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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4:1-12 / 보아스가 나오미의 기업을 무르다[출처] 룻 4:1-12 / 보아스가 나오미의 기업을 무르다|작성자 야곱

열려라 에바다 2024. 4. 9. 08:19

(룻기 4장)

1.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2.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4.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5.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7.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묵상/룻 4:1-12)

◆ 보아스가 기업을 무를 책임을 받다

(4)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보아스는 나오미의 기업을 무르기로 굳게 결심했지만, 절대로 억지를 부리기를 원치 않았다. 자기보다 우선권이 있는 기업 무를 자를 찾았고, 그에게 확실한 대답을 들은 후에 일을 진행했다. 자기 원하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율법을 무시하고, 순리를 따르지 않고 고집 부리는 사람들과는 확실하게 구분되는 대목이다. 이런 것이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자세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해석이 어려운 것은 3절에서 나오미가 그 기업을 팔려고 내놓았다는 말이다. 무르다라는 말은 이미 판 것을 되사는 것을 의미하는데, 나오미가 팔려고 내놓았다는 말은 무르다는 말과는 충돌하기 때문이다. 만일 나오미가 땅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이것을 정말 파는 것이라면 나오미는 땅 값을 두둑이 받음으로써 유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남에게 판 땅을 친족이 대신 무르는 것이라면, 나오미는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땅을 되찾는 것이 되는 것이다.

율법은 땅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한다.

토지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개인이 영원히 소유할 수 없도록 하셨다. 그래서 땅은 아무리 사고팔아도 오십 년(희년)마다 반드시 원래 주인에게 되돌아가게 했다(레 25:23-28).

그래서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땅을 사고팔 때, 땅을 돌려주어야 하는 희년이 가까우면 싸게 거래했고, 희년이 멀면 비싸게 거래했다. 희년은 오십 년마다 오므로, 결국 이스라엘의 땅 거래는 길어야 오십 년 임대였다.

이러한 희년 제도는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와 교훈이 담겨있다. 만일 우리나라가 이런 제도였다면 이렇게 부동산 문제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제도는 부동산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할 뿐더러 빈부의 격차가 심하게 나는 것을 방지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가난해서 땅을 팔려고 하면, 친족에게 가장 먼저 우선권을 주어야 했다. 친족의 경우 가문과 지파가 같기 때문에 가문이나 지파별 경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경우 자기 사촌이 자기 땅을 사도록 요구했을 때, 사촌은 예레미야에게 '기업 무를 권리'를 이야기했고, 상속권을 말한 것으로 미루어보아(렘 32:8) 친족에게 판 땅은 희년에 돌려주지 않고 영구 귀속되는 것처럼 보인다(렘 32:14,15).

이렇게 친족간에 사고팔 때 '무를 권리'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보면, 무르다로 번역한 히브리어 '게우라'는 단순히 남에게 판 것을 되찾는 것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친척에게 파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그리고 이미 타인에게 팔았으면, 나중에 본인이나 가까운 친족이 희년 이전에 그것을 무르고자 하면 땅을 산 사람은 반드시 적정가를 받고 돌려주어야 했다(레 25:24).

오늘 본문은 나오미가 자신에게 속한 땅을 이미 팔았는데, 친족이 무르도록 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팔지 않았던 땅을 팔려고 내놓은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3절에서 '팔려 하므로'라는 말 때문에 후자로 해석하는 것이 더 올바른 듯 하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나오미는 땅 값을 받아서 말년을 궁핍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 보아스가 권리를 얻다

보아스의 이야기를 들은 나오미의 아무개 친족은 땅을 사고자 했다. 상속자가 없는 이 땅을 사면 영원히 자기 땅이 되는데 그것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때 보아스는 친족이 감당해야 하는 고엘 제도를 일깨웠다. 즉 만일 땅을 사게 된다면 더불어 나오미의 며느리 룻까지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룻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아무개의 이름이 아니라, 나오미의 전 남편 이름을 이어받아야 하며, 그 땅은 룻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몫으로 해야 한다.

예기치 않은 이런 의무 사항을 듣자, 아무개 친족은 주저했다. 아무리 봐도 손해라고 계산한 아무개 친족은 결국 자기 권리를 포기했다. 모압여자 룻을 데리고 와야 한다는 이 말에 이 남자가 포기한 것인지, 모압 여자 룻이 낳은 아들이 그의 전 남편 이름을 이어야 한다는 말에 포기한 것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아무튼 이 남자는 모압 여자 룻에게 끌리지도 않았고, 아이들을 남의 이름으로 잇게 할 생각도 없었다.

친족이 판 땅을 되 찾아주거나 친족이 종이 되었을 때, 돈으로 다시 사서 해방시켜주거나, 자식이 없는 친족 과부를 거두어들여서 혼인하는 계대혼인은 모두 '고엘'이라고 하는데, 이 제도를 시행하려면, 당사자의 너그러운 마음이 필수였고, 그것을 행사하기 위해 금전적인 손해가 발생하는 것을 기꺼이 감수해야 했다.

이 남자가 룻을 아내로 맞이하기를 주저한 것을 보면 룻이 그렇게 외모가 뛰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이 남자는 경제적인 손해가 더 걸림돌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보아스는 달랐다. 그는 룻의 외모보다 그의 현숙함과 성실함을 볼 줄 알았고, 그런 마음에 크게 끌렸다. 보아스는 즉시 친족 아무개의 신발을 포기 증거로 넘겨받고, 사람들 앞에서 나오미의 땅을 무를 것과 아울러 며느리 룻도 아내로 맞이할 것을 선언했다. 계대혼인이니만큼 아마도 룻이 정실부인은 아니었을 것이며, 잘못하면 룻이 나은 아이들은 서자 취급받을 우려가 있었지만, 보아스는 자신이 무른 땅이 룻의 아이들 이름으로 계속될 것임을 약속했다.

이렇게 나오미와 룻은 모든 권리를 되찾게 되었다. 나오미와 룻의 입장에서는 보아스가 큰 은인인 셈이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보아스와 룻을 축복했다.

축복의 내용을 보면 보아스의 집에 들어가는 여인을 '라헬과 레아' 같기를 축복했다. 라헬과 레아는 야곱의 아내로서 이들을 통해 12지파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또한 '다말'같기를 축복했다. 다말이 유다에게서 낳은 베레스는 거대한 유다 지파의 뿌리가 되었다. 유대인들에게 다말은 시아버지를 유혹한 나쁜 여자가 아니라, 쌍둥이를 낳아서 유다 지파의 조상으로 만든 위대한 어머니로 각인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보아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답게 돈을 기준으로 일을 결정하지 않았고, 일을 진행하는데 꼼수나 변칙을 쓰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모든 것을 정당하고, 빈틈없이 처리했다. 이러한 보아스의 모습은 본받아야 할 점이다.

보아스는 큰 그림에서 볼 때, 예수님의 그림자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기업을 되찾아주시기 위해서 직접 내려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셨다.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찬 43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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