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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윤복희 (15) 1976년, 후두암과 함께 성경책을 선물하신 주님

열려라 에바다 2012. 2. 20. 21:35

[역경의 열매] 윤복희 (15) 1976년, 후두암과 함께 성경책을 선물하신 주님


1976년. 저의 인생이 분수령을 맞는 연도입니다. 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연재를 시작할 때 잠깐 밝혔지만, 제가 예수님을 만나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그해 저는 미국에서 일시 귀국해야만 했습니다. 그 전 해 한국에서 진 빚을 갚아야만 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오빠 집을 마련하기 위해 선불을 받고 1년 후 공연을 계약했던 것이죠.

저는 귀국하자마자 공연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겁니다.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가 진찰을 받았습니다. 진찰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바쁜 일정으로 돌볼 겨를이 없었던 제 후두에 혹이 자라고 있다는 겁니다. 거기다 의사의 말은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수술을 해도 더는 노래를 할 수 없습니다. 목젖을 떼내야 합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맑은 하늘의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입천장과 후두 사이 목젖으로 소리가 나오는데 목젖을 떼낸다면 가수로서의 생명은 끝나는 것입니다. 저는 겨우 흉내만 내서 대한극장 공연을 마쳤습니다. 지방의 네 곳에서도 노래는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시늉만 냈습니다. 오빠는 무대에서 울먹이면서 말했습니다. “내 동생이 후두암에 걸렸습니다. 이번이 고별 공연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슬프디 슬픈 한 편의 신파극이었습니다. 관객들은 너도 나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노래하지 않고 얼굴만 보여줘도 좋으니 무대에서 떠나지 말라고 흐느끼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지금에서야 주님이 순간순간 저를 부르고 계셨다는 것을 압니다. 일찌감치 고아가 돼 떠돌이별로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한없이 크신 사랑이 언제나 저와 함께했음을 깨닫습니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중에 항상 주님이 도움과 보살핌의 손길을 뻗치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때는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신호를 여러 번 보내셨지만 저는 몰랐습니다. 가끔 누군가 저를 돌보고 있다고 막연하게 느낄 때도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외로움과 괴로움의 구렁텅이에 사랑의 빛을 보내줬는데도 제 마음의 사악함이 그 빛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 가지 이야기를 할게요. 그 전 해, 그러니까 75년 제가 일시 귀국해 MBC 초청공연을 할 때 사회를 본 사람이 후라이보이 곽규석씨였습니다. 그분은 그때 제 얼굴에서 짙은 그늘을 본 것 같아요. 공연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에 갔을 때 그분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분은 선물이라며 포장지에 싸인 뭔가를 주셨습니다. 열어보니 성경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죠? 미국에서 한 번도 펴보지 않았던 그 성경책을 1년 뒤 한국으로 오면서 여행 가방에 넣어가지고 왔습니다. 결국 그 성경책이 내 인생을 결정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다시 하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전주 공연을 갔을 때입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큰오빠가 오셨습니다. 앞에서 충청도 안골 이야기를 하면서 밝혔던 윤영기라는 배다른 오빠죠. 큰오빠는 목사님이 되셨고 배다른 언니도 전도사님이 되어 하나님의 종으로서 열심히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 비빔밥집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숟가락을 막 들려는데 큰오빠 윤영기 목사님이 불쑥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고 밥 먹자.”

저와 항기 오빠는 당황했습니다. 식사 전에 기도한다는 건 생전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저는 기도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마음 깊숙이 깔려 있던 갈급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요, 오빠.”

저는 비스듬하게 앉아 있는 항기 오빠를 쿡쿡 찔러 똑바로 앉도록 했습니다. 오빠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