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저주를 받지 말아요 === 신명기28;15-68(240707)

열려라 에바다 2024. 7. 9. 08:26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저주를 받지 말아요 === 신명기28;15-68(240707)
 
한상원목사추천 1조회 6924.07.05 16:50댓글 0
 
 
PW : 믿음             BIW : 저주받을 일을 하지 말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처음부터 저주받을 일을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것이다.




황당 질문


바보 마을의 이야기입니다.
바보 마을의 두 친구가 밤이 되자 달을 보면서 다투게 되었습니다.
저기 있는 건. 해야.”
아니야, 저건. 별이야.”
둘이 싸우고 있는데 한 사람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아저씨. 저기 위에 있는 게 뭐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저씨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동네가 아니라 잘 모르겠는데...”
이 아저씨는 해인지, 달인지, 별인지 전혀 관심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무관심은 심각한 질병입니다.
무관심은 애정결핍입니다.
무관심은 사랑의 비타민이 결핍한 상태입니다.
무관심은 믿음 없이 그냥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무관심은 저주와 같습니다.
우리들은 축복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구원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 관심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께 미친 사람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오직 삼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삼위 하나님께 온전히 미쳐서 헌신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축복의 세계, 사랑의 세계, 믿음의 세계, 사랑의 세계를 누리면서 감사, 감사, 감사, 감사, 감사의 노래로 살아가는 신앙인입니다.


P4


동전이나 지폐에는 항상 양면이 존재한다. 한 면만 존재는 동전도 없고, 지폐도 없다.
극과 극이 존재한다. 북극과 남극이 존재한다.
항상 + 극이 있는가 하면  극도 존재한다.
N극이 있는 반면에 S극도 존재한다.
동쪽 방향이 있다면 반드시 서쪽 방향도 존재한다.
남쪽 방향이 있으면 반드시 북쪽 방향도 존재한다.
세상에는 양면이 존재하는 것이지 어느 한 면만 존재하지 않는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 하늘의 세계가 있는가 하면 사탄과 마귀와 어둠의 세력들이 작동하는 죄악된 세계, 지상의 세계가 있다.
신앙의 세계가 있는가 하면 불신의 세계가 존재한다.
믿음의 세계가 있는가 하면 의심의 세계가 존재한다.
행복한 세상이 있는가 하면 불행한 세상도 존재한다.
기쁘고 즐겁고 좋은 세상이 있는가 하면 슬프고 고통스럽고 좋지 않은 세상도 존재한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의 세상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저주의 세상도 존재한다.
구원의 세계가 있는가 하면 심판받아 멸망 받는 세상도 존재한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서로 상반하는 두 가지 개념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를 설명하시곤 하신다.
정결과 부정, 오른쪽과 왼쪽, 명예와 수치, 양과 염소, 축복과 저주, 구원과 심판, 의와 불의, 의인과 죄인, 순종과 불순종, 생명과 사망, 선택과 불선택, 서쪽과 동쪽, 남쪽과 북쪽이라는 서로 상반 된 개념을 가지고 하나님의 세계와 악의 세계를 설명하신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차지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겜성으로 모이라고 말씀하시고, 세겜성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란히 있는 그리심산과 에발산에 각각 여섯 지파씩 올라가라고 말씀하신 후에 그리심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신명기 28장에서는 축복과 저주의 두 갈래 길을 말씀하고 계신다.
신명기28;1-14까지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축복의 말씀이라면, 이제 15-68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저주의 말씀을 선포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간다면 저주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저주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는 저주의 말씀을 읽고 들으면서 신앙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D4


하나님께서는 15절에서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마땅히 축복을 베풀어 주셔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이 아닌 저주를 내려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불순종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명령과 규례와 율례들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저주를 내리겠다고 선포하시는 것이다.


 축복의 반대는 저주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포하시는 하나님.


