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
어떤 심리학자는 사람은 모든 인간관계의 틀을 가정안에서 배우게 된다고 하였다. 사회에 나가서 맺게 되는 동료, 친구와의 관계는 형제, 자매 관계에서 그 틀이 만들어 진다는것이며 선배, 상사에 대한 관계는 부모와의 관계가 그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결혼후의 부부관계는 아버지 어머니의 관계를 보고 배운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정 안에서의 모든 인간관계는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재은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 교수-
1.인간관계의 중요성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은 사람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이와 같은 사실은 증명할 필요조차 없는 중요한 진리이다. 옛날에 「늑대 소년」이야기를 쓴 책이 세계 여기 저기서 출판된 일이 있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에서 나온 「늑대 소년」책이 너무 유명하다. 그 내용의 요점만 말한다면, 젖먹이때 산에 버려진 아이를 늑대가 물고가서 잡아먹지 않고 늑대 젖을 먹여서 키운 아이를 몇 년이 지난 후에 산에서 발견해서 인간 세상에 데려와 키웠다는 이야기다. 사람답게 키우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아이는 결코 사람답게 되지 못했다. 그 아이는 늑대처럼 행동하고 늑대처럼 먹고 늑대처럼 울부짖고 하는 행동을 결코 고치지 못했다고 한다.
사람의 말을 가르쳐 주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도 그 수고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는 세계 도처에서 수집되어 소개된 것이 있다. 그러니까 늑대 소굴에서 늑대와의 관계 속에서 살게 되면 늑대처럼 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사람과 함께 살되 어떤 사람과 어떤 식으로 사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사람됨뿐 아니고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최초의 만남은 부모와 이루어진다. 최초의 만남은 적어도 50년간 지속된다. 왜냐하면 사람은 나이 50쯤 되면 부모와 헤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긴 만남은 형제다. 형제는 6,70년간 이어진다. 거의 비슷한 나이가 되기까지 산다면 그렇다. 그 다음이 부부간이다.
요즘은 이혼율이 높아서 옛날과는 달리 백년해로는커녕 10년해로도 어려운 형편이 되었는데, 어떤 경우에도 부부관계가 또한 중요하다. 그 다음이 친구지간의 관계이고, 다음이 이웃과 직장의 여러 사람과의 관계 순이다. 어떤 심리학자는 사람은 모든 인간관계의 틀을 가정안에서 배우게 된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사회에 나가서 맺게 되는 동료 친구와의 관계는 형제 자매 관계에서 그 틀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며, 선배, 상사에 대한 관계는 부모와의 관계가 그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결혼후의 부부관계는 아버지 어머니의 관계를 보고 배운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가정 안에서의 인간관계는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몇 가지 에피소드
가정 안에서의 부모 자녀 관계에 얽힌 에피소드를 몇 가지 소개함으로써 그것이 아이들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주기로 한다.
1) 슈트라우스 부자 이야기
아름다운 왈츠의 작곡자. 그 중에서도 우리가 잘 아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작곡한 왈츠왕
요한 슈트라우스는 자기와 이름이 똑같은 아버지를 갖고 「왈츠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얻은
유명한 작곡자이다. 아버지의 덕택으로 아들 요한은 어린 아이때부터 왈츠에 친숙해져 있어서
아주 조숙한 천재적 재능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하루는 요한 소년은 새로운 왈츠 곡을 작곡하고 있던 아버지 곁에서 학교 숙제를 하고 있었다. 슬쩍 보니까 아버지 요한은 작곡을 하다가 생각이 막혀 작곡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난처한 표정이었다. 그걸 보고있던 아들 요한이 "아빠 내가 해볼까요?"하고 아버지가 막혀서 더 못나가던 대목의 멜로디를 잘 잇고 전개시켜서 피아노를 쳐서 아빠에게 슬쩍 주었다.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면서 "내가 숙제를 해 줄 터이니 그 곡을 네가 완성시켜라"하고 숙제와 작곡을 바꿔
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것은 부자간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했는지를 말해주는 일화이다. 이러한 돈독한 관계로 인해서 부자가 모두 세계 음악사에서 '왈츠의 왕'으로 남게 된 것이다.
2) 슐리만의 크리스마스 선물
세계의 고고학사에 길이 기억된 트로이(지금의 터키에 있음)의 유적을 발굴한 슐리만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슐리만은 북부 독일의 시골태생의 평범한 소년이었다. 1829년 하인리히 슐리만이라는 소년은 여덟살 때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버지로부터 그림책을 받았다. 그 그림책 속에는 약 2천 5백년전 당시 한창 번창하고 있었던 에게 문명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즉 옛날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그림책은 박사가 쓴 "어린이를 위한 세계의 역사"라는 책이었는데 이 그림책 속에는 불타오르는 트로이 의 삽화가 들어 있었다. 트로이 시는 불타고 사람들은 노인과 어린아이를 업고, 손잡고 그 도시를 빠져나오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이 그림책을 받은 하인리히는 "아빠, 내가 크면 나는 저 트로이를 보러 갈거야. 그래서 땅속에 묻혀있는 트로이를 파낼 꺼야"했다는 것이다. 이때 아버지는 "응, 그건 그냥 상상으로 꾸민 이야기야. 그저 이야기일 뿐이야. 진짜 이야기가 아니야"하고 해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인리히는 끝내 자기 느낌을 꺾지 않았다. "아빠, 진짜 이 광경을 보지 않고는 이렇게 그려낼 수가 없을 꺼야"하면서 그림 속의 내용이 진짜라고 우겨댔다. 그리고 만일 그 그림 속에 있듯이 트로이에 저렇게 견고한 성벽이 있었다면 지금도 그 돌, 바위는 땅 속에 묻혀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지 약 50년이 지난 후 그는 무역회사를 경영해서 돈을 벌게 되었고, 트로이를 연구하기 위해 16개 국어도 공부를 했다. 그는 터키의 북서단 힛사루이크 언덕 위에 틀림없이 트로이의 유적이 묻혀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발굴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찬란했던 에게 문명의 유적지인 트로이를 발굴해서 그 실제를 증명해 보이게 된 것이다. 그의 연구는 여덟살 대 받은 책 선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후 그는 계속해서 뮤케나이, 오르코메노스 중부 유적도 발굴해서, 에게 문명의 유적이 다른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버지의 책 선물, 요즘 아버지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지,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일화이다.
