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이웃들을 위하여 좀만 남겨주세요 = 신명기24;17-22(240512) 한상원 목사
PW : 믿음 BIW : 남겨두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베풀고 섬기며 사는 것이다.
어느 만원 버스안에서
만원버스에서 갑자기 자리가 나자 용감한 아줌마가 빈자리 앞에 있던 여학생을 과감히 밀치고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어이가 없던 여학생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습니다.
그러자 아줌마께서 하시는 말씀, “이 지집애가 어디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봐?”
그러자 그 여학생이 무엇이라 했을까요?
“그럼 아줌마는 눈 네모나게 뜰 수 있어요?”
요즘 애들은 이렇게 삽니다. 우리들이 옛날에 살던 것처럼 생각하면 요즘 커오는 애들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서로서로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좋은 말을 해야 좋은 반응이 돌아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좋지 않은 감정을 보이면 역시 좋지 않은 감정으로 반응합니다.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도 곱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좋은 말을 합시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좋은 반응을 보여줍시다.
P4
지구촌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는 다 하나님의 백성이다.
모든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다.
노아의 방주에서 살아난 8명의 후손들이다.
이들이 온 지구촌으로 나뉘어서 지구촌 인류를 만들어 낸다.
이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기 위하여 특별히 선별하신 이스라엘민족, 유태인이 있다.
유태인들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와 계획에 의해서 선별해 주시고 새워주신 민족이다.
다른 민족은 유태인이 아니기 때문에 소위 이방인이라고 부른다.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때 유태인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까지도 포함되어진다.
또한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시작되는 신약시대,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시작되는 성령의 시대, 교회시대에는 유태인이나 모든 이방인이나 구별이 없다.
단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백성이냐? 믿지 않는 불신 백성이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농사하는 백성들에게 이른 비 늦은 비를 내려주실 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골라서 내리지 않는다.
그 지역에 있는 유태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모든 인류에게 평등하게 이른 비, 늦은 비를 내려주신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축복과 계시는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부여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특별한 무리만 골라서 역사하시지 않는다.
모든 인류에게 동일하게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신다.
이런 것을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라고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너무 배가 고프고 굶주려서 굶어 죽거나 너무 추워서 얼어 죽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모든 인류가 잘 먹고 잘 살다가 잘 죽는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웰빙(well-being)하다가 웰다잉(well-dying)하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류들 중에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백성들도 있지만,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도 있다.
루시퍼 천사장, 사탄을 쫓아가고 섬기고 경배하면서 하나님을 조롱하고 핍박하고 대적하는 무리들도 수없이 많다.
이들 중에는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고, 예수님의 자리를 빼앗고, 성령님의 자리를 빼앗고,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는 수 많은 이단 세력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반 은총은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적용된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사랑하고 은혜 주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길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회적인 약자들을 위하여 곡식이나 과일을 약간씩 남겨두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남겨둘 수가 없다.
왜냐하면
① 내가 애쓰게 일하면서 농사한 곡식과 과일이다.
내가 땀과 피를 흘리면서 열심히 농사한 것들인데 왜 내가 남겨두어야 한단 말인가?
② 내가 애쓰게 농사한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거두고 따와야 우리 식구들이 먹고 살 수 있다.
다 거두고 따와도 1년 동안 먹고 살기에 부족하다.
③ 나그네들과 고아들과 과부들에게 이런 것들을 남겨 두었다가 그들의 양식으로 삼게 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빈둥빈둥 거리면서 일하지 않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노숙자들에게 밥을 주는 행위는 그들로 하여금 더욱 더 게으르고 사회악을 만들어내는 주범이 되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노숙자들에게 밤을 주는 곳에 가보면 게으른 사람들 천지다.
모든 노숙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노숙자들은 대낮인데도 술 먹고 싸우거나 드러누워 있다.
술 먹고 토하지를 않나, 온갖 더러운 악취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브렌드가 상당히 높아져서 수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오는데 이 노숙자들로 인해서 나라 망신시키는 일들이 너무 많다.
