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인 증거들

열려라 에바다 2024. 8. 9. 10:40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인 증거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놀랄만하게 많은 정보가 중요한 역사적 증거들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특별히 로마 역사가들의 기록은 명확한 증거를 보여준다.


1. 탈로스의 기록


사마리아인 역사가 탈로스가 52년에 쓴 기록의 단편들이 3세기 역사가인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 인용되었다. 
그리스도가 죽을 때 일식(日蝕)이 있었다는데, 그때는 보름달이었기 때문에 일식이 있을 수 없는 때였다고 증언했다.


On the whole world there pressed a most fearful darkness; and the rocks were rent by an earthquake, and many places in Judea and other districts were thrown down. This darkness Thallus, in the third book of his History, calls, as appears to me without reason, an eclipse of the sun.” (Julius Africanus, Chronography, 18:1)


2. 교회 박해

타키투스(기원전56년 - 117년)는 고대 로마의 역사가들 중의 한 명으로 간주되며, A.D.112년에 이시아 총독이었으며 80-84년까지 브리타니아 속주의 총독을 지낸 율리우스 아그리콜라의 사위였다. 
그는 티베리우스(Tiberius)의 통치기간 동안 폰티우스 필라투스 밑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미신을 믿는 ‘기독교인들’(‘Christians’는 라틴어인 ‘Christus’로부터 유래)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는 네로 황제에 관한 기록에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처형된 그리스도의 죽음과 로마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네로황제 당시 교회 박해에 대해 언급된 역사문서이다. 
초기 기독교에 대한 로마 지식인들의 인식을 볼 수 있다.

서기 64년에 일어난 9일간의 화재는 인간적인 어떤 노력도, 황제의 어떤 하사품도, 어떤 속죄의 제사도 화재가 네로황제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는 소문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이 소문을 종식시키기 위해 네로는 반(反)종교적 성향으로 미움받던 이들을 기술적으로 고문할 것을 명령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Chritianus)들이라고 불리었다.
 그 이름은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에 본시오 빌라도 총독이 처형한 그리스도한테서 비롯되었다. 
당시에 처벌되었던 그 사악한 미신은 유대만 아니라 로마(제국)에서까지 다시 파고 들어와 더럽고 사악한 것을 퍼트리며 자발적인 동료들을 얻어냈다.

3. 로마 정치가의 기록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라틴어: Flavius Josephus, A.D. 37년~ 100년 경)는 가장 유명한 유대인 출신의 정치가이며 역사가이다.
기원후 66년에 발발한 유대 로마 전쟁에서 유대군을 지휘하여 로마군에 맞섰으나, 로마군의 포로가 된 뒤 투항하여 정보를 제공해 주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배려로 풀려나 로마 시민이 되었다.
그의 저서 고대사(Antiquities)에서, 야고보를 ‘그리스도라고 불렸던 예수의 형제’로 언급합니다.
그중에는 논란이 많은 구절(18:3)도 있다.
“예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그를 사람으로 부르는 것이 합법적이라면)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그가 놀라운 축제들을 있게 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경건한 예언자들이 이것들과 그에 관해 일만 가지의 다른 놀라운 일들을 미리 예언했던 대로 그는 삼 일째에 다시 살아나 그들에게 나타났다.”
다른 번역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그 당시 예수라 불리는 지혜로운 자가 있었다. 그의 행위는 선했고 고결하신 분으로 알려졌다.
많은 유대인들과 다른 나라들에서 온 사람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 형에 처해 죽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자가 되었던 사람들은 제자의 신분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가 십자가형에 처해진 지 삼일 후에 그들에게 나타났고 그는 살아있었다고 그들은 보고하였다.
따라서 그는 아마도 예언자들이 경이롭다고 말하였던 구세주였을지도 모른다.”


4. 플레곤의 기록


플레곤(Phlegon of Tralles,80-14, Φλέγων ὁ Τραλλιανός ) 하드리안 황제시대에 그리스 작가이며 2세기까지 살았다.
올핌픽(Olympiads)은 그의 주된 작품이다.
그가 예수를 언급한 내용이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Ὀριγενες, 185년 경 - 254년 경))의 작품에 나온다.
오리게네스는 켈수스에 대항하여 플레곤이 그의 연대기에서 예수를 언급하고 있다고 썼다.
미래의 사건을 아는 지식을 예수께 돌렸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가 그의 예측과 일치했음을 증언했다.
그는 티베리우스의 통치 기간 동안 지진이 동반된 일식에 대한 플레곤의 설명을 언급했다.
큰 일식이 있었고 낮 여섯시[즉, 정오]에 밤이 되어 별들이 하늘에 나타났다.
비티니아에 큰 지진이 있었고, 니케아에서 많은 일들이 뒤집어졌다.