3) 가혹한 영재교육을 실천한 밀 부자
밀 부자라고 하면 아주 유명한 영국의 철학자이다. 아버지 이름은 제임슨 밀, 아들의 이름은 죤
스튜아트 밀이다. 이 죤 스튜아트 밀(아들)은 학교라는 데는 문전에도 안 가본 사람인데, 세 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희랍어, 라틴어, 수학, 역사, 고전문학을 배웠다. 그리고 12세부터는
윤리학, 13세부터는 경제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른바 공리주의 철학이라고 이름 붙여진 19세를
대표하는 영국의 사상을 만든 사람이 되었다. 그 아버지 제임스 밀은 뛰어난 사상가로서
「인간의 역사」 10권을 쓴 사람이다.
아버지의 영재교육은 엄격했고, 인내심을 가지고, 상당히 긴 시간동안 가혹할 정도로 철저했다.
아버지의 서재에서도 공부했고, 아버지와 산책을 하면서도 공부를 했고, 어떤 유명대학의 강의
못지 않게 훌륭한 고급 교육을 했다. 세살 때부터 어머니는 죤을 무릎에 앉혀놓고 신구약 성경을
읽어 주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에 해당되는 시기에 집중적으로 아들에게 교육을 시켰던
것이다. 세 살 때부터 희랍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모르는 낱말은 아버지에게 자주 질문을
하는 통에 아버지가 일을 중단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경제학 강의는 아버지가 아침
산책시간에 해주었고, 강의한 것을 다음 날 보고서로 내도록 했다. 이것이 일과였다. 그리고
숙제는 완전한 것이 되기까지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수정하게 했다. 그 결과 죤이 15세가 되었을
때, 당시 유명한 경제학자와 대등한 입장에서 토론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죤은 그의 자서전 속에 이렇게 적고 있다. "천부적인 능력에 있어서는 나는 평균 이하였지
정말로 평균 이상은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들은 보통의 능력이나 건강한 체질만 가지면
어떤 소년 소녀도 할 수가 있는 일이다."라고. 이 말대로 죤이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하면 죤이
천재이기 보다 그 아버지 제임스가 천재였다고 할까?
즉, 제임스는 비범한 자녀교육 선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존 스튜아트 밀은 현대 심리학자의
판정으로는 역사상 최고의 IQ 180이라는 수치를 받은 사람으로 아버지의 영향 아래 가능한
것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정 내에서의 가족 구성원간의 인간관계가 어떻게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보고,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이 아이들이 앞으로 일생을 살아가는데 좋은 거름이
되게 할 수 있는지를 몇가지 주제로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하자.
3. 가족 관계의 중요성
1)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일까? 부모, 자녀, 형제, 부부를 왜 가족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다른 인간관계와는
어디가 다른가? 직장의 상하관계나 친구관계나 군대의 상관 부하관계와 어디가 다를까?
우선 부모· 자녀 관계나 형제는 서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라는 점이 특징이다.
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부관계란 결혼이란 관계로 자녀를 생산하게 되면, 피의 관계로
연결되게 된다. 특히 부(父)와 자(子), 모(母)와 자(子)는 유전인자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끊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관계이다. 이해관계를 넘어서 기거(起居)를 함께 하며 공주(共住)하며
생계를 함께하는 사이에 있다. 그래서 특히 이들을 우리는 가족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식구(食口)라고도 하는 것은 옛날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시절에 가족원을 먹는 입으로 따졌기
때문이다. 이 가족관계는 상호관계가 아주 짙어서 이 지구상에 다른 어떤 관계보다도 밀접한
관계이다.
둘째로 가족관계는 모든 이해 관계를 넘어선 관계이다. 일일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을 돈으로
따지거나 증서를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시켜 주고, 시집·장가 보내면서
돈을 투자했다는 증서를 남겨놓는 것도 그 대가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자녀에게 사랑을
주면서 "너에게 사랑을 주니까 너희들도 우리를 사랑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돈
주고 이자받지도 않을뿐더러 심지어는 자기의 생명까지도 내주는 사이가 아닌가? 옛날에 죽어
가는 위독한 부모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의 허벅지 살을 잘라서 부모에게 구어 주어서 부모를
살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물에 빠져 들어가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 생명의 안전을 돌봄
없이 물 속에 뛰어든 예는 비일비재하다.
이러 일은 가족이 아니면 찾아볼 수가 없다. 모든 이해 관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셋째는 이해 관계를 넘어설 뿐 아니라 같이 살면서 모든 일상 생활을 같이 하는 관계이다. 옛날
대가족 제도하에서는 십여명씩이 한 울타리 속에서 살았다. 지금은 작게는 둘이나 셋까지로
줄어들었지만, 사람들이 같은 울타리 속에서 같은 가족문화를 지니면서 같은 생활방식으로
살아간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사람이 사람인 한은 가족 속에서 비로소 사람다워지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 있는 많은 조직 중에서도 가족만큼 변화가 적은 것은 없다. 회사가 가장 빨리
변하고 군대, 학교, 교회 등등 그 조직이나 운영방식이 변하지만 가족이라는 조직만은 백년쯤
지나도 그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예가 많고, 원시사회는 몇 천년 동안 변화가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옛날에는 어떤 '집안'인지를 알면 그 집안 사람의 사람됨을 알 수 있었듯이
집안의 법도, 풍속, 내력 같은 것이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서 같은 집안 사람들은 거의 똑같은
데가 많다. 그래서 가족에는 독특한 내력이 있는 것이다.