이들은 좀처럼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도 무슨 일이든 열심히 일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지 않나?
왜 공짜를 바라냐?
잠언 12;27에서는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라고 말씀하신다.
잠언 19:24에서는 “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게으른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되지 않겠나?
D4
① 가난한 이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17절에서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라고 말씀하신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는 전형적인 가난한 사람의 모습이다.
나그네는 마땅히 있어야 할 집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이고, 고아는 마땅히 있어야 할 부모가 없어서 가난한 사람이고, 과부는 마땅히 있어야 할 남편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재판하면서 가난한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억울하게 판정을 내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가난한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로 함부로 막 대하거나 공갈, 협박하거나 죄를 무겁게 적용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막 대하면서 험하게 대우하면 이들이 원성으로 하소연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하늘의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험악하게 판정을 내린 재판관들에게 징계하시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은혜와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사야서 61:1-2의 말씀에 보면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가난한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가난한 자들에게 은혜와 긍률과 자비를 베풀어 주심으로 구원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으로 구원을 전해주시는 아름다운 소식, 복된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다.
② 지난 과거를 잊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18절에서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제나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했던 과거와 하나님의 권능으로 출애굽하여 히브리민족 대이동하는 과거와 광야에서 40년 동안 유리 방랑하며 살았던 과거를 절대로 잊지 말고 생생하게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식당도 몇 년째, 아니면 몇 대째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이라고 하면서 광고한다.
지난 과거는 역사요 전통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나라와 민족, 회사, 교회, 식당, 학교, 기관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뿌리가 깊게 박힌 나무는 수많은 비바람과 폭풍과 태풍을 만났을 때, 이리저리 흔들일지언정 뿌리가 뽑히면서 무너지지 않는다.
오랜 과거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나라와 민족과 회사와 교회와 식당과 학교와 기관은 비록 힘들고 어려울 때도 수없이 많지만, 그래도 굿굿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견디어 내면서 결국에는 이겨낸다.
5000년 역사를 지닌 우리 한민족은 주변국들의 수없는 침입을 받으면서도 그 외새들을 물리치고 한민족의 문화와 한반도를 지켜낸 역사와 전통을 지닌 민족이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 특별히 선택함을 받은 유태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월절 절기를 지키고 민족의 지난 과거를 되새김질하면서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나라 자유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민족이 지닌 역사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③ 폐아법을 제정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19-22절에서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폐아법이라는 특별한 제도를 제정해 주시면서 모든 인류가 굶주림에서 해방되도록 하신다.
폐아법은 하나님께서 직접 정해주신 구휼법이다.
폐아법이란 추수할 때 떨어진 곡식은 다시 줍지 않는 것이다.
폐아법은 자신의 밭 모서리에 있는 곡식은 거두지 않는 것이다.
폐아법은 잊어버린 곡식단을 다시 찾지 않는 것이다.
폐아법은 올리브, 포도, 무화과, 뽕나무, 석류 등등 과일을 따다가 남은 것은 다시 따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밭담을 넘어간 과일나무 열매는 따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이웃들 곧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서 곡식이나 과일을 남겨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폐아법을 제정해 주시는 것일까?
폐아법을 제정하시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일까?
폐아법의 목적은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들에게 삶을 터전을 보장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구휼법이다.
ⓐ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인정하신다.
온전한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의 기업을 가지고 있거나 자신의 집이 있거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가진 사람들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나 다 하나님의 백성, 언약 백성으로 인정하시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서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 폐아법을 제정해 주시는 것이다.
ⓑ 단 한 사람도 굶주림으로 굶어 죽는 참극을 보고 싶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단 한 사람도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굶어 죽는 것, 추위에 얼어 죽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
자신의 든든한 기업을 가진 이들로 하여금 주변에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볼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살도록 하기 위하여 폐아법을 제정해 주시는 것이다.