5. 로마 역사가의 기록


수에토니우스(라틴어: Gaius Suetonius Tranquillus A.D. 120)는 로마 역사가이며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수석 장관이었다. 그는 황제 네로가 '방화광'(arsonist)이라고 비난하였다. 로마 대화재 사건을 언급할 때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Because the Jews at Rome caused constant disturbances at the instigation of Chrestus (Christ), he (Claudius) expelled them from the city (Rome).” (Life of Claudius, 25:4)
“Nero inflicted punishment on the Christians, a sect given to a new and mischievous religious belief.” (Lives of the Caesars, 26.2)

6. 비티니아 총독의 기록


비티니아의 총독인 소 플리니우스(라틴어: Gaius Plinius Caecilius Secundus, 61-113)는 Letters 10:96에서,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서 경배하였으며 매우 윤리적이었다는 사실을 포함해 초기 기독교 예배 관습을 기록하였고, 애찬식과 성찬례를 언급하였다.
루시안(Luciian) 2세기 예술가로서 그리스도를 언급한다.
유대인 탈무드(Jewish Talmud (400-700AD))의 (산헤드린 43a)는 예수의 십자가형이 유월절 전날 이루어졌다는 것과 그리스도에 대한 혐의는 술법을 쓰고 유대인들의 배교를 고무시킨 것이라 확인시켜준다.

“Jesus practiced magic and led Israel astray” (b. Sanhedrin 43a; cf. t. Shabbat 11.15; b. Shabbat 104b)
“Rabbi Hisda (d. 309) said that Rabbi Jeremiah bar Abba said, ‘What is that which is written, ‘No evil will befall you, nor shall any plague come near your house’? (Psalm 91:10)… ‘No evil will befall you’ (means) that evil dreams and evil thoughts will not tempt you; ‘nor shall any plague come near your house’ (means) that you will not have a son or a disciple who burns his food like Jesus of Nazareth.” (b. Sanhedrin 103a; cf. b. Berakhot 17b)

7. 그리스 작가의 기록


사모사타의 루시안(Lucian of Samosata, 115-200)은 예수님께서 기독교인들에 의해 경배를 받았고, 새로운 가르침을 소개하였으며, 또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처형되셨다는 것을 인정한 서기 2세기 때의 그리스 작가였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믿는 자들 간의 형제애, 개종의 중요성, 그리고 다른 신들을 부인하는 것의 중요성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말하였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규율들에 따라 살았고, 자신들이 불멸한다고 믿었으며, 죽음에 대한 경멸, 자발적인 헌신, 그리고 재물을 세상적으로 경멸하고, 공동의 재산으로 간주한 사람들로 특징되었다고 그는 말하였다.

“The Christians, you know, worship a man to this day—the distinguished personage who introduced their novel rites, and was crucified on that account…. You see, these misguided creatures start with the general conviction that they are immortal for all time, which explains the contempt of death and voluntary self-devotion which are so common among them; and then it was impressed on them by their original lawgiver that they are all brothers, from the moment that they are converted, and deny the gods of Greece, and worship the crucified sage, and live after his laws. All this they take quite on faith, with the result that they despise all worldly goods alike, regarding them merely as common property.” (Lucian, The Death of Peregrine. 11-13)




영지주의적인 글들(진리의 복음, 요한의 외경, 도마 복음, 부활에 관한 논문 등 (The Gospel of Truth, The Apocryphon of John, The Gospel of Thomas, The Treatise on Resurrection, etc.)을 가지고 있는데 이 모두가 예수님을 언급하고 있다.




사실, 초기 비기독교적 자료들만으로도 우리는 거의 복음을 재구성할 수 있다. 
예수는 그리스도로 불렸고,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유월절 날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으나, 보름달인데 일식이 있었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 구세주가 되었고, 그의 제자들은 그를 하나님으로 경배하면서 믿었다.
세속적 그리고 성경적 역사 모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한 너무나도 엄청난 증거가 있다. 
아마 예수님께서 존재하셨다는 가장 큰 증거는 1세기 때, 열두 사도들을 포함한 문자 그대로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들의 목숨들을 기꺼이 바쳐 순교했다는 것이다. 
이런 자료들이나 성경의 역사적 자료 양쪽 모두에서 이런 사실을 풍성하게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실이라 믿는 것을 위해 죽을 수는 있으나, 아무도 자신들이 거짓인 줄 아는 것을 위해 죽지는 않을 것이다.