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서원이란 무엇인가?

열려라 에바다 2024. 4. 19. 08:33

서원이란 무엇인가?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 갈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행 18:18) 


1. 시작하는 말 

한국교회는 한동안 부흥의 황금기를 맞이하여 교회가 급성장하는 시절이 있었다. 성령운동이라 해서 교회마다 부흥의 불길이 타오를 때가 있었을 뿐 아니라, 수려한 산기슭 마다 세워진 기도원에서 열리는 부흥회가 끊일 줄을 모르고 대성황을 이루는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소위 부흥사들이나 은혜를 충만히 받았다는 열성 있는 성도들에게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말 중에 하나가 ‘서원’이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부흥사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은 사명자가 되거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께 ‘서원’을 해야 한다고 외치며 가르쳤다. 그런가 하면 어떤 성도들은 자기가 능력 있는 종이 되겠다고 하나님께 ‘서원’을 했기 때문에 다른 직업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기도 했다. 그 뿐 아니라 어떤 이는 자기 큰 아들을 주의 종으로 헌신하기로 하나님께 ‘서원’을 하고 부흥강사의 축복기도까지 받았기 때문에 그 아들은 반드시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고집하기도 했다. 
웅장한 교회당 건물은 성도들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한지 오래다. 그리고 소위 능력의 종들이 무분별하게 세워놓은 기도원들도 점점 폐허가 되어 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역할 곳이 없는 목사들은 뚜렷한 직업도 없이 어렵게 살아가는데, 이들이 수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 중에는 너도 나도 능력 있는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하고 신학교를 거쳐 목사가 된 자들도 많이 있다. 이들은 성경적으로 잘못된 ‘서원’에 의한 피해자들로 여겨진다. 
과연 성경적인 올바른 ‘서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때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라도 반드시 정리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 서원의 의미   

일반적으로는 ‘서원’이라는 말을 사전적 의미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신불에게 맹세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함’이라고 한다. 또는 ‘기독교에서 구약시대의 풍습으로 여호와에게 어떤 은혜를 빌고 그 보답으로 헌물을 맹세하는 일’(동아 새국어사전)이라고 설명한다. 
구약에서는 ‘서원’이라는 말이 여러 가지 상황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신약에서도 예수님과 사도들이 유사한 뜻을 가지고 있는 용어들로 사용한 바 있다. 그런데 그 의미는 사전에서 밝힌 의미처럼 단순하고 명쾌하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성경적으로는 물론 신학적으로도 정확히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 있다. 따라서 일반 대중들이나 성도들도 단순하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로 인해 성도들의 신앙적 혼란이 야기될 뿐 아니라 신앙생활의 탈선까지 가져오는 불행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따라서 ‘서원’이라는 말의 의미를 성경적으로 정확히 규명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많은 용어들은 단순하게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성경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뜻을 전달하는 언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1) 구약에서의 의미 


구약에서는 ‘서원’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네데르(rd,n)’라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께 대한 ‘약속’ 또는 ‘맹세’, ‘서원’ 등의 뜻이다. 이러한 견해는 서원에 대한 본질적 의미를 다분히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곧 ‘서원’이라는 말이 본질적으로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하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의지결단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싸르(rS;a)’라고도 하는데, 이는 ‘의무’ 또는 ‘맹세’, ‘속박’ 등의 뜻이다. 이러한 견해는 서원에 대한 결과적 의미가 다분히 담겨진 것으로 이해된다. 곧 ‘서원’이라는 말이 결과적으로 성도가 하나님 앞에 서원한 후에 자기 스스로 반드시 지켜 이행해야 한다고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책임감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누구나 서원이나 맹세를 한 후에는 이를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2) 신약에서의 의미 