폐아법으로 나그네, 고아, 과부들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일반 은총을 베풀면서 살도록 말씀하신다.
ⓒ 모든 양식 곧 곡식, 과일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하나님은 아무도 굶주리지 않고 먹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계신다.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얻어진 소득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농사가 잘되도록 하기 위하여 적당한 때를 따라서 이른 비, 늦은 비와 바람과 햇빛과 영양분을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농사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일할 수 있도록 직장, 일터, 생업 터전을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들이 어떻게 일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들의 일터도, 생업 터전도, 직장도 모두가 다 하나님의 소유라고 고백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농사할 수 있는 땅도 주시고, 일할 수 있는 건강도 주시고, 일할 수 있는 처지와 여건도 마련해 주셔서 농사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농사가 잘되도록 기후를 비롯한 자연 만물도 주관해 주셨기 때문에 농사하는 것이다.
농사할 때 비만 비만 내리면 농사할 수 있겠는가?
농사할 때 햇빛이 쨍쨍 내리쬐지 않고 계속 비만 온다면 곡식이나 과일은 수정하지 못하고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농사할 때 비는 내리지 않고 계속 햇빛만 쨍쨍 내리쬔다면 농사할 수 있겠는가?
만약에 비는 내리지 않고 계속 햇빛만 쨍쨍 내리쬔다면 곧바로 가뭄, 기근이 찾아온다.
적당하게 비도 내려야 하고, 적당하게 햇빛도 쨍쨍 내리쪄야 하고 낮과 밤의 시간도 있어야 하고 구름도 있어야 식물들도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잘 익고 맛난 곡식과 과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을 우리들에게 일반 은총으로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선물이다.
이 선물을 우리들만 누리면서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게을러서 빈둥빈둥거리면서 싸우고 놈팽이짓 하는 노숙자들이 아니라, 정말로 어려운 이웃들이 널려 퍼져 있다.
이들을 돌아보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이다.
폐아법의 실제 모습은 모압 여인 룻의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다 지파의 베들레헴에서 거주하던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유다 땅에 불어닥친 기근을 피하여 모압 땅으로 이주한다.
모압 땅에 정착하여 10년 사이에 말론과 기룐이 모압 여인들과 혼인하게 된다.
하지만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세상을 먼저 하직하게 된다.
나오미는 청상과부가 된 오르바와 룻을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오던 중에 오르바는 모국인 모압으로 돌아간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온다.
이들이 10년 전 모압 땅으로 이주하기 전에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갔기 때문에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와도 마땅하게 거처할 집도, 땅도 없는 빈털터리이다.
때마침 보리 추수할 때였기 때문에 룻은 이삭이라도 주어서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시어머니 나오미의 허락을 받고 이삭을 주우러 가게 된다.
공교롭게도 룻이 이삭을 주으러 간 밭은 나오미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이었다.
밭 주인인 보아스는 모압 땅에서 시어머니를 따라온 룻이란 사실을 알게 되어 일꾼들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룻기2;15-16절에서 보면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라고 부탁한다.
보아스는 일꾼들에게 룻이 이삭을 충분히 주울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하신다.
룻은 보리 한 에바 분량의 이삭을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 에바는 22.7리터로 ‘한 말 한 되’ 정도 되는 분량이다.
이것으로 나오미와 룻은 임시로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바로 폐아법의 원리이다.
④ 축복으로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
신명기 24;13에 보면 “그가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형태로든 이모양 저모양으로 배려와 나눔과 섬김을 받은 이들은 그들을 위하여 진심으로 축복하는 것이다.
룻이 이삭을 줍고 돌아왔을 때, 나오미가 자초지종을 듣고는 룻기 2:20에서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라고 축복한다.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은 가난한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며 축복 기도하는 것이다.
주변에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을 배려하고 섬기고 베푼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복을 주신다.
개척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저도 주변에서 이모양 저모양으로 크고 작은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어떤 모습으로 도움을 주었던지간에 도움을 준 이들을 위하여 진심으로 축복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베풀어달라고 기도한다.
