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주의
인본주의(humanism)은 인간 존재와 인류 사회의 존엄을 중시하는 인간중심적 사상을 뜻하기도 하고, 이러한 사상에 근거하여 인간을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여겨야 한다는 정치 이념을 뜻하기도 한다. 인문주의, 인간주의, 인도주의, 휴머니즘이라고 하기도 한다. 매우 오래되고 넓은 사상이라 윤리학, 역사학, 정치학에서의 의미가 다른데 각 전공자들의 추가 바람. 이 문서는 정치철학 위주다.
라틴어의 후마니타스라는 단어 자체는 고대부터 존재했다. 인간성을 의미하는 단어로 키케로가 인간성을 연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당시 인간성 개념은 현대의 사상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렵고 르네상스 시기 인본주의가 처음 등장했다고 보면 무방하다.
르네상스 시기 신본주의에 반대하며 등장하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을 '후마니오라'라고 부르고 여기서 '보다 인간다움'을 뜻하는 용어인 '후마니오르'가 생겼는데 이것이 휴머니즘의 어원이 되었다.
17세기에는 합리적 과학주의와 결부되였고 과학주의와 인본주의가 결합해 18세기의 계몽주의를 만들었다. 혁명 이후 근대는 인본주의의 시대로 불릴 만큼 사상으로서 영향력이 커졌다.
현재도 인본주의는 주로 무신론과 결합되며 유물론과 결합하는 경우도 많다. 등장 배경을 보면 당연하지만 보통 과학주의 입장을 취한다. 물론 사상으로서 인본주의는 매우 포괄적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
현대의 좌우익이 등장하기 전부터 있던 사상인데 다른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끼쳤다. 사회주의가 인본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칼 마르크스를 인본주의자로 구분하기도 한다. 물론 사회주의와 인본주의는 다른 이념이다. 하지만 많은 인본주의자가 인간이 최우선 가치임에 입각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이다. 자유주의의 인권 개념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념으로서의 인본주의는 좌익 이데올로기로 분류되고 사회주의와 결합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익과 결합되기도 하는데 역사적으로 우익과 결합된 가장 유명한 사례가 인간의 정의를 좁게 내려 우생학에 이용된 흑역사다. 사실 이 경우 인본주의가 제대로 이해, 적용되었다고 보기가 어렵다.
19세기 이후 실존주의가 인본주의의 후계자를 자처했다.
최근 휴머니즘은 현대사회의 인간의 소외 문제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와 결합할 때는 자본주의에서의 인간의 소외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자 루이 알튀세르는 휴머니즘을 비판했다. 알튀세르 생전 서구에서는 휴머니즘적 맑스주의가 대세였다. 왜냐하면 당시 서구 맑스주의자는 비인간적 맑스주의인 소련의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머니즘적 맑스주의자는 인간의 소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런데 알튀세르는 인간이라는 모호한 말로 자본가와 노동자를 하나로 묶는 이데올로기로서 휴머니즘이 기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휴머니즘은 사회변혁에 도움이 되기보다 맑스주의자에게 스스로 인간성을 구현하고 있다는 자부심만을 느끼게 한다. 알튀세르는 공산당선언 이전 마르크스를 '청년 마르크스'라고 부르며 휴머니즘은 청년 마르크스에게만 해당되는 사상이라고 했다.
휴머니즘의 어원부터가 '보다 인간다움'이기 때문에 우생학에 이용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인간의 현재 상태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더 인간다움을 추구해서 우생학과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푸코는 인간이 불변의 어떤 실체가 아니라 근대에 형성된 역사적 개념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사유의 출발점을 인간으로 삼는 인간중심의 인본주의는 근대의 인식론일 뿐이라는 것이다.
신본주의쪽 개념, 특히 서구 기독교쪽에서는 인간을 죄인 혹은 불완전한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에 당연히 인간 중심적인 이 사상 자체가 마음에 들 리가 없는 상황이다. 심한 경우 그냥 인본주의라면 학을 떼는 경우도 있는 상황이다. 다만 서구의 신학 사조들 중 인본주의(정확히는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과 같은 갈래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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