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빨리 회개해야 하는 이유?
죄는 무섭게 자라서, 나를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선교 초창기 원주민 선교를 시작하여 첫 원주민 마을에 들어갔을 때, 예배는커녕 복음을 이야기하기도
힘든 분위기였습니다. 냉랭하기만 한 그곳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 난감했었습니다.
기도로 지혜를 구하던 중, 아이들의 온몸에 상처가 많고 전혀 치료하지 않았는지 곪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미뤄두고, 앉아서 고름을 짜고 치료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마다 가서 5시간씩 그 일을 1년간 했습니다.
나중에는 소문이 났는지 옆 마을에서도 찾아와 사람이 많아져서 5시간 내내 쉴 틈 없이 고름을 짜내고,
닦고, 약을 주고, 기도한 후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1년간 하다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내가 선교사인데 복음은
증거하지 않고 지금 뭐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며,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찾아간 마을에, 웬일인지 마을의 대표급 되는 사람들이 모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놀라웠습니다.
“우리는 1년간 당신을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회의를 했는데, 당신이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인 것을
확신했습니다.
당신이 1년이나 매번 이렇게 찾아오는 것은 우리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이 뭐가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뭐가 하고 싶은 것 같냐는 제 질문에 그들은 “당신은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은 거지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원주민 마을의 대표는 예배당을 세울 땅 6천 평을 주고, 나중에는 그 예배당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서 도리어 밖에서 예배 드리는 사람이 더 많아진, 원주민 마을 1호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교회를 통해 더 깊은 원주민 마을로 들어가 전도할 것을 지속적으로 권면했고,
지금까지 세워진 180 교회 중 3분의 1이 원주민 마을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원주민 아이들의 고름을 짜낼 때 제일 난감했던 것은, 아이들이 자신의 고름을 짜내는 나를 때리며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이 아프니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 행동들을 보며
‘왜 이 아이들은 고름이 이렇게 찰 때까지 가만있었는가?’
잘은 모르지만, 아마 고름을 짜낼 때보다 고름이 차는 동안 겪은 고통이 현저히 적거나, 아예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미해서 그대로 방치해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죄는 전혀 고통 없이, 아무렇지 않게, 심지어 달콤하게 우리 안에 들어와, 마치 자기 집인 양
자리를 잡습니다. 하지만 그 죄를 우리 안에서 제거하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심지어 그 죗값이 얼마나 큰지,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뤄낼 수 없어, 주님이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신의 피로 그 죄를 씻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주님의 손을 때리기도 합니다.
심지어 우리는 그 주님의 치유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주님이 만드신 우리의 존재 안에 죄는 원래부터 우리 안에 있으면 안 될 이물질입니다.
그럼에도 매 순간 우리는 그것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탐닉하기도 합니다.
이제 짜내야 합니다. 닦아내야 합니다. 더 이상 내 안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우리 안에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꽉 찬 물컵에는 더 이상 다른 물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내 안의 성령 충만! 더 이상 죄의 자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 녹슬지 않고 닳아 없어지길 원합니다, 임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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