넷째는 부모, 자녀, 형제, 부부는 '집'의 구성멤버로 가족(家族)이라고 하는데 이 族이라고 하는
것은 기원을 같이하는 동지라는 뜻이 있듯이,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가족이다. 같은
조상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핏줄기와 전통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가족개념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동성애자도 가족이라고 우기고,
양자를 데리고 와서 입양시켜 가족이라고도 하고, 또 심지어는 혼자 사는 독신자도 독신자
가족이라고도 하니 가족이라는 것이 점점 이상하게 바뀌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가족을 좀 낭만적인 차원에서 살펴보면 가족이란 인간이 그 속에서 생명을 얻고 생명을 마무리
짓는 집단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동물로서 태어난 인간의 아기는 비로소 인간다워진다. 가족은
인간이 인간답게 될 수 있는 이 지구상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2) 가족관계와 어린이
가족은 이와 같이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 속에서 이해관계를 넘어서 기거를 같이 하고
생계를 함께 하며 매일 얼굴을 마주치면서 두터운 정을 나누는 사이다. 모든 관계는
직접적이면서 작은 집단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다 지니고 있는 것이 가족이다.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어린아이들의 입장에서 보아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가족이다.
첫째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혈연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가정안에 무슨 문제가 생기게
되더라도 중간에 '나는 가족에서 탈피하겠다'가 안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와의 사이에
문제가 생기게 되더라도 탈퇴원서를 내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출'이라는 형식으로
도망을 가게 되고, 그것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시작이 된다는 점이 이 가족관계가
가지고 있는 특색이다. 운명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끊을 수가 없어서 얽히고 섥힌
감정적인 문제는 단시일 안에 해결 할 수가 없어 일생동안 응어리가 남을 수도 있다. 이것이
문제인 셈이다.
둘째로가족들이란 다른 조직과는 달리 사람들이 만나야 하는 공식적인 일이란 없다. 모두가
비공식적인 일, 정기적으로 처리하는 일이 아니라 비정기적으로 처리하는 일밖에 없다.
가정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는 수시로 아무런 사전 연락 없이도 만나고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볼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 사이에는 이해관계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 관계란 다른 어떤 관계보다 전인격적인 밀도가 높은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부모 자녀 관계나 형제 관계란 머리로만 관계를 갖는 것도 아니고, 가슴으로만 갖는 관계도
아니고, 머리, 가슴, 팔다리 모두를 동원해서 갖는 관계이다. 모든 것과 모든 것의 관계이다.
셋째 운명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갈등이나 대립이 생겨났을 경우에는 그것이 증폭되어 더 큰
문제로 발전하니 자살도 하고 가출도 하는 비극도 생기지만 누가 화해를 하라고 권하거나 중재를
안해도 저절로 해결되기도 하는 관계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야단맞고 때로는 매를
맞아도 처음에는 원망스럽겠지만, 이내 풀어지고 씻은 듯이 잊어버리기도 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결국은 본질적인 관계 즉 모든 이해타산, 손익계산을 떠난 사랑의 관계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본래의 원초적인 사랑의 관계로 되돌아가게 됨으로써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아이들은 가족관계에서 여러 가지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나게 된다.
3) 가족관계는 어째서 중요한가
위에서와 같이 생각해 보면 가족이란 가족원 서로간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그
속에 속하는 사람 모두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부모자녀 관계란 부모가 아이에게 어떻게
대하느냐, 자녀가 부모에게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성립되는 것이다. 형제관계도 마찬가지다.
형이 동생을, 동생이 형을 좋아하고 따르고 도화주는 관계로서 동기관계가 성립된다. 그냥
가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가족관계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바뀌는 것이고 특히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
가족관계가 변하는데 이 변화는 아이들의 발달과 교육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생산력이 발전되고, 사회가 분업화됨에 따라서 가족도 변한다. 그래서 차츰 가족관계는 과거와
같이 '자연의 발로''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점'으로의 관계가 인위적이고, 제도적이고, 법률적인
의무나 규정 때문에 마지못해 관계를 맺는 경우도 생겨나서, 가족관계는 지금 더욱 새로운
면모를 띄게 되었다.
예를 들면 옛날에는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준다든지, 세탁을 한다든지, 요리를 한다든지 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여성의 일이었지만, 지금은 남자도 하는 일로 변했다. 옛날에는 어머니의
자연스러운 모성애의 발로로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여성들이 오히려 그것을 기피하려는 경향까지
생겨서 아버지의 역할, 어머니의 역할도 바뀌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의 사람에게 돈주고
이 일을 맡기는 경우도 있어서 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관계가 변한 것이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바뀌었다. 옛날에는 아버지(남편)가 생계를 꾸려가고, 아버지는
가장이었다. 가정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권자였고, 가정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권리, 의무, 책임은 상당히 변했다. 아내가 돈을 더 많이 버는 경우도 있고,
실질적으로 집안 일을 더 많이 결정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옛날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관계가 변했고, 이에 따라 아버지와 아이,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도 변한 것이다.
여성도 옛날에는 전업주부만 있었지만 지금은 네 종류의 여성으로 나누어졌다. 전업주부여성,
직장여성, 직장-가정복귀여성, 시간제 직업주부 여성으로 나누어졌다. 이에 따라서 어머니의
역할이란 것도 바뀐 것이다. 가령 직장 여성인 어머니의 경우는 아기를 탁아소에 맡기거나 좀 큰
아이에게는 열쇠를 목에 달아준다. 엄마가 갈아주는 기저귀도 손으로 빨지 않고 세탁기로 빨고,
아기 젖먹이는 것, 간식 주는 것은 파출부와 가정부에게 맡긴다.
식사도 옛날에는 어머니가 거의 모든 준비를 했지만 지금은 아이들도 하고, 피곤하니 시켜다
먹기도 하고, 때로는 아버지가 준비한다. 장 보러 가는 것도 여성만의 전업이 아니고 남편이
슈퍼에 함께 가거나 찬거리를 아내를 위해서 퇴근시간에 사오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서 아버지의 역할, 어머니의 역할, 남편의 역할, 아내의 역할이 변했다. 그래서 옛날만큼
부모와 자녀관계가 두텁지가 못하고, 밀접하지도 않으며, 느슨해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이들은 이렇게 변화한 관계를 배워가야 한다. 그것을 배우지 않으면 적응해 가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부부관계란 곧 삶의 의미를 확인시켜 주는 관계가 되며, 부모-자녀관계는 부모로서는 사랑을
주고, 경제적 도움을 주어 아이들이 성공적인 어른으로 자라갈 수 있게 도와주는 관계이며
아이들로서는 성격, 대인관계, 사고방식, 감정표현, 사상 태도 등을 보고 배우고, 지도를 통해서
활동하게 되는 모델로 삼게되는 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가족간의 인간관계는 중요하다.
