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성전
미가선지는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미가4:3)라고 하면서 전쟁보다 평화로운 인간의 시비, 논쟁,분쟁, 전쟁 해결 원리를 요청하고 나섰다.
인간사이에서의 전쟁사건을 크게 분류하면 이년문제, 이권문제 그리고 종교전쟁에서는 성전(성전.Ideas of War, Holy war)으로 분류로 된다.
구약 성경에서는 여호와께서 선포하시고 승리로 이끄시는 성전의 개념에 의하여 주도된다.
예언자들은 한편으로는 성전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면서도, 전쟁을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이나 교만한 이방국가들에 대한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이나 교만한 이방국가들에 대한 하나님 심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평화(peace)의 시기가 오기전 대규모의 성전이 있을 것이한 생각을 한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성전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죄와 사탄과 우주의악마적 세력에 대항해 싸우는 것으로 이해하였고,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영적 성전의 승리로 보았던 것이다.
1. 성전이란
게르하드 본 라드 (Gerhard Von Rad ) 박사는 출애굽기 15:3과 사무엘상 17:47을 인용하여 "여호와를 용사라고 믿는 신념과 그분은 승리를가져다주는 능력을 갖고 계시다는 확신이 합결될때 성전의 관념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필연적이 된다"고 했다.
성전은 본질적인 면으로 볼대 그 민족의 신의 허가와 능동적 참여가 전제로 되는 것으로 그 서곡을 신의 허가를 얻기 위한 제사 또는 예배가 있게 마련인데 그 이슈는 일반적으로 외국의 군대가 영토를 침범하는 것을 막는 목적, 사상적인 이방사상 침범이 종교의 옷을 입고 들어올 때에 막는 목적, 그리고 선민 스스로 범죄하여 신을 잊었거나, 도전 행위, 또는
윤리 도덕의 타락일때는 신 스스로가 외국군을 불러드려서 자기 백성의버릇 고치는 자체 정화적 목적의 성전이 있다고 보겠다.
그 성전 수행 인물은 군지휘관으로서의 자신이 이름이나, 비상한 재주의 지휘 통솔이 아닌 하나님의 영이 주시는 특별한 선물로 자기 임무를 수행한다 (사사기6:34,11;29 참고), 그리고 그를 따르는 백성은 온전한 마음으로 여호와께 봉사할 것을 요청했으므로 자원주의를 택한후 분명치 못한자는 돌려 보냈다.(신20:5-9참고), 그 이유는 성전 수행의지의 결속이 깨
어질 가능성 배제에 목적을 둔 것이다.
따라서 군인들은 전쟁기간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이므로 제사장과 같은신분 보장을 받게되고 (삼상14:14), 군진은 여호와께서 친히 행하시는 곳의 성소처럼 성별적 개념의 위치로 하므로 (신23:14) 배설물을 진밖에 묻고 몽설정한 사람은 하루를 진밖에서 보내야 했고, 여인과육체관계자는 진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삼상21:4, 삼하11:11)
성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군인의 수를 중요시 않했다는 것이다. 그이유는 군인만 참여함이 아니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게 행하시며 너희는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 자"(신20:4) 로규정하기에 성전은 [여호와의 싸움]으로 믿은 것이다. (삼상 18:7,25:28)그래서 성전 수행자들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우리손에 붙이셨다"는 사상
으로 임했다.
2. 성전의 역사적 이해
성전의 개념은 점차 발전하여 사사시대늣 매우 크게 영향력을 가진다.
이때는 12지파의 공동예배와 공동의 군사 행동을 위하여 동맹관계 유지를 위하여 세겜이나 실로 등 종교 중심지에 모여서 12지파의 외부적 침범 불이익을 공적으로 논의, 또는 12지파간 생겨난 사건 개요를 들고 성전선포를 하게 된다.
그후 군주정치시대는 전쟁을 국가정책의 수단으로 변모되기 시작한 것이다. 열왕기상 8:44-45,22:5 을 보면 "주께 여쭈어" 보거나 승리를 기원하는 것 같지만 그들은 대부분 왕실의 앞잡이에 불과했고 때로는 미가야 같은 예언자는 생명을 걸고 충성심옴가 이들과 맞붙어 대항한다. (왕상22:16-23) 그러므로 조정의 갑론을박이 생기게 되는 이유 때문에 성전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전락됐다고 이해된다.
포로후기에는 이스라엘이 남북조의 멸망으로 인한 전쟁의 개념의 대변화는 왕국, 왕실의 부재로 인해 당신의 통치세력이 대항하는, 가령 당신의 통치세력이 대항하는, 가령 셀류코스 통치에 대항한 마카베오 혁명은 성전의 관념을 반영하고 있고, 외마상 2:24-26에는 모딘의 마따디아는 영감의 기록은 없으나 묵시적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고하면 군대
가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쟁의 승리는 군대의 다수에 달린 것이 아니고 하늘이 내려주는 힘에 달렸다."(외마상3:18-19)라든지"하늘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원수들을 짓부수어 버리실 것이다"(외마상 3:22)는 사상에서 볼 때 성전사상이었음을 발견한다.
예언자들도 반전론으로만 볼수 없는 것은 세계 평화를 선언하고 있지만,예언초기에 한번쯤은 국내 분렬선동을 했고,엘리사같은 분은 죽으면서 시리아를 세번만 공격하겠다. 한 왕을 크게 책망하기도 했고, 요마스왕은그를 향해 "읜결볘찬가 병거와 마병"으로 부르기도 했다는 점에서 성전을일으키는 장본인들은 승리만 있을 뿐이므로 타협이 통하지 않았다는 공통관찰이고 그 전쟁을 여호와의 심판의 도구로 믿으면서 국내외를 모두 적용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라는 말씀도 있었지만 자신을 돕게다던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칼로 쳤을 때에 검을 사용하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규정하면서 평화와 평화롭게 하는데는 어떤 물리적 힘에 의존하지 않았다.
3. 교회와 성전
교회는 경전과신앙고백을 중심으로 모인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집단 단체이므로 어떤 전쟁에 휩싸이지 않아야 할 것이고, 정치적 유기체 관계가 기독교인 관계자 연쇄 반응상태로 발전하기 때문에 교회 자체에서도가끔 갑론을박이 생겨난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경기자들은 성전의 개념을 영적방법으로 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교회의 투쟁, 성전의 대상은 인간들이 미래와 우주를 지배하는 악마로규정하고 있으므로 현실적 군사 무기화 무장노력 보다는 (고후 10:4,엡6:13-17) 영적 무장화 작전 명령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교훑릿 영적 무기로 무장하고 세상 전쟁 뒤에서 도사리고, 전쟁을 촉발 시키는 원인 악마와의 싸움으로 이해하므로 세상 전쟁은 국가에 속했고, 교회의 성전 대상은 그 싸움의원인 악마와의 싸움인 것이다.
그래서 교회사는 그동안 오랜 세월을 싸워원 십자군 전쟁을 교회의 성전으로 규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 싸움의 승리가 구약에서의 성전이 하나님의 것이듯 오늘의 교회에서의 성전의 승리는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로 이해함이 타당한 것이다.
그래서 대망의 성전승리가 있기전 기독교인은 인내하고,복음증거로 인한하나님과 인간의 화해,그리고 인간과 인간간의 화해에 성전 자원주의적개념의 생활화의 봉사가 요망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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