권자로 세워주시는 하나님.

 

18-21절에서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누군가에게 아주 고얏고 패역하고 못된 아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래서 부모님의 말씀에 전혀 순종하려고 하지도 않고, 도리어 부모님에게 행패를 부리고 부모님을 폭행하는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을 성읍의 장로들에게 고소하고 성읍의 사람들이 그 아들을 돌로 쳐서 죽여서 악을 제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아무렴 자식을 죽임으로 몰아가려는 부모가 어디에 있을까?

아무리 때려죽이고 싶은 못된 자식놈이라도 부모님은 그 자식놈을 감싸고 품어주고 용서해 주려는 것이 부모님의 심정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 자식을 성읍 장로들에게 고소하고 죽여서 죄악을 제하라고 말씀한다면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을 하나님의 대리권자로 세우시는 것이다.

곧 부모님을 업신여기고 패역하고 폭행하면서 온갖 죄악 덩어리로 사는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을 대항하고 반역하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말씀이다.

그 자식은 육신의 부모님을 향하여 저지르는 죄악이 아니라 결국은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을 향하여 저지르는 죄악으로 간주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러기 때문에 성읍의 장로들뿐만 아니라 모든 성읍민들이 돌로 쳐서 죽임으로 죄악의 뿌리를 뽑아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신앙인들의 삶은 부모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뵐 때, 마치 하늘의 아버지를 뵙는 것처럼, 예수그리스도를 뵙는 것처럼, 성령 하나님을 뵙는 것처럼 여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육신의 부모님을 비롯하여 주변에 계시는 모든 분들을 뵐 때, 마치 하나님을 뵙는 것처럼 여긴다면 어느 누구도 함부로 업신여기거나 모욕을 주거나 수치심을 안겨줄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하나님을 뵙는 것처럼 여기면 모든 분들이 소중하고 귀하고 사랑하고 섬기면서 인격으로 예우해 드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에 자연스럽게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을 품은 신앙인으로서 예수님께서 살으셨던 삶의 흔적을 따라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저주받아 죽은 사자들도 예우해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22-23절의 말씀에서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한번 사람으로 태어나서 죽는 것은 인생에게 있어서 정한 위치요 살아가는 길이다.

언제 죽더라도 죽을 때 곱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하나님의 언약 백성답게 죽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런데 정말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 인생들도 있게 마련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다하면서 천수를 누리다가 죽을 수도 있지만, 병들어 죽을 수도 있고, 불의의 사고로 인해서 죽을 수도 있고, 어제까지 멀쩡하게 살아있던 사람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사지 백체가 찢어지면서 죽는 인생도 있게 마련이고, 독을 마시면서 죽어야 하는 인생들도 있게 마련이고, 칼에 찔리고 창에 찔려서 죽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고, 총에 맞아 죽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다.

 

성경에 보면 보편적으로 어떤 사람을 죽임으로써 모든 죄악을 끝내려고 할 때에는 돌로 쳐서 죽이라고 말씀하신다.

중동지역에서는 종종 돌로 쳐서 사람을 죽이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중동지역에서 저주를 받아서 죽어야 하는 사람은 나무에 매달아 죽이는 사형제도가 있었다.

오죽했으면 저주를 퍼부으면서 나무에 매달아 죽이는 제도가 있었을까 싶다.

너무 추악하여 저주를 퍼부으면서 매달아 죽였더라도 하루해를 넘기지 말고 그 날에 나무에서 내려서 장례를 치러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루해를 넘기지 않고 곧바로 장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례법이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례는 3일장, 5일장처럼 장례 치르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례법은 1일장이다.

반드시 그날에 해가 넘어가기 전에 장례를 치러야 한다.

만약에 해가 넘어간 후에 장례를 치르게 되면 1일장이 아니라 2일장이 되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서쪽에서 해가 지기 전에 장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1일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1주일 동안은 애곡하는 기간으로 삼아서 1주일 동안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묵묵히 망자(亡者)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을 가진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해가 지기 전에, 곧바로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해서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돌아가시고 금요일에 장례를 치르는 것은 다음 날이 안식일이기 때문에 금요일에 장례를 치르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식일에도 장례를 치른다.

예수님도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장례법을 따라서 그날 곧바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그 사람이 저주를 받아서 나무에 매달려 죽었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의 인격체로 예우하면서 다른 일반인들처럼 그날에 곧바로 장례를 치러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날에 장례를 치러주지 않고 나무에 달린 채로 그대로 놔두면 육식을 줄기는 맹수들과 새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저주를 받아서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맹수들이나 새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도록 방치해 들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비록 모든 이들에게 저주를 받아서 죽은 인생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한 사람의 인격체였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주시면서 그 망자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예우해 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비록 죽은 자도 한 사람의 인격체로 예우해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살아 있는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지구촌에 생존하는 모든 사람들은 한 사람의 인격체로 예우받을 자격이 있다.

인종과 민족과 국가와 지역과 시대에 따라서 누군가를 업신여기고 마치 짐승처럼 여긴다면 그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의 복음과 사랑과 축복을 전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

지구촌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단 한 사람도 예외 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은 창세기 1;26의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만들어진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하나님의 창조물이기에 모든 사람들은 인격체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가 어떤 류의 삶을 살고 있더라도, 어떤 종류의 삶을 살아갔더라도 그 사람은 동물이나 짐승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체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을 자격이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의 복음과 사랑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을 갖고 태어난 사람임을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L4 & B4

 

하나님은 신앙인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한 사람도 예외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끊임없는 은혜와 풍성한 축복을 받으면서 살아갈 자격을 갖고 태어난 하나님의 사람임을 인식해야 한다.

흔히 사람들중에는 금수저니 은수저니 흙수저니 하면서 차별하려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은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은수저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대단한 위치에 올려져 있는 사람이고, 누구는 흙수저로 태어났기 때문에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정도로 차별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3:16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생존하는 모든 인격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지구촌에 생존하는 모든 이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함으로 멸망 당하지 않고 영생을 얻어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3:17에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온 지구촌에 생존하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지구촌에 생존하는 모든 인종들, 모든 민족들, 모든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여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길을 활짝 열어가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8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서 지구촌 모든 민족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8:18-20절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서 세계만방으로 퍼져 나가서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과 목사님들과 사역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후원할 의무가 있다.

세계 선교와 전도를 온몸으로 실천하면서 어서 속히 예수님께서 다시 오마.’라고 약속하신 대로 재림하셔서 주님의 거룩한 하늘나라가 임할 수 있도록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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