4. 요즘의 가족관계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 나라에서 가족의 형태도 변하고, 가족관계도 변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 변화는 물론 한가지 모양으로만 변한 것은 아니고, 여러 가지 다른 모양으로 변하고 있다.
그중 몇 가지를 지적해 보겠다. 우리 가정 제일주의(일명 마이룸 주의), 확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의 변화, 자급자족의 장소였던 것이 정신적 안정의 장소로의 변화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1) 우리집 제일 주의
한동안(60∼80년대)은 가장이라는 사람이 가족 먹여살리기 위하여 건강을 희생해 가면서 열심히
일해서 가계를 꾸렸으며 자녀 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가장을 떠받혀 주었고, 남자는
집안에서 보다 집밖에서 따로 행동했다. 남자는 집에 돈만 갖다주면 되었다. 그리고 친구나
직장동료와 술과 회식을 자주 하되, 가계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따로 행동했고 동반해서 사회 활동이나 참여를 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3,40대는 그런 관념이 거의 없어졌다. 내 아내, 내 남편, 내 아이, 우리 가정이 제일이다. 술을
마시고 회식을 해도 불필요하고 무리한 지출은 하지 않으며, 가족끼리는 외식과 여행 프로그램을
자주 갖는다.
요즘은 남편의 이미지로 '일을 열심히 하고, 출세를 할 힘은 없어도 가정을 소중히 하고 아내나
아이들과 더불어 작은 행복이나마 이룩해가는 남자'를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에는
결함이 있어도 일에 미치고 그 속에 삶의 보람을 느끼는 남자'보다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옛날에는 가정 중심의 남자보다 일 중심의 남성(아버지)을 좋아했다. 남자란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전사임으로 일을 잘 하고 직장생활에 충실하면 그것으로 합격이었다. 그리고 아내나
아이에게 빠져서 가정을 주로 생각하는 사람은 '못난이'였다. 사내답지 못한 쩨쩨한 인간이었다.
사내가 뭐 자기 아내와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옹졸한 사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영웅주의적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국가나 사회나 회사나 일을 위해 희생적으로 봉사하기보다는 '우리 집안을 행복하게'하는데 더
큰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가정파와 일파를 남자의 입장에서 볼 때와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각각 좀 다른 입장이 생긴다.
가령 예를 들면 남성이 일 중심파이고 여성이 가정 주부파일 때 가정은 '전통가정'이 되고,
남성이 가족중심파이고 여성이 가정주부파일때 그 가정은 '마이홈주의 가정'이 되고, 남성이 일
중심파이고 여성이 개성파(직업을 가진) 일 때, 이 가정은 '맞벌이 가정'이 되고, 남성이
가정중심파이고 여성이 개성파일 때, 그 가정은 '내주장 가정'이 된다.
지금의 가정에서 남편은 어느 정도 가정 생활을 희생하더라도 사회적인 활동을 하고 싶은가,
아니면 사회적으로는 그저 활동을 많이 안해도 가정적인 남편이 되기를 원하는가? 하고 물으면,
일보다는 가정생활이 더 중요하다라는 것이 6:4정도로 더 많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탁이든
요리를 식사후의 설거지, 청소 등을 10명중 3명밖에 안하고 있다. 놀랍게도 아이들 교육에 직접
관계하는 아버지는 30% 정도밖에 안되고 주로 어머니가 맡아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보면 우리
나라 아버지들은 관념적으로는 가정 지향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나 실생활때는 보면
가정중심주의적 경향은 약한 것이고, 남자는 역시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으며 여성은 가정에서
그 본분을 찾고 있으며 보람을 찾고 있다.
2) 확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도시 가정은 점점 핵가족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핵가족이라는 관계가 단순해지다
보니 모두가 자기 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이 되기가 쉽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잘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자지가 생각한대로 해야 되고,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고 우기는 아이가 되기 쉽다.
자녀수가 적다 보니 과잉보호하고, 과잉보호하다보니 아이들은 버릇없어지고 정신적으로 나약한
아이가 되기 쉽고, 예의범절도 제대로 안 배우고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갔을 때 다른 사람과
부딪히게 되는 예가 많다. 즉 자기만 아는 사람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핵가족화가 되니까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피를 이어받는다는 관념도 약해지고, 어른이나 조상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도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더욱이 가족원간의 협력, 응집, 정 나누기, 단결, 화목 따위는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즉 그런 것은 미덕이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즉
가족관계란 고로 느슨해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정신적 안정의 장소
옛날에는 집이란 것이 생산장이요, 공장이요, 직장이요, 창고요, 배급소요, 소비조합이었다.
집안에서 모든 것을 해치웠다. 집에서 먹는 것, 입는 것을 다 준비했다. 그리고 거기서 또한
소비를 했다. 그러니까 완전히 자급자족을 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지금 음식은 거의 밖에서
마련해서 집에서 조리만 한다. 심지어 조리도 할 필요 없이 차리기만 하면 되는 경우도 있다.
옷도 지금은 집에서 안만들고 모두 사서 입는다. 집은 잠자고, 밥먹는 공간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말에 쉬는 공간이다. 주말이 되면 TV의 오락프로, 스포츠프로, 가정
노래방 등으로 즐기면서 산다.
요즘은 가사노동은 크게 줄었기 때문에 여가시간이 퍽 늘어났다. 밥짓는 것도 전기 밥솥이
혼자서 지어주고, 음식을 데우는 것도 전자렌지가 혼자서 알아서 해준다. 자동 식기 세척기,
세탁기, 진공청소기 등등이 노동을 줄여준다. 그래서 그 남는 시간은 스포츠센터, 헬스센터
등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TV는 절대적으로 즐거움의 원천이다. 우리가 일생
동안 TV를 보면서 지내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과 맞먹는다고 한다. 자 그러면 과연 가정은 정신적
위로, 정서적 안정을 주는 구실을 하고있는지?