축복의 반대는 저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지 않고, 축복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저주를 내리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 명령, 율례, 법도를 잘 지켜 순종하면서 살면 반드시 축복하시지만, 만일에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들과 명령들과 율례들과 법도들을 잘 지키지 않고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거역하여 떠나면 축복 대신에 저주를 내리겠다고 선언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할 수 없다면 저주를 내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하시는 분이지만, 반드시 저주도 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저주는 정말 끔찍하기만 하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저주는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처참하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저주는 더 이상 긍휼이나 자비나 은혜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하신다.


 의식주의 경제적인 문제를 저주하신다.
성읍과 들과 들에도, 밭에도 저주받아서 농사할 수 없게 되고, 겨우겨우 농사했더라도 이방인들의 노략으로 수탈당하여 굶주림으로 아사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이른비도, 늦은 비도 내리지 않아서 황야 그 자체로 돌변하게 될 것이고, 겨우겨우 농사했더라도 이름도 언어도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노략과 수탈을 당하게 되고, 급기야는 너무 극심하여 인육을 먹는 사태까지 벌어진다고 말씀하신다.
부모의 시신을, 자녀의 시신을, 이웃의 시신을 먹어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고 말씀하신다.


 육체에 정말로 끔찍한 질병으로 저주하신다.
각종 불치의 질병들, 전염병들이 계속 생겨나면서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죽는다.
애굽에 있었던 종기, 질병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질병들까지 계속 발생하면서 고침을 받을 수 없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질병은 더욱더 심각하고 치료할 수 없는 질병들로 가득 채워진다.
불치병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많이 생겨나고 있다.
과거에 없었던 질병들이 현대사회에서 발생하고, 미래에는 더 많이 변질된 질병들이 생겨날 것이다.
질병도 끔찍한데 더 나아가 각종 끔찍한 천재지변, 인사 사고들이 끊어지지 않고 일어난다.


 가족공동체가 해체되고 무너지도록 저주하신다.
하나님께서 내리는 저주는 가정, 가족이 무너지고 해체하도록 만들어 간다.
임신한 여인이 강간당하고, 부모 형제 자식 간에도 서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원망하고, 가족들 간의 믿음도, 신뢰도, 사랑도 사라지고 만다.
가족들 간에 서로서로 불신하고 원망하고 싸우면서 가족공동체가 해체되고 무너지고 만다.


 사회와 민족공동체가 해체되고 무너진다.
각 지파 사회와 민족공동체가 무너지고 회복되지 않는다.
사사기의 역사, 사무엘 시대의 역사, 왕들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서로의 이익을 챙취하기 위하여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사랑은 기대할 수도 없고, 전쟁터로 돌변하고 만다.


 민족과 나라가 당하여 이방의 포로로 끌려가는 참사를 당한다.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여 이방인들의 각축장이 되고, 포로로 끌려가는 참사를 당하게 된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 당하고, 남유다는 바벨론에 망한다.
헬라 제국에게 망하고, 로마 제국에게 망하고, 이슬람 세력들에게 망하고, 십자군 전쟁터로 돌변하고, 세계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만다.
이스라엘 나라는 세계열강들이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투쟁하는 장소로 변한다.


 이방인들에게 웃음거리로 변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출애굽으로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당하게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명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조무래기같은 이방신들에게조차도 무릎 꿇어야 하는 신이라고 조롱당하는 참사를 당하게 한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민족으로 특별하게 선별을 받았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웃 민족들의 비웃음거리로 바뀌면서 여호와 하나님도 조롱당하는 꼴이 되고 만다.