결국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도 주변에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고 그들을 위하여 무언가를 베풀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신앙인들은 아주 작은 일이라도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저희들도 무엇이 되었든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라도 나누고 베풀고 배려하면서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크고 대단한 것이면 더 좋겠지만, 우리들의 형편으로는 그럴 수 없는 형편이기에 그럴 수는 없지만, 우리들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무언가 하나라도 나누고 베풀고 섬기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L4 & B4
농사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농사도 내가 하려고 하는 의도, 계획, 생각대로 잘되지 않는다.
농부가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 다 잘 되었다면 부자가 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저는 전북 진안 성수에 있는 작은 밭에서 나무수국 농장을 만들고 있는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밭에 우리가 먹기 위해서 여러 가지 채소들도 심어서 가꾸었는데도 그것도 마음먹은 대로 잘되지 않는다.
농사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와 지켜주심과 도와주심으로 되는 것이지 본인의 의도대로 잘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농부는 애쓰게 농사하여 얻은 곡식 한 톨이 아깝고, 열매 하나하나가 아깝고 귀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농부들에게 다 거두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 가난한 이웃들을 위하여 남겨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힘들게 농사한 수확물을 다 거두지 말고 남겨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너무나 힘들고 어렵게 살았던 과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18절에서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라고 말씀하신다.
22절에서도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당시 중동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을 형성하고 있는 애굽제국에서 430년 동안 처절하게 종살이하면서 살았던 아픈 과거가 있다.
너무나 처절하게 종살이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여 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면서 어서 속히 구원하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기를 학수고대하며 살았던 아픈 과거가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걸출한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제국에 온갖 재난을 내리면서 구원하여 출애굽을 시키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 방랑하다가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아픈 과거를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픈 과거를 잊어버리면 오늘의 안락한, 평안함, 자유의 삶이 줄 수 있는 값어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개구리가 올챙이적 시절을 모른다.”라는 말이 있듯이 과거가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에서의 나그네 삶, 종살이하면서 살았던 과거의 삶, 역경의 삶을 잊어버리지 말고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구원해 주셨음을 잊지 말고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래야만 이웃들의 어려운 처지를 헤아리면서 배려해 주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5000년 역사를 지닌 우리 한민족은 지난 5000년 동안 중국의 참상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끝없이 펼쳐진 왜구들의 침노, 임진왜란, 일제강점기를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소련과 중국의 협력을 받으면서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과거 굶주림에 허덕이면서 살았던 과거를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먹을 것, 입을 것이 넘쳐나는 지금의 부유함, 지금의 세계 10대 선진국이 되어서 전 지구촌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픈 과거에 자식들에게만은 굶주림을 물려주지 말자. 나라 잃은 슬픔을 물려주지 말자는 선진들의 뼈아픈 고통의 삶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잊어 버리지 말고 생생하게 기억해야만 우리들 주변에 살고 있는 어려운 이웃들, 빈민국의 국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6:38에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잠언서 11:24-25에 보면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잠언서 28:27에 보면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잠언서 14:31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들 주변에 게으르고 놈팽이가 되는 노숙자가 아니라 정말로 가난하고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 근근히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 많다.
이들에게 미력하나마 조금이라도 주님의 사랑을 베풀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들이 베푼 아주 작은 사랑을 통해서 그들은 우리들을 위해서 몇 갑 절로 축복 기도해 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드리는 축복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축복으로 채워주실 것이다.
결국은 그들을 위해서 남겨두었다가 주님의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축복을 받는 길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는 야고보서 2;15-22절에서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라고 탄식하면서 말씀하신다.
그러니 우리들은 조금씩이라도 남겨두었다가 주님의 사랑을 나누고 베풀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들이 축복을 받는 씨앗이 된다.
축복은 남겨두는 것이다. 축복은 나누고 베푸는 것이다.
축복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일시적으로 맡겨주신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이제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하여 나누고 베풀고 섬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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