5. 바람직한 부·모(부부)관계
여기서부터는 가족관계를 한가지 문제씩 다루어 보기도 한다. 첫번째는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어머니의 관계이다. 부부관계를 단순히 두 사람만의 관계로 보지 않고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면에서만 다루기로 한다. 아이들의 성장 발달에 좋은 영향을 미치려면
부부관계가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1) 자녀의 성장에 나쁜 영향을 주는 부부관계
우선 아버지 어머니가 어떤 상태에 있게 되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지를 살펴보자.
첫째 부부가 이혼한 집 - 요즘은 이혼한 가정이 점점 늘고 있어서 대학생 클래스 한반 40명
정도에 이혼한 부모를 가진 학생이 2∼3명이 된다. 한번은 학생면담을 하는데 어머니와 딸
두사람의 이름만 학생카드에 기록되어 있길래 "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느냐?"고 물었더니 이혼을
하셨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이혼한 경우 아이들의 양육을 어느 쪽에서 맡느냐에 따라서 상황이
좀 달라진다. 어찌 되었건 아이들의 경우, 아버지 어머니가 이혼한 경우보다는 함께 사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아버지나 어머니의 혼인상태가 불완전하니까 아버지 어머니에게 우선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동거하고 어머니와 별거하는 경우, 아이들이 탈선할 확률이 높다. 어머니란 그림자
같아서 해님이 있으면 언제나 나의 곁을 떠나지 않는 존재이다. 그런데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서
어머니와 별거하게 되면 아이들이 정신적인 위안을 받을 길이 없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바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어딘가 헤매다가 늦게 집으로 온다. 집에 와서도 마음 둘 곳이
없으니까 아버지의 귀가 시간에 맞추어 전자오락실, 만화방 같은 데서 시간을 보낸다.
어머니와 동거하고 아버지와 별거할 때에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의 정 때문에 될 수 있는대로
어머니를 위로해 주려고 하고 협력해주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편 가정에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효과적으로 당당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어머니가 당하는 어려움에 자녀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협력을 한다. 어머니와 동거하는 자녀는 강인한
정신이라든가 어른의 경우는 남성적인 신뢰감 같은 것이 부족해질 염려가 있다. 그러나 반면에
아버지에 대한 반감 때문에 자포자기 해 버리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부모의 이혼으로 아이들의 성격이나 행동에 상당한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 사실이다.
아동 상담자나 가정법원에서 다룬 사례를 보면, 이혼이 자녀의 비행에 상당히 관계가 많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 편친(한쪽 부모) 밑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 사유를 충분히
이해해주고, 그 부모를 도와서 가정을 잘 꾸려나가는 경우도 있고 따라서 비행과는 인연이 없는
집안도 있다.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이혼이 비행이나 아이들의 성격에도 나쁜 영향을 주는
예도 있다. 그러므로 이혼한 부모의 경우는 아이들이 탈선하지 않게 하는 문제와 비뚤어진
성격을 갖지 않도록 하는데 상당히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이혼 후 아버지가 재혼을 해서 계모가 들어왔을 때나 어머니가 재혼해서 계부 집에 아이들이
합류되었을 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새어머니와 의붓아버지와의 관계, 배 다른 형제
혹은 씨 다른 형제와의 관계도 아주 복잡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때 부모의 삶의 자세,
교육방법, 아이들 관리문제에 몇 배 이상의 힘이 들어도 성과가 별로 없는 예도 잇다. 한쪽
부모가 다른 쪽 부모의 몫까지 잘 해낼 때에는 도리어 두 사람이 밤낮 싸우고 있을 때보다는
아이들에게 바람직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부모의 이혼에서 발생하기 쉬운 아이들의 문제에는
용돈부족을 메우기 위해 집의 돈을 훔친다.
용돈을 잘 안줄 경우 부모에 떼를 쓰거나 부모를 폭행하는 경우도 있다.
금전낭비가 심하다.
불건전한 오락에 빠지는 예가 있다. 술, 담배를 피운다.
나쁜 친구와 사귄다.
신나나 본드와 같은 환각제, 약물 복용에 손을 댄다.
종교거부를 하거나 가출을 한다.
정신적 갈등으로 인해 불행감, 소외감에 빠져서 비사교적 아이가 되기도 쉽다.
아이들의 사회성 획득(특히 부친부재의 경우)이 늦어져서 사회생활의 적응력에 문제가 생긴다.
속설이긴 하지만 이혼 경험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쉽게 이혼을 한다는
것이다.
둘째 편친과 사별한 경우 - 한쪽 부모와 사별했을 경우는 이혼의 경우보다는 아이들의 비행,
탈선은 적지만 가정이 비탄에 잠겨서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아이들이 되기 쉽다. 아버지와
사별한 아이들은 성격상 용기, 끈기, 안정성, 적응력, 의지 등에 문제가 생기고 어머니와 사별한
아이는 우울증, 정서적 불안감 등을 갖기가 쉽다.
셋째 부모의 갈등이 심한 경우 - 아버지 어머니가 늘 싸우고, 심지어 폭행이 벌어지고, 서로
증오하고, 가끔 부모의 가출, 외박 등의 갈등이 벌어지는 가정의 어린이들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우선 아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가 갈등이 심하면,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존경심이나
신뢰감은 땅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니 아이들은 아버지, 어머니를 따르지 않을 것이며, 다만
아버지가 심하게 독재적인 태도로 나오는 경우 아버지의 폭력이 무서워 겉으로만 순종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내심으로는 아버지의 권위를 부정하는 쪽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부부갈등이 심하면 아이들의 가출, 등교거부, 비행쪽으로 나오기도 하였지만, 많게는
의기소침, 기죽기, 불안, 정서적 안정감 결여 등의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부모의 갈등으로 인해서 아버지, 어머니가 이혼할까봐 염려함으로써 아이들의 생활전반이
불안정해지고, 성격도 나빠지기가 쉽다. 초등학교 상급학교 아이들이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반응을 조사해보니 전쟁, 천재지변이 제일 많고 그 다음이 부모가 이혼하지
않을까 하는 반응이 2위로 높은 반응을 보였다. 이렇듯 오늘날의 가정이 아이들의 성장,
발달에는 여러 가지 염려스러운 현상을 낳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사정이 좀 더 정신적으로 안정될 필요가 있다. 요즘의 부모관계가 얼마나 불안정한 지를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2) 바람직한 부부관계는
물론 이 문제는 다소 관념적이라고 할지는 모르지만, 우리 부모가 지표로 삼아야 할 것 같아서
여기에 제시해 두겠다. 특히 자녀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부부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첫째 부부는 사랑과 이해로 서로가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도록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매력이라고 하면 무슨 성적 매력이나 인물이 예쁘다느니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점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상대방의 장점에 대해서 인정해주고 칭찬해 줌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게 하고 느끼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법으로 되는 것도 명령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자발적인 노력과 자각으로 해결해야 한다.