신약에서는 ‘서원’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유케(eujchv)’라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께 대한 ‘맹세’, 또는 ‘소원’, ‘기도’ 등의 뜻이다. 이러한 견해는 서원에 대한 종합적 의미가 다분히 담겨진 것으로 이해된다. 곧 ‘서원’이라는 말이 어떠한 일을 인간 스스로의 의지적 노력으로 이루겠다는 각오를 비롯해 하나님 앞에 이루어주기를 바라는 혼합적인 마음이 표현된 것으로 여겨진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적 본능과 그에 따른 종교적 심리가 혼합되어 표현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옵뉘오(ojmnuv)’라고도 하는데, 이는 동사로서 ‘맹세하다’ 또는 ‘선서하다’, ‘약속하다’ 등의 뜻이다. 이러한 견해는 서원에 대한 본질적 의미가 다분히 담겨진 것으로 이해된다. 곧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하겠다고 다짐하는 의지결단에 대한 본질적 표현으로 여겨진다. 신앙인은 누구나 자기가 믿는 하나님께 충성하며 살 것을 굳게 다짐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3. 서원의 정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서원’이라는 말의 의미가 단순하거나 분명치 않고 모호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온갖 오해와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사전적인 일반적 견해는 물론, 무속 및 원시종교의 견해 역시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종교나 기독교의 견해 역시 다를 바 없다. 
일반적인 ‘서원’에 대한 잘못된 견해는 행운을 바라는 요행심리를 조장할 뿐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경우에 있어서도 맹신에 의한 기복신앙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 결과 성도들은 많은 갈등으로 인해 신앙생활에 허다한 부작용이 야기될 뿐만 아니라, 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서원’이라는 말의 올바른 정의를 성경적으로 규명하는 일은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제이다.  

1) 일반적인 정의 


일반적으로 ‘서원’이란 ‘신분이 낮은 자가 신분이 높은 자 앞에서 어떻게 할 것을 맹세 또는 소원함’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국가나 인간사회에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백성이 아무런 조건 없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가 하면 상대에게 어떤 조건을 내세우며 그에 대한 보답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맹세하는 경우도 있다. 
종교적으로는 무능한 인간 자신이 섬기는 신에게 자기의 욕망대로 이루어주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마음을 다해 경외하며 섬길 것을 맹세하는 맹신적 행위를 한다. 곧 어떤 조건을 전제로 그 조건이 달성되면 그에 대한 보답으로 어떻게 이행할 것을 맹세하는 것이다. 이는 무속을 비롯한 원시종교의 신앙행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종교나 소위 기독교 안에서도 예외 없이 행해지고 있는 현상이다.  

2) 성경적인 정의 


성경적으로 ‘서원’이란 간단히 정의하면 ‘창세전에 작정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범사에 대한 성도의 긍정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맹세나 서원을 하는 경우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방법이 아닌 원리적으로 정리하면 앞서와 같이 간단히 요약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일반적인 견해와 본질적으로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일반적인 정의가 인간 본위의 견해라면, 성경적인 견해는 하나님 본위의 견해이다. 곧 전자는 인간이 스스로의 욕망에 의한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맹세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후자는 인간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맹세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기독교 세계관에 의한 성경적인 견해로서 가장 올바른 신앙적 정의로 이해된다. 

4. 서원의 근거 

성경적인 ‘서원’은 분명한 근거에 바탕을 두고 실행되는 신앙적 산물이다. 그런데 그 근거는 근원적인 것과 직접적인 것으로 크게 구분이 된다. 먼저 근원적인 근거는 여호와 하나님의 작정을 말하고, 다음 직접적인 근거는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말한다. 이 두 근거는 여호와 하나님의 단독적인 사역의 결과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전자는 여호와의 기쁘신 뜻에 따르는 창세전의 사역이다. 그리고 후자는 여호와의 작정에 의한 언약에 따르는 계시시대 사역이다.  
따라서 ‘서원’의 두 근거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근원적인 근거에 의해 직접적인 근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곧 여호와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에 따라 여호와의 언약이 인간에게 세워지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이에 언약백성인 성도는 두 근거에 의해 ‘서원’이라는 신앙적 행위를 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작정하신 뜻에 따라 언약하신 말씀을 근거해서 그 언약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며 맹세하게 된다는 것이다. 