하나님께서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는 저주는 말할 것도 없이 비참하고 처참하고 말로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겠다고 작정하셔서 저주를 내리기 시작하면 어느 누구도 거절할 수도 없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리는 저주를 받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저주하겠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회개하여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마땅히 축복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면서 세상의 뭇 백성들에게 웃음거리, 조롱거리가 되도록 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모든 죄악들, 우상숭배 죄악들, 간음의 죄악들을 철저하게 회개하여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엘샤다이의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라고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죄악들을 회개하면서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신다.
회개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하나님께서 마음껏 축복하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처럼 살아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베풀어 주지 못하고 저주를 내려야 하는 하나님의 마음도 결코 편하지 않다.
하나님의 마음도 천갈래만갈래로 찢어지는 고통을 당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루속히 회개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다.
회개하여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 동안의 모든 죄악들을 하얀 눈처럼, 하얀 양털처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회복하여 다시 축복의 자리로 이끌어가신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자신들의 삶을 돌이키고 회개하여 오직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길뿐이다.


L4 & B4


하나님을 대적하고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 계명, 율례, 규례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서 살아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는커녕 저주받으면서 처참한 삶을 살아가는 몰골은 신앙인들에게도 똑같이 나타난다.
신앙인들도 삼위 하나님을 거역하고 믿음으로 살지 못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똑같이 저주받고 처참하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리는 저주를 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축복을 받으면서 살아가려고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처참하리만치 저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신앙인들에게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메시지를 주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려야겠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할 수밖에 없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셔도 저주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음으로 인하여 제주받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저주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야만 하는 삶을 살지 말고, 축복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저주해야만 하는 삶,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삶,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불순종하는 삶, 우상 숭배하는 삶, 간음과 성적인 타락, 동성애, 수간 등과 같은 추잡하고 난잡한 삶을 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사니까 우리들도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느냐?라고 하면서 세상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사는 삶에 정반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동쪽 방향을 향하여 살아간다면 신앙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서쪽 방향을 향하여 살아야 하는 것이다.


 곧바로 회개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 한다.


사람이란 존재는 동정심, 호기심으로 살아갈 때가 많다.
간혹 정상적인 삶에서 이탈해 보고 싶은 충동심리가 작용할 때가 종종 있을 수 있다.
신앙인이라면 마땅히 술 담배를 해서는 안 되는데, 간혹 술을 마셔보고 싶고, 담배도 피워보고 싶고, 마약도 해 보고 싶은 충동에 빠질 때가 있을 수 있다.
한 번쯤은 음주운전 해 보고 싶은 충동에 빠질 수도 있다.
이단들이 어떻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나? 직접 들어보고 싶은 충동질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실제로 한두 번 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곧바로 회개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 한다.
죄악의 사슬에 오래빠져 있으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온 가족들과 이웃들과 지인들에게까지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결코 유익을 주지 못하고 패가망신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꼴이 되고 만다.
회개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길만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길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다.


 언제나 성령 하나님의 감동하심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고백한 신앙인들에게는 항상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
신앙인들은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세상의 잡동산이 사상들, 음란과 우상들을 세워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는 의식으로 살아야 죄악된 세상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이겨낼 수 있다.
성령 하나님께서 세미하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귀담아들을 수 있어야 세상의 온갖 유혹들, 미혹들을 이겨낼 수 있다.
아담과 하와가 한순간 마귀의 유혹에 넘어갔을 때,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결과로 나타났던 것처럼 신앙인들도 한순간 사탄의 올무에 넘어가면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늘 깨어서 기도하면서 성령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는 감동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축복하고 싶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저주를 퍼부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로마서 12:1-2에서 사도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언제나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며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깨우쳐 주신다.
성령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는 감동을 잘 귀담아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저주하는 삶이 아니라 도리어 축복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발람 점쟁이가 세 번에 걸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저주하려고 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막아주시면서 저주가 아니라 축복하게 하시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 전폭적으로 축복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오늘 우리가 찾아야 할 믿음이란 바로 하나님께서 내리려는 저주받는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늘의 보고를 활짝 열어주시는 축복을 마음껏 퍼부어 주어야겠다는 축복하는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으로 세움을 입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우리 신앙인들을 향하여 저주를 거두시고, 이제 축복의 메시지를 주옵소서. 라고 소망을 올려드리는 거룩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