두번째 부부는 경쟁자가 아니다. 부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단점을 보완해주는 관계인 것이다.
부모란 어른이니까 성숙된 태도로서 자기의 단점이나 실수를 인정하는 겸손하고 솔직한 태도가
필요하다.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고 부족한 점을 서로 보완해 주어야 부부가 인간적으로 더욱
성숙해지는 것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소질도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서 쓴다는 태도로 살아간다면 부부는 함께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부부간의 관계는 상대방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아니고 봉사한다는 정신으로 사는 것이
좋다. 흔히 말하기를 '여성은 결혼하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지 뭐'하고 하는데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발전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다. 행복한 부부관계를 위해서, 가정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 봉사한다고 생각해야 행복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넷째 부부관계는 차지하기보다 붙잡아주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상대방을 차지하기보다
붙잡기가 힘들다는 말이 있듯이, 결혼이란 붙잡아 두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붙잡아 두기란
남편은 아내를 자기가 하는 사업에 관심을 갖게 하며, 반대로 아내의 일에 대해서 인정하고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며 아내는 가사에 대해 남편의 관심을 잡아두고, 남편의 직업과 직장에 계속
관심을 보임으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정신적으로 매어있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반대는
자유 방임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무관심이야말로 위기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는 태도인 것이다.
다섯째 일은 되게 하라.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 안되게 하는 어리석은 태도를 취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부는 한 배를 타고 항해하는 선원처럼 공동운명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서로가 대화와 협의와 양보를 통해서 지혜를 모아서 해결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방을 위하는 길이 나를 위하는 길이란 것을 인식해야 한다.
여섯째 부부의 관계가 곧 아이들의 삶과 행동과 의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갈등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부는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과 태도로 배우자를 사랑하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상대방의 행복에 관심을 가질 것이며 상대방의 요구에 응해주고 부부간의 사랑이 영원히 합일된
사랑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며 자녀의 성공을 위해 합심 노력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6. 바람직한 부모-자녀관계
아이들의 성장 발달에는 아버지와 아이,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 앞에서
부부관계가 아이들의 성장, 발달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 관해서는 설명했지만 부부관계보다 부모
자녀 관계가 더 밀접하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부부관계가 간접적으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지만,
직접적으로 영향 주는 점은 적다. 그러나 부모 자녀관계는 그대로가 인생살이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다루어 보기로 한다.
1) 부모-자녀 관계란
우선 부모 자녀 관계는 아이들의 성격형성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준다. 가정도 하나의
작은 사회이고, 가정생활이 작은 사회생활이라 볼 수 있다. 가정은 양친, 형제, 조부모라는
신분관계에 의해서 각자의 위치가 정해지고, 일정한 지배·피지배관계, 지도·피지도의 관계,
교육·피교육의 관계 등이 존재한다. 맏이, 막내 관계도 있고 엄한 가정, 자유로운 가정, 편안한
가정, 복잡한 가정 등 여러 가지 형태의 가정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대하는 태도나
교육방식에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고 그 가정마다 고유한 분위기도 있고 해서 꽤 복잡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는 특히 어머니의 사랑과 아이들의 성격사이에는 깊은 관계가 있으며,
어머니로부터 충분한 애정을 못 받고 자라면 열등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어머니를빼앗기지
않을까, 어머니가 사랑을 안해줄까 두려워하는 유아의 공포심이 어린이를 불안하게 한다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은 거부와 지나친 사랑으로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게 된다고도한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너무 지나치게 사랑하게 되면 아이들을 부정적이고 의존적인 성격으로
만든다고 하며, 방임하게 되면 공격적인 성격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지나치게 사랑하게 되는 원인을 분석해 보면, 불임, 유산, 사망 등에 의해서
오랫동안 아이를 못 가졌다가 겨우 아기를 갖게 된 경우 아이들의 몸이 약해서 다른 아이들보다
오래 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때문에 남편과의 성격 불일치 사회적 고립 즉
부부간에 공통된 관심의 결여, 기타 사회적 접촉의 결여 어머니 어린 시절의 정서적 생활의
빈약 어릴 때 부당하게 책임을 짐으로써 지배적 성격이 발전하고, 결혼 후에도 그 역할이
계속되는 경우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2) 부모-자녀간의 애정문제
부모 자녀의 관계를 분석해보면 크게 아이를 사랑하느냐, 안느냐, 아이를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 아이를 지배하느냐, 안하느냐의 형식으로 따질 수가 있다. 이런 형식에 따라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태도나 사랑하는 방식에 따라서 몇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생각해보자.
첫째 아이를 별로 사랑하지 않고 거부하는 부모 - 이런 부모는 아이의 결점을 들추고 벌을 잘
주고, 아이를 잘 안돌보고, 잘못을 추궁하고, 무조건 복종을 강요한다. 아이를 위협하고,
겁주고, 때리고, 다른 아이와 비교한다. 용돈 같은 걸 잘 안주고, 교육도 잘 안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사회성이 잘 발달되지 않으며, 거칠고, 경솔하며, 일에
열중하지 않으며, 매사에 관심과 흥미가 없으며, 행동과잉상태(이것을 과잉행동증이라고 한다)에
빠지기 쉽고, 사회에 대해서 반항적이고 사람에 대해서 냉담하다.
둘째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받아들이는 경우 -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면 아이들은
친절하고 어른들에 대해서 불평을 잘 하지 않으며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하고, 즐거운 꿈을
꾸며, 정상적인 소망을 가지고 살며,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사려 깊고, 온화하며,
열심이고, 침착하다.