1) 여호와의 작정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작정하신 뜻에 따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며 만사를 섭리하시고 심판하신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작정하신 섭리에 따라 모든 것이 창조되고,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만사만물이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말한다. 이는 성경이 분명하게 밝히는 탁월한 기독교 세계관의 원리이다. 
따라서 성경적인 ‘서원’은 기독교 세계관의 원리에 부합하도록 설명이 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기독교 세계관의 기초가 되는 여호와 하나님의 작정이 ‘서원’의 근원적인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만물이 여호와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에 따라 창조된 피조물이라면, 만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에 따라 섭리하신 역사적 산물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창세전 작정이 서원의 근원적인 근거가 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원’이 여호와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원을 담고 있는 것 역시 그러한 것이다. 

2) 여호와의 언약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작정하신 뜻에 따라 언약을 세우시고 언약대로 만사를 섭리하신다. 성경에 계시된 인류 초기의 역사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바로 언약대로 이루어주신 섭리의 결과이다. 그리고 창세 이후 지금까지의 모든 인류역사는 물론, 장차 이루어질 미래사 역시 바로 그러하다. 이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에 의해 언약하신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계시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성경적인 ‘서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원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기독교 역사관의 기초가 되는 여호와의 언약이 ‘서원’의 직접적인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 계시된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작정에 의한 언약을 이루어주신 섭리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이 ‘서원’의 직접적인 근거가 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원’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원을 담고 있는 것 역시 그러한 것이다.  

 

5. 서원의 특성 
   
일반적인 ‘서원’은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인 경우에 있어서 모두 주관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곧 ‘서원’이 인간 스스로의 욕구에 의한 것이므로 주관성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가하면 그 ‘서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보장을 기대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 욕구에 의해 소원한 바가 이루어질 수 없는 비효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성경적인 ‘서원’은 일반적인 것과는 아주 다른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피동성이고, 다른 하나는 효능성이다. 일반적인 ‘서원’이 주관성과 비효능성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성경적인 ‘서원’은 피동성과 효능성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서원’이 무능한 인간 중심이라면, 성경적인 ‘서원’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경적인 ‘서원’의 특성인 피동성과 효능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 피동성 

‘서원’의 피동성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서원을 하도록 섭리하신다는 의미이다. 비록 ‘서원’만이 아니라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만사 역시 그러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작정하신 뜻에 따라 모든 만사를 주관하시며 섭리해 가신다. 그러므로 온 세상 선악 간의 모든 일들이 인간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있을 수 없다. 이는 모든 만사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피동적 결과로서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에 따라 인류의 조상 및 이스라엘 열조와 언약백성에게 언약을 세우셨다. 곧 인류역사를 비롯해 이스라엘역사 또는 신약시대역사를 통해 이루어주실 것에 대해 언약을 세우신 것이다. 그리고 언약백성의 마음에 언약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섭리하셨다. 뿐만 아니라 그들로 그 소원을 따라 서원을 하도록 섭리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서원’은 인간의 욕망에 의한 자율능력의 소산이 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여호와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에 의한 주권적 섭리에 따른 피동적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경적인 ‘서원’의 특성 중 하나가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에 따르는 피동성이다.  

2) 효능성 

‘서원’의 효능성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권적 능력에 의해 성도의 서원을 반드시 이루어주신다는 의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천하 범사를 작정하신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섭리하신다. 따라서 정하신 뜻을 따라 택한 백성이 서원한 것 역시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것이다. 이는 소원과 맹세를 겸한 인간의 ‘서원’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곧 성경적인 올바른 ‘서원’내용과 여호와의 언약내용이 동일하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위해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도록 섭리하신다. 뿐만 아니라 택한 백성으로 소원과 함께 맹세를 곁들여 서원하도록 섭리하신다. 그리고 택한 백성이 ‘서원’한 대로 빈틈없이 반드시 이루어주신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언약하심으로 소원을 갖게 하신다. 그리고 ‘서원’도 하게 하셔서 그 ‘서원’이 이루어지도록 섭리하신다. 결국 성경적인 서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능력에 의해 서원도 하게 하시고 그 서원을 이루어주시기도 하신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성경적인 ‘서원’의 특성 중 하나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의한 효능성이다.    

6. 복음적 의미 

앞서 ‘서원’에 대한 몇 가지 주제들을 성경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이에 대한 복음적 의미를 해석학적 측면에서 성경적으로 분명히 규명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이는 서두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서원’이라는 말이 성경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풀어야할 과제이다. 
사회적으로 생활 속에서 특별히 이웃 간에 서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가하면 가족 간에 있어서 아내가 남편에게, 또는 자식이 아비에게 서원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는 택한 백성이 하나님 앞에 서원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서원’들은 옛 언약의 서원과 새 언약의 서원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따라서 둘로 구분된 이들 ‘서원’의 내용과 그 의미를 알아보면서 그에 따르는 복음적 의미를 정확히 밝혀보기로 한다.  

1) 옛 언약의 서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모세를 통해 어떠한 서원이라도 반드시 이행하라고 명하셨다. 그리고 그 서원을 이행치 아니할 경우는 죄가 된다고 하셨다(레 27:1~ 13, 민 6:, 30:, 신 23:21~23). 곧 옛 언약에 따른 율법적인 서원은 반드시 이행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는 죄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옛 언약의 서원이 새 언약의 서원에 의해 완전히 이루어질 것에 대한 예표이다. 

구약에는 주로 시편에 언약자손의 서원내용들이 다양하게 계시되어 있다. 특히 언약백성의 간구와 기도 중에 서원이 곁들여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에 따른 언약백성의 소원을 이루어주시게 될 때에 언약의 말씀을 지키겠다고 맹세하며 서원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따른 소원을 이루어주셨을 때에 감사하며 찬송할 것을 맹세하며 서원하는 경우가 있다. 곧 언약이 아직 이루어지지 아니하였을 때와 이미 일부 언약이 이루어졌을 때에 맹세하며 서원한 것이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을 반드시 이루어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 새 언약의 서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원에 따르는 맹세를 무엇으로도 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하지 아니한 것을 육신의 소욕에 따라 맹세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명하시기를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말하라며,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난다고 말씀하셨다(마 5:34 ~36). 야고보 사도 역시 열두 지파에게 동일한 교훈을 한 바 있다(약 5:12).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언약의 말씀에 준해 옳은지, 그른지를 분별하여 말하라는 것이다. 곧 언약의 말씀에 준해 옳고 그름을 판별하여 말하라는 의미이다.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시기 앞서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서원하며 간구한 사실이 있다(요 17:). 이를 요약하면, 그 동안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의 일부가 예수님을 통해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자세히 밝혀주신다. 그러면서 아직 이루어지지 아니한 언약도 이루어주실 것을 확신하며 간구한다. 바울 사도가 서원이 있어 머리를 깍은 사실 역시 동일한 원리에서다(행 18:18). 
결국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예수께서 자신의 서원을 통해 구약시대 옛 언약에 따른 택한 백성의 서원을 완전히 이루어주신다. 곧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오신 예수께서 택한 백성을 대신하여 서원을 완전히 이루어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오신 예수님의 서원내용에 담겨 있는 복음적 의미이다. 

7. 끝 맺는 말 

‘서원’은 성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배제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믿음의 행위 중에 하나이다. 따라서 성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서원’이 반드시 믿음의 행위로 나타나게 된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따라 하나님께 서원하게 된다. 
첫째, 여호와께서 언약의 말씀을 깨닫게 하여 마음에 소원을 주신다. 
둘째, 여호와의 언약은 변함없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주신다. 
셋째, 새 언약의 말씀을 지켜 준행하기를 간구하며 서원하게 하신다. 
넷째, 지체인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서원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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