셋째 아이들을 지배하는 부모 - 지배적인 부모란 아이에 대해서 매우 엄격하고, 권위적이고,
아이들을 잘 벌하고, 아이들의 연령이나 발달정도로 보아서 무리한 표준에 맞추려고 아이들을
비판하고 위협하거나 한다. 아니면 그 반대로 아이들의 요구에 대해서 이상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며 신경을 많이 쓴다. 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장난감이나 돈을 주거나해서 아이들에게
계속 통제하려고 한다.
이와는 다르게 복종적인 부모도 있다. - 아이들에게 많은 자유를 주며, 부모쪽이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아이의 말에 무척 신경을 쓰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려고 하고, 아이의
요구가 좀 무리가 되어도 거절할 수가 없다. 혹은 이와는 반대로 아이들 뜻대로 방임하거나
아이를 무시하고, 훈육을 하지 않는다.
지배적인 부모의 아이는(부모에게 전적으로 통제 당하는 아이) 사회화가 잘 되고, 사교적이며,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잘 받는 행동을 하고, 학교생활에도 흥미가 많고, 좋은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민감하고, 복종적이고, 수줍고, 어린애 같고, 자기표현이 잘 안되고
여럿사람들의 습관에 쉽게 동화된다.
이에 반해서 복종적인 부모 밑에 자라는 아이는 온순하고, 책임감 있는데 반해, 학교에는 좀
난폭하게 굴고, 교실의 무법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규칙을 잘 안지키고 나태하다. 다른 한편
적극적이고 자기를 잘 표현한다. 그들은 권위에 반항하고, 고집스럽고, 다루기가 힘들다.
그런데 어떤 부모도 이런 식으로 한쪽으로만 거부적이거나 지배적이거나 복종적인 부모는 많지
않다. 비교적 그런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아이에게 지배적으로 임하면서
아이들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모는 익애(溺愛)에 빠져 있는 부모가 된다. 즉 아이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 빠지게 되면, 아이에게 끌려 다니는 부모가 될 것이다. 아이들이 위험을 당할까봐
염려하고, 병에 안걸리도록, 불결해지지 않도록, 다치지 않도록 염려를 한다. 지나친 보호를
하는 부모 밑에 자라는 아이는 의존적이 되고, 언제까지나 유아상태로 남아있고, 모험, 위험에
노출될 기회를 봉쇄 당한다.
그런데 사랑을 주면서 아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부모는 사랑을 지나치게 많이 주고,
아이들을 의존하게 하고, 그래서 발달을 가로막는 부모이다. 이 경우는 그 사랑이 자기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하는 사랑이다.
아이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아이에게 복종하는 부모는 아이를 실제로는 방임하는 꼴이 된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제멋대로 굴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사회의 기준을 어기는
무법적인 아이가 되기 쉽다. 아이를 방임하게 되면 부모에 대해서 반항적이 되기 쉽고,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에게 아주 지배적으로 나오면서 동시에 거부하는 부모는 잔인한 사랑이 된다. 부모가
잔인하게 나오면 아이는 부모를 두려워하고 겉으로는 복종적이 되지만 부모나 사회에 대해서
아주 반항적인 아이가 되기 쉽다. 아이를 거부하는 한편 아이에게 복종하면 아이를 무시하는
꼴이 된다. 아이를 무시하게 되면 아이들은 모든 면에서 일탈(逸脫)적이 되기가 쉽다.
고집스럽고, 말 잘 안듣고, 공격적인 아이가 되기 쉽다. 아이들을 돌봐주지도 않고,
학교성적이나 대인관계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아이들은 생애의 계획이나 희망에 관심을
안보인다. 무시하는 것은 공격적 행동으로 나가게 부추기게 하고, 부모의 주의를 자기쪽에
돌리게 하려고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
3) 바람직한 부모-자녀관계
바람직한 부모 자녀 관계란 부모의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고 상호관계임으로, 아이들과 원만하고
활발한 대화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가는 가정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 태도, 행동으로 대하고 관계를 가질 때 아이들이 건전하고 건강하게
자라나게 될 것이다.
첫째 아버지나 어머니는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지키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아버지는 가정의 위계질서 감정적 분위기들을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 아버지는 가족원을 하나로 묶고, 가족이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게
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아버지는 아이들 앞에서 의사결정에서 합리적이고 단호한 면이
있어야 하고, 흔들림이 없는 신념과 가족원들이 감정적으로 의논할 대 기댈 기둥으로서의
든든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대해서 리더로서의 자신감과 자질을 갖도록 애써야
하고, 가정의 경제생활을 책임지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또 그런 일을 감당하도록
준비하고 노력해야 한다.
직장생활로 인해서 자녀에게 소홀해지기 쉬운 점을 감안하여 자녀와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대화를 갖고, 아이들의 생활과 학습에 관심을 보이고 특히 아이들이 따라서 본받을 수 있는
남성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 아버지는 정의(正義)의 대표자로서 아이들의 삶의
기준, 규칙, 법을 지키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아버지는 공정한 재판자가 되어야
한다.
어머니는 자비(慈悲)의 대표자로서 자녀에게 사랑과 온정을 베풀고 아이들의 실수까지도
감싸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아버지가 경제적 수단이 된다면 어머니는 아이들의 양육, 양호,
자녀를 사회인으로 만드는데 중요한 구실을 해야 한다. 특히 어머니는 자녀의 인격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어머니는 아이들의 생활습관의
형성과 자녀의 건강과 위생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 주어야 한다. 어머니는 가족원들간의
대화와 교류의 가교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둘째로 부모는 자녀를 깊이 사랑하되 절제 있는 사랑을 주어야 한다. 사랑하되 사랑하는 방법이
좋아야 한다. 사랑이란 아이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인데, 어떤 때는 진하게 사랑하고, 어떤
때는 미워하고, 또 마치 자기 자식이 아닌 듯이 대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부모를 믿지 않게
된다. 그러니까 사랑은 신뢰감을 주는 원천이다. 사랑이 지나치면 안되고 무절제해서도 안된다.
그러면 아이들은 부모를 얕잡아 보게 되고, 부모의 약점을 역이용하게 된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부모와 떨어져서 살아가지 못하며,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자립에 대한 욕구가 약해지기 때문에
사랑도 지나치고 무절제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진정한 사랑은 어떤 것일까?
진정한 사랑은 한결같은 사랑이다.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는 사랑이다. 아이가 죽을죄를 지어도
용서해 주는 너그러움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절제가 있어야 하고 아이의 실수나 잘못에대해서는
따끔하게 벌하는 엄격함도 동시에 보여주어야 한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도 하고, 또 분위기로도 해야 한다. 가끔 분위기를
보아서 "영후야,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 줄 모르지?" "정말로 널 끔찍이 사랑한단다" 하고
말하며 꼭 껴안아주고, 어루만져주고 머리를 쓸어주면서 말해주는 것이 좋다. '사랑한다'는 것은
분위기로도 하는데, 분위기란 부모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아주 작은 것 등으로 그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랑할 때에는 몸(피부)의 접촉이 중요하다. 손을 잡아준다. 손등을 쓸어준다, 악수를 한다,
등을 두들긴다, 머리를 쓸어준다, 껴안아준다 이런 식으로 피부접촉을 통해서 사랑의 체온을
전달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따뜻한 말과 부드러운 행동으로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가정 안에서 사용하는
말은 부드럽고 낮은 음성으로 의사와 감정을 전달하는 가정의 분위기가 필요하다.
셋째는 부모 자녀 상에는 활발하고 따뜻한 관계가 필요하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들과 활발한
대화를 항상 유지할 필요가 있다. 활발할 뿐 아니라 대화하는 태도나 방법이 상호적이면서
서로간의 신뢰가 그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는 대화가 바람직한 대화냐 하면, 대화는 서로를 사랑하고 믿고 있다는 싸인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런 신뢰감이 없으며 대화는 계속 이어질 수가 없다. "야,
민숙아 너 학교에서 뭐 재미있는 일 없었니? 요즘 학교생활 재미있어? 엄마한테 이야기해줄 만한
것 업서?" 하면서 미소짓는 얼굴로 자연스러이 대화를 유도한다.
자연스러운 기회를 이용한다. 식사를 하면서, TV를 보면서, 외식하면서, 외출 나가서, 소풍가서,
여행할 때, 오락시간에 자연스러이 대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어색하게, 부자연스럽게
아이를 불러서 앉혀놓고 뭘 따지는 식으로 대화를 시작해서는 안된다.
대화를 계속 이어가게 하려면 아이가 뭘 말하기 시작하면 격려해주고, 맞장구를 쳐주고 "그래?"
"그랬었니?" "응 그랬었구나?" 식으로 더 알고 싶다는 표시를 해주는 것이 좋다.
한 번 대화가 계속되면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한은 중단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전달하고싶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넷째 가족원들끼리는 신뢰, 원조, 융합의 원칙을 가지고 뭉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요즘은
자녀들도 바빠서 서로 얼굴보기도 힘들 정도로 소원하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일을 도와주고,
믿어주고, 정서적으로 융합된 감정으로 살아간다면 가정은 행복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는다면 우리도 다른 가족원들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칭찬의 말을 아끼지 말
것이며, 실패하더라도 격려해주고, 조그만 성공에도 격려와 인정을 해주는 풍토가 필요하다.
감정의 융합은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아주 중요한 점이 아닌가 싶다. 부모는 가족원들간의
감정의 융합을 위해서 가끔 가정 안에 이벤트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벤트란 흥겨운
행사란 말이다. 재미있소 흥겨운 행사를 열어서 가족원이 더욱 화목해 지도록 할 수 있다.
7. 기타 가족간의 관계
이밖에 형제관계, 고부관계, 조손(組孫) 관계에 대해서는 간단히 언급하겠다.
첫째 형제관계는 앞으로 점점 문제가 될 것이다. 자녀수가 적다보니 형제자매수도 저어져서
형제관계가 무의미한 관계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기(同氣)란 작은 사회관계의
모형이다. 사회에 나가서 선배, 동료, 후배 관계의 양식을 집안에서 배우는 모임으로, 신뢰 있는
대인관계의 기초를 집안에서 배워야 한다. 바람직한 형제관계란, 큰 아이가 작은아이를
보살펴주고 가르쳐주고 지도해주고 모범을 보여주는 관계를 유지하고 동생은 형을 존중하고
따라주면서도, 경쟁관계속에 있게 되는 미묘한 관계인 것이다. 이 형제관계를 바람직하게
만드는데는 부모의 건전한 태도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 부모가 편애하거나 냉정하게 대하거나
하면 그것이 그대로 형제관계를 정하게 된다. 형제수가 두셋 정도의 가정에서는 형제를 친구처럼
생각하는 민주적 가정이 바람직한 것이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그런 태도로 살아가는데
기초가 되게 말이다.
둘째는 고부관계인데 아이들의 발달에 고부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 아이의 교육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의 교육방침이 다름으로써 오는 피해를 생각하면 이 두사람의 관계는 중요하다.
원칙적으로 할머니 쪽이 젊은 며느리에게 자녀교육에 관한 한은 양보하는 것이 좋고, 만일
의견의 충돌이 있을 경우에는 서로 의논해서 한가지 방침으로 아이를 길러야 한다.
고부간의 문제는 세대차에서 오는 갈등도 있고, 힘의 갈등일 수도 있고, 질투에서 오는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 문제는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아이들의 성장이 순조로울 수 있다. 고부
갈등이 심하면 심할수록 자녀들의 성장발달에 큰 지장을 주게 될 것이다.
셋째 조손 관계에 대해서 간단히 생각해보자. 요즘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사는 손자들이
별로 없어서 큰 문제는 아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인생살이에서 얻은 경륜과 손자에 대한
애정으로 손자를 돌보고 교육시키는 것은 참 바람직한 일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칫하면
손자·녀를 지나치게 의존적으로 만들며, 지나치게 귀여워하는 나머지 버릇없는 아이를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조부모는 손자의 교육에 관계가 있음으로 아들내외와 협의하여 갈등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조부모는 부모의 부모임으로 긴 인생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양육에 교육 보조자로서 도와주는
역할로 그쳐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모는 조부모의 지혜를 빌리고 자기가 줄 수 없는 것을
얻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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